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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45화 (45/190)

제45화

정재훈은 외국인에게 용의자를 양보할 수 없다며 유 형사와 함께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네, 신부님. 주소 찍어 드릴게요. 네, 거기서 뵙죠. 뚱보, 가자.”

인호 역시 자리에서 일어선다.

“우리들도 갈까?”

“신부님 오시는데? 그리고 가 봐야 별 도움 안 될 것 같은데?”

“어쭈? 우리 무시하냐? 그 자식들 어디로 도망치는지만 봐줘도 도움 되는 것 아냐?”

“듣고 보니 그러네.”

인호가 고개를 까딱인다.

“같이 가자.”

차에 타고 곧장 출발한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박주완이 먼저 와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빨리 오셨네요.”

“길게 이야기 나눌 때는 아닌 것 같으니 가면서 이야기하자. 앞장서.”

인호가 달리기 시작한다.

박주완은 나이가 무색하게 인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리고 있었다.

뚱보는 영체가 되어 망령들과 함께 뒤를 쫓았다.

“찾아.”

뚱보와 망령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것들과 같이 온 거야?”

“아무래도 추격하는 데 우리보다 나으니까요.”

“그렇긴 하지.”

큰길에서 골목 안으로 들어간다. 넓은 지역이기에 무작정 달리며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렸다.

“어, 유 형사 말해. 아, 거기 알아. 오케이.”

전화를 끊은 인호가 방향을 틀어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우회전.”

머리 위쪽에서 사기꾼의 외침이 들려오자 인호가 우측 골목으로 들어간다.

“쭉 가다 가로등 끼고 좌회전.”

사기꾼을 네비게이션 삼아 골목을 누빈다.

“우회전.”

우측으로 방향을 트니 조금 넓은 길이 나온다.

타타타탓-

무언가 앞을 지나쳐 간다. 엄청난 속도에 놀랄 때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뒤를 쫓는다.

“저들이 사냥꾼이야.”

박주완이 말한 사냥꾼은 검은 옷을 입고 있는데 등에 긴 무언가를 메고 있다.

인호가 그들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검은색 경차 앞 골목으로 들어가.”

어느새 사기꾼 주위로 영감과 뚱보도 함께 하고 있었다.

“뚱보. 너는 조금 넓게 봐.”

뚱보가 떠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 계속해서 달린다.

캬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온다.

가로등 아래.

검으로 보이는 긴 물체를 든 사람이 서 있다. 그의 앞에는 엉덩이 걸음으로 뒤로 물러나는 이가 있었다.

“Stop.”

외국인 사내가 인호를 향해 검을 쭉 뻗는다.

“이게 누구신가? 스테파노 신부님 오랜만입니다.”

외국인 사내와 박주완은 초면이 아닌 듯하다.

“디콘이군.”

“크아아악-!”

디콘이라 불린 사내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검을 벤다. 도망치던 남자가 비명을 내지른다.

“바티칸에서도 축제에 참여하는 겁니까?”

“이런 미친 짓을 축제라고 부르는 버릇은 여전하군.”

“단숨에 억만장자가 될 수 있는 축제지요. 하지만 죄송하게도 양보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자리 좀 비켜 주시죠.”

“그쪽 업계의 룰을 내게도 적용하려는 건가?”

“한국 사람들은 예의 바르다고 들었는데요. 기본적인 예의 아니겠습니까?”

그때 인호가 앞으로 나선다.

인호의 입에서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온다.

“남의 나라에서 칼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은데?”

“그쪽은 누구신지?”

“나? 한국 사냥꾼.”

“호오-. 그래서 어쩌라고? 설마 강제로 뺏기라도 하려고?”

“그래야 한다면.”

디콘이 씨익 웃는다.

“좋아. 이곳은 한국이니 내가 양보하지. 정보를 알아내 볼 텐가? 한국에는 뱀파이어 일족이 없지 않나? 고문법은 알려나 몰라.”

디콘의 말을 무시한 채 인호가 쓰러져 있는 사내, 저그를 향해 걸어간다. 저그는 확실히 사람의 외모와는 거리가 멀었다. 귀밑까지 찢어진 입 안에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한가득이었다.

살해당한 사람들의 몸을 저 이빨로 물어뜯었을 것이다.

“죽고 싶나!”

저그가 악의로 가득한 외침을 토해낸다.

“거참, 웃기는 놈이네. 니 꼴을 생각하고 그런 말을 해.”

“크아악!”

인호가 대뜸 저그의 뒷덜미를 움켜쥔다. 저그는 인호의 손길을 뿌리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디콘에게 사지가 모두 잘려 빠져나가지 못했다.

인호의 손에서 푸른 기운이 일렁인다.

“이것들이 인간이 아닌 악의로 만들어진 존재라면 나의 힘에 저항할 수 없지.”

푸른 기운이 저그의 몸으로 흘러든다. 저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쩍 벌린 입에서 진득한 검은 액체가 줄줄 흘러나온다.

“아프지? 안 아프고 싶지? 너희 아지트가 어딘지 말해. 그러면 편하게 해줄게.”

“개소…….”

“네가 하는 말이 개소리고. 계속 버텨보던가.”

인호가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린다. 그의 손목에 새겨진 검은 문신들이 희미한 빛을 토해낸다. 그러자 저그의 비명이 더욱 커진다.

“한성 유통. 크아악, 그만-! 한성 유통이라는 회사가 있는 건물의 지하실.”

콰득-

인호가 손에 힘을 주자 저그의 목이 보기 흉하게 꺾인다. 인호는 손을 떼지 않는다. 저그의 머리부터 가루가 되어 흘러내린다.

디콘이 그 모습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본다.

“신부님. 한국의 사냥꾼들 전부 저렇게 재주가 좋습니까?”

“아니. 저 친구가 특별한 거지.”

인호가 허리를 펴고는 박주완에게 말한다.

“참 쉽죠?”

* * *

한성유통이라는 간판이 크게 걸린 빌딩에 인호와 박주완, 디콘이 도착했다.

“귀찮은 녀석들이 많이 꼬였네.”

디콘이 인상을 찌푸렸다.

인호가 건물을 살피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네 명으로 모두 외국인들이었다. 건장한 체격의 흑인, 호리호리한 체형의 백인, 붉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백인 여자, 마지막으로 카우보이 모자에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백인 남자였다.

“디콘도 왔네.”

카우보이 모자가 디콘을 아는 체한다.

“스테파노 신부님도 계시고.”

“아담. 오랜만이야.”

디콘이 고개를 까딱거린다.

“아담 저 친구가 이 중에서 실력이 가장 뛰어나지. 뱀파이어 귀족을 사냥한 경험도 있고.”

박주완의 말에 인호가 아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특이하게도 다른 사냥꾼들처럼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스테파노 신부님. 바티칸에서 출장도 왔습니까?”

박주완이 고개를 끄덕이자 차 한 대가 멈추며 세 사람이 내린다. 모두 검은 사제복을 입은 신부들이었는데 외국인들이었다.

저그를 해치우고 이곳으로 이동할 때 박주완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는데, 그때 저들에게 위치를 알려준 듯했다.

바티칸의 구마사제들이 박주완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얼추 올 사람들은 다 온 것 같은데 들어갈까?”

디콘이 검을 빙빙 돌리며 말하자 사냥꾼들이 일제히 건물을 향해 움직인다.

“조심해라. 저 안에 저그가 몇 마리나 있을지 몰라. 특히 귀족을 조심해.”

“네. 그럴게요.”

“우리들과 함께 다녀도 좋고.”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사냥꾼들을 선두로 건물 지하로 내려간다.

인호가 인상을 찌푸린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인호에게는 강렬한 피 냄새와 망령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저그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지하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리라.

쾅-

건장한 체격의 흑인 사냥꾼이 지하실 문을 발로 내지른다. 힘이 얼마나 센지 문의 경첩이 부서져 버린다.

흑인 사냥꾼이 안으로 진입하자 사냥꾼들이 그 뒤를 쫓는다. 인호가 구마사제들과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이미 사냥꾼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보일러 설비가 있는지 머리 위쪽으로 굵은 파이프들이 많았다.

구마사제 중 한 명이 입을 뗀다. 하지만 라틴어이기에 인호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박주완이 고개를 끄덕이니 구마사제들 역시 뿔뿔이 흩어진다.

“내 뒤에 꼭 붙어 있어라.”

박주완이 사제복 안에서 무언갈 꺼낸다.

“옷 속에 그런 걸 숨기고 다니는 겁니까?”

“평상시에는 안 들고 다녀.”

박주완이 꺼낸 것은 십자가였다. 인호가 놀란 이유는 십자가의 길이가 1미터나 되었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세 모퉁이는 뾰족하게 깎여 있었다.

“성수에 십 년 동안 담가 둔 백은으로 만든 거지.”

십자가의 표면에는 알 수 없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었다.

콰쾅-

끼아악-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박주완이 십자가를 두 손으로 들고 정면에 세운 채 걸음을 옮긴다.

“내가 어두운 골짜기를 걸음에도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지켜 주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여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아멘.”

박주완이 기도문을 읊기 시작한다.

그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온다.

“다시 봐도 적응 안 된다니까.”

구마사제들 중에도 특별한 몇몇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운이다. 인호는 박주완의 기운을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 속에 등장하는 ‘신성력’이라고 말하곤 했다.

박주완은 라틴어로 기도를 계속한다.

인호는 박주완의 뒤를 쫓으며 주위를 살핀다. 머리 위쪽 파이프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인호의 눈에서 푸른 기운이 일렁인다.

무언가 뛰어내린다.

귀밑까지 찢어진 주둥이를 쫙 벌리고 있는 괴물.

저그다.

“성 미카엘 대천사여. 싸움에서 우리를 보호하소서.”

퍼억-

십자가의 한 모서리가 쩍 벌린 저그의 입을 파고들어 머리를 뚫고 나온다.

“악마의 악의와 간계에서 우리를 도와주소서.”

십자가에서 빛이 흘러나오며 저그의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저그가 뛰어나온다.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을 앞세워 박주완에게 달려든다.

“영혼들을 멸망시키고 세상을 돌아다니는 사탄과 다른 악령들을…….”

빠각-

“하느님의 능력으로 지옥에 가두소서.”

십자가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저그의 머리를 꿰뚫어 버린다.

인호가 재빨리 몸을 돌리며 손을 뻗는다.

“키에엑-!”

인호에게 목이 잡힌 저그가 손을 뻗는다. 긴 손톱으로 할퀴려 하지만 인호가 목뼈를 부러트리는 것이 더 빨랐다.

인호의 손에서 푸른 기운이 일렁이며 저그가 고통에 몸부림친다.

검은 재가 되어 흘러내리는 저그를 일별한 인호가 몸을 돌린다.

박주완이 처치한 저그는 바닥에 질퍽한 액체로 변해 있다.

“저그의 수가 많다. 빨리 가야 해. 다른 사람들이 위험할지 몰라.”

박주완이 달리듯 빠른 걸음으로 나아간다.

“악의 기운이 강하다. 이곳 어딘가에 피의 자식이 있어.”

피의 자식이란 뱀파이어 귀족을 말하는 것이리라.

인호가 박주완의 뒤를 쫓는다.

누군가가 싸우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박주완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두 마리의 저그와 싸우는 구마사제들을 발견하고 달려 나갔다.

그의 뒤를 쫓으려던 인호는 반대편에서 두 마리의 저그에게 공격받는 디콘을 보고는 그쪽으로 달려 나갔다.

디콘의 검 다루는 솜씨가 상당했지만, 어둠 속에 숨었다 뛰쳐나오길 반복하는 저그를 쉽게 제압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희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라.”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디콘을 노리는 저그의 얼굴에 인호의 주먹이 꽂힌다. 푸른 기운을 머금은 주먹에 맞은 저그는 몸을 바르르 떨며 좀처럼 움직이지 못한다.

빠각-

인호가 발로 저그의 머리를 으깨버린다.

“후우-, 고마워.”

디콘이 길게 숨을 토해낸다.

그의 주변에 토막 난 저그의 시체가 제법 된다. 혼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안쪽으로 갔어. 예상보다 저그들의 수가 많아.”

인호가 안쪽으로 달려간다.

저그의 것으로 짐작되는 괴성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인호가 그중 한 방향으로 내달릴 때였다.

탕-!

총소리가 지하실에 울려 퍼진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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