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32화 (32/190)
  • 제32화

    “으아아아악-!”

    한선호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지른다.

    “꺼져! 꺼지라고!”

    “처녀귀신은 당신 괴롭히지 못할 테니까 안심해.”

    인호의 말에 한선호가 몸을 바들바들 떤다. 주위를 살피던 한선호가 구석에 몸을 움츠리고 있는 손각시를 보고 다시 한번 거세게 몸을 떨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라. 말 안 들으면 알지?”

    인호가 병실 바깥으로 고개를 까딱거리자 손각시가 고개를 휙 돌린다.

    한선호가 놀란 눈으로 인호를 바라본다. 자신을 지독히도 괴롭히던 손각시가 인호의 말 한마디에 얌전해진 것이다.

    “한선호 씨.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명함을 건넨다.

    명함을 확인한 한선호가 인호의 얼굴을 다시 본다. 평소라면 이상한 명함을 당장이라도 구겨버렸을 테지만 자신이 겪은 일이 있기에 그러지 못했다.

    “한선호 씨에게 기회를 주려고 해요.”

    “기회?”

    “그래요, 기회. 한선호 씨. 지금까지 죄를 많이 지었어요. 그렇죠?”

    “…….”

    한선호가 대답하지 않는다.

    재벌가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지은 죄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개중에는 진상이 밝혀지는 순간 당장 구속될 만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머리 굴려봐야 소용없어요. 다시 말하지만 기회를 주는 거라니까요. 이 기회를 놓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말을 하며 손각시를 힐끔 바라본다.

    “평생 같이 살아야 해요.”

    한선호가 바들바들 떤다.

    “자-, 결정해요. 지은 죄를 자백하고 교도소에서 편안하게 살래요? 아니면 평생 쟤하고 알콩달콩하며 살래요?”

    “교도소 가겠습니다.”

    한선호가 바로 대답했다.

    “좋아요. 지금 밖에 중앙지검 검사님 와 계세요. 그러니까 대화 잘 나눠 봐요. 만약 약속 어기고 나중에 오리발 내밀면 어떻게 될지 알죠?”

    “네, 압니다.”

    인호가 웃으며 한선호의 어깨를 툭 치고는 몸을 일으킨다. 병실 입구로 걸어가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한다.

    “너도 나와라.”

    손각시가 인호의 시선을 외면한다.

    “하여튼 좋게 말을 하면 들어먹지를 않아요. 꼭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냐?”

    무서운 눈빛으로 인호를 쏘아본 손각시가 몸을 일으켜 뒤쫓는다.

    “들어가 보세요.”

    인호의 말에 정재훈이 고개를 끄덕인 후 유 형사와 함께 병실 안으로 들어간다.

    “뚱보야.”

    “알았어.”

    뚱보가 손각시를 보고는 고개를 까딱한다. 뚱보가 등을 돌리고 걸음을 옮기자 손각시가 주위를 살핀다.

    그때 뚱보의 음성이 들려온다.

    “도망칠 생각하지 마라. 네 몸에는 이미 저승사자의 인이 찍혔어. 어디로 도망쳐도 결국 잡혀.”

    손각시가 이를 바득 갈며 뚱보를 따라갔다.

    * * *

    - 유성 그룹의 한선호 씨가 스스로 서울지방검찰청에 출두했습니다. 한선호 씨는 얼마 전 음주 운전 중 단속에…….

    한선호가 중앙검찰청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 TV에 나오고 있었다.

    정재훈의 말에 의하면 병실 안에서 한선호는 자신이 저질렀던 죄를 하나도 빠짐없이 자백했다고 한다. 그중에는 정재훈과 검찰에서도 모르는 것들도 있었다고 한다.

    한선호는 검찰에서 자백을 번복하지 않을 것이다. 손각시가 달라붙어 있던 동안 느꼈던 공포를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봐요. 얼마나 아름다운 결말이에요?”

    부장이 환하게 웃는다.

    “나쁜 놈은 죗값을 받았고, 지속적으로 말썽을 부리던 손각시도 결국 가야 할 곳으로 갔잖아요. 정인호 사고처리 전담반의 첫 성과네요.”

    “거, 명칭 좀 바꾸자니까요.”

    “말하기도 좋고, 듣기도 좋은데요?”

    부장이 웃으며 상체를 앞으로 숙인다.

    “앞으로도 꼭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도록 해요. 알겠죠?”

    “노력은 하겠습니다.”

    “인호 씨 기준으로 인간의 법으로 단죄가 안 되는 악인들이 있는 것 알아요. 하지만 참아요. 조금 일찍 죽고, 늦게 죽고의 차이예요. 법의 심판을 받으면 결국 악행을 하지 못하잖아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부장이 몸을 일으킨다. 저승사자가 그녀의 뒤에 선다.

    여전히 앉아 있는 뚱보를 보며 인호가 의아한 듯 묻는다.

    “넌 안 가?”

    대답은 부장이 대신한다.

    “아참, 깜빡할 뻔했네요. 정인호 사고처리 전담반이 운영되는 동안 상주할 거예요. 서로 손발 잘 맞춰 봐요.”

    부장과 저승사자가 떠나간다.

    어디론가 사라졌던 사기꾼이 나타나 뚱보의 볼을 폭폭 찌른다.

    “어디서 감히 차사의 볼을-!”

    “크크, 내가 이럴 때 아니면 저승사자 볼을 언제 찔러 보겠냐. 크크. 볼은 여전히 탱글탱글하네.”

    “우씨. 하지 마!”

    인호는 투닥거리는 사기꾼과 뚱보를 보며 한심스럽다는 듯 고개를 흔든다.

    “민정아. 밥 시켜라.”

    “네, 소장님.”

    인호가 소파에 기대며 창밖에 고개를 내밀고 있는 영감에게 말한다.

    “할 일이 없으면 공원 가서 할머니 망령이라도 꼬셔봐요.”

    “일없다.”

    똑- 똑- 똑-

    “응? 밥이 벌써 왔어?”

    “아직 시키지도 않았는데요?”

    이민정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문으로 향한다. 뚱보의 몸이 흐릿하게 변한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들어온다. 그의 뒤로 모자를 푹 놀러 쓴 사람이 따라왔는데 체구를 보니 여자였다.

    “여기가 극락 흥신소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어떻게 오셨죠?”

    “애플 엔터테인먼트 장 실장님 소개로 왔습니다.”

    “아-, 장형태 실장님 말씀이죠?”

    “네.”

    국내 5대 기획사 중 한 곳인 애플 엔터테인먼트의 장형태 실장과는 그가 관리하는 랩퍼 장도리 때문에 인연을 맺게 되었다.

    무속인을 어머니로 둔 장도리는 어린 시절부터 귀문이 조금 열려 망령들을 간혹 보곤 했다.

    “JK엔터의 정호찬 실장이라고 합니다.”

    정호찬이 자신의 명함을 건넨다.

    “그리고 이쪽은…….”

    “안녕하세요. 유니에요.”

    인호가 눈을 부릅뜬다.

    모자를 벗으며 자신을 소개하는 여자, 유니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국내의 솔로 여가수 중 원탑이라 불리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극락 흥신소 소장 정인호라고 합니다.”

    “이름이 아주 재밌어요.”

    “제 이름이 재미있는 이름은 아닌데요.”

    “흥신소 이름이요.”

    “아-, 흥신소. 4대째 가업을 잇고 있지요.”

    “4대나요?”

    인호가 웃으며 뒤쪽을 힐끔 바라본다. 그곳에는 세 남자의 사진이 액자에 담겨 걸려있었다.

    “아-.”

    인호가 정호찬을 보며 묻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게…… 사생팬 때문에 왔습니다.”

    “사생팬이요? 그런 문제라면 제가 아니라 경찰서를 찾아가셔야 할 것 같은데요. 장 실장님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들으신 겁니까?”

    “아니요. 제대로 찾아온 것 맞습니다. 제 이야기 들어보시면…….”

    “아니, 오빠. 내가 말할게.”

    유니가 품속에서 무언갈 꺼내 탁자에 내려놓는다. 투명한 봉지 안에는 편지 봉투가 가득했다.

    “일단 보세요.”

    인호가 편지 하나를 꺼내 읽는다.

    - 사랑하는 유니에게.

    안녕, 유니야.

    나 상호야, 정상호. 너는 날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널 아주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상관없어. 시간은 많으니 기억, 아니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 거야.

    나는 판교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

    ……

    ……

    세상에서 유니를 가장 사랑하는 상호가.

    연예인들이라면 흔히 받는 팬레터였다.

    물론 내용이 조금 과하긴 하다. 마치 자신이 유니의 애인이라도 되는 양 글을 적어 놓지 않았는가.

    다음 편지를 들고 읽는다. 역시 전의 편지와 마찬가지인 내용이었다.

    인호는 차례로 편지를 읽었다.

    “사생팬치고는 얌전한 편인데요?”

    대부분의 편지가 자신의 일과를 일기 쓰듯 적고 유니와 함께 할 미래에 대해 적어 두었다.

    보통 사생팬들이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억지 주장을 늘어놓는 것에 비해 아주 얌전하다 할 수 있었다.

    “뒤쪽을 보세요.”

    인호가 편지를 한참 건너뛴다.

    “흐음-.”

    손에 든 편지에서 영력, 즉 영혼의 힘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 사랑하는 유니에게.

    시작은 같다.

    그런데…….

    이제 곧 네게 갈 거야.

    조금만 기다려.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이 사람 죽었습니까?”

    유니가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살고 있는 곳에 침입하려다 가더에게 들켜서 도망을 치다 그만 달려오는 차에 치였어요.”

    “이 편지는 그 사람이 죽은 이후에 온 거고요?”

    “어, 어떻게 아셨어요?”

    유니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뜬다.

    “절 왜 찾아오셨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아-, 그렇네요.”

    인호는 계속해서 편지를 살폈다.

    - 조금만 더 기다려.

    - 이제 곧 만날 수 있겠다.

    - 거의 다 왔어.

    - 오늘도 난 너를 봤어.

    - 이제 곧이야.

    편지가 이어질수록 영력이 강해지고 있다.

    “특이한 경우네요.”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정호찬이 물었다.

    “보통 사람이 죽어 망령이 되면 악행을 저질러야 기운이 강해집니다. 그런 경우를 우리들은 악령이라고 부르죠. 그런데 이 사람은 악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요.”

    “악령이 아니라는 뜻인가요?”

    “일단 느껴지는 기운만 봐서는요.”

    유니가 길게 한숨을 토해낸다.

    “초기의 편지를 보면 마치 유니 씨를 알고 있다는 듯 썼거든요. 혹시 이 사람 알아요?”

    “아니요.”

    유니가 고개를 흔든다.

    “절 아는 사람이면 더 이러면 안 되죠. 정말 무서워 죽겠어요.”

    “흐음-, 아무래도 집착 때문인 것 같아요.”

    “집착이요?”

    “네. 톱스타니까 많이 겪어 보셨을 테지요.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에 대한 집착이 강한 이들이 어떤지.”

    “잘 알죠.”

    “이 사람은 살아있을 때 유니 씨에 대한 집착이 죽은 후에도 남은 것 같아요.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집착이 점점 커지고 있는 거죠.”

    “악령이 아니라면 위험하지 않은 건가요?”

    인호가 고개를 흔든다.

    “오히려 이런 경우가 더 위험할 수 있어요.”

    “왜죠?”

    “어린아이의 경우를 예로 들죠. 어린아이들은 잠자리의 날개를 잡아떼면서 그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게 잠자리를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이 사람 역시 마찬가지예요. 자신의 집착이 나쁜 것이란 걸 모를 확률이 높아요. 이 사람에게 집착은 당연한 거예요. 만약 이 사람의 집착이 안 좋은 방향으로 바뀌게 되면…….”

    인호가 유니를 똑바로 바라본다.

    “아주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어요.”

    * * *

    극락 흥신소를 떠나 돌아가는 차 안.

    “사기꾼 같지?”

    운전하는 정호찬이 말했다.

    “왜?”

    “악령도 아니라면서 겁을 주잖아. 돈을 더 많이 받아 내려고 수작 부리는 걸 거야.”

    “아닌 거 같은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저런 사람들 어디 한두 번 상대하냐?”

    “그 사람이 한 번이라도 돈 이야기한 적 있어?”

    “…… 없네.”

    유니가 창밖에 시선을 둔다.

    “얼마 전에 갔던 무당은 굿을 해야 한다고 엄청 많은 돈을 요구했잖아. 굿을 하고도 아무것도 해결 못 했고.”

    “그래도 조금 이상하긴 해. 영혼을 본다는 것도 그렇고. 편지만 보고 이상한 말 하는 것도 그렇고.”

    “우리가 말하지 않았는데 그 사람 죽은 것 맞췄잖아.”

    “자기를 찾아왔으니 넘겨짚었을 수도 있잖아.”

    “아닌 것 같아. 이상하게 나는 그 아저씨한테 믿음이 가는데?”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런데 정말 스캐줄 안 나갈 거야?”

    “나가지 말라잖아. 일단 말 들어봐야지.”

    창밖을 바라보던 유니는 문득 두꺼운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 인호를 떠올리고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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