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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46화 (46/190)
  • 제46화

    정재훈 검사와 유 형사는 지원받은 강력반 형사들과 함께 지하실로 들어섰다.

    끼아악-

    캬캬캬캬캬-

    정체를 알 수 없는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듣는 것만으로 소름 끼치는 외침들.

    “거, 검사님.”

    정재훈이 총을 뽑아 든다.

    “갑시다.”

    정재훈이 앞장서려 하자 유 형사가 한발 먼저 내달린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곳 중 가장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정재훈과 일행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바닥에 어지럽게 떨어져 있는 것은 사람의 팔과 다리, 그리고 머리로 짐작된다. 놀랍게도 주위는 피바다가 아니었다. 잘린 육체에서 검붉고 진득한 것들이 흘러나오고 있을 뿐이다.

    이들을 더 놀라게 한 것은 이 처참한 광경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양손에 길지 않은 두 자루의 검을 든 백인 여자가 두 명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 여자는 검으로 상대를 압박한다. 검날에 검붉은 액체가 묻어 있는 것을 보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고깃덩어리들이 그녀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멈춰!”

    정재훈이 크게 외친다.

    하지만 여자와 이상한 소리를 토해내는 둘은 멈출 생각이 없는 듯했다.

    “검사님. 저것들 정상이 아닙니다.”

    유 형사의 말에 정재훈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알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 사람의 얼굴이긴 했지만, 입이 귀까지 찢어져 있고 날카로운 이빨이 한가득이다.

    사람의 구강구조가 아니다.

    마치 바다의 포식자인 상어의 그것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저 구강구조를 보고 있자니 지난 며칠 동안 벌어진 참혹한 연쇄살인의 범인이 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백인 여자와 싸우는 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냥꾼.”

    인호가 말한 뱀파이어 사냥꾼들이리라.

    “멈추라고 했어!”

    다시 외쳤지만 싸움을 벌이는 무리는 역시나 정재훈의 말을 무시했다.

    오히려 싸움이 더 격렬해지고 있었다. 정재훈이 손을 위로 들고 방아쇠를 당긴다.

    탕-!

    지하실이기에 총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백인 여자가 뒤로 물러서며 정재훈과 일행을 살핀다.

    “If you want to shoot, aim for head.”

    총을 쏘려거든 머리를 노려.

    일행 중 여자의 말을 알아들은 사람은 정재훈뿐이었다. 정재훈이 영어로 묻는다.

    “저것들은 뭡니까?”

    “그것도 모르면서 여기에 왔나? 하긴-. 경찰이 뱀파이어에 대해 알 리 없지. 아무튼 나는 경고했어. 어설픈 인권을 우선한다는 생각 때문에 위협 사격 같은 건 하지 마. 저 녀석들은 너희들을 한 끼 식사 꺼리로밖에 여기지 않으니까.”

    “뱀파이어-.”

    정재훈이 여자와 대치하고 있는 존재들을 바라본다.

    둘 중 하나가 여자를 향해 달려든다. 여자가 반응해 검을 베어갈 때 다른 한 녀석이 정재훈을 향해 움직인다. 상상 이상으로 빠른 몸놀림에 정재훈이 뒤로 물러서며 방아쇠를 당긴다.

    탕-!

    캬아악-!

    유 형사가 깜짝 놀라 외친다.

    “검사님!”

    정재훈은 여자의 조언을 잊지 않았다.

    저그의 이마 한복판에 구멍이 나 있었다.

    “사람이 아닙니다.”

    정재훈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머리에 구멍이 나서 뒤로 주춤 물러섰던 저그가 다시 달려든다.

    하지만 조금 전처럼 빠르지 않다. 머리에 총을 맞은 충격 때문이리라.

    “머리를 노리랍니다.”

    탕-!

    정재훈이 다시 총을 쏜다.

    저그는 두 발의 총알이 머리를 꿰뚫었음에도 계속해서 다가온다. 흐느적거리는 걸로 보일 정도로 걸음이 느려졌다.

    정재훈이 사람의 머리에 총을 쏘는 것에 놀랐던 유 형사가 다급히 총을 꺼내 저그의 머리에 냅다 갈긴다.

    탕- 탕-!

    정재훈과 유 형사가 연이어 총을 쏘자 결국 저그가 쓰러졌다. 첫 발을 명중시킨 후 머리에 총알 일곱 발을 더 틀어박은 후에야 쓰러트린 것이다.

    “하아-.”

    저그를 쓰러트리고 한숨을 토해낼 때였다.

    “지금이라도 밖으로 나가지 그래?”

    검에서 진득한 피를 닦아내며 백인 여자가 말한다.

    “이곳에는 아직 저런 것들이 많아. 실력 좋은 사냥꾼들과 바티칸의 구마사제들도 왔다지만 당신들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전쟁터보다 위험한 곳이지.”

    여자는 사냥꾼이 맞았다.

    “그리고 이곳에는 더 무서운 존재도 있지. 마지막 충고야.”

    여자가 정재훈의 뒤를 가리킨다.

    “돌아가.”

    “나는 대한민국 검삽니다. 그리고 이들은 경찰이죠.”

    “알아, 안다고. 뭐- 충고를 해 줘도 듣지 않으니…… 알아서 하라고.”

    여자가 빠른 속도로 달려 일행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검사님. 저, 저것들 뭡니까?”

    지원 나온 형사 한 명이 떨리는 음성으로 묻는다.

    “사람이 아닙니다. 만나게 되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머리에 총을 쏘세요. 모든 책임은 제가 집니다.”

    * * *

    지하실의 가장 안쪽.

    인호가 가장 마지막에 도착했다. 사냥꾼들과 구마사제들이 따로 모여 있었다.

    진득한 저그의 피가 묻은 채찍을 든 아담이 씨익 웃으며 말한다.

    “보스룸인가?”

    모인 이들의 정면에 문이 있다.

    인호가 문을 살핀다. 안쪽에서 사악한 기운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겪었던 악령들의 기운과는 사뭇 달랐다.

    “스테파노 신부님. 우리들의 룰은 아시겠지?”

    “Winner-take-all.”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

    “잘 아시네. 괜히 여기서 시간 끌 이유는 없지.”

    아담이 움직이자 사냥꾼들도 움직인다.

    “하느님이시여.”

    박주완의 구마 기도가 시작된다. 그를 중심으로 좌우로 벌려선 구마사제들 역시 라틴어로 기도를 한다. 들고 있는 무기는 제각각이다.

    박주완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와 구마사제들을 품는다.

    “하여튼 대단한 신부님이라니까. 디바인 오러라니. 그래도 양보는 없다고.”

    아담이 눈짓을 하자 흑인 사냥꾼이 문을 발로 걷어찬다. 문이 뜯겨 나가고 사냥꾼들이 일제히 안으로 진입한다. 그 뒤를 박주완과 구마사제들이 따른다.

    가장 마지막으로 진입한 인호가 눈을 부릅뜬다.

    안쪽에는 쇠창살로 제작된 수많은 우리가 있었다. 우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 입이 귀까지 찢어진 저그들이다. 그 수가 어림잡아도 서른 이상이었다.

    저그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저그들이 토해내는 괴성 때문인지 패닉 상태였다.

    최근 수많은 사람들이 실종되었다고 하더니 모두 이곳에 있는 것 같다.

    “저그들을 만들고 있었군.”

    아담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다.

    인호는 우리 중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막 일곱 살이나 되었을 것 같은 아이가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개새끼.”

    정체도 알 수 없는 뱀파이어 귀족을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순간이었다.

    텅- 텅- 텅-

    아무런 전조 없이 우리의 쇠창살이 일제히 열렸다.

    캬캬캬캬-

    생살을 씹어라!

    향기로운 피 냄새가 진동하는군.

    수십 마리의 저그들이 일제히 우리에서 튀어나온다. 사냥꾼들이 재빨리 대응에 나선다. 사냥꾼들과 저그들의 싸움이 시작된다. 구마사제들 역시 한 손 보탠다.

    인호 역시 저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이런 미친-.”

    인호가 방향을 튼다.

    몇몇 저그들이 우리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노리고 있었다. 벌써 몇몇 사람들은 저그에게 당했다. 인호는 조금 전 보았던 아이가 갇힌 우리를 확인했다.

    다행히 아이는 아직 괜찮다.

    “멈춰!”

    저그 한 마리가 아이가 있는 우리로 향하고 있었다. 인호는 전속력을 다해 달려간다. 다행히 인호가 한발 빨랐다.

    빠각-

    인호의 발이 우리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숙이는 저그의 머리를 강하게 찼다.

    푸른 기운이 서린 다리에 맞은 저그가 비틀대다 쓰러졌다.

    인호가 자세를 낮추며 손을 뻗는다.

    “어서 나와.”

    두려움 때문인지 아이는 몸을 움츠릴 뿐이다.

    “괜찮아. 밖으로 데려다줄게.”

    아이가 인호를 향해 기어 온다. 아이를 안아 든 인호가 밖으로 나간다. 아이는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인호의 옷을 꼭 잡고 있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선천적인 건지 아니면 사고를 당한 것인지 아이의 새끼손가락이 조금 짧았다.

    “인호 씨!”

    정재훈과 그 일행들이 인호 쪽으로 달려왔다.

    “검사님. 잘 오셨어요.”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안으로 들어가려는 정재훈의 앞을 인호가 가로막는다.

    “크게 도움이 안 될 겁니다. 실력이 좋은 분들이 안에 있으니 이곳에서 도망치려는 것들이 있나 살피시죠. 그리고 뒤에 형사분.”

    인호가 유 형사 뒤에 선 형사 중 한 명에게 아이를 맡긴다.

    “저것들한테 납치당한 아이예요. 밖으로 데리고 나가 주세요.”

    형사가 정재훈을 바라본다. 정재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형사가 아이를 안고 몸을 돌린다. 형사의 어깨 위로 고개를 쏙 내민 아이가 인호에게 말한다.

    “우리 꼭 다시 만나요.”

    형사와 아이가 멀어져 시야에서 사라진다.

    정재훈을 뒤로 한 채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이미 저그들은 모두 처치된 상태였다.

    “귀족은요?”

    “후우-, 내뺀 것 같아.”

    “분명히 강한 기운이 느껴졌는데요.”

    박주완이 벽에 기댄 채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남자를 가리킨다.

    “저그가 아니라 뱀파이어야.”

    저그보다 상위의 계급.

    뱀파이어 귀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진정한 뱀파이어라 불리는 존재였다.

    인호가 가슴에 십자가를 꽂은 채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는 뱀파이어를 바라본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

    “달라.”

    “뭐라고?”

    “아닙니다.”

    문 앞에서 느꼈던 기운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밖에서 느꼈던 기운은 더 은밀하고 끈적끈적했다. 그리고 매우 강력했다.

    목숨을 구한 사람들이 한쪽에 모여 떨고 있었다. 인호가 손짓하자 형사들이 들어와 사람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신부님. 뱀파이어는 어떻게 할 겁니까?”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죽이겠다는 뜻이다.

    아담이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입을 닫는다.

    뱀파이어의 가슴에 꽂힌 십자가.

    박주완이 뱀파이어를 잡았다는 의미다. 박주완이 뱀파이어의 가슴에 박힌 십자가를 뽑아낸다.

    “컥-! 크흑, 크크크.”

    고통에 신음하던 뱀파이어가 기괴하게 웃기 시작한다. 십자가로 뱀파이어를 내려치려던 박주완이 묻는다.

    “왜 웃지?”

    “글쎄. 내가 왜 웃을까?”

    박주완이 인상을 찌푸린다.

    뱀파이어가 자신의 최후를 준비하려는 듯 눈을 감는다. 하지만 이내 다시 눈을 뜨고는 인호를 바라본다. 붉은 기운이 아른거리는 눈빛이다.

    “고마워.”

    “응?”

    “그냥 그렇다고. 신부. 너무 고통스럽군. 신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퍽-

    십자가가 뱀파이어의 머리를 꿰뚫었고. 뱀파이어는 액체가 되어 흘러내렸다.

    “인호 씨.”

    정재훈이 다가왔다.

    “수습하기 곤란하시겠어요.”

    “아니요. 가능합니다.”

    “하긴. 대단하신 분이 계획하신 일이니까요.”

    “네?”

    정재훈은 부장이나 뚱보의 존재에 대해 몰랐다. 그들은 초월적인 존재였기에 굳이 일반인이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그저 자신들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 정도만 느끼고 있을 것이다.

    “저 사람들도 언론에 공개되면 안 됩니다.”

    “알고 있습니다. 비교적 멀쩡한 시체 하나를 잘 포장해서 연쇄 살인마로 만들면 될 겁니다. 그보다 그 귀족인지는 해치우신 겁니까?”

    인호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는다. 정재훈의 입에서도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이런 일이 또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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