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50화 (50/190)
  • 제50화

    영험한 산에는 산을 지키는 주인이 있다.

    산의 주인들 중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것이 산군, 즉 호랑이다. 그 외에도 곰, 학, 이무기 등이 있었다.

    인호가 지리산을 찾은 이유는 이 산의 주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잘 지내고 계시겠지?”

    인호는 지리산 천왕봉 중턱을 오르고 있었다. 등산로가 아니라 길도 나 있지 않았고 사람의 흔적도 없었다. 자칫 잘못 발을 들이면 길을 찾지 못해 산의 미아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무성한 숲이었다.

    커다란 바위가 보이자 인호가 잠시 걸음을 멈춘다.

    “정가 성을 쓰는 인호입니다.”

    큰 소리로 외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인호가 또다시 외치려 할 때였다.

    “정가 성…….”

    “이미 왔어. 시끄러우니까 그만 떠들어.”

    인호가 재빨리 몸을 돌린다. 누군가가 바로 뒤에 왔음에도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상대를 확인한 인호가 꾸벅 허리를 숙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러게.”

    하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다.

    검은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리는 엄청난 미녀였다.

    “이번에는 뭘 잡으려고 온 거야?”

    “하하, 뭘 잡으러 온 것이 아니라 미호 님을 뵈러 왔습니다.”

    “날 보러와?”

    미호.

    지리산의 주인이자 여덟 꼬리를 가진 여우였다.

    인호와 미호의 인연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계룡산 박수무당 박갑수의 부탁으로 지리산에 오게 되었다. 산기슭 마을 주민들의 농사를 망치고 급기야 사람에게까지 해를 끼치는 존재를 처리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박갑수는 그 존재가 아주 오랫동안 살다 죽은 멧돼지의 수령이라고 했다.

    멧돼지의 수령을 찾기 위해 지리산을 이 잡듯 뒤지고 다니다 만난 것이 바로 미호였다.

    그때 멧돼지 수령은 미호의 손짓 한 번에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말았다.

    “호오-. 무슨 일로 날 보러 왔을까?”

    “하하, 멀리서 손님이 왔는데 차도 한 잔 안 내주십니까?”

    미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인호를 바라보다 피식 웃는다.

    “능청스러운 것은 여전하구나.”

    “그게 제 매력이죠.”

    미호는 아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지만, 그 힘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진 않았다.

    오히려 지리산에서 실족하거나 길을 잃어 헤매다 죽은 이들의 혼을 저승사자에게 인도해주는 일을 하기도 했다.

    “물론 차 한 잔쯤은 내줄 수 있지.”

    미호가 바위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바위 위쪽을 자세히 살피면 눈에 잘 띄지 않는 동굴이 있는데 그곳이 미호의 집이었다.

    “이야, 집이 전보다 더 좋아졌는데요.”

    “당연하잖아. 요즘 건축 자재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동굴 안쪽은 굉장히 넓었다. 8년 전 처음 왔을 때보다 세 배 이상 넓어진 것 같았다. 중앙에는 작은 옹달샘까지 있었다.

    미호는 인호에게 의자를 권한 후 도자기로 된 주전자에 물을 받아 온다.

    “호오-.”

    미호의 입에서 붉은 기운이 흘러나와 주전자를 순식간에 달군다. 차를 우린 미호가 잔을 인호 앞으로 밀어준다.

    “천천히 마시면서 말해봐. 우리 같은 존재들을 없애야 할 네가 어째서 왔을까?”

    “제가 미호 님을 어떻게 없앱니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니야? 나 요괴잖아.”

    “아이쿠, 그런 망측한 말씀하지 마세요. 어서 빨리 아홉 번째 꼬리 얻으시고 등선하셔야죠.”

    미호가 씨익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은 금방 사라진다. 미호가 싸늘한 눈빛으로 말한다.

    “아직 잘 모르나 본데. 우리들이 도력을 쌓으려면 인간의 간을 먹어야 해. 그중 숫총각의 간은 최고지.”

    “아마추어처럼 왜 그러십니까? 전설의 고향도 아니고 그 말을 누가 믿습니까?”

    “하여튼 낭만이 없어졌어. 사십 년 전만 해도 네 간을 빼 먹겠다 하면 다 기겁하고 도망쳤는데. 그래서 왜 왔는데?”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인호가 손경미와 우상엽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미호가 고개를 기우뚱하며 인호를 바라본다.

    “그냥 죽여버리면 되잖아. 그게 네 방식 아니야?”

    “하, 하하. 그랬……었죠?”

    “지금은 아니다?”

    “하도 뭐라 그러는 분들이 많아서요.”

    인호가 말을 하며 위쪽을 힐끔거린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미호가 크게 웃는다.

    “네가 미운털이 잔뜩 박히기는 했지. 그렇다면 인간의 법으로 처리하면 되는 일 아닌가?”

    “그게 힘들다네요.”

    “얘가 산속에 산다고 나를 무시하네. 여기도 와이파이 연결되거든?”

    미호가 스마트폰을 턱 꺼내 탁자에 올려놓는다.

    “금융감독위원회라고 있잖아. 그거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검찰 부서도 있을 테고.”

    “그렇긴 한데 증거를 찾을 수 없대요. 범죄 지능이 높아져서 잡기가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흐응-, 그래? 인간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걸 나한테 온다고 해결 방법이 있을까?”

    “네, 있을 것 같아요.”

    미호가 묘한 눈빛으로 인호를 바라본다.

    “니가 위에 계신 분한테 미움받았다고 물귀신처럼 나까지 끌고 들어가려고? 싫거든. 한 이백 년만 더 수행하면 아홉 번째 꼬리 얻을 수 있거든.”

    “그 자식을 죽여 달라는 그런 부탁 아니에요. 인간의 법으로 처벌할 수 있게 증거만 좀 찾아주세요.”

    “내가 경찰도 아닌데 어떻게 증거를 찾아?”

    “증언만 받아 주세요.”

    “증언?”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증언이요. 미호 님이라면 그 녀석의 마음속에 있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있잖아요.”

    “호오-. 그런 뜻이었구나. 그렇긴 하지.”

    자고로 여우불, 여우귀신은 인간을 홀리는 재주가 있다고 했다.

    한낱 귀신도 그런데.

    미호는 여우불이나 여우귀신 따위가 아닌 천년이 넘도록 도력을 쌓은 산의 주인이었다.

    “부탁드립니다. 억울하게 죽은 한 여자와 그녀의 가족들.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피해자들을 위한 일입니다. 어차피 받아야 할 죗값 받게 하는 거니 미호 님이 위쪽에 찍힐 일도 없지 않겠습니까?”

    “싫은데?”

    미호의 거절에 인호가 어색하게 웃는다. 미호가 단번에 부탁을 들어 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미호 님이 제 부탁을 들어주시면 저도 미호 님 부탁을 하나 들어 드릴게요.”

    “저울이 너무 한쪽으로 기우는 것 같지 않니? 무려 팔미호라고. 내가 들어주는 부탁 하고, 네가 들어줄 수 있는 부탁 하고 무게가 같을 리가 없잖아.”

    “어떻게 하면 될까요?”

    미호가 웃으며 손가락 세 개를 편다.

    “부탁 세 개. 오케이?”

    “콜!”

    * * *

    “여긴 여전하네.”

    극락 흥신소에 들어서며 미호가 중얼거린다.

    사기꾼과 영감, 뚱보가 미호를 보고는 화들짝 놀란다.

    “쟤들도 여전하고.”

    “하, 하하. 미호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사기꾼이 어색하게 웃으며 꾸벅 인사를 한다. 영감과 뚱보도 미호의 눈치를 살피며 인사한다.

    미호는 지리산에 떠도는 망령들을 저승사자에게 인도하곤 했는데 인호가 그녀를 찾았을 때 함께 온 세 망령도 저승으로 보내려 했었다.

    미호의 힘이 워낙 강해 인호가 막을 수 없었고 하마터면 세 망령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승행 급행열차를 탈 뻔했었다.

    “얼라? 야, 뚱땡이.”

    “넵!”

    뚱보가 차렷 자세로 크게 대답한다.

    “어쭈! 레벨업 하셨어요? 아니구나. 망령에서 저승사자로 전직하셨어요?”

    “게임도 할 줄 아세요?”

    인호의 물음에 미호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손가락으로 톡톡 친다.

    “아-!”

    미호는 오랜만에 산을 벗어났기에 한복이 아닌 빨간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몸매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드레스였다.

    “저 아가씨는…… 초면이네?”

    “안녕하세요. 이민정이에요.”

    “평범한 아이는 아니구나. 힘들게 살았겠어.”

    이민정이 웃으며 미호에게 자리를 권한다.

    “앉으세요. 차는 뭐로 드릴까요?”

    “녹차가 좋겠어. 고마워.”

    인호가 미호의 맞은 편에 앉는다.

    우웅-

    미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 자식 신상 정보 보냈습니다.”

    휴대폰을 조작한 미호가 씨익 웃는다.

    “잘 생겼네. 하긴 그러니 여자애들 홀려서 사기를 쳤겠지.”

    미호가 혀로 입술을 핥는다.

    “첫 번째 부탁!”

    “벌써요?”

    인호가 의아한 듯 바라보자 미호가 화사하게 웃는다.

    “뭔데요?”

    “나…….”

    미호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클럽 데려다줘.”

    * * *

    인호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평소에 시끄러운 곳을 썩 즐기지 않기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곤욕이었다.

    인호는 맥주를 마시며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있는 미호를 지켜보고 있었다.

    육감적인 몸을 붉은 원피스에 감춘 미호의 주변에는 몇몇 남자들이 달라붙어 있다.

    “춤 잘 추네. 산속에서 미튜브로 매일 클럽 댄스 보고 연습했나. 그나저나 저 불나방들은 지들이 누굴 유혹하려는 건지 알려나 몰라.”

    다행이라면 미호가 남자들의 관심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에 부벼대는 남자들과 눈을 맞추기도 하고 그들을 유혹하 듯 아찔한 춤사위를 선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부탁 하나 꽁으로 벌었네.”

    남은 맥주를 비우고 한 병 더 주문한다.

    “저도 한 잔 사 주시면 안 돼요?”

    고개를 돌려보니 탱크탑에 핫팬츠를 입은 아름다운 여자가 보였다. 유혹하려는 듯 매혹적인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인호가 그녀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네, 안 돼요.”

    사기꾼이 보았다면 또 ‘정인호 고자설’을 꺼낼 테지만 이런 곳에서 여자를 만나 무언갈 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예쁜데 왜 거절했어?”

    자리로 돌아온 미호가 여자를 보며 묻는다.

    “여자한테 관심이 없어서요. 그러는 미호 님은 왜 벌써 오셨어요? 꽤 즐거워 보이시는 것 같던데요.”

    “지저분하게 귀에 숨을 불어넣잖아.”

    “아이쿠야. 그래서 가만히 두셨어요?”

    “말했지? 나 사고 치면 안 돼. 저 녀석들 운 좋았지.”

    미호는 말을 하면서도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고 있다.

    “우리 춤추자.”

    “싫습니다. 아니, 못 춥니다. 한 번도 춰본 적 없습니다.”

    “흐응-, 이럴래? 나한테 잘 보여야 하잖아.”

    “공짜로 해주는 것도 아니고 거래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확 두 번째 부탁 써 버린다?”

    “그러면 감사하죠. 바로 나갈까요?”

    미호가 검지 끝으로 인호의 이마를 톡 친다.

    “그건 내가 싫거든. 정말 아끼고 아껴서 부려 먹을 거거든.”

    “네, 네. 그렇게 하십시오.”

    미호가 인호를 일으키고는 팔짱을 낀다.

    “놀 만큼 놀았다. 이제 일하러 가자.”

    * * *

    “여깁니다.”

    우상엽이 인호를 발견하고 손을 흔든다.

    “조금 늦었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빨리 온 거라. 하하, 차 좋으시네요.”

    우상엽이 창밖 주차장에 보이는 인호의 차를 보며 말한다. 인호가 차에서 내릴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식사는 제가 미리 주문했습니다. 괜찮으시죠?”

    “네, 괜찮습니다.”

    주문한 음식이 차례로 나온다.

    “대은 그룹은 일하기 어떠세요? 대기업 다니시는 고객들이 많은데 항상 남들은 부러워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힘들다고 하시더라고요.”

    “직장생활이 다 그렇죠.”

    인호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래도 기획 조정실은 조금 다르죠? 그룹 핵심이지 않습니까?”

    인호가 우상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하, 하하. 그냥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기획 조정실에 근무하시는 분은 처음 뵙거든요.”

    “네.”

    “자산 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그냥 은행에 넣어 둡니다.”

    “아-. 그러세요. 아쉽다. 요즘은 자산을 불릴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거든요.”

    “그중 한 가지 방법이 주식이고요?”

    인호의 말에 우상엽이 어색하게 웃는다.

    “하하, 그렇죠. 제가 증권사에 있다고 드리는 말이 아니라 요즘 자산이 많으신 분들 중 주식하시는 분들이 많죠.”

    “그렇군요. 아쉽게도 제가 그쪽에는 관심이 없어서요.”

    “그냥 밥만 먹기 좀 그런데 술 한잔하실까요?”

    “아니요. 식사 마친 후 바로 회장님 봬야 해서요.”

    회장님이라는 말에 우상엽이 환하게 웃는다.

    “역시 그룹의 중심이시군요. 아쉽지만 술은 다음 기회로 미루죠.”

    그때 누군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어머! 인호 오빠.”

    빨간 원피스를 입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이다. 다가오는 여인을 보며 우상엽이 침을 꼴깍 삼킨다. 반면에 인호는 다가오는 여자를 보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서울이 좀 좁다? 요즘 자주 보네?”

    “그러게. 잘 지내지?”

    “일주일 전에 했던 질문인데?”

    “또 이런다. 호호. 그런데 저분은 누구셔?”

    우상엽이 벌떡 일어나 명함을 꺼낸다.

    “대민 증권에서 근무하고 있는 우상엽 과장이라고 합니다.”

    “아-, 증권맨이시구나.”

    여자, 미호가 환하게 웃는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우상엽의 명함을 끼우고 흔들며 말한다.

    “나 주식에 관심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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