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37화 (37/190)
  • 제37화

    딱-

    “어떤 시러배 잡놈의 새끼가…….”

    누군가 뒤통수를 때리자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몸을 돌리는 건장한 체구의 사내는 생글생글 웃고 있는 인호를 보고는 꾸벅 허리를 숙인다.

    “오셨습니까.”

    이전에 땡초를 만나기 위해 노블레스에 왔을 때 가로막았던 사내다.

    “땡초 형 안에 있냐?”

    “네, 계십니다.”

    “그래. 수고해. 아참-.”

    사내를 지나치던 인호가 걸음을 멈춘다.

    “왜 매번 너만 밖에 서 있냐?”

    “제가 막내라서 그렇습니다.”

    “아-, 그래? 수고해. 하나 더.”

    인호가 다시 걸음을 멈춘다.

    “왜 지금은 사투리 안 쓰냐?”

    “서울 출신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왜 사투리 썼어?”

    “좀 쎄 보일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하, 하하. 에라이.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너 사투리에 굉장히 소질 없어. 알겠냐?”

    “네.”

    사내를 뒤로한 채 노블레스 안으로 들어간다.

    “인호 형님 오셨습니까요.”

    땡초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땅콩이다. 키가 작아 땅콩이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이 바닥에서 그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땡초 형은?”

    “기다리고 계십니다요.”

    땅콩의 안내를 받아 특실로 들어간다.

    “여어-, 브라더! 여기서 보니까 겁나게 반갑다잉.”

    “영화 봤어요?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 해요.”

    “크크, 빨리 왔네?”

    “일하고 있을 시간이 아니니까요.”

    “여기 술 좀 내와라.”

    땅콩이 ‘네, 형님’하고 밖으로 나간다.

    잠시 후 테이블 위에 술과 안주가 채워진다. 땡초가 온더락 잔에 위스키를 가득 따라 인호에게 건넨다. 자신의 잔에도 채워 건배한 후 시원하게 들이켰다.

    “캬아-. 좋네. 어때? 술 괜찮지?”

    “좋네요.”

    “비싼 술이야. 한 병에 2백만 원도 더 해.”

    인호가 술이 반쯤 남은 잔을 빙빙 돌리며 땡초를 바라본다.

    “좋은 술 있다고 부른 것 같지는 않고. 왜 불렀는데요? 좋은 술까지 꺼내놓은 것 보니까 뭔가 할 얘기가 있는 것 같은데요.”

    “일단 입 좀 축이자.”

    땡초가 인호의 잔에 다시 술을 채운다.

    “그냥 맨정신일 때 말해요. 술 취해도 어차피 똑같아요. 그리고 이상한 부탁할 생각이면 말도 꺼내지 마요.”

    “야! 내가 항상 그런 부탁만 하는 사람이냐? 그리고 설화 선녀 잡을 때 나도 도와줬잖아.”

    “그래서 뭔데요?”

    땡초가 담배에 불을 붙인 후 연기를 길게 뿜어낸다.

    “잘 아는 형님이 한 분 계셔.”

    “또 형님 이야기에요? 저 가요.”

    인호가 일어서려 한다.

    “아, 진짜 그런 것 아니라니까. 그 형님이 주먹 출신이긴 한데 지금은 정말 선량한 사업가야.”

    “호박에 줄 그어도 수박 안 되죠?”

    “그렇지.”

    “반대로 수박에서 줄 없애도 호박 되는 거 아니에요. 선량한 사업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요.”

    “정말이야. 그 형님 결혼하고 조카 낳은 후에 완전히 새사람 됐다니까. 하던 일도 다 정리하고 작은 건설회사 하나 차려서 평범하게 사셔.”

    “평범하게 사는 사람이 안 평범하게 사는 형한테 왜 부탁을 하는데요?”

    땡초가 눈을 부릅뜬다.

    “다시 이야기해줘? 나 지금 하는 일 다 합법이거든? 아가씨들 중에 민짜도 없고 세금 낼 것 다 내고 그렇게 살거든?”

    “아-, 됐어요.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형님이 큰 공사를 하나 따신 것 같아. 작은 공사만 따서 일하셨는데 이번에는 덩어리가 굉장히 큰가 봐. 기존에 있던 건물 밀어내고 새로 빌딩 올리는 일인데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인호가 계속 말해보라는 듯 눈짓을 준다.

    “건물을 철거하려고 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네.”

    “구체적으로 어떤 이상한 일이요?”

    “폭파하려고 폭약 설치하면 폭발이 안 되고, 포크레인으로 밀어도 흠집도 안 난대. 빨리 철거를 해야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할 텐데 가뜩이나 공사기일도 빠듯한데 힘들다고 하더라고.”

    “흐음-, 대감님이 계시나?”

    “대감님?”

    땡초가 의아한 듯 인호를 바라본다.

    “터줏대감이요.”

    “터줏대감? 그쪽에 있는 조직은 그 형님한테 함부로 못할 텐데? 이 쌍놈의 새끼들이 형님 은퇴했다고 무시하는 거야? 앙? 그런 거야?”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인호가 위스키를 마신 후 참외 하나를 입에 넣는다.

    “말 그대로 터를 지키는 존재에요. 흔히들 터줏대감이라고 부르고 터주신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터줏대감이 그런 뜻이었어?”

    “그냥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말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니 말은 그 형님이 허물어야 하는 건물에 그 터줏대감인지 하는 게 있다는 말이지?”

    “직접 확인하지 않았으니 맞다고 말은 못하죠. 그런데 형이 말한 것처럼 그런 일이 벌어지면 열 중 아홉은 터줏대감이라고 보면 돼요.”

    “해결할 수 있는 거야?”

    인호가 소파에 등을 기대며 고개를 흔든다.

    “경우에 따라 틀려요. 그 터가 그 존재에게 굉장히 중요한 곳이라면 절대 물러나지 않아요. 터줏대감 무시하고 강제로 공사 진행시킬 생각은 하지 말라고 해요. 잘못하다 큰 사고 날 수 있어요.”

    “그냥 니가 해결해 주면 안 될까?”

    “해결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니까요.”

    “일단 확인은 해 봐야 할 것 아냐.”

    인호가 다시 고개를 흔든다.

    “터줏대감들이 굉장히 강해요. 오랫동안 터를 지켜오며 강한 기운을 얻게 되거든요.”

    “그 형님이 손이 작은 분이 아니야. 그 일 해결만 해 주면 굉장히 짭짤할걸.”

    “짭짤은 얼어 죽을.”

    “해 줄 거지? 인호야-!”

    땡초가 어울리지 않는 애교를 부리자 인호가 인상을 찌푸린다.

    “소름 끼치거든요?”

    “해 주는 거다? 오케이? 야, 애들 들여보내. 오늘 술 졸라 마시고 죽어버리게.”

    인호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땡초를 바라본다.

    “애들은 무슨 애들?”

    * * *

    인호가 땡초와 함께 차에서 내린다.

    “저기야.”

    땡초가 길 건너를 가리키며 말했다. 포크레인을 비롯한 중장비 몇 대와 인부들이 보인다. 근처에는 컨테이너 박스들이 놓여 있었다.

    땡초는 인호를 이끌고 컨테이너 박스로 들어간다.

    “형님.”

    “어, 땡초구나.”

    “인호야. 인사드려. 재문 형님이셔.”

    “정인호라고 합니다.”

    “이재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로 온 거야?”

    이재문이 의아한 듯 땡초에게 물었다.

    하는 투를 보니 이재문이 땡초에게 따로 부탁한 것 같진 않았다. 이재문의 사정을 들은 땡초가 인호에게 부탁한 것이리라.

    “현장에 이상한 벌어진다면서요?”

    “그 이야기는 또 어디서 들었어?”

    “이 바닥 소문 금방 도는 것 아시잖아요.”

    “휴우-,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속이 썩는다.”

    이재문은 창문으로 철거해야 할 건물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우리 회사 덩치에 맞지 않게 큰 공사를 따낼 때부터 의심해야 했어.”

    “무슨 말씀이세요?”

    “메이저 건설사들이 먼저 달려들었다 위약금 내고 빠졌더라고. 그것도 모르고 회사 덩치 키워 보겠다고 냉큼 물어버렸으니.”

    컨테이너 안에 있던 여자 직원이 커피를 타서 가져다준다.

    “형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전문가 데리고 왔잖아요.”

    “전문가?”

    이재문이 인호를 바라본다.

    “무슨 전문가?”

    “여기 건물에 터줏-.”

    인호가 땡초의 입을 막는다.

    “하, 하하. 전문가라기보다는 그냥 잡지식 조금 있는 편입니다. 땡초 형이 이쪽에 초자연적인 현상이 벌어진다고 해서 와 본 거예요.”

    땡초에게 눈을 부라리고는 이재문을 향해 웃어준다.

    “이 일 해결만 해 준다면 내가 사례는 섭섭하지 않게 해 줄게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디 가게?”

    “확인해 봐야 할 거 아니에요.”

    땡초도 냉큼 자리에서 일어난다.

    “형은 그냥 여기서 커피나 마시죠.”

    “자꾸 섭섭하게 하네. 우리 한팀 아니냐, 한팀.”

    “우리가 왜 한팀인데요?”

    “벌써 두 번이나 같이 일했잖아.”

    “설화 선녀는 그렇다 치고 왜 두 번인데요.”

    “패륜.”

    어머니를 죽인 아들 사건을 말하는 것이었다.

    “위험할 수도 있어요.”

    “니가 옆에 있는데 왜 위험해. 그냥 같이 가자.”

    “위험해도 진짜 나는 몰라요.”

    인호와 땡초가 컨테이너에서 나가려 할 때 이재문이 일어서며 말한다.

    “나도 함께 가도 됩니까?”

    * * *

    “건물이 상당히 오래된 것 같네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하니 오래되긴 했지요. 이 근처가 금싸라기 땅인 건 아시죠?”

    “네.”

    한강을 끼고 있는 마포구이니 땅값이 비싼 것은 당연하다.

    지금 들어선 건물과 주변 몇몇 건물들 빼고는 모두가 최근에 새롭게 지어진 건물들이었다.

    “이 건물 땅값만 120억이 넘는다고 하더라고요.”

    대지면적이 넓어 봐야 2백 평이 채 되지 않을 것 같으니 평당 6억 원이 넘었다.

    “엄청나네요.”

    땡초가 혀를 내두르는 모습을 본 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는다.

    애초에 그가 소유한 부동산 가격은 이 건물 땅값과 차원이 달랐다.

    노블레스를 비롯한 소유한 클럽들 건물이 모두 땡초의 소유였는데 청담동, 논현동, 삼성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땡초가 꾸미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그렇지 그는 수천억 대의 자산가였다.

    인호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같이 위태로워 보이는 건물 내부를 돌아다녔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 쪽에서 영적 기운이 느껴졌다.

    인호가 지하로 걸음을 옮기자 땡초와 이재문이 뒤를 따른다. 지하실의 문은 철거되었는지 뻥 뚫려있었다. 지하실로 들어서기 무섭게 인호가 걸음을 멈춘다.

    인호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 할 때였다.

    - 나가-!

    강력한 기운에 인호가 뒤로 튕겨져 나갔다. 벽에 머리를 부딪친 인호는 흐릿해지는 시야로 다가오는 이글거리는 푸른 빛을 보았다.

    인호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눈을 뜬 인호는 자신이 누워 있는 곳이 병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주변을 살폈다. 이민정이 옆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아-.”

    몸을 움직이려 하는데 머리에 통증이 느껴진다.

    “흐음-, 어머. 소장님 깨어나셨네요.”

    “니가 여기 왜 있어?”

    “빡빡이 아저씨 연락받고 왔죠. 보호자 노릇하고 있으니까 나중에 은혜는 꼭 갚으세요.”

    “그래. 꼭 갚으마. 의사는 뭐래?”

    “가벼운 뇌진탕이래요. 머리가 찢어지긴 했는데 다행히 뇌출혈은 없대요. 정신 차리면 퇴원해도 된다고 그랬어요.”

    인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팔에 꽂힌 주삿바늘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린다.

    “간호사 불러.”

    이민정이 간호사를 불러온다.

    “퇴원할 겁니다. 퇴원 수속 좀 도와주세요.”

    간호사가 인호를 멀뚱멀뚱 바라본다.

    이민정이 어색하게 웃으며 인호의 허리를 폭 찌른다.

    “소장님. 지금 밤 11시거든요. 이 시간에 퇴원을 어떻게 해요? 내일 해요. 내일.”

    간호사가 나가자 인호는 땡초에게 전화를 걸었다.

    - 몸은 괜찮냐?

    “그렇게 걱정됐으면 병원에 좀 붙어 있던가요.”

    - 내가 노는 사람이냐? 우리 일이 밤에 더 바쁜 것 뻔히 알면서 그래.

    “거기서 무슨 일 있었어요?”

    - 무슨 일? 니가 갑자기 붕 날라서 벽에 부딪혀서 기절하는 일이 있었지.

    “그다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 그렇지? 바로 너 데리고 병원 갔으니까.

    인호가 알겠다며 전화를 끊는다.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다행이다.

    “소장님.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기절씩이나 하시고.”

    “그런 일이 있었어.”

    인호가 기절하기 직전의 상황을 떠올려 본다.

    지하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누군가를 얼핏 봤다. 당연히 파랗게 빛나는 망령이었다. 얼굴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나가’라는 분노한 외침을 듣는 순간 강력한 힘에 밀려났고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잃기 직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짚신.”

    인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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