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51화 (51/190)
  • 제51화

    “하하, 어디로 모실까요?”

    “어디로든?”

    우상엽이 환하게 웃으며 핸들을 손바닥으로 탁탁 친다.

    “어디로든 좋죠. 어디로든 가겠습니다. 혹시 술은 좋아하십니까?”

    “아니요. 술은 안 마셔요.”

    “아, 그러시구나. 그러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뜨거운 피를 지닌 남자와 여자가 이 시간에 술 말고 뭘 해야 하지?”

    우상엽이 은근한 투로 말하니 조수석에 탄 미호가 씨익 웃는다. 곁눈질로 그 미소를 본 우상엽이 입맛을 다신다.

    인호와 헤어진 우상엽이 주차장에서 차를 빼려 할 때 미호가 차 창문을 두드렸다.

    그러고는 함께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작정하고 뿌리는 미호의 유혹은 마약보다 더 강렬하다. 만약 미호가 우상엽을 찾지 않았다면 그는 몇 날 며칠이고 미호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 경치 좋은 곳으로 갈까요?”

    미호가 가만히 그를 바라보며 웃는다.

    “제가 아는 호텔이 아주 뷰 맛집입니다. 거기서 내려보는 서울 야경이 일품이거든요.”

    미호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우상엽이 환하게 웃으며 차를 유턴시킨다.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호텔로 차를 몰아갈 때였다.

    “이름이 상엽 씨? 라고 했나요?”

    “네, 우상엽니다.”

    신호에 걸리자 미호가 말을 건다. 우상엽이 웃으며 몸을 틀어 미호를 바라본다.

    그 순간 미호의 눈에 붉은빛이 스쳐 지나간다.

    “상엽 씨는 돈 많아요?”

    “네. 돈 많죠.”

    “나이도 안 많은 것 같은데 어떻게 돈을 많이 벌었어요?”

    “뻔하잖아요. 일확천금 노리는 호구들 털고, 남자의 얼굴 보고 직장 보는 골빈 년들 털고, 그냥 어머님, 아버님 해주면 좋아하는 노인네들 털고. 그런 거죠.”

    우상엽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그렇구나.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최근에 골빈 년 하나를 만났거든요. 아버지가 작년에 공무원 정년퇴임 해서 퇴직금을 받아 현금이 조금 있었죠. 살고 있던 아파트도 가격이 좀 나가고요. 살살 꼬셨죠. 돈맛도 보여주고요. 그런 다음에 결혼해야 하니까 크게 한 번 땡기자고 했죠.”

    “작전주?”

    “네. 이 박사라고 이 바닥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 있거든요. 나는 이 박사한테 호구들 물어다 주고 퍼센테이지로 정산받아요. 손경미도 그렇게 물어주고 제법 땡겼죠.”

    “다른 사람은?”

    우상엽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계속 주절주절 떠들어 댔다.

    “그렇구나. 우리 상엽 씨는 아주 나쁜 놈이었구나.”

    “그렇죠. 그런데 원래 나쁜 남자가 더 매력적인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저한테 당한 병신들도 다 지들 욕심 챙기려고 그런 거잖아요. 그냥 수 싸움에서 제가 조금 앞선 것뿐이죠.”

    “오케이. 그러면 이번에는 내가 수 싸움에서 조금 앞섰네.”

    “네?”

    미호가 환하게 웃는다.

    “우리 상엽 씨는 콩밥 좋아하나 몰라.”

    우상엽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미호를 바라본다.

    “좋아해야 할 것 같아서.”

    * * *

    - …… 이 박사요? 그 사람 사채도 해요. 자기가 무덤 속에 던져놓고 그 사람들한테 돈 빌려준 후에 장기까지 싹 쓸어가죠. 진짜 무서운 사람이에요.

    탁-

    정재훈이 녹음기를 멈춘다.

    “하아-.”

    답답한지 긴 한숨을 토해낸다.

    인호는 그런 정재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이 새끼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사형이 없죠.”

    인호가 진정 아쉬움을 담아 말한다.

    “사형은 있지만 실제로 집행하진 않습니다. 이 새끼 때문에 인생 망친 사람이 몇이고 목숨 끊은 사람이 몇이에요. 정말 이런 새끼는 바로 죽여버려야 하는데.”

    “법을 집행하시는 분이 그러시면 안 되죠.”

    “법을 집행하는 검사이기 이전에 저도 사람입니다. 이런 새끼한테 나와 연관 있는 누군가가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바로 터트리시지는 않을 거죠?”

    정재훈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 새끼는 그냥 잔뿌리에 불과해요. 진짜 굵은 뿌리를 모조리 캐내야죠.”

    이 박사라 불리는 작전주의 핵심.

    작전주로 인생을 나락까지 떨어트리고 그들에게 사채를 놓은 후 장기까지 모조리 빼 가서 판다는 진정한 악마.

    “인호 씨가 본다는 망령들이 참 무섭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정말 무서운 건 사람이에요. 산 사람.”

    “그걸 이제 아셨어요?”

    정재훈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뿌리를 남김없이 모조리 뽑아버릴 겁니다.”

    “그렇게 큰돈 만지는 놈이 권력 가진 놈들하고 연결되어 있지 않을 리 없어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정재훈이 씨익 웃는다.

    “옛날에 부월이라고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도끼가 있었어요. 임금은 전쟁에 나서는 장군에게 부월을 줬는데. 전쟁을 주도할 장수에게 임금의 권위를 주는 거죠. 이번에 제가 그 부월을 받았거든요?”

    “아무나 썰어 버려도 괜찮다?”

    “그렇죠.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인호 씨가 어렵게 마련해 준 기회를 흐지부지 만들진 않을 테니까요.”

    * * *

    마포대교 위.

    인호는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물에 여러 개의 푸른빛이 깜빡이는 것이 보였다.

    한강에 투신한 사람들이 죽는 이유로는 수심과 유속도 있겠지만 저 푸른빛, 창귀들 탓도 있었다.

    물귀신들은 자살하러 강물에 뛰어든 이들이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살려고 발버둥 칠 때 그들의 발목을 잡고 강 깊은 곳으로 끌고 내려간다.

    그래서 물귀신인 것이다.

    “왔어요.”

    인호의 옆에 푸른빛의 손경미가 서 있다. 인호가 휴대폰을 조작한다. 휴대폰에서 오늘 저녁 뉴스의 한 부분이 흘러나온다.

    - XX 증권사에 근무하는 우 씨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불특정 다수의 대상을 작전주로 끌어들여 …… 피해자들 중 다수가 현실을 비관하여 자살하였고 몇몇은 실종되었습니다. 우 씨는 작전주의 수괴라 할 수 있는 타칭 이 박사라는 이와 공모하여 …… 장기 밀매, 유락 행위 강요 등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뿐이네요.”

    손경미가 환하게 웃는다.

    “수고하셨어요.”

    “그리고 또 전해줄 말이 있어요. 이 박사인지 하는 개자식이 꿍쳐둔 돈이 많았나 봐요. 국고로 회수한 후 그간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지급한다고 해요. 피해자가 너무 많아 얼마나 돌아갈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아-, 우상엽. 그 새끼에게 회수한 돈도 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엄마, 아빠가 조금은 편해지시겠네요.”

    “경미 씨도 같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죠. 힘들더라도 견뎌보지 그러셨어요.”

    손경미가 고개를 흔든다.

    “제가 죽었으니까 인호 씨 만난 거잖아요. 안 그랬으면 그 개새끼는 지금도 다른 사람 노리고 있었을 거예요.”

    정확히 맞는 말이었다.

    우상엽은 그 와중에도 인호에게 작업을 치려 했었으니.

    “죄송한데 부모님에게 이 말 좀 전해주실래요?”

    “말해봐요.”

    “정말 죄송하다고. 그리고 감사하다고. 두 분의 딸로 태어난 것이 제겐 가장 큰 축복이었다고요.”

    “꼭 전해줄게요.”

    어려운 부탁이다.

    손경미의 부모님은 아직 그녀의 죽음을 모르고 있었다. 손경미는 아직 실종 상태였기 때문이다.

    힘겨운 상황에서 딸의 죽음 소식까지 듣게 된다면 부모님은 더 힘들어할 것이다.

    하지만 인호는 손경미의 소식을 전해 주리라 마음먹었다.

    “꼭 전해 드릴게요.”

    인호가 환하게 웃는다.

    “저기 뒤에 있는 분 따라가시면 돼요.”

    손경미가 몸을 돌린다. 그곳에는 저승사자가 서 있었다.

    “망자 손경미.”

    “네.”

    “가야 할 시간입니다.”

    “네.”

    “그래도 당신은 아주 운이 좋은 편이에요.”

    손경미가 저승사자를 바라본다.

    “한을 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망자들이 많아요. 그리고 그대로 저승으로 가는 망자들도 많고요.”

    “그러게요. 제가 참 운이 좋네요.”

    손경미가 인호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자-, 서두릅시다. 이미 많이 늦은 건 알고 있죠?”

    “네, 가요.”

    손경미는 저승사자와 함께 마지막 여행길을 떠났다.

    혼자 남은 인호는 흘러가는 강물에 다시 시선을 둔다. 손경미의 마지막 환한 미소가 떠올라 피식 웃는다.

    “나 잘하고 있는 것 맞죠?”

    밤하늘에 누군가의 얼굴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아부지.”

    * * *

    탁- 탁- 탁-

    채소를 다듬는 칼질이 경쾌하다.

    “오-, 소고기!”

    “때깔만 봐도 알 수 있어. 저거-, 한우야. 한우.”

    화염병과 넥타이가 식탁에 앉아 침을 꼴깍 삼키고 있다.

    “인호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무리를 하지?”

    탕탕탕이 이상하다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사기꾼이 그러는데 요즘 인호가 돈 잘 번대.”

    “정말?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는 건가?”

    “그래도 인호가 쥐구멍은 아니지. 개미구멍이다, 개미구멍.”

    탁-!

    “이것들아. 다 들린다.”

    “헙! 미안.”

    “귀도 밝아요.”

    “좋은 거 해주면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라.”

    오늘은 인호 본인이 생각해도 진수성찬이다.

    소고기뭇국에 육전, 거기에 더덕무침까지 했다. 술도 평소와 달리 고급스러운 안동소주다.

    “넥타이.”

    “응?”

    “너 제발 좀 현관문 밖으로 고개 내밀고 그러지 마라.”

    “아무도 못 보는데 무슨 상관이래?”

    “보름달 뜨는 날이면 우연히 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 전에도 그런 적 있었잖아.”

    “알았어. 가끔 사람 발소리 들리면 그냥 보는 것뿐이야. 매일 이 화상들만 보고 있기가 그래서.”

    화염병과 탕탕탕이 눈을 부라린다.

    “좀 씻고 젯상 차려 줄 테니까 기다려. 괜히 국 통에 얼굴 처박고 그러면 다음부터 정말 국물도 없다.”

    욕실로 들어가 옷을 벗는다.

    거울에 상체가 비친다. 문신을 한 듯 온통 기괴한 도형이 새겨져 있었다.

    “응?”

    손을 왼쪽 가슴으로 가져간다.

    엄지손톱 두 개 정도의 작은 부분일 뿐인데 검지 않고 살이 보인다. 분명 검은 것들로 가득해야 할 곳이다.

    “제가 생각하는 게 맞는 겁니까?”

    누군가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질문을 던진다. 거울 속 인호의 입매가 뒤틀린다. 인호가 쓰게 웃으며 말한다.

    “하, 하하. 이러면 제가 미련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 * *

    “좋은 아침이에요.”

    사무실에 들어선 인호가 소파에 앉은 이를 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주인도 없는 사무실에 왜 오신 겁니까?”

    “꼭 그렇게 삐딱하게 말해야 해요?”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는 여자는 부장이었다.

    “그리고 오니까 민정 씨 있던데요.”

    “민정아. 앞으로 일찍 출근하지 말고 정시 출근해. 알았어?”

    “네, 소장님.”

    “나는 커피로.”

    인호는 이민정이 타 준 커피를 마시면서 부장을 힐끔거렸다. 휴대폰으로 뭔가를 검색하고 있던 부장은 그에게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말한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요. 아참, 이번 일은 정말 잘 해결했어요. 얼마나 좋아요. 망자의 일은 저승에서, 생자의 일은 이곳에서.”

    “저-, 어제 샤워를 하는데…….”

    인호가 입을 닫는다.

    휴대폰을 내려놓은 부장인 인호를 똑바로 바라본다.

    “인호 씨 눈으로 본 것만 믿어요.”

    “그런 겁니까?”

    “그런 거죠. 정재훈 검사 이번 일로 승진했어요. 서울지검에 특별수사 5부가 새로 생겼어요. 거기 부장 검사에요.”

    “이야, 출세했네요.”

    “정 검사 정도면 그래도 되죠.”

    “그렇죠.”

    차를 다 마셨는지 부장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가시게요?”

    “차 다 마셨으니 가야지요?”

    “여기가 찻집입니까? 별다방이예요? 오며 가며 들려서 차 마시고 가는 그런 곳이냐고요?”

    “그러면 안 돼요?”

    부장이 인호를 빤히 쳐다본다. 불길한 예감이 밀려온다.

    “난, 나는 인호 씨와 조금은 가까워진 줄 알았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던 건가요?”

    부장의 눈이 촉촉하게 물들기 시작한다.

    “아, 아닙니다. 부장님. 가까워졌죠. 와우-, 나는 부장님이 친누나인 줄 알았어. 앞으로 차 말고 밥 드시러 오세요. 차만 마시고 가시니까 서운해서 그렇죠.”

    부장이 씨익 웃는다.

    “알았어요. 다음에는 밥도 먹고 갈게요.”

    그리고는 사무실을 떠난다.

    “민정아.”

    “네, 소장님.”

    “이 상황이 잘 정리가 안 돼서 그러는데 니가 봐도 내가 당한 거지?”

    이민정이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네, 맞습니다. 호갱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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