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38화 (38/190)
  • 제38화

    “크크크크.”

    뒤에 탄 사기꾼이 계속해서 낄낄거렸다.

    “적당히 하지.”

    “아멘.”

    사기꾼이 두 손을 모으고는 웃음을 참은 채 말한다.

    인호의 머리 뒤쪽에는 십자가 형태로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천하의 정인호가 망령에게 당해서 대갈통이나 깨지고 말이야. 크크크. 살다 보니 이런 날도 다 있네.”

    “적당히 하라고 했지?”

    “미안.”

    조수석에는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고 있는 이민정이 앉아 있다.

    “뭐 한다고 다 따라 나와?”

    인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뒷자리에는 사기꾼뿐 아니라 영감과 뚱보도 타고 있다.

    “인호 네가 당했는데 당연히 걱정돼서 따라나선 거지.”

    영감이 창밖에 시선을 둔 채 말한다.

    “어떤 망령인지 몰라도 내가 저승으로 끌고 갈게.”

    뚱보가 핫바를 왁 베어 문다. 반대 손에는 세 개의 핫바가 더 들려있었다.

    공사 현장에 도착하니 땡초의 차가 보인다.

    “이 형은 또 왜 왔어?”

    컨테이너로 들어가니 땡초와 이재문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 왔어?”

    “안녕하세요.”

    이재문이 떨떠름한 눈빛으로 인호를 바라본다.

    아무것도 없는 지하실에서 갑자기 허공을 날아 벽에 부딪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함께 오신 분은 누구시죠?”

    “직원들입니다.”

    뚱보와 이민정이 살짝 고개를 숙인다.

    “전에 보셨듯이 조금 강한 상대라서요.”

    “그렇군요.”

    “여전한가요?”

    인호가 현장을 보며 물었다.

    “네. 어제도 부수려고 해 봤지만 소용없었어요. 함마드릴 사용하던 직원 하나가 크게 다칠 뻔하기도 했고요.”

    “알겠습니다. 바로 가도록 하죠.”

    이전에는 인호와 함께 가겠다고 하던 이재문은 좀처럼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는다.

    “형도 여기 남아 있지?”

    “싫은데? 어떤 놈이 있는지 몰라도 아주 혼쭐을 내주려고. 이거 어때? 쥑이지?”

    땡초가 상의 속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냈는데 자세히 보니 부적이다.

    “또 어떤 사기꾼한테 샀어요?”

    “아니거든? 엄청 유명한 사람에게 한 거거든.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아, 맞아. 현학. 현학 거사라고 했어.”

    “현학이요?”

    인호가 놀란 듯 땡초의 손에서 부적을 낚아챘다.

    현학 거사는 인호가 이민정을 위해 부적을 부탁했던 한국 최고의 도사였다.

    “어라. 진짜네? 현학이 제작한 부적 맞네요.”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현학이라는 말에 이민정이 관심을 보인다.

    “그런데 정말 이거 믿고 따라가겠다고요?”

    “왜? 유명한 사람 맞잖아.”

    “그건 맞아요. 그리고 이 부적도 그 도사가 직접 만든 게 맞고요. 그런데 딱 봐도 직접 산 건 아닌 거 같네요.”

    “어떻게 알았냐?”

    땡초가 머리숱도 없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당연하잖아요. 이 부적은 총명부聰明符에요.”

    “총명부?”

    “네. 수험생들 공부 잘하라고 쓰는 부적이란 말이에요.”

    “아-, 그래?”

    “그거 어디서 났어요?”

    “아는 사람한테 샀지.”

    “비싸게 주고 샀겠네.”

    땡초가 어색하게 웃는다.

    “그거 판 사람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 현학이 제작한 총명부를 지니고 있는 걸 보니.”

    “우리 업소에 가끔 오는 검사님한테 산 거야. 자기는 이제 필요 없다고 해서.”

    “됐고. 그게 뭔지 알았을 테니 따라온다는 말은 하지 마요.”

    인호는 땡초가 이재문의 맞은편에 앉는 것을 보고는 컨테이너를 나섰다.

    “이건 도대체가…….”

    건물 안으로 들어선 사기꾼이 몸을 부들부들 떤다. 그의 몸이 흐릿해졌다, 선명해지기를 반복한다. 옆에 선 영감도 마찬가지였다.

    “기운이 엄청나구나. 인호가 한방에 나가떨어졌다는 말을 믿지 않았는데.”

    영감이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린다.

    “나가떨어지기는 누가 나가떨어집니까? 너무 갑작스러워서 대처를 못 한 거지.”

    “그게 그거지.”

    인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지하로 뻗은 계단을 향해 내려간다. 지하실 입구에 선 인호가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눈을 감은 채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한 걸음 내디딘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푸른빛이 어른거린다.

    그리고 들려오는 비명과 같은 외침.

    - 나가!

    엄청난 기운이 밀려온다.

    이를 꽉 깨문 인호가 두 손을 앞으로 뻗는다. 인호의 두 눈에서 푸른 빛이 강렬하게 일렁인다.

    쿵-

    살아있는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울림이 지하실을 뒤흔든다. 푸른 기운이 소용돌이치듯 사방을 휘젓는다. 재빨리 한 걸음 더 내디딘다.

    “싸우러 온 것 아닙니다.”

    - 썩 꺼지지 못할까!

    다시금 밀려오는 기운.

    인호가 기운을 정면으로 맞선다. 자칫 기운을 뒤로 흘리기라도 한다면 영감과 사기꾼이 위험했다. 인호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인호가 다시 말을 하려 할 때였다.

    한없이 짙은 어둠을 머금은 푸른빛이 줄줄이 뻗어나간다.

    “이승과의 인연이 끝났다면 응당 가야 할 곳에 가야 하는 법. 어찌하여 구천을 떠돌며 생자들의 일에 간섭하는가!”

    거대한 덩치의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 뚱보였다.

    순간 지하실을 가득 채우던 푸른 기운이 서서히 약해진다. 이때다 싶어 인호가 재빨리 앞으로 나선다.

    “정말 대화를 나누기 위해 온 겁니다.”

    그제야 인호는 정면의 망자를 볼 수 있었다.

    베옷을 입고 있고 머리는 상투를 튼 모습이 딱 봐도 요즘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다.

    그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인호를 쏘아보고 있었다.

    “대감님이십니까?”

    “뭣 하러 왔나? 자네도 여길 부수려고 왔나?”

    “인사차 들렸습니다. 어떤 분인지는 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이곳을 떠나라는 말은 하지 마시게. 나는 절대 이곳을 떠날 수 없으니.”

    “세상 모든 일에 절대란 있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떠날 수 없다면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이곳을 부수지 못하게 막는 이유도 있을 테지요.”

    망령, 터줏대감이 못마땅하다는 듯 인호를 보다가 말한다.

    “나는 김정흠 장군님을 뫼시던 노복일세.”

    “김정흠 장군님이요?”

    인호는 바로 스마트폰을 이용해 김정흠이라는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하지만 김정훈이라는 이름을 가진 장군은 검색되지 않았다.

    “혹시 어느 해에 돌아가셨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숙종 대왕께서 즉위하시고 다섯 해 되던 해에 죽었네.”

    이번에는 숙종에 대해 검색해 본다.

    조선의 19대 왕으로 1674년부터 1720년까지 즉위했다. 숙종이 즉위하고 5년 후이니 1678년이다. 눈앞의 터줏대감은 340년 전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모시던 분이 후대에 이름이 남지 않았습니다.”

    유명한 장군이라면 당연히 검색하면 정보가 나왔을 것이다.

    “당연하지. 장군님께서는 역모로 돌아가셨으니까.”

    모시던 주인이 역모로 죽었고 노복은 수백 년 동안 주인의 집터를 지키고 있었다.

    인호가 볼을 긁적였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지 충성심 때문에 저렇듯 오랜 시간 동안 집터를 지킬 이유가 없었다.

    “이곳에 뭐가 있는 겁니까?”

    “장군님께서는 누명을 쓰신 것이네. 분노한 숙종 대왕께서는 장군님을 참하시고 머리를 몇날며칠 동안 효시하셨네.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장군님의 머리를 훔쳤네.”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장군님의 머리를 이곳에 묻으신 겁니까?”

    “맞아. 효시된 머리가 사라지자 주변에 병사들이 가득해서 다른 곳으로 가지 못했네. 혹시라도 들킬 것이 두려워 아주 깊게 땅을 파고 장군님의 머리를 묻었지.”

    “등하불명이라.”

    본래 등잔 밑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고 사람이 숨으려면 사람이 가장 많은 곳에 숨어야 한다는 이치.

    “이곳이 김정흠 장군님께서 사시던 곳이었습니다.”

    “아닐세. 이곳은 장군님의 부장되시던 분이 사시던 곳이지. 장군님 댁에 몸을 숨겼다면 진즉에 들켰을 게야.”

    인호가 사정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대감님께서 이 터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알겠습니다.”

    “나를 대감이라 부르지 말게.”

    “호칭이야 어찌 됐든 무슨 상관입니까.”

    “이제 이유를 알았으니 떠나 주시게.”

    “성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터줏대감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뫼시던 분도 지키지 못했던 못난 사람의 이름은 알아서 무엇 하려고 그러나?”

    “이름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누군가가 불러주었을 때 의미를 갖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순간 명부에 이름이 적힙니다. 마지막 순간 차사에게 불리는 것도 이름이지요. 모시던 분을 지키기 위한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나 어르신의 성함이 잊히는 것은 너무 마음 아픈 일 아니겠습니까?”

    인호는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을 외면하지 않는다.

    “장수. 노비들의 삶이야 뻔한 것 아니겠는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이 노비의 삶. 부모님께서는 이름처럼 장수하라는 의미로 지어주셨지.”

    “장 어르신이셨군요.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보게.”

    “어르신께서 이곳을 지키고 계신 이유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어르신께서 모시던 장군님께서도 원하시겠습니까?”

    “…….”

    “나라를 위해 한 몸 다 바쳤음에도 역모로 목이 잘리셨습니다. 모시던 군주는 그런 장군의 목을 도성 벽에 효시하셨으니 돌아가신 후에도 한이 남으셨을 것입니다.”

    인호가 장수를 보며 말한다.

    “한풀이는 해 드려야지요. 그리고 이런 곳이 아닌 좋은 터에 모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때마침 제가 아주 좋은 터를 알고 있으니 장군님을 그쪽에 모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 *

    “신기하단 말이지.”

    땡초는 건물을 부수고 있는 중장비를 보며 묘하게 웃는다.

    “도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저 안에 사는 귀신, 아니 터줏대감인지를 설득한 거야?”

    중장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건물을 철거하고 있었다.

    인호가 땡초의 옆에 서서 철거를 지켜보고 있는 이재문에게 말한다.

    “말씀드린 것 잘 기억하시죠?”

    “당연하죠. 아주 조심스럽게 걷어 낼 테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사기꾼이 볼을 긁적이며 말한다.

    “잘못해서 장군님 머리 포크레인으로 건들기라도 하면 큰 사달 난다.”

    “그걸 누가 모르냐? 그런 일이 없길 빌어야지.”

    “그보다 참 대단하신 분이야. 3백 년이 넘도록 주인의 곁을 지켰다니.”

    영감이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영감의 시선은 걱정 어린 눈빛으로 철거를 지켜보고 있는 장수에게 향해 있었다.

    장수는 중장비가 건물의 잔해를 걷어낼 때마다 몸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살이 깎여 나가는 듯한 기분이리라.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지상 철거 작업이 대충 마무리되었다.

    “어느 정도 깊이에 묻으셨는지 기억하십니까?”

    “누군가 찾을까 두려워 열다섯 자 정도를 팠네.”

    “열다섯 자면…… 4.5미터 정도군요.”

    인호가 안타깝다는 듯 장수를 바라본다.

    오늘날에야 4.5미터를 파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장수는 조선시대에 살던 사람이다. 그가 땅을 팔 때 사용한 도구라고 해 봐야 곡괭이와 삽 정도였을 거다.

    그것도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려 조심했을 테니 그 깊이까지 팔 때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어르신께서 사시던 때와 시대가 틀려 지형이 변하긴 했겠지만, 대략 깊이를 알았으니 장군님의 유해가 망가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재문에게 장수의 이야기를 전하자 곧 인부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조심스럽게 작업을 진행해서인지 철거 시간은 한없이 길기만 하다. 일정 깊이부터는 중장비가 아닌 인부들이 직접 삽과 곡괭이를 들고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찾았습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인호가 빠르게 다가간다. 장수 역시 인호의 곁에 딱 붙어 있다. 인부가 삽으로 조심스럽게 땅을 걷어내고 있다.

    흙 사이로 보이는 쇠 재질로 보이는 검은 빛의 상자.

    “맞아. 내가 묻은…… 장군님을 모신 상자야.”

    장수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한다.

    인호가 아래로 내려가 손으로 흙을 파낸 후 조심스럽게 상자를 꺼낸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쇠로 만든 상자는 신기하게도 녹이 하나도 슬어 있지 않았다.

    인호가 상자를 꺼내 올라오자 땡초를 비롯한 망령들까지 모조리 다가온다. 장수의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가시죠. 우리 장군님 좋은 곳으로 모셔야죠.”

    인호가 장수를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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