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39화 (39/190)

제39화

“요즘 자주 전화한다?”

김명운이 조수석에 타며 인호를 쏘아본다.

“현학 거사께서 해 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 그렇지.”

“현학은 개뿔……. 그래서 무슨 일로 불렀는데.”

“전에 명당 한 곳 잡아 뒀다고 했죠?”

“명당? 아-, 고흥 말하는 거야?”

“아무튼 거기요.”

“거긴 왜?”

“그 명당 좀 씁시다.”

김명운이 어이가 없다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맡겨놨어? 내가 너한테 돈이라도 빌렸니?”

“아, 그러지 말고요.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래요.”

김명운이 뒷자리를 힐끔거린다.

“저 상자 뭐냐? 딱 봐도 음한 기운이 가득한데. 혹시 저 상자 때문이냐?”

“네.”

“여기 나 말고 또 누가 타고 있고?”

“네.”

인호의 짧은 대답에 김명운의 눈이 가늘어진다.

“설명해봐. 듣고 타당하면 줄게.”

“휴우-. 그냥 직접 들으세요.”

인호의 눈에 푸른 빛이 일렁인다. 인호가 김명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다.

김명운이 고개를 뒤로 돌리자, 그곳에는 상자를 조심스럽게 안고 있는 장수가 앉아 있었다.

“현 시대의 어르신은 아니신 것 같고.”

“조선 숙종 때 분이세요. 나머지는 어르신이 직접 말씀하세요.”

장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장수가 수백 년 동안 김정흠의 머리를 지키고 있다는 말에 김명운의 표정이 숙연해진다.

“일단 알겠습니다. 어르신 정성이 그런데 제가 어떻게 모르는 척하겠습니까? 제가 찾은 명당 터는 전라남도 고흥이라는 곳의 보선산에 있습니다. 사시사철 볕이 잘 들고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좋은 터죠. 그곳이라도 괜찮으시다면 장군님을 모시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장수가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 * *

김명운이 사 두었다는 터는 인호가 보기에도 명당이었다. 산 중턱에 평평한 터인데 해가 잘 들고 정면으로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땅을 파 김정흠의 머리가 담긴 상자를 넣고 흙을 덮기 전 장수에게 시간을 주었다.

“장군님. 이제 정말 보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간 부족한 쇤네가 장군님을 뫼셔서 송구스럽습니다. 부디 극락왕생하시지요.”

김명운이 미리 준비한 지전을 태우고 박달나무로 만든 목검을 상자 위에 올린 후 흙을 덮는다.

인호가 앞으로 나선다.

“어르신. 이제 어르신께서도 가셔야지요.”

“그래야지. 이제는 나도 가야지.”

장수의 옆으로 기운이 일렁이며 검은 정장을 입은 뚱보가 나타난다.

“망자 장수.”

“네, 차사님.”

“가십시다. 갈 길이 멀어요.”

“차사님. 가기 전에 하나만 여쭤도 될까요?”

뚱보가 말없이 바라보자 장수가 묻는다.

“우리 장군님께서도 좋은 곳으로 가셨겠지요?”

뚱보가 인호를 바라본다. 인호가 티 나지 않게 고개를 살짝 젓는다.

“세상에 나고, 다시 돌아가는 것. 어디로 가는지는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네.”

뚱보가 몸을 돌리자 장수 역시 몸을 돌린다. 하지만 미련이 많이 남는지 몇 번이나 뒤를 돌아 무덤을 바라본다. 뚱보는 그런 장수를 가만히 기다려준다.

인호가 장수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안심하고 가라는 듯 밝은 미소로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뚱보와 장수의 모습이 사라지자 인호의 얼굴에도 웃음이 사라졌다.

“형도 느끼고 있지?”

김명운 역시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인호가 무덤 앞에 선다. 그의 두 눈에 푸른 기운이 일렁인다.

“당신이 김정흠인가?”

인호의 외침에 무덤에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검은 기운이 한곳에 뭉쳐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다.

“그렇다네. 내가 김정흠이야.”

“어째서…… 어째서!”

인호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당신은 악령이 된 것인가?”

이전에 상대했던 악령들처럼 강한 기운은 아니지만 분명 악령이었다.

“모시던 왕을 향해 검을 들었으니 그럴 수밖에.”

김정흠의 말에 인호가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역모의 누명이 아니라 정말로 역모를 저지른 것이란 말입니까?”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한다네.”

유구무언.

지은 죄가 있으니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김정흠은 장수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쓰게 웃는다.

“그때 바로 지옥에 갔어야 했다네. 장수. 저 친구의 나에 대한 믿음 때문에 작은 상자에 갇혀 지금까지 오게 되었지. 덕분에 참회를 할 수 있었네.”

장수는 바보처럼 자신이 모시던 주인이 억울한 누명을 썼다고 여겨 3백 년이 넘도록 이승을 떠나지 못한 것이다.

“미안하다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네. 저 친구의 마지막 믿음과 오랜 세월 붙잡고 있던 신념을 깰 자신이 없었던 게지.”

“그건 잘하셨습니다.”

저승으로 가는 마당에 자신의 주인이 역모의 주역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장수가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장군님도 그만 가십시오.”

“그래야지.”

인호의 뒤로 저승사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저승사자는 인호를 보기 무섭게 인상을 구겼다.

“망자 김정흠.”

“네.”

“오랜 시간 마음고생이 심했겠군. 가도록 하지. 잘 따라오시게 삼도천의 인두어는 자네 같은 이의 살점을 좋아하니.”

* * *

극락 흥신소 사무실 탁자에 음식이 가득 놓였다.

“소장님. 우리도 음식점에서 회식하면 안 돼요?”

이민정의 말에 인호가 소파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 망령들과 뚱보를 보며 말한다.

“되겠냐?”

이민정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직원이라고 해 봐야 너하고 나 둘밖에 없는데 음식점까지 갈 필요도 없고.”

“그래도 분위기가 다르잖아요, 분위기가.”

“여기서라도 회식하는 걸 감사해라.”

“맞아. 민정이 너 오기 전에는 회식은커녕 매일 제사상에 무국만 올라왔다니까.”

사기꾼의 말에 인호가 눈을 부라린다.

“너도 음식 투정하는 거냐? 적당히 해라.”

“알았다고. 그나저나 이번에 돈 많이 받았어?”

인호는 대답하지 않고 족발을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이재문에게 5백만 원을 받았다. 천만 원을 주겠다는 것을 절반만 받은 것이다. 전부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역시 이번 일로 금전적, 심리적 피해가 컸을 것이다.

“지갑이 뚱뚱해서 그래.”

“갑자기 무슨 말이야?”

족발을 우물거리는 사기꾼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든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다.

통장에 아직 돈이 넉넉하니 평소라면 감히 생각도 못 할 인심을 베푸는 것이다.

“인호야. 이제 너도 운이 좀 트이려나 보다.”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바라보니 사기꾼이 소주를 마시고는 웃으며 말한다.

“일거리가 끊기질 않잖아. 일거리 없을 때는 매일 무국…… 이건 아니고. 아무튼 마냥 힘들었었잖아.”

“힘들어도 니들 밥은 안 굶겼거든? 그리고 내 일이 많은 게 좋은 거냐?”

“그건 그런데. 일이 없는 것보다야 좋잖아.”

이민정이 인호의 잔에 소주를 채워준다.

“우리 다 같이 짠해요. 우리 극락 흥신소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좋죠?”

“좋긴-.”

인호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잔을 들어 앞으로 내민다. 이민정과 망령들이 잔을 내민다. 잔이 허공에서 부딪칠 때 파란 기운이 피어오른다.

인호가 인상을 찌푸린다. 오늘따라 소주가 쓰다. 수백 년 동안 역모를 일으킨 주인이 누명을 썼다고 생각하며 유해를 지켜왔던 장수가 떠오른 까닭이다.

- 차사님. 장군님은 좋은 곳으로 가셨겠지요?

장수의 마지막 말이 떠오른다.

“무슨 일 있었냐?”

영감의 물음에 인호가 쓰게 웃는다.

“삼백 년이 넘도록 충의를 지켰는데. 그 충의가 쓸데없는 짓이었어요. 아니지. 그 어르신에게는 주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을지 모르겠네요.”

다시 소주 한 잔을 더 마신 후 장수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믿고 갔으면 됐지. 그 터줏대감은 극락으로 갔을 거 아니야.”

“맞아. 한평생 죄라는 것은 지은 적 없는 선한 사람이었어. 유해를 지키려 생자들을 괴롭힌 것이 문제가 되긴 했지만, 정상참작되기도 했고.”

장수에 관한 판결을 듣고 온 뚱보가 말했다. 뚱보의 앞에는 족발과 치킨의 뼈가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부러운 새끼. 실제로 먹으니 좋지?”

“당연하지. 인호가 먹는 거 볼 때마다 얼마나 부러웠는데.”

저승사자가 되어 육체를 얻게 된 뚱보가 히죽 웃는다. 뚱보의 입 주변이 기름으로 번들거렸다.

“정 검사나 유 형사한테 연락 오거나 한 것은 없지?”

“없어.”

인호의 물음에 뚱보가 짧게 대답한 후 탕수육을 세 개나 집어서 한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이상하게 찝찝하단 말이야.”

정인호 사고 전담 테스크포스인지가 조직되고 나서 유성 그룹의 망나니 한선호의 일 이후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부장을 떠올린 인호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떤다.

“인호야.”

“말씀하세요.”

“요즘에 서울역에 망령들이 많이 모이더라.”

“서울역에는 원래 망령들 많잖아요.”

서울역에 자리를 잡고 지내는 노숙자들이 많았다. 그들 대부분이 연고가 없어서 노숙하다 죽게 되면 서울시에서 화장을 해 준다.

그런 무연고 노숙자들은 죽은 이후에도 주변을 떠도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곳은 저승사자들도 업무량이 많아 꺼리는 곳이기도 했다.

“전에는 노숙자들 망령들만 있었는데 요즘은 멀쩡한 망령들도 자주 보이더라고.”

“귀신터라 그래요.”

“그건 나도 알지. 하지만 이전과는 달라. 딱히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영감이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인호야. 요즘 벌이도 좋은데 코에 바람이나 넣으러 가자.”

“내가 너하고 나들이를 갈 것 같냐?”

“빡빡하게 왜 이래? 우리도 너한테 도움 주잖아. 휴가. 그래, 휴가라고 생각하면 되지.”

“일을 하면 얼마나 한다고. 그리고 니들이 가면 어딜 가? 영감님. 혹시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요?”

영감이 어깨를 으쓱할 뿐이고, 사기꾼이 계속 말한다.

“심심하면 남산 타워나 올라갔다 오던가.”

“에라이. 너한테 무슨 말을 하겠냐.”

“나는 찬성!”

이민정이 짧게 말하자 인호가 인상을 찌푸린다.

“넌 또 뭐가 찬성이야?”

“남산 타워 가는 거 찬성요. 서울 살면서도 바빠서 남산 타워도 못 가봤단 말이에요.”

“잘됐네. 둘이 다녀오면 되겠다.”

“싫거든요. 내가 왜 사기꾼하고 둘이서 거길 가요?”

“나도 싫거든?”

사기꾼이 짜증이 난 듯 말하자 인호가 피식 웃는다.

“그럼 휴가는 없었던 일로.”

인호가 잔에 소주를 따라 마실 때였다.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리자 인호가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한다. 밤 9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누군가 찾아오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

“누구세요.”

문이 열린다.

문고리를 잡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이 보인다.

“안녕하세요.”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얼굴을 내민 할머니가 인호를 보고는 꾸벅 고개를 숙인다.

“네, 안녕하세요. 할머니. 어떻게 오셨어요?”

“누가 여길 가 보라고 해서요.”

“네? 누가요? 일단 들어오세요.”

문을 완전히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할머니를 보는 인호의 눈이 가늘어진다.

할머니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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