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33화 (33/190)

제33화

“이야. 집 좋은 거 봐라. 유니가 확실히 스타이긴 한가 봐. 청담동에 이 정도 집이면 못해도 30억 이상은 할 텐데.”

고급 빌라의 입구에서 사기꾼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다.

“뚱보 너는 저승사자가 되고도 먹을 걸 손에서 떼질 못하는구나.”

햄버거를 씹어 삼키며 뚱보가 피식 웃는다.

“실제로 먹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

“저승사자 박봉이라며? 그렇게 많이 먹어도 돼?”

뚱보가 인호를 가리킨다.

“돈 떨어지면 인호가 사주겠지.”

“내가? 왜?”

“왜긴. 우린 팀이잖아.”

“팀은 얼어 죽을. 그리고 월급이 적으면 적은 대로 아껴서 살아야지. 그렇게 쉬지 않고 처먹으면 돈이 남아나겠냐?”

뚱보기 씨익 웃고는 인호의 어깨를 툭툭 친다.

“가야지.”

“썩을 놈.”

인호와 뚱보, 그리고 두 망령이 고급 빌라 안으로 들어간다.

중간에 가더가 저지하긴 했지만 유니가 연락을 주어 입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도 입주자 카드가 없으면 운행이 안 되네. 쥑이네.”

엘리베이터가 6층에서 멈춘다.

“어서 와요.”

유니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유니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간다. 인호가 고개를 까딱거리자 영감과 사기꾼이 좌우로 흩어진다.

두 망령은 혹시나 유니의 집에 영적인 기운을 품은 무언가가 있는지 확인할 것이다.

“함께 오신 분은 누구세요?”

“뚜…… 이 친구는 제 조숩니다.”

“조수요?”

“네. 둔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날렵하죠. 뚱보야. 너의 날렵함을 보여줘.”

뚱보가 씨익 웃고는 이제 막 포장지를 벗긴 햄버거를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보세요. 엄청 날렵하죠?”

“풉! 그게 뭐예요.”

“하하. 일단 집에는 별문제가 없는 것 같네요.”

사기꾼과 영감이 고개를 흔들며 다가온다.

소파에 앉으니 유니가 오렌지 주스를 가져다준다.

“항상 같은 시간에 편지가 온다고요?”

“네. 저녁 열 시요. 그 사람 죽기 전에도 항상 열 시에 편지가 왔어요.”

“정성이 대단한 사람이었네요.”

“그날도 편지를 꽂으려고 왔다 가더한테 걸려서 도망치다 죽은 거예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CCTV 확인해도 편지를 누가 넣었는지 알 수 없고요?”

“네. 열 시가 되면 갑자기 생겨요.”

“유니 씨가 스캐줄이 있어 집에 없는 날에는 편지가 오지 않는다고 했죠?”

“네.”

“어제는 편지가 왔겠네요?”

인호가 유니에게 이틀 동안 스캐줄을 잡지 말라고 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유니가 일어서 텔레비전 아래 서랍에서 편지 한 통을 가져온다.

- 오래 기다렸지?

“글귀가 너무 오싹해요. 당장이라도 앞에 나타날 것 같아요.”

“아주 적당한 시기에 저한테 잘 오신 거예요. 편지의 내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며칠만 늦었어도 큰일을 겪으실 뻔했어요.”

“그런가요?”

“편지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아주 강해요.”

유니가 팔로 무릎을 감싸며 묻는다.

“전 뭘 하면 되죠?”

인호가 씨익 웃는다.

“아무것도 안 하시면 됩니다.”

“네?”

“그냥 이렇게 집에 계세요.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합니다. 아-, 그 친구를 한 번 보기는 하셔야 할 겁니다.”

“죽은 사람을 어떻게 봐요?”

“다 방법이 있어요. 사실 보지 않아도 되는데 이승에서 마지막 한은 풀고 가는 편이 그 친구에게도 좋고, 유니 씨도 덜 찝찝하지 않겠어요?”

유니가 고개를 끄덕이자 인호가 몸을 일으킨다.

“전 내려가서 우편함 근처에 있을 겁니다. 이곳에는 뚜, 조수가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시죠? 매우 날렵하다는 거.”

“푸웁-.”

유니가 웃는 것을 확인한 인호가 집을 나서 아래로 내려간다. 우편함 앞으로 걸어간 인호가 유니의 집 호수를 확인한다.

“마지막 소원은 풀어 줄 테니 곱게 떠나라.”

* * *

띵-

1층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한 남자가 올라탄다.

문이 닫히려 할 때였다.

“잠시!”

문이 닫히기 직전 엘리베이터에 탄 남자가 먼저 탄 남자의 어깨를 툭 친다.

“사람이 오면 열림을 눌러야지.”

먼저 탄 남자가 자기 어깨를 바라본다. 남자의 눈동자가 격하게 떨린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그의 얼굴이 희미해지며 푸른 빛이 일렁인다.

“지금 쳤어요?”

“왜? 안 돼?”

“그리고 내가 보여요?”

“그것도 안 돼?”

남자의 눈에 보랏빛이 일렁인다.

“당연하죠. 난 산 사람이 아니니까.”

“알아.”

태연한 남자, 인호의 반응에 망령, 정상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표정 풀어라. 그런다고 내가 쫄겠냐? 죽은 널 볼 수 있고 네 몸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은 아닐 거 아니냐?”

“누구세요? 혹시…….”

“그 혹시가 맞을 거야. 유니의 의뢰를 받은 사람이야.”

정상호가 몸을 움직이려 했다.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야. 이 건물에 네가 제일 무서워하는 존재가 있거든. 그게 누구게?”

정상호는 자신이 누굴 가장 무서워할까 생각해 봤다. 유니를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 가장 두렵다. 그런 상황을 만들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뿐이다.

“저승사자?”

“빙고. 저승사자가 유니 옆에 딱 붙어있지. 왜? 널 잡으려고. 저승사자들이 망자들을 인도하지 못하면 엄청 까이거든. 그래서 배회하는 망령들만 보면 눈에 불을 켜요.”

“저, 저한테 왜 이러세요? 저 나쁜 짓 안 했어요.”

“그건 네 기준이고. 생각해봐. 과연 유니도 너와 같은 생각일까? 매일 으스스한 문구로 편지나 보내고 말이야.”

“그건…….”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닫는 정상호.

“저 이대로 끌려가면 안 돼요.”

“왜? 죽었으면 가야 할 곳으로 가야 해. 그것이 저 위에 계신 분이 정한 규칙이야. 규칙이라는 것은 지키라고 있는 거거든.”

“저 유니, 아니 선미 만나야 해요.”

“선미? 유니 본명이야?”

“네, 최선미가 유니 본명이에요.”

덜컹-

정상호가 엘리베이터의 긴급정지 버튼을 누른다.

“어쭈. 물리력도 제법 쓰네? 너 도대체 정체가 뭐냐? 집착 때문에 힘을 얻은 것은 알겠는데 그래도 이건 오번데. 6층 버튼도 네가 눌렀지? 어떻게 한 거야?”

“그냥 누르니까 눌러지던데요.”

“그래?”

인호가 묘한 눈빛으로 정상호를 바라본다. 보랏빛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그만큼 집착이 심한 거냐?”

“집착 아니거든요. 선미가 나하고 결혼하자고 했거든요?”

“대부분 사생팬들이 그렇게 생각해. 상대도 날 사랑한다고. 나하고 결혼하고 싶어 한다고. 하지만 아니거든. 우린 그런 사람들을 이렇게 불러. 악성 스토커.”

“진짜 아니에요. 선미가 절 기억하지 못하는 것뿐이에요. 절 만나면 바로 알아볼걸요.”

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묻는다.

“유니가 널 도대체 어떻게 아는데?”

정상호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제가 선미 생명의 은인이거든요.”

* * *

문을 열어주자 인호가 안으로 들어온다.

유니의 뒤에는 뚱보가 서 있었다.

“빨리 왔네요. 혹시…….”

“네, 맞아요. 같이 왔어요.”

인호의 뒤에는 정상호가 서 있었다.

“그것 때문에 유니 씨하고 할 말이 있거든요. 혹시 유니 씨 본명이 최선미예요?”

“어머! 그걸 어떻게 아세요? 어렸을 때 개명해서 아는 사람 별로 없는데.”

“맞구나. 혹시나 싶어서 검색했는데도 본명은 안 나오더라구요.”

인호가 소파로 가서 앉았다.

뚱보는 계속해서 정상호를 힐끔거렸다. 정상호는 그럴 때마다 뚱보의 눈을 피해 딴청을 피웠다.

인호가 말했던 저승사자가 뚱보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유니 씨.”

“네.”

“혹시 어렸을 때 누군가하고 결혼하기로 한 적 있어요?”

“네? 무슨 말이에요?”

그때였다.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이상한 사람이라니까.”

방문이 열리며 정호찬 실장이 나온다.

“이봐요. 유니는 중2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했고 고1 때 데뷔했어요. 내가 그때부터 쭉 지켜봤습니다. 결혼 약속이요? 거참,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정호찬이 침을 튀겨가며 말했지만 인호는 유니를 보고 있다.

“잘 생각해 봐요. 유니 씨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을 거예요. 그해 여름에 유니 씨 가족은 포천에 있는 계곡에 놀러 갔어요. 유니 씨는 계곡에서 물놀이를 했죠. 그러다 이끼가 낀 바위를 밟고 미끄러지면서 깊은 물에 빠졌어요.”

“아, 맞아요. 그런 적 있어요.”

“그때 유니 씨를 구해 준 아이가 있어요. 아니지. 그때는 유니 씨가 아니라 선미였겠죠. 기억나요?”

“네, 기억은 나는데…… 사실 자세히는 기억을 못 해요. 의사 선생님께서 충격이 커서 기억 중 일부를 잃었다고 했거든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유니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설마 그 정상호라는 사람이 어렸을 때 절 구해 준 사람인가요?”

“네. 맞아요. 그리고 그때 유니, 아니 선미 씨는 정상호와 나중에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대요. 생명의 은인이었으니까.”

유니가 눈을 깜빡인다.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어요?”

인호가 왼쪽을 힐끔 바라본다. 유니는 인호의 왼쪽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유니야. 정말 그 말을 믿어?”

정호찬이 말리지만 유니는 숙인 고개를 들지 않았다.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어렸을 때 기억이 온전하지 못해요. 만약 그 일을 조금 더 빨리 알았다면 보답을 했을 거예요.”

정상호가 인호를 바라본다. 그 눈빛의 의미를 알고 있기에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순간 인호의 눈이 파랗게 빛난다. 인호가 유니의 어깨를 가볍게 터치했다. 그러자 고개를 드는 유니의 눈동자에도 파란빛이 어려있었다.

“어머!”

유니가 깜짝 놀라 짧은 비명을 토해낸다. 분명 아무도 없던 곳, 인호의 옆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저-, 맞죠?”

정상호가 인호를 바라본다.

“잠깐이긴 하지만 네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정상호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오른다. 정상호가 유니를 바라보며 말한다.

“선미야. 나야. 상호.”

“미안해요. 솔직히 누군지 잘 모르겠어요. 조금 전 이야기를 듣고야 어렸을 때 일이 기억 났으니까요.”

“하, 하하.”

정상호가 어색하게 웃는다.

“그리고 더 미안한 말이지만. 어렸을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해도 그쪽 분하고 결혼은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유니는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녀의 진심이 전해진 것인지 구겨지던 정상호의 표정이 본래대로 돌아온다.

“어렸을 때부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아시잖아요. 연예인은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남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어요. 그쪽이라서가 아니라 내 꿈을 이룰 때까지 난 남자를 만날 마음이 없어요.”

“그랬구나. 난 그냥…… 나 바보 같지?”

“아니에요.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 나는 진심이었을 거예요.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니까요. 그래서 더 미안해요.”

정상호가 씨익 웃는다.

“아니야.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 혼자 좋아하고, 혼자 설레하고, 혼자 이상한 상상한 내 잘못이지. 아-, 이제 후련하다. 저승사자라고 하셨죠?”

뚱보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그만 가죠. 그런데 저 늦게 왔다고 막 지옥 가고 그러는 건 아니겠죠?”

“저승의 판관들이 결정할 문제다. 네가 쌓은 선업이 악업을 가릴 수 있다면 좋은 곳으로 가겠지.”

진지하고 권위감까지 느껴지는 말투는 뚱보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망자 정상호.”

뚱보가 몸을 돌린다.

“이만 갑시다. 삼도천의 뱃사공도 퇴근하고 쉬어야죠.”

뚱보와 정상호가 떠나간다.

그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유니가 말한다.

“나 참 나빴죠.”

유니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내가 약속한 건데. 저 사람은 그 약속을 믿은 것뿐인데. 혹시 저 사람 무덤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인호가 어깨를 으쓱하자 정호찬이 나선다.

“내가 찾아볼게. 그런데 무덤은 왜?”

유니가 정상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말한다.

“내 목숨을 구해 준, 나를 정말 사랑해 준 팬이잖아요. 일 년에 한 번만이라도 가서 보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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