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30화 (30/190)
  • 제30화

    “당신 누구야!”

    인호가 손을 들어 올린다.

    그의 검지 손가락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인호는 검지를 움직여 완성되지 않아 한쪽이 열려있는 봉령진을 닫아버렸다.

    “저승과 이승, 낮과 밤의 중간에 서 있는 존재.”

    “무슨 헛소리야!”

    “선업을 쌓은 망령을 위해서는 간이고 쓸개고 다 내놓지만 악업을 쌓은 악령에게는 저승의 판관보다 무서운 존재.”

    인호가 박소영의 정면에 선다.

    “무슨 짓을 한 거지?”

    자신 주변을 둥글게 감싸고 있는 빛무리를 보며 박소영이 악에 받쳐 소리친다.

    “공간을 나누어 두었다. 이 안에 있는 망자는 절대 밖으로 나가지 못해.”

    “컥-!”

    박소영이 유소영의 목을 틀어쥐고 들어 올린다. 붉게 번들거리는 눈으로 유소영을 보며 요사하게 웃는다.

    “상관없어. 어차피 이년만 죽이면 돼.”

    “아닐걸? 아직 한 명 남았잖아.”

    박소영의 머리칼이 미친 듯 휘날린다.

    “나한테 왜 이러지? 난 정당하게 복수하는 것뿐이야.”

    “이 세상에 정당한 복수는 없어. 네가 억울한 것 알아.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은 조금 전 알게 됐지만. 네 상심이 얼마나 클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꺄악-!”

    인호의 눈이 파랗게 빛나자 박소영이 뾰족한 비명과 함께 유소영의 목을 잡고 있던 손을 놓친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하는 짓이 옳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이년 때문에 죽었어. 우리 엄마도! 그러니 이년도 죽어야 해!”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다. 유소영과 다른 이들의 괴롭힘이 네 죽음에 연관이 있을 뿐 직접적인 원인은 되지 못해. 결국 죽음을 택한 것은 너니까.”

    “내가 이것들한테 어떤 짓을 당했는지 알아!”

    인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네 주장대로라면 왕따를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모든 이들이 너처럼 목숨을 끊어야 해. 알지 모르지만 네가 죽은 10년 전보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이들은 더 잔인하게 변했어. 괴롭힘을 당하는 이들 중 몇몇은 너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하지만 다른 많은 이들은 그렇지 않아. 어떻게든 살아가지. 이미 한으로 응어리진 네 가슴에 또 하나의 못을 박는 것 같지만 이 말은 꼭 해야겠어.”

    인호가 손을 들어 박소영을 가리킨다.

    “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저기 있는 유소영 씨 때문도, 죽은 전미영 씨 때문도 아니야. 바로 너 때문이지. 하나뿐인 사랑하는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네 어머니는 세상을 살아갈 희망을 잃어버리셨을 거야.”

    “닥쳐!”

    박소영에게서 시작된 기운의 파동이 인호를 밀어내려 했지만, 인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옷 속에 감춰진 검은 문양들이 은은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넌 어머니의 죽음까지도 네 원한으로 삼았지.”

    “아니야! 우리 엄마도 저것들이 죽인 거야!”

    “그건 네 주장일 뿐이야. 만약 네가 자살을 하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그런 선택을 하셨을까? 오히려 응원해 주시지 않았을까? 사랑하는 딸 힘내라고, 고통의 순간은 짧다고, 찬란하게 빛날 미래를 생각하라고.”

    - 우리 딸, 너무 예쁜 딸. 지금은 힘들지만 다 괜찮아질 거야. 이제 곧 우리 딸은 봄날 꽃처럼 활짝 꽃을 피울 거야.

    어머니가 자주 해 주었던 말을 떠올린 박소영의 눈에서 피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이것들은 죗값을 치러야 해.”

    “복수를 위해 네가 선량한 사람들에게 한 짓은 어떻게 할 건데? 지금 사용하는 힘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악업을 쌓았지?”

    박소영이 입술을 질겅인다. 입에서도 피가 줄줄 흘러내려 얼굴이 점점 흉악하게 변해간다.

    그때 한쪽 구석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유소영이 벌떡 일어나 인호와 박소영 사이에 선다.

    “소영아. 미안해. 모두 내 잘못이야. 맞아. 나는 죽어도 싸. 내가 널 죽게 한 거야. 너한테도 미안하고 네 어머니께도 미안해. 그러니까 나 하나로 만족하면 안 될까? 미라라도 살게 두면 안 될까?”

    유소영이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한다.

    “자-, 내 목숨을 가져가.”

    박소영이 편하게 목을 잡을 수 있도록 고개를 살짝 든다. 그녀의 눈에서는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

    박소영이 손을 뻗는다. 그녀의 손이 유소영의 목을 움켜쥐고 끌어당겼다.

    “큭-.”

    유소영이 짧은 신음을 토해낸다.

    “왜…….”

    박소영은 줄줄 흘러내리는 피눈물이 유소영의 얼굴에 떨어진다. 박소영의 피눈물이 유소영의 뺨을 타고 흐른다.

    “왜 그때 그러지 않았어?”

    “미…… 안-.”

    “그랬으면 나도, 우리 엄마도 행복하게 살 수 있었잖아!”

    박소영이 유소영의 목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유소영이 바들바들 몸을 떤다. 이대로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유소영은 죽게 될 것이다.

    인호가 나서려 할 때였다.

    턱-

    박소영이 목을 쥔 손을 놓자 유소영이 지면에 쓰러진다.

    “아저씨.”

    고개를 숙이고 있는 박소영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얼굴 전체를 붉게 물들이던 피눈물이 사라졌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붉었지만 흐르는 눈물은 투명했다.

    “아저씨.”

    “말해.”

    박소영이 애써 웃음 지으며 묻는다.

    “나는 지옥에 가겠지만…… 우리 엄마는 좋은 곳에 가셨을까요?”

    인호가 먹먹해지는 감정을 추스르며 애써 침착한 음성으로 대답한다.

    “그래. 그러셨을 거야.”

    “히히. 다행이다.”

    참 선해 보이는 미소다.

    인호는 이럴 때마다 혼란을 느낀다.

    과연 선하게 웃고 있는 박소영이 악惡일까? 아니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유소영이 악일까?

    * * *

    “맛있는 커피가 도착했습니다.”

    유 형사가 자판기 커피를 내민다.

    “고마워.”

    “하하, 제가 고맙죠. 매번 이렇게 소장님께 도움을 받네요. 마음 같아서는 외부 고문으로 위촉해서 뭐라도 조금 챙겨드리고 싶은데 죄송합니다.”

    “유 형사가 무슨 끗발이 있다고.”

    인호가 피식 웃는다.

    “전미영 씨 사건은 영원히 미제 사건으로 남는 건가?”

    “아마도 급성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발표가 날 것 같습니다.”

    “급성 심장마비라. 틀린 말도 아니지.”

    자기 때문에 죽은 박소영이 귀신이 되어 앞에 턱 나타났으니 놀라서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을 것이다.

    “죽음에 관련된 외부 흔적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심장마비라는 발표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거고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말입니다.”

    “응?”

    “그 유소영, 아니 베로니카 수녀님은 괜찮으세요?”

    “갑자기…… 아-, 유소영 씨가 좀, 아니 많이 예쁘기는 하지. 왜? 관심 있어?”

    “아, 하하-. 절대 아닙니다. 그때 보니까 많이 아파 보이셔서 걱정이 돼서 물어본 겁니다.”

    인호가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에는 비행기 한 대가 날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저 비행기에 타고 있을지도.”

    “네? 비행기요?”

    “그래. 봉사 활동을 간다고 하더라. 평생 참회하며 살겠다고.”

    종이컵을 구겨 쓰레기통에 넣고는 인호가 일어선다.

    “이만 간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손을 흔드는 유 형사를 보며 인호가 인상을 찌푸린다.

    “찾아오기만 해봐. 매번 돈도 안 되는 일만 가져오고 말이야. 내가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 * *

    사무실에 들어 온 사기꾼이 인호 맡은 편에 앉는다.

    “요즘 저승사자들 일 열심히 하나 봐.”

    인호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바라본다.

    “망령이 안 보여. 보통 이 정도 돌아다녔으면 갈 곳 잃고 방황하는 망령들 몇은 봤어야 하는데 정말 하나도 없어.”

    “영감님은?”

    “공원에서 할매들하고 놀던데?”

    이민정이 커피 두 잔을 타 소파로 온다.

    “한가하니까 심심하지?”

    “아닌데요? 엄청 재밌는데요. 화가, 무당, 이번에는 원혼까지. 나중에 이런 이야기 쭉 모아서 글이라도 써 볼까 봐요.”

    “야, 임마. 천기누설이다.”

    “천기누설은 무슨-. 그리고 소장님은 그런 말 할 자격 없죠. 천기누설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소장님일걸요.”

    인호가 피식 웃으며 커피를 마신다.

    “커피 타는 솜씨가 점점 늘고 있어. 바람직해.”

    커피를 음미하고 있을 때였다.

    또각- 또각- 또각-

    선명하게 들려오는 하이힐 소리에 인호가 떨리는 음성으로 사기꾼에게 묻는다.

    “요즘 나 혹시 잘못한 것 있냐?”

    “나야 모르지. 그 화가 죽은 건 뚱보가 끌려갔잖아.”

    “그렇지? 잘못한 것 없는데.”

    똑- 똑- 똑-

    누군가 노크한다.

    침을 꿀꺽 삼킨 인호가 그 상태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 이민정이 고개를 갸웃하고서 출입문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손이 문고리를 잡으려 할 때 인호가 ‘민정아’라며 외친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문이 열리고 말았다.

    “하, 하하. 부장님. 오셨어요?”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다.

    문 앞에는 부장이 서 있었다. 그녀의 뒤에 저승사자가 불편한 표정으로 서 있다.

    “인호 씨. 잘 지냈죠?”

    “네, 그렇죠.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는지…… 제가 요즘은 착실하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만? 그리고 엊그제 생자에게 복수하려는 원령 사건도 해결했고요.”

    부장이 웃으며 인호의 맞은편에 앉는다.

    “예쁘게 자랐네요.”

    부장이 인호의 옆에 앉은 이민정을 보며 말한다. 이민정이 의아한 듯 묻는다.

    “저요?”

    “그래요. 민정 씨 제법 유명했어요. 인호 씨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했잖아요.”

    “아-, 그런데 누구세요?”

    이민정이 부장의 뒤에 서 있는 저승사자를 힐끔 바라본다. 부장이 웃으며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킨다.

    “위에 계신 분 밑에서 일하고 있어요?”

    “위에 계신 분이요? 아-, 건물주님? 월세 받으러 오셨어요? 아닌데. 이 사무실 우리 소장님 명의인데.”

    인호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고는 이민정의 귀에 ‘저승사자’라고 속삭인다.

    딸꾹-

    이민정이 갑자기 딸꾹질을 시작한다.

    “왜 사람을 놀래키고 그래요?”

    “놀래킨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겁니다. 제가 홍길동도 아니고 왜 저승사자를 저승사자라고 못 부릅니까? 저기 있는 아름다운 분이 부장님이셔. 아주 높은 분이셔.”

    “에이, 안 높아요. 제가 높은 사자였다면 사고뭉치를 떠맡았을 리가 없잖아요.”

    “설마 그 사고뭉치가 접니까?”

    부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전에 이야기했죠? 인호 씨를 전담하는 테스크포스가 조직됐다고요. 일명 정인호 사고처리 전담반. 어때요? 근사하죠?”

    “사고처리 전담반이요?”

    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다. 순간 그와 눈이 마주친 저승사자가 눈을 부라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입 모양으로는 ‘뭘 봐, 이 씨방새야’였다.

    “일단 전담반은 제가 직접 관리해요. 하지만 제가 그렇게 한가하진 않아서 계속 달라붙어 있지는 못해요. 그래서 전담해줄 저승사자를 데려왔죠.”

    “설마-.”

    “네, 그 설마가 맞아요. 내 생각에 혼자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위에서 저승사자 한 명을 더 붙이라고 하네요.”

    “둘이나요?”

    “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 저승사자예요. 인턴 기간 동안 업무도 배울 겸해서 인호씨 사고처리 전담반에 배속될 거예요.”

    “그 이름을 조금 바꾸면 안 될까요? 듣는 사람이 오해를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좋기만 한데요? 신입 저승사자 소개해 줄게요.”

    부장이 손을 들자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저승사자가 손가락을 튕긴다.

    탁- 탁- 탁-

    구두굽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 정장을 입고 안으로 들어오는 이를 본 인호가 버럭 소리친다.

    “야! 니가 왜 거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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