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42화 (42/190)
  • 제42화

    “당신 누구냐고!”

    멧 김이 버럭 소리친다.

    VIP 전용 엘리베이터 앞을 지키고 있는 가더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린다.

    “언성 높이지 마라.”

    인호가 친근한 척 멧 김의 어깨를 팔로 감싼다.

    “너도 느끼고 있잖아.”

    “무슨…….”

    “내가 너보다 훨씬 쎄. 너-.”

    인호가 멧 김의 얼굴을 당기며 묻는다.

    “나 감당할 수 있겠어?”

    “…….”

    인호의 두 눈에 푸른 기운이 일렁이자 멧 김이 고개를 뒤로 빼려고 했다. 하지만 인호의 힘을 이기지 못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조용히 가자.”

    인호가 가더들을 바라보며 크게 웃는다.

    “하하, 친한 동생을 만나서요. 일들 보세요.”

    인호는 멧 김을 지하 주차장으로 끌고 간다. 사람이 없는 으슥한 곳까지 데리고 간 후 말한다.

    “너 내가 누군지 모르지?”

    “내, 내가 어떻게 알아?”

    “혀가 반토막이네. 누가 봐도 내가 나이가 더 많아 보이잖아. 아-, 재미교포 출신이라고 그랬나? 그래서 혀가 반토막이야? 그런 거야?”

    “내가 어떻게 알아요.”

    “작년까지 니가 속해 있던 협회 주인이 나야.”

    “무슨…… 그게 무슨 말이에요.”

    “대한민국 영매협회 회장이 나라고.”

    멧 김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뜬다.

    “내가 협회에 신경 쓰지 못하는 동안 아주 깜찍한 짓을 벌였던데. 지금도 벌이고 있고.”

    “무슨 말씀 하시는지 잘…….”

    “모르겠다고?”

    인호가 멧 김의 얼굴 앞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댄다. 인호의 두 눈에 다시 푸른 기운이 일렁인다. 멧 김이 두려운 눈빛으로 뒤로 물러선다.

    “부회장님한테 부인부망에 대해 물어봤다며? 그리고 나쁜 짓 하다 걸리니까 협회 탈퇴했고. 맞아?”

    “…….”

    멧 김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맛 김아.”

    “멧 김입니다.”

    “그래. 맛 김.”

    “용수요.”

    “응?”

    “한국 이름이요. 김용수에요.”

    “이름 좋구만 왜 이상한 맛 김 같은 이름을 쓰고 그래. 미국식 이름이라고 사람들이 막 대단하게 생각하고 그래?”

    인호가 멧 김, 김용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왜 그랬니? 아니, 그것보다 깜깜한 주차장에서 선글라스는 왜 쓰고 있냐?”

    선글라스로 손을 뻗자 김용수가 황급히 몸을 뒤로 뺀다. 하지만 인호의 손이 조금 더 빨랐다.

    “하, 하하.”

    김용수의 얼굴을 본 인호가 헛웃음을 짓는다.

    김용수의 눈 주변으로 검은 거미줄 같은 선들이 돋아나 있다.

    “아-, 해봐.”

    인호가 김용수의 볼을 손으로 꽉 쥔다. 그러자 김용수가 고통에 입을 쩍 벌린다.

    “이럴 줄 알았지.”

    김용수의 혀가 검게 물들어 있다.

    “너 바보야? 지금 네가 어떤 상태인지 몰라?”

    “압니다.”

    “아는 놈이 이러고 있어? 너 지금 망령들의 음한 기운에 중독되고 있는 거야. 지금보다 더 심해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마른침을 삼키는 김용수의 목울대가 꿀렁인다.

    “이놈 진짜 아무것도 모르네. 너 생망生亡이라는 말 못 들어 봤어?”

    “그게- 뭔데요?”

    “생망. 말 그대로 살아있는 망령이 되는 거야. 생망은 부인부망, 악령보다 더 위험한 존재야. 알아? 부인부망하고 악령은 결국 극락이든 지옥이든 어느 쪽으로든 가지. 생망은 그 존재 자체가 지워져. 그걸 아냐고.”

    “진짭니까?”

    “하-. 어이가 없네. 내가 너한테 이런 걸로 거짓말해서 뭐 하냐? 하나 더 말해줘? 네가 왜 이 상태가 된 줄 알아?”

    김용수가 떨떠름한 눈빛으로 고개를 젓는다.

    “예를 들어 줄게. 너는 아주 가느다란 전선이야. 고작해야 몇 볼트의 전기를 감당할 수 있는 전선. 그런데 넌 지금 그것보다 수백 배 강한 전기를 그 전선에 흘리고 있는 거야.”

    김용수는 분명 영매로써 재능이 있다.

    하지만 부인부망을 감당할 정도의 재능은 아니었다. 따라서 지금 그의 상태는 작은 그릇에 철철 넘치게 물을 붓고 있는 것과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그 그릇이 종이로 만들어져서 결국 물에 젖으면 찢어진다는 것이다.

    지금 김용수의 상태는 찢어지기 직전의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거참-. 말 안 듣는 놈 훈계하러 왔다 얼떨결에 생명을 구하게 되네. 설마 이걸 살렸다고 또 부장님 오셔서 울고불고하는 거 아니야?”

    인호가 고개를 흔든다.

    “그래도 살릴 수 있는 녀석을 살리지 못하는 것이 더 나쁘지. 생망이 되는 걸 막는 거잖아. 상을 받아도 모자라지. 암, 그렇고말고.”

    인호가 김용수의 손을 잡는다.

    놀란 김용수가 손을 빼내려 하지만 요지부동이다.

    “지금부터 이 형이, 아니 회장님이 널 살려 줄 거야. 이대로 조금만 더 기운을 쓰면 너 진짜 잘못돼. 알겠어?”

    김용수 본인 역시 자신의 상태가 썩 좋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아까 형이 그랬지? 넌 아주 가느다란 전선이야. 형이 그 전선에 아주 강한 전기를 흘릴 거야. 당연히 지금까지 네 몸에 흐르던 나쁜 전기가 아니야.”

    “그게 무슨…….”

    “무슨 말이긴. 이제부터 넌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지.”

    크아아아악-!

    김용수가 찢어질 듯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른다. 인호의 몸에서 시작된 푸른 기운이 맞잡은 손을 통해 김용수의 몸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푸른 기운이 휩싸인다.

    김용수의 비명이 이어졌다. 눈과 코, 눈과 귀로 인호의 푸른 기운이 흘러 들어간다.

    비명을 지르는 김용수의 입 안 혀가 검은색에서 보통의 색으로 바뀌고 있다. 눈 주변의 거미줄 역시 희미해지다 곧 사라졌다.

    인호가 손을 놓자 김용수가 쓰러진다. 그를 기둥에 기대어 앉힌 후 그 옆에 앉는다.

    “아이고, 죽겠네.”

    “그러게 오지랖 좀 적당히 부리지.”

    “인호야. 그렇게 힘을 많이 사용하면 위험하지 않겠니?”

    사기꾼과 영감이 걱정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인호를 바라보고 있다.

    “생겨 먹길 이렇게 생겨 먹어서 어쩔 수 없어요. 잘 알면서 왜 그래요.”

    “알지. 아니까 더 걱정되는 것 아니냐.”

    인호가 괜찮다는 듯 손을 흔들고는 옆에 앉아 있는 김용수를 바라본다.

    “이래서 돈이 문제라는 거야. 돈 때문에 지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잖아.”

    * * *

    “왜 전화 안 받아!”

    중년 여자, 이원희의 어머니 김은혜가 휴대폰을 소파에 던지며 빽하고 소리를 지른다.

    “받으라고! 받아!”

    다시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들려오자 김은혜는 휴대폰을 바닥에 던졌다. 휴대폰이 부서지고 그녀는 초조한 듯 손톱을 질겅질겅 씹었다.

    안절부절못하고 병실 안을 돌아다니던 김은혜가 침대에 누워있는 이원희를 보고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손을 꼭 잡는다.

    “원희야.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그 사람 빨리 불러올게. 엄마하고 이야기 못 한다고 불안해하지 말고. 알았지? 엄마도 우리 원희 볼 수 없어서 너무 불안해. 절대 나쁜 생각 하면 안 돼. 알지? 우리 원희, 엄마가 꼭 다시 살릴 거야.”

    김은혜가 이원희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는다.

    “엄만 절대 포기 안 해. 그러니까 우리 딸도 절대 포기하지 마. 우리 딸 금방 다시 일어나서 예전처럼 엄마하고 행복하게 살 거야.”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이원희를 바라보는 김은혜.

    하지만 이원희는 반대다.

    그녀는 분노가 가득한 눈빛으로 김은혜를 쏘아보고 있었다.

    “안 살 거야. 싫어.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데?”

    김은혜는 이원희의 말을 듣지 못한다.

    “엄마는 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을 빼앗아 갔어. 그래서 난 엄마 인생의 가장 큰 자랑인 날 엄마에게서 빼앗은 거야.”

    이원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제발 날 놔줘. 나는 이제 모든 게 다 싫어.”

    이원희의 손을 잡고 있던 김은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전화해야지. 전화, 전화 어딨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김은혜가 박살이 난 휴대폰을 보고는 밖을 향해 외친다.

    “최 비서!”

    곧 병실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들어온다.

    “네, 대표님.”

    “전화. 빨리 전화 줘.”

    “여기 있습니다.”

    “그 사람 전화번호 저장되어 있지?”

    “그 사람이시라면…… 아, 멧 김 말씀이시군요. 네, 저장되어 있습니다.”

    김은혜가 전화를 건다.

    -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갑니다. 삑 소리 이후…….

    “아아아아악-!”

    김은혜가 괴성을 내지르며 휴대폰을 벽에 집어 던진다. 최 비서는 화려하게 생을 마감하는 자신의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본다.

    “전화를 왜 안 받아! 왜, 왜, 왜!”

    그때, 침대 옆 눈을 감고 누운 자신을 보고 있던 이원희의 혼이 형광등이 점멸하듯 깜빡이기 시작했다.

    “어, 어?”

    이원희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혼이 병실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 * *

    “VIP 전용 병동이라고 화장실도 으리으리하네.”

    화장실 변기에 앉은 인호가 주위를 둘러보며 혀를 내두른다.

    “무슨 화장실이 인호 니네 집만 하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우리 집이…… 쩝, 더 좁을 수도 있겠네. 갑자기 현타 확 오네.”

    “그런데 넌 매번 이런 일 할 때마다 화장실에서 하더라. 지난번 인사동 처녀귀신 사혼식 할 때도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했잖아.”

    “듣고 보니 그러네.”

    벽에서 고개만 쏙 내밀고 있는 영감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화장실만큼 편안한 장소가 어디 있어?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는 장소를 순위로 매길 때 화장실은 언제나 상위권이라고.”

    인호가 슈트 상의 속주머니에서 노란 종이를 꺼낸다.

    김명운이 제작해 준 부적이다.

    “넌 정말 그 친구한테 잘해야 해.”

    “당연히 그래야죠.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초혼부招魂府가 말이 되나요.”

    인호가 접혀 있는 부적을 조심스럽게 편다.

    초혼부.

    이름 그대로 혼을 부르는 부적이다.

    부적을 그리는 도사들이 그리길 꺼려하는 부적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부적이 초혼부였다.

    사용되는 재료가 희귀한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작 과정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김명운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명이 5년은 깎여 나가는 것 같아’일 정도였으니.

    할머니와 박재식의 사연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에 제작한 것이지 수억 원, 아니 수십억 원을 주어도 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호 역시 김명운에게 초혼부를 만들어달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병원 소속 가더와 김은혜의 개인 경호원들까지 진을 치고 있는 병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나저나 초혼부 쓰는 건 정말 오랜만에 보네.”

    “한 8년 됐지? 터널 무너졌을 때 그 안에 갇힌 아이 혼 부른다고 썼으니.”

    “그게 벌써 8년이나 됐어요?”

    “그러게. 시간이 참 빨라.”

    두 망령의 만담을 들으며 인호가 초혼부를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다른 손을 그 위에 덮는다.

    인호의 눈에 푸른 기운이 일렁인다.

    그러다 눈뿐만 아니라 손에서도 푸른 기운이 흘러나온다. 푸른 기운과 만난 초혼부가 붉게 빛난다.

    “욱-.”

    인호의 입에서 한줄기 핏물이 흘러나온다.

    인호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입을 뗀다.

    “이원희, 이원희, 이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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