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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48화 (48/190)

제48화

“지금 이 아이가 그 뱀파이어 귀족이라는 말입니까?”

“네, 검사님.”

정재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검사님은 이 아이를 이전에도 한 번 보셨어요.”

“내가요? 처음 보는 것 같은데요.”

“이 아이를 봤을 때 상황이 많이 긴박했죠.”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인호가 한숨을 토해낸다.

“지하실.”

“지하실이요?”

“네. 그때 제가 한 아이를 안고 나와 형사분에게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 달라고 했습니다.”

“아-, 기억납니다. 그 아이가 이 아이라고요?”

“네. 상황이 그래서 검사님이나 유 형사는 아이 얼굴을 살필 경황이 없었겠지만 전 정확히 기억하거든요.”

정재훈이 화면 속 아이를 바라보며 말한다.

“납치당한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곳이 사건 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까요.”

정재훈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호는 확신하고 있었다.

“밀실에서 피 빨려 죽은 남자 새끼손가락이 한 마디 잘렸었죠?”

“네.”

“저 아이도 새끼손가락이 조금 짧더라고요.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요.”

“그 말은…….”

“최근 영국에서 한국으로 입국한 사람들 조사 가능하시죠?”

“당연하죠.”

인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깨달은 정재훈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통화를 마친 정재훈이 화면 속 아이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금방 연락 올 겁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정재훈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정말입니까? 그건 매우 이상하군요.”

전화를 끊은 정재훈이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뭐라고 합니까?”

“저 아이 영국에서 온 것 맞습니다. 이름은 윌리엄 고든입니다. 나이는 열세 살입니다.”

유 형사가 놀란 듯 말한다.

“열세 살이라고요? 많아 봐야 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데요.”

“유 형사.”

“네, 소장님.”

“밀실에서 죽은 남자 이름이 뭐랬지?”

“강상현이요.”

“그래. 그 사람 가정 폭력으로 교도소에 갔다고 했지? 그게 몇 년 전이지?”

“5년 전입니다.”

인호가 정재훈을 바라본다.

“하나 더 알아봐 주시죠. 죽은 강상현에게 아들이 있었을 겁니다. 당시 나이는 대충 일곱, 여덟 살 정도? 그 아이가 어떻게 됐는지 알아봐 주세요.”

정재훈이 다시 전화를 건다.

다시 연락이 오기 전까지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현실이 믿기지 않는 것이리라.

드르르륵-

탁자 위 정재훈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여보세요. 네. 영국이요? 네. 이름이…… 확실합니까?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정재훈이 소파에 등을 기대며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맞죠?”

“네. 아버지 강상현이 가정 폭력으로 교도소에 간 후 그의 아들 강호민은 보육 시설로 갔다네요. 그 후에는 영국으로 입양되었고. 입양되어 영국에서 사용한 이름이 윌리엄 고든입니다.”

믿기 힘든 이야기에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뱀파이어 귀족들은 로드에게 직접 선택된다고 하네요. 그리고 뱀파이어 귀족들부터 영생을 얻을 수 있기도 하고요. 해외의 사냥꾼들이 몰려든 이유도 뱀파이어 귀족의 피를 얻기 위함이고요. 아주 고가에 거래된다고 하네요.”

“실제 나이는 열두 살이지만 오래전에 뱀파이어 귀족이 되어 성장이 멈춘 걸까요?”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충분한 이유는 되죠. 어쩌면 자신에게 가장 불행했던 날을 기억하기 위해 그 모습을 유지하는 것일지도 모르고요.”

정재훈이 이를 꽉 깨문다.

“복수군요.”

유 형사가 씁쓸한 듯 말한다.

“그러면 모든 게 설명되지. 자신을 학대하던 아버지를 죽인 거지. 그 아이의 짧은 손가락. 아마도 죽은 강상현이 잘랐을 가능성이 커.”

“설마 화면 속에서 우물거리는 게…….”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하던 유 형사가 말끝을 흐린다.

“아버지의 손가락. 복수를 완성한 기념품일지도 모르지.”

“전 잠시 나가보겠습니다.”

정재훈이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하아-.”

인호가 소파에 등을 기대며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뱀파이어 귀족을 처치할 기회였다. 그런데 자신의 손으로 뱀파이어 귀족을 위험한 상황에서 구출해 준 것이다.

- 우리 꼭 다시 만나요.

윌리엄 고든, 아니 강호민이 마지막에 한 말이 떠오른다.

사냥꾼들과 구마사제들이 떼거지로 몰려왔으니 아무리 대단한 힘을 지닌 뱀파이어 귀족이라 해도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평범한 아이인 척 연기하며 스스로 우리에 가두고 일행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모든 우리의 문을 열어버린 것이리라.

“영국.”

인호는 자신이 한 일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일단 상황을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기에 박주완에게 전화를 건다.

“신부님. 접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박주완은 인호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 일단 알겠어. 한국 이름 강호민, 영국 이름 윌리엄 고든이라는 거지? 일곱, 여덟 살 정도의 아이 모습이고? 내가 조치하지.

전화를 끊으니 유 형사가 자판기 커피를 한 잔 가져다준다.

“소장님 잘못이 아니에요.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했을 거예요.”

“그런다고 실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설마 그 아이, 아니 죽일 놈의 뱀파이어 잡겠다고 영국 가실 생각은 아니죠?”

인호가 고개를 흔든다.

“전문가들이 있잖아. 내가 간다고 잡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 그들에게 맡기는 게 나을 것 같아.”

정재훈이 돌아왔다.

“영국에 협조를 구했습니다.”

“설마 그 아이가 뱀파이어 귀족이라고 말을 한 겁니까?”

“설마요. 한국에서 벌어진 참혹한 사건과 연관이 되어 있다고만 말했습니다.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죠. 물론 영국 경찰이 그 아이를 찾을 가능성은 매우 낮겠지만요.”

그럴 것이다.

뱀파이어 귀족이지 않은가. 박주완과 구마사제들, 그리고 뱀파이어 사냥에 특화된 사냥꾼들이 그 아이를 찾을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당황스럽네요. 제가 학생 때 무협 소설을 많이 읽었거든요. 무협 소설에 보면 이런 말이 있어요. 강호에서 세 종류의 사람을 조심해라. 노인, 여자, 그리고…….”

“아이.”

“네, 맞아요.”

인호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드릴 말씀 다 드렸고 사실 확인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정재훈의 검사실을 벗어나는 인호의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 * *

“적당히 해라. 언제까지 그럴래?”

박주완이 잔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누구나 실수는 해. 중요한 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거지.”

“신부님도 이런 실수를 하신 적 있습니까?”

인호의 물음에 과거를 회상하는지 박주완의 눈빛이 몽롱해진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야. 구마사제의 첫걸음을 뗄 때지. 나를 가르치던 선배님과 함께 이탈리아의 한 시골 가정에서 구마 의식을 진행한 적이 있다. 어린 소녀에게 악마가 빙의했지. 아주 끔찍했어. 듣는 것만으로 타락할 정도의 악의가 가득 찬 말들을 내뱉었지. 그때 구마 의식은 주는 선배님이셨고 나는 보조 역할을 했다.”

박주완이 소주를 마신다.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니 그때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어. 결국 구마 의식은 실패했고 선배님은 소녀를 살리기 위해 악마를 자신의 몸에 받아들이셨다. 너도 알지? 타락한 구마사제가 어떻게 되는지?”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바티칸에서 공식적으로 구마사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면 악마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타락한 구마사제들은 바티칸 자체적으로 처리한다. 그런 행위를 주위에서는 ‘소각’이라고 표현한다.

“선배님이 그렇게 떠나시고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구마사제의 길이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포기하고 싶었지. 하지만 그러지 못했어. 선배님의 마지막 말 때문이었지.”

- 스테파노. 네가 나 대신 내가 해야 할 일을 해 다오.

“선배님은 나 때문에 그렇게 되신 거야. 내가 준비만 철저히 했다면 선배님이 타락하실 일도 없었지. 네가 저지른 실수는 분명 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실수를 한 거야. 누구도 그 아이가 귀족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으니까. 교활하고 사악한 존재들이 이중의 속임수를 쓴 것뿐이야. 그러니 다음에 실수하지 않으면 돼.”

인호가 박주완의 잔을 채워준다.

“신부님은 영국에 안 가셔도 됩니까?”

“유럽 쪽 일은 유럽 쪽 사제들이 처리할 거야. 나보다 유능한 형제들이 많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그 귀족 아이를 처치할 수 있다고 장담은 할 수 없어. 그렇게 쉽게 처치할 수 있는 존재였다면 진즉에 모조리 찾아 없앴겠지.”

박주완이 막창 하나를 집어 인호의 앞에 놓아준다.

“그래도 마음이 심란하면 광혜원에라도 들러.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면 근심이 사라지거든.”

“그래서 광혜원을 차리신 겁니까?”

“그랬겠냐?”

박주완이 인호의 잔을 채워준다.

“언제라도 힘들 때 연락해. 조금 귀찮기는 하겠지만 명색이 신부니까 고민 정도는 들어줄 수 있지.”

“신부님께 고해성사하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푸하하하!”

인호가 소주를 마시고 막창을 입에 넣는다.

박주완을 만나니 무겁기만 하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 * *

술을 마셔서 대리기사를 불렀다.

늦은 시각이라 그런지 도로에 차가 많지 않았다.

“술 많이 드셨나 봐요.”

“네. 조금 많이 마셨죠.”

“술이라는 녀석이 참 그래요. 적당히 마시면 기분 좋고, 조금 더 마시면 시름이 없어지고. 그런데 거기서 더 마시면 개가 되거든요. 그래서 뭐든 적당한 게 좋다고 말하나 봐요.”

연세가 지긋한 대리기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적당히 해야 하는데 그게 정말 힘드네요.”

“나도 그래요. 젊었을 때 적당히 하지 못해 나이 먹고 이러고 살아요.”

“뭘 하셨는데요?”

대리기사가 창밖을 힐끔거린다.

차는 여의도를 지나고 있었다. 멀리 한국의 월스트리트라 불리는 증권가가 보인다.

“주식에 미쳤었죠. 실력은 제법 좋은 편이라 돈도 제법 벌었죠. 그때는 적당히 하자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어요. 주식 좀 한다는 자만심에 빠져버렸죠. 결국 가진 거 모조리 날리고 이혼까지 당했다니까.”

“아-.”

우연인지 차가 마포 대교에 진입하던 중이었다.

흔히 ‘자살 다리’라고 불리는 마포 대교다. 대리기사처럼 주식에 미쳐 가진 재산을 전부 탕진하고 마포 대교를 찾는 이들이 많았다.

마포 대교의 난간에는 자살하는 이들을 방지하기 위해 희망을 주는 글귀들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자살하는 이들의 수는 해마다 늘기만 하지 줄어들지는 않았다.

자살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으면 마포 대교 인근에 자살한 사람의 시체를 찾아주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이들까지 있다고 한다.

“어-.”

끼이익-

대리기사가 갑자기 급정거한다.

“손님. 저기.”

대리기사가 창밖을 가리킨다.

인호가 재빨리 차 문을 열고 내린다. 가드레일을 뛰어넘어 달린다. 한 남자가 마포 대교의 난간을 넘고 있었다.

“그러다 정말 죽어요!”

인호가 남자를 확 잡아당긴다.

“악-!”

남자를 구한 인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죽을 결심을 할 정도면 어떻게든 살아봐요.”

넘어졌던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남자의 얼굴에 낯선 존재가 겹쳐 보인다.

“너 뭐냐?”

인호가 묻는다.

아무래도 평범한 사람을 구한 것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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