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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31화 (31/190)
  • 제31화

    거대한, 아니 거대하다 못해 뚱뚱한 몸을 검은 정장으로 감싼 채 안으로 들어선 것은 얼마 전 저승사자에게 끌려간 뚱보였다.

    “뚱보야!”

    부장이 오는 소리를 듣고 어디론가 도망쳤던 사기꾼이 벽을 뚫고 뚱보를 와락 끌어안는다.

    “어디서 망령 따위가 저승사자님에게 함부로 달려드느냐?”

    근엄하게 말을 하려 한 것 같지만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기도 어색한지 웃음을 터트린다.

    “아니. 뚱보가 왜 저승사자가 된 겁니까?”

    인호의 물음에 부장이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한다.

    “원래 망자 생활 오래 한 망령들이 저승사자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요?”

    “당연하죠. 망령이 많다는 뜻은 저승사자가 그만큼 자기 할 일을 못 했다는 뜻이잖아요. 저승사자 눈을 피해 오랫동안 이승을 떠돈 망령들이다 보니 망령들의 도주 패턴을 잘 알고 있거든요.”

    “아-!”

    듣고 보니 확실히 공감이 된다.

    “그런데 뚱보도 처리…… 아무튼 거기 속하는 겁니까?”

    “아무래도 그게 편하지 않겠어요?”

    “뭐 그렇기는 한데.”

    “일단 저 둘이 인호 씨를 도울 거예요. 그리고 인간들 중 두 명이 더 돕게 될 거예요.”

    “그게 누굽니까?”

    “곧 아시게 될 거예요. 흐음-, 전 잠시 저승사자들하고 할 이야기가 있어서 나갔다 올게요.”

    부장이 일어나자 저승사자와 뚱보가 그 뒤에 따라붙는다.

    그들이 나간 후 인호가 길게 한숨을 토해낸다. 또 사무실이 울음바다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었다.

    “우와-, 부장님 엄청 미인이세요.”

    “그러면 뭐하냐? 진상인데.”

    “진상이요?”

    “그런 게 있어. 너무 깊이 알려고 하지 마.”

    식어 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실 때였다.

    똑- 똑- 똑-

    이제 막 나간 부장과 일행이 노크를 할 리 없으니 다른 누군가 찾아왔다는 뜻이다.

    “하하, 소장님!”

    환하게 웃으며 들어서는 이는 유 형사였다.

    “야, 유 형사. 돈 안 되는 일 이제 사절이라고!”

    “그런 것 아니거든요.”

    말을 하며 유 형사가 옆으로 비켜선다. 그 뒤에 서 있는 남자를 본 인호가 고개를 갸웃한다.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야, 스타 검사님이시네요.”

    “스타 검사?”

    “네. 얼마 전에 자기 상관 옷 벗긴 검사님이시잖아요. 정재훈 검사님 맞으시죠?”

    “아-!”

    인호도 뉴스에서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민정의 말대로 자기 직속 상관이라 할 수 있는 차장 검사의 옷을 벗긴 것이 정재훈 검사였다.

    “안녕하세요. 정재훈이라고 합니다.”

    “네, 반갑네요. 정인호라고 합니다. 이리 앉으세요.”

    정재훈과 유 형사가 자리에 앉는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혹시 또 이상한 사건이 발생한 겁니까?”

    “아닙니다. 상부에서 정인호 씨를 도우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저를 도와요?”

    인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정재훈을 바라본다.

    “네.”

    “유 형사는?”

    “저도 마찬가집니다. 오늘부로 정재훈 검사님 수사관으로 발령 났습니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인호가 ‘아’하며 탄성을 토해낸다.

    - 인간들 중 두 명이 더 돕게 될 거예요.

    조금 전 부장이 말한 두 사람이 이들인 것 같다.

    “그런데 검사님이 이런 일 하셔도 됩니까?”

    “이런 일이 어떤 일인지 잘 모릅니다. 아무래도 지난번 일로 단단하게 찍힌 것 같습니다.”

    어느 조직이던 내부고발자에 관대한 곳은 없다. 더욱이 검찰과 같은 조직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리라.

    “누가 명령을 내린 겁니까?”

    “검찰 총장님이 직접 내린 명령입니다.”

    “오우야.”

    인호가 볼을 긁적인다.

    “저-, 만약 제가 검찰과 불편한 관계가 되면 어떻게 합니까?”

    아주 중요한 문제다.

    혹시 일을 하는 중 검찰 관계자가 엮여 있을 수도 있다. 정재훈은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정인호 씨 관련 사건에 한해 성역 없는 수사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성역 없는 수사요?”

    “네. 지시를 하신 총장님의 말씀을 빌리면 ‘내가 엮여 있으면 나도 탈탈 털어버려’라고 하시더군요.”

    “호오-.”

    인호가 놀랐다는 듯 정재훈을 바라본다.

    “하긴 그냥 줄도 아니고 황금 동아줄이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에요. 혼잣말한 거예요.”

    무려 옥황상제의 지시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인간들이 아무리 대단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옥황상제가 뒤에 버티고 있다면 못 할 것도 없었다.

    정재훈이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만들었다.

    “정인호 씨를 만나면 가장 먼저 한 가지 일을 해결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인호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바라보니 정재훈이 사진 한 장을 꺼낸다. 사진 속 인물은 인호가 잘 아는 인물이었다.

    “한선호.”

    “맞습니다. 한선호는 매번 이런저런 이유로 법의 그물을 빠져나갔습니다. 이번에는 정신질환 핑계를 대고 있죠.”

    정재훈이 인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한선호를 법정에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러면 저 역시 정인호 씨를 전력을 다해 돕겠습니다.”

    * * *

    “이야-! 인호 차 엄청 좋네.”

    조수석에 탄 뚱보가 탄성을 토해낸다.

    “좋지? 우리 덕분이지 뭐. 대은 그룹 회장님이 차 바꿔 주신 거야.”

    뒷자리에 사기꾼이 웃으며 말한다. 그는 뚱보가 온 후 줄곧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직속상관은 어디 갔냐?”

    “망자 인도하러 가셨지.”

    “저승사자는 할 만하고?”

    “아직 잘 몰라.”

    “아참, 계속 뚱보라고 부를 수 없으니 앞으로 이상민이라고 부른다.”

    “응.”

    저승사자들은 망자들과 다르다. 마음먹기에 따라 인간들의 눈에 보일 수 있다. 지금만 해도 뚱보, 아니 이상민은 영혼이 아닌 육체를 가지고 있다.

    “이제 정말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을 수 있겠네. 좋겠다.”

    “후우-, 저승사자 엄청 박봉이거든.”

    “헐-. 정말? 얼마나 받는데?”

    “말하면 안 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 백양 요양원

    차를 주차한 후 건물 내부로 들어간다.

    “안녕하세요. 한선호 환자 면회 왔는데요.”

    “한선호 환자요?”

    간호사가 놀란 눈으로 인호를 바라본다.

    “한선호 환자는 아무나 면회할 수 없는데요.”

    “아무나가 아닌 사람이 누군데요?”

    “가족 중에서도 환자 부모님들 밖에 면회가 안 돼요.”

    그때였다.

    “됩니다.”

    뒤에서 정재훈이 유 형사와 함께 다가온다. 정재훈은 검사 신분증을 내민다.

    “서울중앙지검 정재훈 검삽니다.”

    검사라는 말에 간호사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뜬다.

    “한선호 씨 몇 호실에 있죠?”

    “7층이요. 아-, 7층은 VIP 병동이라 병실이 두 개뿐이에요. 올라가셔서 안쪽 병실이 한선호 환자 병실이에요.”

    “알겠습니다.”

    몸을 돌린 정재훈이 인호에게 ‘가시죠’라고 하며 먼저 걸음을 뗐다.

    “이야, 검사 끗발 좋네.”

    * * *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일행이 복도를 따라 걷는다. 앞에서 걷던 정재훈이 걸음을 멈춘다. 복도에 있는 몇몇 사내들 때문이었다.

    딱 봐도 평범해 보이지 않는 사내 네 명이 병실 입구를 지키듯 서 있다.

    “일단 가시죠.”

    인호가 말하고는 정재훈을 지나쳐 앞으로 걸어간다. 첫 번째 병실을 지날 때 문에 난 창문을 통해 병실 안쪽을 살폈다.

    “하, 하하.”

    엄청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인호가 눈으로 확인한 것만 해도 망령의 수가 열이 넘었다.

    눈이 붉은 것을 보아하니 죄다 악령이 분명했다.

    “도대체 뭔 짓을 하고 다녔기에.”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남자들이 인호를 쏘아본다.

    “아-, 혼잣말 한 거예요. 볼일들 보세요.”

    남자들을 지나쳐 두 번째 병실 앞에 선다. 그곳 역시 두 명의 사내가 지키고 있었다. 한선호의 집안, 유성 그룹에 속한 경호실 직원들로 보였다.

    인호가 비켜서니 정재훈이 앞으로 나선다.

    “중앙지검 정재훈 검삽니다.”

    정재훈이 자신의 신분을 밝혀도 경호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선호 씨와 나눌 대화가 있어요. 그러니 비켜 주시죠.”

    경호원은 정재훈을 한번 힐끔 바라본 후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네. 중앙지검 소속 검사랍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전화 좀 받아 보시죠.”

    정재훈은 경호원이 건네는 휴대폰을 귀에 가져간다.

    “여보세요.”

    - 나 한유성이요.

    한유성은 유성 그룹의 회장이자 한선호의 아버지다.

    통화를 하는 정재훈이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인호가 앞으로 나서며 정재훈에게 손을 내밀었다.

    왜 그러냐는 듯 바라보는 정재훈에게 인호가 말했다.

    “제가 통화해 볼게요.”

    정재훈이 휴대폰을 건넨다.

    “한유성 회장님 안녕하세요. 정인호라고 합니다.”

    - 당신 누구야? 당장 그 검사 바꿔.

    “어차피 대화도 안 통하잖아요. 그러니까 대화가 통하는 저하고 통화하시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지금 아드님 겪고 있는 일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있습니다.”

    - 무슨 말이지?

    인호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작은 소리로 말한다.

    “처, 녀, 귀, 신.”

    - 너 뭐 하는 새끼야!

    “교양 있으신 회장님이 왜 그런 상스러운 말을 하십니까. 제가 누구인지가 중요합니까? 중요한 건 제가 아드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인호가 경호원들을 보며 씨익 웃는다.

    “면회 허락해 주시죠.”

    - 경호원 바꿔.

    인호가 휴대폰을 건네주니 잠시 통화한 경호원들이 옆으로 비켜선다.

    정재훈이 병실 안으로 들어가려 문고리로 손을 가져간다.

    “검사님.”

    “네.”

    “일단 저 먼저요.”

    “무슨…….”

    유 형사가 정재훈의 팔을 잡는다.

    “소장님께서 저러시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일단 소장님께 맡겨 보시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유 형사가 정재훈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인호가 병실 안으로 들어간다.

    탁-

    문을 안에서 걸어 잠갔다.

    “하아-, 가관이다.”

    구속복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 버둥거리는 남자,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탄 채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악령.

    바로 뺑소니로 김혜미를 죽인 한선호와 인호가 붙여 둔 인사동 처녀귀신, 즉 손각시였다.

    “야-.”

    손각시가 인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당장이라도 피가 뚝뚝 흘러내릴 것 같은 새빨간 눈동자다.

    “우리 오랜만이다. 그치?”

    손각시가 눈을 가늘게 뜬다.

    “내 덕에 오랜만에 생생한 생기 잔뜩 먹었지? 그러니 이제 그만 할까?”

    “안 돼! 내 꺼야!”

    “에이, 우리 말은 정확하게 하자. 니 꺼인건 맞지만 내 덕인 것도 맞잖아. 참고로 저 문밖에 저승사자 와 있다.”

    손각시가 흠칫 몸을 떨며 고개를 돌린다. 문에 난 창을 통해 뚱보와 눈이 마주친다. 손각시가 한선호의 몸에서 떨어져 구석으로 몸을 숨긴다.

    “그래. 거기서 잠시만 기다려. 난 이쪽하고 볼일이 있어서 말이야.”

    한선호 앞으로 걸어가 그 옆에 앉는다.

    “한선호 씨.”

    “으으으…….”

    인호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는 한선호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간 손각시에게 얼마나 심하게 정신적 피해를 입었을지 안 봐도 뻔했다.

    한선호의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계속되는 정신 피해에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듯했다.

    인호의 눈에 파란빛이 어른거린다. 인호는 한선호의 어깨를 툭 친다.

    “한선호 씨.”

    인호의 손을 통해 파란빛이 한선호의 몸으로 흘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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