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43화 (43/190)
  • 제43화

    “이원희, 이원희, 이원희.”

    인호가 이름을 세 번 부르자 그의 앞에 푸른 기운이 일렁이며 사람의 모습으로 바뀐다.

    사진으로만 봤던 이원희가 인호의 앞에 섰다.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러다 인호와 눈이 마주치고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뜬다.

    “놀라지 말아요. 나쁜 사람 아니니까요.”

    “누구세요? 제가 보이세요?”

    “보이기만 하게요? 원희 씨를 여기로 부른 사람이 저예요.”

    “절 부르셨다고요?”

    “네.”

    인호가 두 손을 비비니 초혼부가 재가 되어 아래로 떨어진다. 이원희가 인호를 손으로 가리킨다.

    “피 흘리시는데요.”

    “아, 괜찮아요.”

    화장지를 뜯어 입 주변을 스윽 닦는다.

    “일단 제 소개를 할게요. 전 극락 흥신소라는 곳의 소장이에요. 그리고 대한민국 영매협회의 회장이기도 하죠. 참고로 얼마 전까지 원희 씨가 보았던 용수, 아니 맛 김 그 녀석도 우리 협회 회원이었어요. 나쁜 짓 하고 도망치긴 했지만.”

    인호의 입에서 멧 김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이원희의 눈동자에 붉은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지 말아요. 증오의 감정은 혼을 타락시키니까요. 그 녀석 앞으로 그 짓 못 해요. 내가 힘을 거뒀거든요.”

    “절 왜 부르신 거예요?”

    “극락 흥신소 소장이라고 했잖아요. 의뢰를 받았어요.”

    “의뢰요?”

    “네. 의뢰인은 이순애라는 할머니예요. 처음 듣는 이름이죠?”

    “네.”

    “이러면 알 거예요. 박재식 씨의 어머니. 그분 성함이 이순애에요.”

    “오빠 어머니요?”

    “네. 맞아요. 뵌 적 있다고 하던데.”

    “네. 몇 번 뵌 적 있어요. 절 너무 어려워하셔서 제대로 대화는 나누지 못했지만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의뢰인은 이순애 할머니세요. 그리고 또 다른 의뢰인은 박재식 씨죠.”

    “오빠가요?”

    “네. 재식 씨도 원희 씨처럼 가야 할 곳으로 가지 못하고 있거든요.”

    인호가 이원희에게 박재식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가난한 어머니를 위해 저승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는 말에 이원희가 펑펑 눈물을 흘린다.

    “오빠에게 너무 미안해요. 함께 죽자고 한 것도 저예요. 어머님께 너무 죄송해요. 저 때문에…….”

    “선택은 재식 씨가 한 거잖아요. 이순애 할머니도 원희 씨 원망 안 해요. 의뢰 내용도 들어야죠?”

    “네. 말해주세요.”

    “할머니는 원희 씨가 재식 씨와 사혼식, 그러니까 영혼결혼식을 하길 바라세요. 하지만 원희 씨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포기하셨죠. 그래서 제가 할머니 대신 원희 씨에게 물어보기 위해 온 거예요.”

    “할게요. 하고 싶어요.”

    이원희가 두 손을 모으며 말한다.

    “원희 씨 마음은 알겠어요. 하지만 원희 씨 결정도 중요하지만 살아 있는 분. 그러니까 원희 씨 부모님의 뜻도 중요하지 않겠어요?”

    “아니요. 상관없어요.”

    “너무 쉽게 이야기하지 말아요. 사이가 안 좋더라도 원희 씨 어머니시잖아요.”

    “그런 이유도 있지만,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에요. 주치의 선생님이 엄마에게 하는 말을 들었어요. 뇌사 상태가 오래 진행되면 다시 깨어난다고 해도 뇌 기능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대요.”

    이원희가 입술을 깨문다.

    “숨만 쉬는 인형.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아-.”

    인호가 안타깝다는 듯 눈을 감는다.

    “그러니까 해 주세요. 사혼식 하고 싶어요. 그런데 오빠 지금 어디 있어요? 재식 오빠 어디 있어요?”

    인호가 지갑을 꺼낸다.

    “여기 있어요.”

    지갑 안에서 이순애 할머니가 가지고 있던 박재식과 이원희가 함께 찍은 사진을 꺼낸다.

    “재식 씨가 지금 원희 씨가 한 말 모두 들었어요.”

    사진 속 재식의 얼굴에 일렁이는 푸른 빛이 점점 커진다. 이원희 옆에 박재식이 서 있다.

    “원희야.”

    “오, 오빠!”

    두 사람, 아니 두 망령이 뜨겁게 안았다.

    “정말 나와 함께 가도 괜찮겠어?”

    “응. 그러고 싶어. 혼자 너무 무서웠어. 오빠는 죽고 나만 산 것 같아서 너무 힘들었어.”

    박재식이 환하게 웃는다.

    “원희 씨.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이 결정- 후회하지 않으시겠어요?”

    “절대요.”

    “좋아요. 이곳에서 두 분의 사혼식을 진행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슬퍼하실 분이 계세요. 그래서 식은 조금 뒤로 미루기로 하죠.”

    인호의 말뜻을 알아들은 두 망령이 환하게 웃는다.

    인호 역시 환하게 웃으며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듯 손을 꼭 잡고 있는 두 망령을 바라보았다.

    * * *

    한 사람이 겨우 생활할 수 있는 좁은 고시텔.

    전셋집을 뺀 이순애가 선택한 곳이 바로 이 고시텔이었다.

    침대 옆 작은 상 위에 과일 몇 가지와 소주 한 병, 그리고 촛불이 켜져 있다.

    이순애는 침대에 앉아 하염없이 울고 있다.

    인호 덕에 박재식과 이원희를 볼 수 있게 된 그녀는 상 앞에 두 손을 꼭 맞잡은 아들과 며느리를 눈에 담고 있다.

    비록 둘 모두 죽어 망자가 되었지만 살아생전 이루지 못한 염원을 이를 수 있게 되었다.

    인호가 두 망령의 사주를 적어 단자에 하나씩 넣는다.

    “사혼식을 거행하기 전에 어머니와 시어머님께 마지막 인사드리세요.”

    박재식과 이원희가 이순애를 향해 큰절을 올린다. 이순애가 끅, 끅 거리며 흐느낀다.

    “이제 곧 두 사람은 먼 길을 떠나야 합니다. 살아서 맺어지지 못했지만 이렇게 부부의 연을 맺고 떠날 수 있게 되었네요. 아직 저 역시 죽어본 적이 없어 잘은 모르지만 이승과 저승을 경계 짓는 삼도천이라는 강을 건너면 이승의 기억을 잊는다고 합니다. 부디 그때까지 지금 잡은 손을 놓지 마세요. 두 사람의 사랑에 감동한 대왕께서 다음 생에 다시 부부의 연을 맺게 해줄지도 모르니.”

    지전을 태우고 사주를 태운다.

    연기가 피어올라 박재식과 이원희를 감싼다.

    “이로써 두 사람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때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망자 박재식.”

    “네. 제가 박재식입니다.”

    “망자 이원희.”

    이원희가 저승사자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저 녀석이 한 말처럼 삼도천을 건너면 이승의 기억을 잃어요. 하지만 몇백 년에 한 번, 천 년에 한 번 전생의 기억을 갖고 환생하는 이들이 있답니다. 저승사자가 할 말은 아니지만 부디 두 사람이 그렇게 서로를 기억하고 다음 생에 다시 만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두 망령의 뜨거운 눈빛이 부담된 것인지 저승사자가 몸을 돌린다.

    “갑시다. 갈 길이 멀어요.”

    저승사자와 두 망령이 떠나가고 고시텔 안에는 인호와 이순애만 남았다.

    “괜찮으세요?”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소장님 덕분에 우리 아들 한을 풀고 갔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그러면 안 되죠. 오래오래 사셔야죠. 차사님 말 들으셨죠? 분명 아드님과 며느님은 이승 기억 간직하고 다음 생에 다시 부부로 만날 거예요. 할머니도 그러셔야죠.”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인호가 문 앞에 놓인 가방을 가져온다.

    “그러려면 오래오래 사시면서 공덕 많이 쌓으세요. 염라대왕님이 감동할 수 있게요.”

    “이게 뭐예요?”

    이순애는 인호가 내미는 가방을 보며 묻는다.

    “원희 씨가 부모님 몰래 재식 씨하고 도망을 치려고까지 했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쓰려고 현금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네요.”

    “그런데 이걸 왜 나한테 줘요?”

    “시어머님께 변변히 선물 하나 드린 적 없다고 먼 길 떠나기 전에 선물로 드리고 싶다고 해서요.”

    가방을 침대 위에 올려두고 인호가 몸을 돌린다.

    “제 말 까먹으시면 안 돼요. 오래오래 사시면서 공덕 쌓으셔야지요.”

    “네, 꼭 그럴게요. 너무 감사해요, 소장님.”

    인호가 꾸벅 인사하고는 고시텔을 나섰다.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

    “야. 그 가방에 얼마 들어있었어?”

    “별로 없었어.”

    사실은 5억 원 정도가 들어있었다. 이원희가 박재식과 도망쳐 아파트라도 하나 사려고 준비한 돈이었다.

    “하여튼 넌 너무 욕심이 없어. 어차피 말 안 했어도 몰랐을 거 아니야.”

    “그러고 싶냐?”

    인호가 쏘아보자 사기꾼이 시선을 피한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칭찬을 해줘도 지랄이야.”

    * * *

    “뚱보.”

    “응? 왜?”

    “맛있냐?”

    “응. 엄청 맛있어.”

    뚱보는 붕어빵을 먹고 있다. 그의 배 위에는 붕어빵이 담겨 있는 종이봉투가 세 개나 놓여 있었다.

    “야 이 인정머리 없는 놈아. 어떻게 하나 먹어 볼 거냐고 물어보지도 않냐?”

    “먹을래?”

    “완전히 엎드려 절 받기네.”

    “싫으면 말고.”

    “아니. 먹을래.”

    인호가 뚱보의 손에서 붕어빵을 빼앗아 입에 문다.

    “사기꾼하고 영감님 없으니까 조용하다.”

    뚱보가 입안 가득 붕어빵을 넣고 또 다른 붕어빵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본래라면 따라나섰을 두 망령이 사무실에 남은 이유는 가야 할 곳에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 때문이다.

    “부장님이 왜 부르시는지 아냐?”

    “모르지. 나 같은 말단 저승사자가 부장님이 하시는 일을 어떻게 알아.”

    “잘났다.”

    3백 미터 앞에서 좌회전입니다. 이어서 목적지 주변입니다.

    “왜 이런 곳으로 오라고 한 거야?”

    좌회전을 하자 노란 폴리스 라인이 보였다. 인호가 차를 세우자 유 형사가 다가온다.

    “오셨어요.”

    “무슨 일인데?”

    “흐음-, 일단 살인사건입니다.”

    “살인사건이면 살인사건이지 일단 살인사건은 뭐야?”

    “가 보시면 알아요.”

    주변은 원룸촌이었다. 폴리스 라인이 막고 있는 곳도 제법 높은 원룸 건물이 있었다.

    유 형사, 뚱보와 함께 폴리스 라인을 넘어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으로 올라간다.

    경찰 두 명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저기예요.”

    “나도 알아요.”

    원룸 안으로 들어가니 부장과 정재훈 검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시체에서 나는 냄새 같았다.

    원룸의 중앙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어, 왔어요.”

    정재훈이 손을 들어 인사한다.

    안으로 들어가며 이상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이 이상하다. 아니, 사람이 아니라 뼈가 앉아 있는 것 같다.

    “유 형사님. 현관문 좀 닫죠. 안에서 잠금장치도 하세요. 아무도 못 들어오게.”

    “네, 검사님.”

    인호가 인상을 찌푸린다.

    “이게 뭐예요?”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은 티비나 책에서 볼 수 있는 미이라를 닮은 것이었다.

    “시쳅니다.”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요. 우리나라에도 미이라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미이라가 아닙니다.”

    정재훈이 휴대폰을 조작한 후 인호에게 내민다.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의 사진이다.

    “이름 강상현, 46세. 오 일 전까지 살아 있던 사람이에요. 전과가 있어요. 작년에 교도소에서 출소했고요. 죄목은 무전취식, 공공시설 파손, 폭행. 아주 버라이어티하네요. 마지막 교도소에 간 이유는 가정폭력입니다. 피해자는 일곱 살 난 아들이에요.”

    인호가 놀란 듯 휴대폰 속 남자와 미이라 같은 시체를 번갈아 가며 바라본다. 오 일 전까지 살아있던 사람이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이 정도로 놀라면 안 돼요.”

    “네? 놀랄 일이 더 있어요?”

    정재훈이 검지와 중지를 편다.

    검지를 접으며 말한다.

    “밀실 살인사건입니다.”

    “밀실 살인?”

    이번에는 중지를 접는다.

    시체 곁으로 다가간 정재훈이 머리카락을 손으로 조금 민다. 드러낸 시체의 목에 상처가 보인다.

    “상처는 이것과 새끼손가락 한 마디가 잘린 것뿐입니다. 손가락 상처는 사인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사인은 목의 상처죠.”

    인호가 인상을 찌푸린다.

    시체의 목에는 선명한 두 개의 이빨 자국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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