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할머니 드세요.”
이민정이 둥글레차를 할머니 앞에 내려놓는다. 탁자를 차지하고 있던 음식들은 모조리 치운 후다.
“제 얘기를 들으셨다고요?”
“네.”
할머니가 인호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인다.
“저 그렇게 어려운 사람 아니에요. 그런데 누구한테 제 이야기를 들으셨어요?”
“정임이요.”
“정임이면…… 아, 할머니.”
인호가 사는 동네에서 폐지를 주워 파시는 할머니 이름이 윤정임이었다.
“정임 할머니가 왜 제 얘기를 하셨을까요?”
찻잔을 두 손을 꼭 쥐고 있는 할머니는 선뜻 말을 하지 못한다.
“그, 그게…….”
가늘게 떨리는 음성.
들고 있는 잔에 눈물이 떨어져 파문을 만든다.
“우리 재식이가 죽었어요.”
아들의 이름이 재식이인 듯하다.
“아드님이 죽었어요?”
“네.”
“어떻게 죽었어요?”
할머니 몸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운은 분명히 망자의 기운이다. 억울하게 죽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어머니의 주위를 떠도는 것일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보통 억울하게 죽었다면 그 억울함의 원인 주변에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살해를 당하면 살해당한 장소나 살해한 살인범 주위를 맴돌기 마련이다.
“그게-, 자살했어요.”
“자살요?”
“네. 차에서 연탄을 피우고 자살했어요.”
인호가 이상하다는 듯 할머니를 바라본다.
“기운만 보면 한을 품고 있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할머니가 고개를 들어 인호와 눈을 맞춘다.
“그게 보여요?”
“할머니. 혹시 아드님이 가지고 있던 물건을 지니고 계시지 않나요?”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인 후 파자마 주머니에서 작은 동전 지갑을 꺼낸다. 할머니가 그 안에서 꺼낸 것은 작은 사진 한 장이었다.
한 쌍의 남녀가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이다.
“여기 있었네요.”
사진 속 남자에게서 푸른 기운이 아른거린다.
망령의 기운이다.
인호가 사진을 받아 탁자 위에 올려두고는 말한다.
“이제 본인에게 직접 들으면 되겠네요. 재식 씨라고 했죠?”
사진 속에서 푸른 기운이 흘러나온다. 그 기운은 할머니 옆에 모여들어 사람의 모습으로 바뀐다. 슬픈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보는 남자는 사진 속의 남자였다.
“재식 씨.”
“네.”
“죽었으면 가야 할 곳에 가야지 왜 이승을 떠돌고 있어요? 어머니가 절 찾아온 걸 보면 재식 씨의 기운이 어머니에게 영향을 주고 있을 거예요.”
꿈에 아들이 보인다거나 가끔 흠칫 놀라거나 할 것이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고생하는 걸 보고 있으니 마음이 너무 아파서요.”
“그걸 알면 빨리 떠났어야죠. 어머니의 가슴 속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아픔으로 남겠지만…….”
할머니는 인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자신의 옆자리로 향해 있는 것을 보고는 주르륵 눈물을 흘린다.
“재식아. 내 새끼. 우리 재식이.”
“이 봐요. 이렇게 된다니까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어머니가 저 때문에 계속 돈을 쓰고 힘들어하시니까요.”
“네?”
이미 죽은 사람 때문에 돈을 쓸 일이 뭐가 있을까?
좋은 관, 좋은 묫자리, 그리고 좋은 비석.
아마도 이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재식은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무속인을 찾아다니고 계세요. 벌써 살고 있던 빌라 전세금도 빼셨어요. 그 돈도 얼마 안 남았어요.”
“무속인을 찾아다니신다고요?”
재식이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슬피 운다.
“사혼식. 영혼결혼식 때문이에요.”
“아-!”
인호가 짧은 탄성을 토해낸다.
“이 사진 속 여자분도 함께 죽었어요?”
“그걸 잘 모르겠어요. 분명 같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기억이 없어요.”
죽었기 때문이다.
죽은 이가 망령이 될 때 잠시 기억의 혼선이 오는 경우가 많다. 어떤 망령들은 기억이 완전히 지워져 죽은 장소를 떠나지 못하기도 한다.
인호가 할머니에게 묻는다.
“할머니. 들으셨죠?”
“네. 여기 우리 재식이가 있어요?”
인호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주자 할머니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손으로 쓰다듬는다.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롭다.
인호의 눈에서 푸른 기운이 일렁인다. 인호는 할머니의 무릎을 살짝 건드린다.
“재, 재식아. 내 아들. 내 새끼.”
할머니는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재식을 보고는 눈물을 펑펑 흘리신다.
“엄마. 울지마.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아니야. 내 새끼. 아니야. 엄마가 더 미안해. 가난하게 낳아서 미안해. 엄마가 가난하지 않았으면 우리 재식이 그렇게 죽지도 않았을 텐데. 엄마가 너무 미안해.”
할머니와 재식이 눈물을 하염없이 흘린다.
아무래도 ‘돈’이 엮인 문제인 듯하다. 인호는 혼자 ‘제기랄’이라며 쓰게 중얼거린다.
“기운을 오래 사용하지 못해요. 그러니 이제는 대화를 나누도록 하죠.”
“네. 네, 그래야죠. 이 사진 속 아가씨는 재식이 여자친구였어요. 나처럼 가난한 엄마가 아니라 부자 엄마를 둔 아가씨였어요.”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부잣집 딸과 가난한 집 아들의 만남.
여자친구 부모의 반대.
“재식이가 몇 번이나 많이 다쳐서 집에 오곤 했어요.”
“여자친구 집에서 재식 씨 폭행하라고 시킨 거예요?”
“잘 몰라요. 말을 해야 알 텐데. 그냥 넘어졌다고만 했어요.”
인호가 재식을 바라보니 말을 하지 않는다. 이미 대답을 들은 것과 같았다.
재식이 말한다.
“원희가 많이 힘들어 했어요. 우린 정말 사랑했거든요. 집안의 반대 때문에 제가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더 힘들어했죠. 그래서 결국 수면제를 먹고 차에 연탄불을 피우게 됐어요.”
“이승에서 연을 맺지 못하면 혼이라도 연을 맺어 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용하다는 무당이나 점쟁이들을 찾아다녔어요.”
할머니가 말을 받는다.
할머니 말대로 용하다고 소문이 난 무속인이라면 많은 돈을 요구하였을 것이다. 살고 있는 집의 전세금까지 빼가며 그러고 있으니 재식이 어머니 곁을 떠나지 못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그 용하다는 것들 어디 누굽니까?”
안 그래도 힘든 할머니를 더 힘들게 하는 것들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돌팔이는 아니었어요.”
“네?”
재식의 말에 인호가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본다.
“그중 한 명은 정확히 절 봤어요. 그리고 원희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고요.”
“그래요? 그런데도 사혼식을 치르지 못했다고요? 그 정도 실력을 가진 무속인이라면 상대방의 사주만 알면 어렵지 않을 텐데요.”
“그 무속인이 이렇게 말했어요.”
- 분명 살아있지 않는데 죽지도 않았다.
인호가 ‘하’하고 답답한 한숨을 토해낸다.
“부인부망不人不亡.”
“네?”
“말 그대로예요. 사람도 아니고 망자도 아닌 경우를 말해요. 부생부사라고도 해요.”
“그럴 수도 있나요? 원희가 살지도, 죽지도 못했다고요?”
“숨은 붙어 있으니 죽지 않았고, 이미 혼이 육을 떠났으니 살지도 않았다. 이런 경우가 부인부망입니다. 흔히들 뇌사, 식물인간이라 부르는 상태에 빠진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죠.”
“원희가 그런 상태라고요?”
“그럴 확률이 높다는 것이죠. 그래서 용하다는 무속인이 원희 씨라는 분을 찾지 못한 걸 거예요.”
부인부망의 경우는 저승사자들도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었다. 분명 혼이 육체를 떠났음에도 아주 가느다랗게 혼줄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재식 씨.”
“네.”
“사혼식 하고 싶어요?”
“…….”
재식이 말을 하지 못한다.
“하게 해주세요. 방법이 있다면 꼭 하게 해주세요.”
할머니가 손을 뻗어 인호의 손을 잡는다. 한평생 얼마나 고생하였는지 손에 전해지는 굳은살로 알 수 있다.
“할머니. 사혼식을 한다는 의미는 원희라는 아가씨를 완전히 죽인다는 말과 같아요. 할머니에게 재식 씨가 소중한 자식인 것처럼 원희 씨 역시 그 부모들에게는 소중할 테니까요. 마지막 희망을 놓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부모의 심정도 할머니 못지않을 거예요.”
“그러면…….”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려 할 때 인호가 말을 자른다.
“제가 알아볼게요.”
할머니의 손에 찻잔을 쥐여준다.
“에이, 다 식었다. 새로 끓여 드릴까요?”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알아보고 방법을 찾아 볼게요.”
“그래 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그 아가씨 부모님이 힘들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
“일단 알아보고요. 집에 돌아가셔서 쉬고 계시면 제가 연락드릴게요.”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돈은 얼마나 드려야 할까요?”
인호가 씨익 웃는다.
“원래는 엄청 비싸거든요.”
할머니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런데 요즘 세일 기간이에요.”
“세일이요?”
“네. 일단 세일 기간이라 30% 디씨, 그리고 할머니는 연세가 많으시니 또 30% 디씨, 마지막으로 착한 아드님 두셨으니 또 30% 디씨.”
인호가 할머니의 손을 꼭 잡는다.
“원래는 하루에 십만 원은 받아야 하는데 세일 기간이니까 만 원만 받을게요.”
“그래도 돼요? 내가 너무 미안해서.”
인호가 환하게 웃는다.
“괜찮아요. 요즘 지갑이 뚱뚱해서요.”
* * *
서울 신성병원.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 신성 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병원으로 VIP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한 병실.
병실이라기보다 호텔 방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호화로웠다.
침대 위에 한 여자가 누워있다. 잠을 자는 것인지 눈을 감고 있는데 그녀의 주변으로 수많은 의료 장비들이 놓여 있었다.
생명유지 장치들이 가득한 침대 옆에는 한 여자가 앉아 있다. 50대 중후반의 여자는 누워 있는 여자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오늘은 날씨가 아주 좋아. 이런 맑은 날에 엄마하고 같이 전시회도 가고 그랬는데.”
중년 여자의 시선은 허공을 향해 있었다.
“어제는 아빠가 네 방에 가서 한참 우셨어. 콩쿨에서 받아 온 트로피를 한참이나 닦더라.”
중년 여자는 허공에 시선을 둔 채 계속해서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가끔 웃기도 하는 모습이 온전한 정신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러는 동안 의사와 간호사가 들어와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의료 장비들을 확인하기도 했다.
중년 여자의 혼잣말은 그때도 계속되고 있었다.
“몸 다 낫고 깨어나면 엄마랑 같이 날씨 좋은 날 전시회도 가고 그러자. 응? 왜 싫어? 그러면 맛있는 것 먹으러 갈까?”
중년 여자의 웃는 얼굴에 금이 간다.
“왜 싫어? 왜 자꾸 싫다고만 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여자가 허공에 대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
“정말 엄마 보다 그딴 놈이 더 중요한 거야? 엄마가 널 이렇게 많이 사랑하는데 어쩌면 그럴 수 있어?”
한참을 그렇게 소리를 지르던 여자가 길게 숨을 토해낸다.
“미안. 엄마가 소리 질러서 미안해.”
여자가 다시 자리에 앉는다.
“정말 미안해. 그러니까 화내지 마. 전시회도 싫고, 맛있는 것도 싫으면 우리 오페라 보러 갈까? 오페라 좋아하잖아. 그치 원희야.”
여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
푸른 기운의 여자가 서 있다.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중년 여자를 쏘아보며 짧게 말한다.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