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49화 (49/190)
  • 제49화

    “방해하지 말고 꺼져!”

    음성이 이상하다.

    남자의 것도 여자의 것도 아닌 중성적인 음성이었다.

    인호가 넘어져 있는 남자에게 다가간다.

    “오, 오지 마.”

    남자는 앉은 채로 뒤로 물러나려 한다.

    “망자가 생자의 몸을 차지하면 안 된다. 너로 인해 그 남자가 크게 위험할 수 있어.”

    “상관없어. 이 개새끼는 죽어야 해.”

    한강물에 자살하기 위해 난간을 넘던 모습이 떠오른다. 저 남자에 빙의된 망령은 정말로 남자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서로 지켜야 할 선이라는 있는 것이다. 명부의 네 촛불은 이미 불이 꺼졌을 테니 더 이상 이승을 어지럽히는 행위는 하지 말거라.”

    “싫어. 싫다고!”

    중성적이던 음성이 완전한 여자의 음성으로 들려온다.

    인호는 몸을 일으켜 도망치려는 남자를 쫓았다. 그의 눈에 푸른 기운이 머문다. 손을 뻗어 남자의 등을 툭 친다.

    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남자의 몸에서 푸른빛이 툭 튀어 나간다. 남자의 몸은 힘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인호는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푸른 기운, 망령을 바라본다.

    몸에서 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창귀로구나.”

    물에 빠져 죽은 귀신, 즉 물귀신이다.

    창백한 안색의 여자가 원망에 가득한 눈으로 인호를 쏘아본다.

    “방해하지 말라고.”

    “네가 하려는 짓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허무는 짓이야. 두 곳 모두에 좋지 않아. 그러니 네가 가야 할 곳으로 그만 가도록 해라.”

    인호가 손을 뻗는다.

    그의 손에서 푸른 빛이 흘러나온다. 망령의 행동을 제압하고 저승사자를 부르면 그만이다.

    “싫어!”

    여자 망령의 모습이 흐릿해진다. 인호가 기운을 쓰기 전 멀리 도망친 것이다. 곧장 망령을 쫓으려던 인호가 걸음을 멈춘다.

    “기사님. 이 남자 좀 병원으로 옮겨 주세요. 금방 따라갈게요. 오늘 일 못 하신 것까지 다 계산해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대리기사에게 빠르게 말한 후 망령이 도망친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미 멀리 도망갔는지 망령이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인호의 걸음은 여유로웠다.

    이미 망령의 기운을 느꼈기에 찾으려면 찾을 수 있다. 게다가 조금 전 도망친 망령은 이 다리, 마포 대교를 벗어나지 못한다.

    “도망쳐 봐야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뜻이다.”

    인호가 교각 하나를 지난 후 몸을 천천히 돌린다.

    난간의 아래쪽에 푸른 기운이 보인다. 도망쳤던 여자 망령이 쑥 올라온다. 인호는 망령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까 그 남자 왜 죽이려 했지?”

    이런 질문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창귀들은 자신이 빠져 죽은 물가에서 사람들을 죽음으로 인도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창귀들은 악령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여자 망령에게서는 악한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 새끼는 죽어야 해.”

    “그러니까 왜 죽어야 하냐고.”

    “저 새끼가 날 죽였으니까. 그리고 우리 가정도 파탄 냈으니까.”

    “널 죽인 살인자라고?”

    “날 직접 죽이지 않았어. 하지만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지.”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

    * * *

    손경미가 우상엽을 만난 것은 홍대의 한 클럽이라고 했다. 클럽에서 만나 우상엽과 연인 관계가 되었다. 우상엽은 증권사에 근무하는 연봉이 상당한 남자였다.

    “유망주라고 소개해 준 주식으로 몇 번 돈을 벌었어요.”

    그렇게 몇 번 돈을 벌 때마다 우상엽은 ‘우리 결혼자금이야’라고 말했다.

    “자기가 거래를 하면 내부자 거래라 불법 행위라고 했어요.”

    우상엽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손경미는 그의 말에 따라 주식에 투자했다. 투자에 실패할 때도 있었지만 높은 확률로 이익을 얻었다.

    “평소와는 달랐어요. 마지막으로 크게 한 건 하고 결혼하자고 했어요. 너무 확실한 정보라고 실패할 리가 없다고 했어요.”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으라고 했을 거고요?”

    인호의 말에 손경미가 고개를 끄덕인다.

    손경미는 그간 모은 돈과 부모님이 가지고 계신 돈은 물론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다.

    우상엽이 그걸로도 모자란다고 하는 바람에 사채까지 쓰게 되었다.

    “두 달만 기다리면 세 배 이상 수입을 낼 수 있다고 했어요.”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다.

    우상엽이라는 놈이 증권사에 근무하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의 부업이 작전 세력이라는 것이 문제였을 뿐.

    “처음에는 정말 미친 듯 올랐어요. 조금만 더 가지고 있으라고 했어요. 아직 최고점이 아니라고. 그런데, 그런데…….”

    “작전 세력에게 당했군요.”

    손경미가 고개를 푹 숙인다.

    “집이 풍비박산 났어요. 사채업자들이 아버지 직장에, 집에 찾아왔어요. 제 직장에 와서도 술집에 나가서라도 돈을 갚으라고 했어요. 직장 동료들을 볼 자신이 없어 퇴사했어요.”

    그리고 죽음을 선택했으리라.

    “경미 씨.”

    “네.”

    “일단 기다려 볼래요? 나 한번 믿어봐요. 그 자식을 죽이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법의 심판을 받게 해줄게요.”

    그러라고 만든 것이 정인호 사고 전담 테스크포스 아니던가.

    “경미 씨가 죽이면 그걸로 끝나요. 그 자식 목숨도 끝장나겠지만 경미 씨 역시 무한한 시간을 불구덩이 속에서 고통스러워해야 해요.”

    손경미가 두려운 듯 몸을 가늘게 떤다.

    “그러니 내게 맡겨요.”

    * * *

    응급실에 들어선 인호는 우상엽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대리기사가 우상엽의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고생 많으셨어요.”

    “고생은 뭘요. 이런 일 있으면 당연히 도와야죠. 그런데 지금까지 뭐 하다 오신 거예요?”

    망령을 볼 수 없는 대리기사로서는 궁금할 만도 했다.

    “갑자기 오바이트가 쏠려서요. 한참 게워내고 왔어요.”

    “아-. 비싼 차에 토하면 안 되죠.”

    “아직 안 깨어났어요?”

    “그러게요. 의사 말로는 크게 다친 곳이 없다고 하는데 영 깨어나질 않네요. 술을 엄청 마셨다는데 그래서 그런가 봐요.”

    그러고 보니 술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인호가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대리기사에게 건넨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이쿠, 뭐 이렇게 많이 주세요.”

    “당연히 드려야죠. 지금부터는 제가 여기 있을 테니 가셔도 됩니다.”

    “네, 사장님. 차는 지하 2층 주차장에 있습니다.”

    인호에게 자동차 키를 준 대리기사가 떠나간다.

    인호는 의자에 앉아 우상엽이 깨어나길 기다렸다.

    “으윽-.”

    30분 정도가 지났을 때 우상엽이 깨어났다.

    “으으, 물. 물 좀…….”

    손으로 머리를 잡고 몸을 일으킨 우상엽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여기가 어디야?”

    “병원 응급실입니다.”

    그제야 인호를 본 우상엽이 인상을 찌푸리며 묻는다.

    “내가 왜 병원에 있는 겁니까?”

    “기억 안 나세요? 그쪽 마포 대교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어요. 그때 제가 지나가다 보지 않았으면 큰 일날 뻔했어요.”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생명의 은인이시네요.”

    우상엽이 꾸벅 고개를 숙인다. 굉장히 예의 바른 모습이다. 잘생긴 외모에 예의까지 바르니 여자들이 아주 푹 빠져들었을 것이다.

    인호는 당장이라도 저 얼굴에 주먹을 꽂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의사 말로는 몸에는 크게 이상이 없다고 하네요. 다음부터는 술 좀 적당히 드세요.”

    “아, 그래야죠.”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인호가 몸을 일으킬 때였다.

    “저기.”

    “하실 말씀이라도?”

    “생명의 은인이신데 보답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명함 있으시면 한 장 주세요.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보답 바라고 한 일 아닙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죠.”

    우상엽이 자신의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먼저 건넨다.

    대민 증권 과장 우상엽

    명함을 받은 인호가 지갑을 꺼낸다.

    극락 흥신소 명함을 꺼내려다 다른 명함을 꺼내 우상엽에게 건넨다.

    “오-. 좋은 곳에서 일하시네요.”

    대은 그룹 기획 조정실 명함을 주니 우상엽이 과장되게 반응했다.

    “그럼 이만.”

    몸을 돌려 걸어가는 인호를 바라보는 우상엽의 눈빛이 묘하게 번들거렸다.

    * * *

    “사기꾼.”

    “응?”

    “작전주에 대해 좀 알아?”

    “작전주? 주식?”

    “그래. 그 작전주.”

    “당연히 알지. 내가 누구야? 백 가지 사기를 올마스터한 본투비 사기꾼 아니겠어.”

    “자랑이냐?”

    사기꾼이 낄낄거리며 묻는다.

    “갑자기 작전주는 왜 물어? 제대로 된 소스라도 얻은 거야? 작전주가 빠질 타이밍만 알면 진짜 제대로거든. 십억이 수백억 되는 것 순식간이야.”

    “내가 그러겠냐? 일단 들어봐.”

    인호가 손경미와 우상엽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기꾼이 인상을 찌푸리다 쯧쯧 혀를 찬다.

    “그 새끼 처벌 못 해.”

    “왜? 작전주 그거 불법이잖아. 그 새끼 때문에 사람이 죽었잖아. 그 여자 한 명만 죽었겠냐? 아니, 안 죽었더라도 최악의 삶을 살고 있을 것 아니야!”

    말을 하다 흥분한 것인지 인호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이고, 우리 순진한 인호 어떻게 해야 할까. 자, 들어봐. 작전주 하는 애들이 바보도 아니고 자기들 빠져나갈 구멍을 안 만들어 두겠어? 작전주로 번 돈? 그거 수십 개 페이퍼 컴퍼니로 쪼개서 몇 개 나라 빙빙 돌리면 완전하게 세탁되거든. 그리고 네가 말한 그 증권사 새끼는 작전주의 핵심 맴버도 아닐 거야. 그 죽은 여자처럼 호구 물어다 주는 정도의 역할이지. 돈을 얼마 못 받는다고.”

    “갑자기 큰돈 생기면 조사할 수 있지 않아?”

    사기꾼이 고개를 흔든다.

    “이래서 순진한 애들은 안 돼요. 우리 같은 사람들만 아는 커뮤니티가 있어. 거기에서 파는 것들 중에 복권이 있어요.”

    “복권?”

    “그래. 당첨은 됐는데 당첨금을 수령하지 않은 복권. 그걸 조금 웃돈 주고 사는 거지. 그 증권사 새끼가 20억쯤 받았다고 치자. 그러면 그걸로 18억짜리 복권을 사는 거야. 그러면 어떻게 돼?”

    “씨발. 감쪽같네.”

    “그렇다니까. 복권 말고도 방법이 많아. 그래서 그 새끼 절대 못 잡아. 그러니까 그 물귀신한테 그냥 죽여버리라고 그래.”

    인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사기꾼을 쏘아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나 나갔다 온다.”

    * * *

    “금융 쪽 담당하는 검사를 소개해 줄 수는 있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정재훈의 말을 들으니 사기꾼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없어요. 아시겠지만 금융 범죄자들 머리가 좋아요. 범죄 수법도 점점 발전하고 있고요. 요즘은 범죄자들이 죄를 지으면 금융감독원이 그 수법을 조사하며 배우는 입장이라니까요.”

    “아-.”

    “방법이라면 본인에게 직접 자백하게 만드는 건데 그것도 쉽지 않아요. 맨정신에 자기 죄를 털어놓을 미친놈도 없을 테고 술이라도 먹인 다음에 말을 하고 녹음하면 심신미약 상태에서 한 녹음이라 증거로 채택이 안 돼요.”

    인호가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손경미에게 자신을 믿고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방법이 없없다.

    이전이라면 손경미가 우상엽에게 복수를 할 수 있도록 도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손경미가 진짜 악령이 될 것이다.

    “저도 그런 놈들 볼 때마다 속에서 천불이 납니다. 뻔히 범죄자인 것을 알면서도 법의 심판을 받게 할 수 없잖아요. 저한테 그 뱀파이어 귀족 같은 것들의 초능력만 있다면 다 쓸어버릴 텐데 말이죠.”

    “네? 뱀파이어 귀족이요?”

    “네. 초자연적인 존재들은 이상한 능력들 사용하고 그러지 않나요? 밀실 살인도 그런 능력으로 한 거고. 아닌가요?”

    “아-, 그렇죠. 맞아요. 그렇네요. 초자연적인 존재. 그게 있었네요.”

    인호가 씨익 웃는다.

    안개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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