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44화 (44/190)

제44화

“누군가 목에 이빨 자국과 비슷한 상처를 만들고 피를 모조리 빼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밀실 살인이기 때문에 불가능해요.”

정재훈이 현관문을 가리킨다.

안에서 잠글 수 있는 고리형 잠금장치가 부서져 있다.

“강제로 열고 들어온 거예요. 안에서 잠겨 있었다는 뜻이죠. 그리고 여기 14층이에요. 창문이 열리기는 하는데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는 안 돼요. 딱 환기 정도만 시킬 수 있는 크기라. 물론 창문에도 누군가 침입한 흔적은 없어요. 저 창문을 빼고는 다른 창문은 없죠. 완벽한 밀실 살인입니다.”

“자살…….”

인호가 말을 하려 할 때 유 형사가 끼어든다.

“그건 더 말이 안 되죠. 상처가 정확히 동맥을 끊었어요. 피가 콸콸 쏟아지는데 자기 몸에 있는 피를 다 치워요? 소장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동맥이 잘리면 피가 분수보다 높게 솟아요. 모르긴 해도 이 주변으로는 완전히 피바다가 됐을걸요.”

“오케이. 이해했어. 자살은 아니니 타살이긴 한데 침입한 흔적이 없다?”

“정확합니다.”

“그리고 시체에 난 상처는 우리들이 잘 아는 그 존재의 흔적인 것 같다?”

정재훈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나서게 된 거죠.”

“부장님.”

부장은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뱀파이어도 있습니까?”

“대답해 줄 수 없는 걸 잘 알잖아요. 만약 그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었다면 인호 씨 몸이 그 지경 되기 전에 우리들이 다 해결했을걸?”

정재훈이 인호에게 묻는다.

“더 확인하실 것 있습니까?”

“아니요. 뭐가 있어야 확인하죠. 이런 것은 차라리 국과수가 조사하는 게 더 빠를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바로 국과수에 연락하겠습니다. 그러면 장소 옮겨서 대화 나눌까요?”

* * *

사건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의 커피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뚱보와 유 형사가 주문한 커피를 들고 온다.

“소장님은 그 존재에 대해 잘 아십니까?”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존재는 아니죠. 그리고 제 전문이 아니기도 하고요.”

“흐음-, 곤란하네요.”

“하지만 그쪽의 전문가는 알고 있습니다.”

정재훈의 표정이 밝아진다.

“다행이네요. 이것 좀 보시겠습니까?”

정재훈이 테이블에 파일을 하나 올려둔다.

“이게 뭡니까?”

파일 안에는 끔찍한 사진들이 들어있었다.

“최근 며칠 사이에 벌어진 사건들입니다. 피해자 열두 명입니다. 모두 사망했죠. 아직 밝혀지지 않은 피해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날카로운 흉기에 찔려 죽은 것이 아니에요.”

“날카로운 이빨 같은 것이 살점을 뜯어냈네요.”

“마치 맹수에게 습격당한 것 같죠. 단지 제 생각일 뿐이지만 조금 전 밀실 살인과 이 살인사건들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체들은 발견된 장소에서 살해된 것이 아니에요. 다른 곳에서 살해되고 옮겨진 거죠.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곧 이 시체들을 옮긴 것들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말을 하는 내내 정재훈의 음성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만큼 분노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이 사건들은 저와 유 형사님이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소장님께서는…….”

“네. 밀실 살인. 그리고 뱀파이어에 대해 알아볼게요.”

* * *

오랜만에 찾은 광혜원.

“오셨어요.”

“지난번에 너무 감사했어요.”

수녀들이 인호를 보며 인사를 건넨다.

“우와-! 인호 삼촌이다.”

“인호 삼촌 안녕하세요.”

광혜원의 꼬맹이들도 인호를 보고 손을 흔들며 반겨준다.

단 한 사람.

“왜 왔냐?”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삐딱한 자세로 선 박 신부, 박주완만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오랜만에 온 사람한테 왜 왔냐가 뭡니까? 내가 여기에 얼말 기부했는데.”

“보통 좋은 마음으로 기부한 분들은 너처럼 생색을 안 내지.”

“내가 언제 생색을 냈다고 그러세요?”

“그러니까 왜 왔냐고?”

“해도 졌는데 소주 한잔하시죠.”

박주완이 언제 인상을 썼냐는 듯 웃으며 다가와 인호의 어깨에 팔을 두른다.

“니가 사는 거냐?”

“하, 하하. 이제 확실히 알겠네. 나보다는 소주라는 거잖아요.”

“내가 소주에는 언제나 진심이지.”

광혜원을 나선 후 근처의 막창집으로 향한다.

박주완은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맥주잔에 소주를 한가득 따라 단숨에 비운다.

“캬아-, 좋다.”

“술을 매일 마실 텐데 그렇게 좋으세요?”

“누가 그래? 매일 마신다고? 나 평소에는 술 안 마셔. 애들이 싫어하거든. 오늘처럼 누가 오거나 해야 핑계 대고 한 잔씩 하는 거지.”

다시 잔을 채우며 묻는다.

“정말 왜 온 건데?”

“혹시 외국에서 흘린 것이 우리나라로 들어 온 것 있습니까?”

박주완의 표정이 굳는다.

“무슨 일인데?”

인호가 휴대폰으로 촬영해 둔 원룸 밀실 살인사건 피해자의 사진을 보여준다.

“오 일 전까지 살아있던 사람이라고 하네요.”

“주님.”

박주완이 성호를 그린다.

“완벽한 밀실이었다고 하네요. 누군가가 침입할 수가 없었다고 해요. 그렇다고 자살도 아니라고 하고…… 제가 생각하는 그게 맞는 겁니까?”

박주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갈증이 난다는 듯 소주를 벌컥벌컥 마신다.

“신부님은 이런 녀석들 직접 상대해 보신 적 있으세요?”

“두 번.”

주문한 막창이 나와 굽기 시작한다.

“고작 해 봐야 저그를 상대했을 뿐이야.”

“저그요?”

“뱀파이어들에게도 계급이 있어. 저그는 가장 낮은 계급이야. 그냥 피의 광기에 빠진 존재들이지.”

인호가 다시 사진을 보여준다.

“혹시 이 사진 속 피해자들 그 저그인지에게 당한 겁니까?”

“하아-. 이런 일이 언제부터 일어났지?”

“밀실 살인은 오 일 전, 그리고 이 사진들은 최근 며칠 사이라고만 들었어요. 밀실 살인 이후에 일어나기 시작한 것 같아요.”

박주완의 이가는 소리가 인호의 귀에 들린다.

“심각한 일이죠?”

“처음 본 사진만 없었다면 조금 덜 심각했겠지. 저그들이라고 해봐야 처치하기 어려운 존재가 아니니까. 하지만 처음 사진 속 피를 빤 뱀파이어는 최소 귀족 계급이야.”

“귀족이요?”

“그래. 완벽한 밀실. 그곳을 출입하라면 귀족들 이상만 할 수 있는 안개화를 해야 하거든.”

“영화에서 본 적 있어요.”

인호가 소주를 한잔 마신 후 생각에 잠긴다.

“귀족보다 높은 존재일 확률은요?”

“없어. 귀족 위는 로드인데 로드는 하나뿐이야. 로드의 존재는 우리 바티칸 구마사제들이나 그 밖의 단체들이 최고 기밀로 취급하고 있어. 그리고 귀족의 수도 많지 않아.”

“안주 좀 드세요. 속 버려요. 뱀파이어들이 왜 갑자기 우리나라에 왔을까요?”

“모르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어.”

인호가 막창을 우물거리며 박주완을 바라본다.

“전 세계 뱀파이어 사냥꾼들이 한국으로 모여들 거야.”

“사냥꾼들이요?”

“뱀파이어 귀족들은 저그와는 달리 영생의 존재들이야. 그래서 그 핏속에 영생의 비밀이 담겨 있다고 믿는 미치광이들이 있거든. 그들이 뱀파이어 귀족을 대상으로 엄청난 현상금을 내걸었어.”

인호가 박주완의 잔을 채워준다.

“바티칸도 움직일까요?”

“당연하지.”

박주완이 소주를 마신 후 씁쓸하게 중얼거린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소주를 마시던 박주완이 인호의 옆에 앉은 뚱보를 보며 묻는다.

“이분은 누구신데 한마디도 하지 않아? 풍기는 기운이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사악한 기운이 아닌 것을 보니…….”

“예상하신 것이 맞습니다.”

“하하, 그래? 반갑습니다. 바티칸에 속해 있는 구마사제입니다.”

“아, 네.”

뚱보는 이미 박주완을 알고 있었다. 망령 시절에 몇 번 봤기 때문이다.

“카톨릭으로 따지면 천사님이시군요.”

“처, 천사요? 이 뚱보가요?”

“우씌, 뚱보 아니거든.”

뚱보가 발끈한다.

“하하, 겉모습이 뭐가 중요한가. 내면의 모습이 중요한 것이지. 그보다 낯이 많이 익군요. 우리 어디서 본 적 있나요?”

박주완의 물음에 뚱보가 흠칫한다.

“전혀요. 처음 뵙는걸요. 그러니까…….”

뚱보가 말실수를 할 것 같자 인호가 그 입에 막창을 한 움큼 집어넣어 버린다.

웃으며 둘을 바라보던 박주완이 걱정을 담아 인호에게 말한다.

“그것들을 직접 상대할 생각은 하지 마. 너가 사용하는 힘과는 상극일 테니.”

“제가 어떤 힘을 사용하는지 알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냥 알아. 그리고 힘을 사용할 때마다 많이 아픈 것도 알아.”

“그건 또 누구에게 들으신 겁니까?”

박주완이 인호의 잔에 술을 채워준다.

“그러니 그것들 상대하러 갈 때는 꼭 연락하도록 해.”

* * *

“이야, 이제 우리나라도 글로벌하게 노는구나. 뱀파이어라니.”

“그걸 말이라고 하냐?”

인호가 인상을 찌푸리자 사기꾼이 시선을 외면하며 딴청을 피운다.

“그것들 위험한 놈들이냐?”

“그렇다고 하네요. 외국에서는 나름대로 질서를 지킨다고 하는데 그 질서라는 것도 우리 관점에서는 파격적인 거고요.”

“말세네, 말세야.”

- 바티칸의 정보에 의하면 영국 쪽 귀족 하나가 사냥꾼들에게 죽었다고 해. 새로운 귀족이 등장했다면 그쪽일 가능성이 커.

박주완이 전해 준 정보다.

뱀파이어 귀족의 수는 정해져 있어 하나가 죽어야 새로운 귀족이 탄생한다고 한다.

똑 똑-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정재훈과 유 형사가 들어온다.

“식사는 하셨어요?”

“네, 유 형사님하고 먹고 오는 길입니다. 뭣 좀 알아내신 것 있으세요?”

인호가 박주완과 나눈 대화와 들은 정보들을 풀어 놓는다.

“흐음-, 영국이라. 최근에 영국에서 입국한 사람들을 모조리 조사해 봐야겠네요.”

“사건 현장 인근에 CCTV는요?”

“두 개가 있는데 그날 전부 작동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 다른 것을 알아냈죠.”

정재훈이 파일을 꺼내 안에 있는 지도를 펼친다.

“이 점들이 사체가 유기된 곳입니다. 하루 사이에 두 건의 사건이 더 벌어졌죠. 사체들의 유기 장소와 추정 유기 시간을 토대로 주변 CCTV를 모조리 검사했습니다. 그 결과 몇몇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습니다.”

정재훈이 지도 위에 사진 몇 장을 올려놓는다.

이상하리만치 피부가 하얗고 입술이 붉은 남자 둘, 여자 한 명이다.

“CCTV로 이들의 이동 경로를 추적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

정재훈이 지도의 한 곳을 손가락으로 집는다.

“이곳만 CCTV가 작동을 하지 않아요. 상당히 넓은 지역이라 모두 조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경찰에 지원을 요청해 주변에 잠복근무를 하는 중입니다.”

“사냥꾼이라는 사람들도 그곳으로 향할 거예요.”

“괜한 마찰이 생기면 안 되는데 말이죠.”

유 형사가 자신의 휴대폰을 보며 말한다.

“최근에 실종 신고가 상당히 많이 접수되고 있어요. 사건 현장 인근에서만 스무 건이 넘고 그 주변으로 확대하면 쉰 건 가까이 돼요. 하지만 발견된 사체는 열네 구뿐이죠.”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사체를 유기했거나…….”

유 형사가 답답하다는 듯 중얼거린다.

“어딘가 갇혀 있다는 뜻이죠.”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유 형사의 휴대폰이 울린다.

“어, 박 형사. 뭐? 누군데? 외국인이라고?”

전화를 끊은 유 형사가 우리들을 바라본다.

“용의자들을 발견했는데 이상한 외국인들이 용의자들을 추격하고 있답니다.”

유 형사의 말을 듣는 순간 그 외국인들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사냥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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