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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41화 (41/190)
  • 제41화

    - 원희? 잘 알지. 창조 저축은행 알지? 그 집 딸이야. 원희 엄마하고 외할아버지가 아주 유명해. 이름을 들어 봤을지 모르지만 김학영이라고 우리나라 최고 사채업자였지. 금융실명제 당시에 정권 비호를 받아서 창조 저축은행을 만들었어. 다른 사채업자들 모두 쓰러질 때 혼자 살아남았지.

    부자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부자들이다.

    대은 그룹 이철호 회장은 이원희의 외할아버지 김학영을 ‘대한민국 현금왕’이라고 불렀다.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추자 인호는 휴대폰으로 창조 저축은행을 검색해 본다.

    “대표 김은혜. 이 여자네.”

    한 중년 여자의 사진을 보며 중얼거린다.

    “현금왕이면 돈이 얼마나 많을까?”

    “모르지. 회장님 말로는 신성 그룹 회장보다 돈이 많다더라.”

    “그렇게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하루에 수십억씩 써도 평생 다 못 쓸 거 아니야.”

    “돈 많다고 행복하면 재벌들은 다 행복하게. 이철호 회장님 봐라. 그 썩을 돈 때문에 사랑하는 딸 죽었어.”

    “그러게. 그래도 부럽기는 하다.”

    인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조수석의 사기꾼을 바라본다.

    “죽은 놈이 돈 많은 사람이 왜 부러워?”

    “한 번도 가져본 적 없으니까. 돈이 많았으면 내가 사기나 치고 다녔겠냐?”

    서울 신성병원

    인호가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차를 주차한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로비에서 내린다. 반대편에 두 대의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인호가 내린 엘리베이터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반대편 엘리베이터 앞에는 정장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사내들 뿐이다.

    그곳으로 걸어가니 정장 사내들이 인호의 앞을 막았다.

    “VIP 병동 전용 엘리베이텁니다. 저쪽 것을 이용하시죠.”

    인호가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말을 한 사내에게 내민다.

    - 대은그룹 기획조정실 과장 정인호

    이철호 회장이 만들어 준 명함이었다.

    “회장님께서 알아보라고 하신 것이 있어서요.”

    “네.”

    사내가 비켜서니 다른 사내가 엘리베이터를 눌러준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버튼이 세 개뿐이었다.

    1층, 14층, 15층.

    인호는 15층을 눌렀다.

    띵-

    15층에서 내리니 역시나 정장 사내들이 서 있다. 사내들은 병실로 보이는 곳마다 두세 명씩 지키고 있었다.

    인호가 좌측으로 몸을 돌려서 걸음을 옮길 때였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누군가와 어깨가 살짝 부딪쳤다. 어깨가 부딪치는 순간 푸른 기운이 일렁였다. 인호가 고개를 돌리자 때마침 상대 역시 고개를 돌렸다.

    짙은 선글라스를 쓴 사내다.

    사내는 인호를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던 인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몸을 돌려 다시 걸음을 옮기려 하는 그때.

    “정말이라니까. 원희 다 나으면 같이 오페라 보러 가기로 했어.”

    원희라는 이름이 들렸다.

    한 중년 여인이 맞은 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당신이 원희 콩쿨 트로피 닦은 것도 다 이야기해 줬어. 아빠 힘들다고 그만하래.”

    인호의 걸음이 느려진다.

    걸어오던 여자가 자리에 멈추더니 언성을 높였다.

    “나만 좋자고 그래? 원희가 내 딸이기만 해? 당신이 원희 아빠야. 원희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는데 어떻게 그래!”

    빽 소리를 지르는 여자.

    ‘볼 수도 있고, 말할 수도 있다?’

    인호는 그대로 몸을 돌리더니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조금 전 어깨를 부딪친 사내가 보이지 않았다.

    “방금 이쪽에서 온 남자 어디 갔습니까?”

    “내려갔습니다.”

    가더의 말에 인호가 바로 엘리베이터를 탄다.

    1층에 도착해 주위를 살핀다. 최고의 의료진으로 유명한 병원답게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까 그 녀석 봤지?”

    사기꾼과 영감, 뚱보가 고개를 끄덕인다.

    “찾아.”

    망령들이 사람들 사이로 사라진다.

    결국 망령들은 사내를 찾지 못했다.

    “후우-.”

    휴대폰을 꺼낸 인호가 어디론가 전화한다.

    “부회장님. 오랜만이죠. 커피나 한잔할까요?”

    * * *

    커피전문점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내가 인호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든다.

    “부회장님 오셨어요.”

    “회장님. 오랜만입니다? 너무 오랜만이라 얼굴 잊어버릴 뻔했어요.”

    “왜 어색하게 존댓말을 하고 그러세요?”

    “어색하지. 3년 만에 얼굴 봤는데 당연하잖아.”

    “하, 하하.”

    “회장님아. 제발 협회에 관심 좀 가져라. 니가 협회장이잖아.”

    맞은 편 사내는 인호가 협회장으로 있는 대한민국 영매협회의 부회장 이홍재다.

    “부회장님이 워낙 잘하시니까 제가 별로 신경 쓸 게 없어서 그렇죠.”

    “잘하긴 개뿔-. 그래도 네 덕분에 협회비 탕진도 하고 좋았다.”

    “그거 얼마나 한다고요.”

    “티끌 모아 태산인 거다.”

    “티끌 모아 봐야 티끌이죠.”

    “됐고. 왜 전화했어? 응? 엄청 바쁘셔서 협회에 신경도 못 쓰시는 우리 협회장님아.”

    인호가 어색하게 웃는다.

    “협회는 요즘 어때요?”

    “똑같지 뭐. 신입회원 들어오고, 또 나가고.”

    인호가 이홍재와 함께 만든 영매협회에 속한 회원들 중 거의 대다수가 진짜 영매가 아니었다.

    전기를 만드는 수정구나 마술 도구 등으로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흔히 말하는 ‘사짜’들인 것이다.

    물론 그중에는 마주 앉은 이홍재처럼 진짜 영매도 있었다.

    “최근에 협회에 진짜가 가입한 적 있어요?”

    진짜란 ‘진짜 영매’를 말하는 것이다.

    인호가 영매협회에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 3년 전이니 그 사이 새롭게 가입한 회원이 있는지 묻는 것이다.

    “진짜? 두 명? 아니다. 한 명 더 있었지. 그런데 한 놈은 탈퇴했어.”

    “탈퇴해요? 우리나라에 영매협회가 우리 협회뿐인데 탈퇴를 했다고요?”

    “사고를 쳤거든.”

    사고라는 말에 인호의 눈이 가늘어진다.

    “재미교포 출신인데 2년 전에 우리나라로 왔어. 이름이 뭐였더라? 매? 아, 멧 김이다.”

    “맛 김이요?”

    “아니. 멧, 멧. 그 왜 헐리우드 배우 멧 데이먼 할 때 그 멧. 멧 김.”

    “참 이름을 지어도 멧 김이 뭐야, 멧 김이. 그런데 무슨 사고를 쳤는데요?”

    이홍재가 어색하게 웃으며 인호의 눈치를 살핀다. 냅킨을 손으로 꼬던 이홍재가 작게 속삭인다.

    “부…… 망.”

    “네?”

    “부인부망.”

    인호가 쏘아보자 이홍재가 기어들어 가는 음성으로 말한다.

    “실력이 좋았어. 그런데 어느 날 나한테 부인부망에 관련된 걸 묻더라고. 별생각 없이 알려줬더니 병원 돌아다니면서 그 짓을 하고 있더라고.”

    “왜 연락 안 했어요?”

    “하, 하려고 했지. 아니, 했지. 그런데 너 전화 안 받았어. 열 번도 넘게 했을걸.”

    “그게 언젠데요?”

    “작년 초?”

    작년 초라면 하는 일의 반동으로 얻는 고통으로 인호가 며칠 동안 의식을 잃었던 때이다.

    “계속 전화했었어야죠.”

    “그게- 좋은 일도 아니고. 말하면 좋은 말 못 들을 것 같기도 하고. 미안해.”

    “우리들이 협회 만든 이유가 뭐예요? 이 힘으로 나쁜 짓 하지 말자고, 나쁜 짓 하는 놈들 잡자고 만든 거예요. 부인부망이 그중에 가장 나쁜 짓이에요.”

    살지도 죽지도 못한 존재를 가지고 살아있는 가족들을 희망고문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인호는 영매협회 내에서 절대 부인부망의 존재를 다루지 말라는 회칙을 만들었다.

    “그 새끼 지금 어디 있어요?”

    “모르지. 너도 알잖아. 우리 협회는 탈퇴하면 개인 신상 다 파기하잖아.”

    “하아-.”

    인호가 답답한 듯 한숨을 토해낸다.

    “알겠어요. 앞으로는 이런 일 있으면 제발 연락 좀 해요.”

    인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긴다. 뒤에서 이홍재의 외침이 들려온다.

    “야-! 니가 회장이거든!”

    * * *

    “자주 보니까 정들겠다.”

    김명운이 극락 흥신소에 들어온다.

    “밥은 먹었어요?”

    “시간이 몇 신데. 왜 불렀는데?”

    “용돈벌이하시라고 불렀죠.”

    “용돈벌이? 나 돈 잘 벌거든?”

    “사주 카페에서 벌어봐야 얼마나 번다고 그래요.”

    “하, 하하. 그런 나한테 매번 밥 얻어먹던 놈이 누구더라?”

    인호가 모르는 척 믹스커피를 타서 김명운 앞에 내려놓는다.

    “아직도 부적 쓰시죠?”

    “부적? 안 쓰는데?”

    “뻥 치시네. 전에 보니까 어떤 검사인지한테 총명부 써줬더만.”

    “그게 몇 년 전인데. 그리고 그 총명부 쓸 때만 해도 현역이었거든.”

    “그래서 안 쓴다고요?”

    “아니, 제발 좀!”

    김명운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인호를 쏘아본다.

    “말을 할 거면 두서 있게 하면 안 되냐? 대뜸 부적 안 그리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는 알아야 대답을 할 거 아냐.”

    인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한다.

    “미안해서 그러죠.”

    “미안해? 뭐가 미안해?”

    인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시선을 아래로 한 채 작게 말한다.

    “…….”

    “응?”

    인호가 말을 웅얼거리자 김명운이 인상을 찌푸린다.

    “……가 필요하다고요.”

    김명운이 인호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

    “허, 허허. 하하하하. 이거 완전히 미친놈 아니야.”

    “꼭 필요해서 그래요.”

    “그러시겠지. 안 그랬으면 이런 미친 소리를 할 리가 없지. 너 지금 그게 뭔지 알고나 말하는 거냐?”

    “알죠. 잘 알죠. 일단 좀 들어봐요.”

    인호가 재식과 원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를 듣는 김명운의 표정이 수시로 바뀐다.

    “아직도 그런 놈이 남아 있어?”

    “돈이 되니까요. 최고급 의료 장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이겠냐고. 돈 많은 사람들 희망고문하면서 돈 빨아먹는 거지.”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뭘요?”

    김명운이 인상을 와락 구긴다.

    “그 새끼 어떻게 할 거냐고.”

    인호가 커피를 마신 후 씨익 웃는다.

    “어린아이가 위험한 칼을 들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

    김명운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바라보자 인호가 짧게 말한다.

    “뺐어야죠. 그래야 다른 사람이 안 다치죠.”

    * * *

    신성병원 1층 로비.

    인호는 의자에 앉아 VIP 병동 전용 엘리베이터 쪽을 바라보고 있다.

    “야. 그놈이 언제 다시 올 줄 알고 기다려? 이틀째 안 오잖아.”

    “언젠가 오겠지. 영감님은 지하 주차장 가 있는 거지?”

    병원이 문을 여는 시간에 왔는데 벌써 오후 4시였다.

    “그런데 그 여자가 깨어날 확률이 있기는 한 거야?”

    “잘 모르지.”

    “외동딸이라며?”

    “그렇다고 하네.”

    “그래서 집착이 심한가 보다.”

    “아니. 그냥 그 아줌마가 이상한 거야. 현실은 받아들여야지. 아직 모르는 거야.”

    “뭘?”

    인호가 주변을 살피며 말한다.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걸.”

    한국에서 현금을 가장 많이 보유한 아버지 아래서 자라며 어려움이라는 것을 겪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돈으로 다 해결했을 테니.

    “인호야.”

    바닥에서 영감이 쑤욱 솟아오른다.

    “왔다.”

    인호가 주변을 살핀다.

    로비를 가로지르는 선글라스의 사내가 보인다. 며칠 전 15층에서 봤던 사내가 분명하다.

    인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내의 앞을 가로막는다.

    “누구십니까?”

    사내가 인호를 쏘아본다.

    인호가 씨익 웃는다.

    “야. 니가 맛 김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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