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29화 (29/190)

제29화

마리아 수녀원.

“하아-, 반전일세. 이름만 들어도 모두 꼬리를 말던 일진의 우두머리가 이런 곳에 있을 줄이야.”

인호가 문 너머로 고풍스러운 건물을 바라본다.

- 유소영 씨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수녀가 되었네요. 세례명은 베로니카, 경기도 양주의 마리아 수녀원이라는 곳에 있네요.

유 형사가 아니었다면 유소영을 찾는데 제법 애먹었을 것이다.

“이런다고 자기 죄가 사라지는 게 아닌데.”

인호가 중얼거리며 수녀원 안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는 인호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수녀가 인호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전화 주신 분이죠?”

“네. 정인호라고 합니다.”

“스테파노 신부님에게 연락받았어요.”

이곳에 오기 전 박주완 신부에게 부탁했다. 경찰 조사로 가는 것보다 박주완을 통해 오는 것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렌시오라고 합니다.”

마리아 수녀원의 원장 오렌시오에게 인호가 명함을 건넨다.

“베로니카를 만나고 싶으시다고요?”

“네.”

수녀 원장이 정원을 가로지르며 말한다.

“베로니카는 상처가 많은 아이에요.”

“상처-.”

인호가 작게 중얼거린다.

베로니카, 유소영이 가진 상처는 자신의 상처가 아닌 자신이 남에게 준 상처이리라.

“베로니카와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에 대한 참회를 많이 했죠.”

“원장님. 업業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래에 일어나는 일의 원인이 되는 선하거나 악한 행동.

“악업은 자신을, 그리고 누군가의 미래를 바꿉니다. 유소영 씨, 아니 베로니카 수녀님이 쌓은 업으로 한 생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베로니카 수녀님 본인은 수녀가 되었지요.”

그녀가 쌓은 악업으로 인해 자신과 또 다른 한 사람의 미래가 바뀌었다.

“천주교와 기독교는 참회하고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저 위에 계신 분은 그렇지 않거든요. 이후에 쌓은 선행이 이전에 쌓은 악행의 무게를 덜어주기는 하겠지만 악업 자체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얼핏 들으면 천주교리에 어긋난 이단적의 발언이라 할 수 있지만 수녀 원장은 인호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박주완에게 인호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베로니카 수녀님이 쌓은 악행이 낳은 결과가 또다시 미래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 사람은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또 한 사람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베로니카가 어떻게 해야 하죠?”

인호가 수녀 원장을 보며 말한다.

“결자해지結者解之.”

매듭은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

* * *

인호는 조수석에 앉아 눈을 감은 채 묵주를 돌리고 있는 여자를 바라본다.

베로니카 수녀, 유소영이다.

“양미라 씨와는 통화했나요?”

“아니요.”

“왜요?”

“저 하나로 끝내면 되니까요.”

“정확히 말하면 유소영 씨 한 명으로 끝나는 건 아니죠. 이미 전미영 씨가 죽었으니까요.”

“미라라도 잘 살면 좋겠어요. 소영이도 가장 미운 사람은 저일 거예요.”

- 가장 잘못한 건 소영이에요.

문도 열지 않은 채 외치던 양미라가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 일진의 리더가 유소영이었으니 박소영을 괴롭히라고 지시한 것도 유소영일 확률이 높았다.

“지금 일을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유소영이 눈을 뜨고 인호를 바라본다. 인호는 핸들을 잡고 정면을 바라보며 말한다.

“이미 한 사람이 죽었어요. 아니, 박소영 씨도 죽었으니 두 사람이 죽었네요. 살생은 아주 큰 죄입니다. 직접 죽이던, 죽음으로 내몰던 아주 큰 죄죠. 그렇게 쌓인 악업의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소영 씨 하나로 끝내면 된다고요? 누구 마음대로요? 과연 박소영 씨도 같은 마음일까요?”

유소영은 대답하지 못했다.

“한 가지만 분명히 알아 두세요. 제가 유소영 씨를 돕는 것은 산 사람들의 세계에 죽은 이가 간섭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일 뿐이지. 절대 유소영 씨 입장을 이해해서 돕는 게 아닙니다.”

“하여튼 싸늘한 놈이라니까.”

뒷자리에 앉은 사기꾼이 중얼거린다.

“인호 말이 맞아. 복수를 하겠다고 산 사람에게 해코지하는 악령도 나쁘지만 그녀를 악령으로 만든 사람도 나빠.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이다.”

영감이 룸미러에 비친 유소영을 바라본다.

“세상이 점점 험악해진다. 어린아이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어른의 범죄보다 더 무서워.”

“누가 아니래요. 촉법소년인지 뭔지 믿고 설치는 싸가지 않는 애들 엄청 많아요. 뉴스 못 봤어요? 어린 녀석이 경찰한테 그러잖아요. 당신이 경찰이면 다야? 나 열세 살인데? 나한테 아무 것도 못하잖아. 아니, 그게 길 지나가는 할머니 밀쳐서 차에 치이게 한 녀석이 할 말이에요?”

“쯧쯧.”

영감이 혀를 찼다.

차가 신호에 걸리자 인호가 유소영에게 묻는다.

“나는 이런 일을 처리하는 전문가입니다. 당연히 죽은 이들보다 산 사람의 편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묻겠습니다. 어떻게 해 드릴까요?”

* * *

“쟤 지금 뭐 하냐?”

“저도 잘…….”

오 반장의 물음에 유 형사가 어색하게 웃었다. 오반장은 얼마 전 사람이 죽은 곳에 쪼그려 앉아 뭔가를 그리고 있는 인호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저 녀석 때문에 의경 애들이 무슨 고생이냐고.”

지금 골목의 양쪽 입구에는 사람들이 들어서지 못하게 의경들이 통제하고 있었다.

“반장님. 소장님이 쓸 데 없는 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지금까지 도움도 많이 받았고.”

“그러니 이렇게 지켜만 보는 거야. 안 그랬으면 당장 길바닥에 패대기 쳤지.”

“반장님이요?”

“왜? 못할 것 같냐?”

“소장님 싸움 엄청 잘 하세요.”

유 형사의 말에 오 반장이 ‘씨발’하며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저 여자는 또 뭐야? 옷 보니 수녀 같은데. 자기 혼자 힘드니까 종교의 힘에 의지하는 건가?”

“아닙니다. 저 수녀님도 이번 사건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뭐? 그걸 왜 지금 얘기해?”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반장님이 ‘아, 알았다고’라고 대답하셨죠.”

“끄응-. 갑자기 수녀 이야기 꺼내니까 그런 것 아니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데?”

유 형사가 이번 사건의 전말을 설명해 주었다.

모든 설명을 들은 오 반장이 인호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려 하자 유 형사가 그를 붙잡았다.

“야! 안 놔? 니 말대로라면 저 수녀도 죽을 수 있다는 뜻이잖아.”

“소장님 계시잖아요. 설마 죽게 두시겠어요?”

“그걸 어떻게 알아? 경찰의 임무가 뭐야? 국민의 안전을 지켜 주는 거야. 저 수녀는 국민 아니야? 당장 놔라.”

“반장님. 아 쫌. 이번만 그냥 지켜보시죠. 이러지 말고 저기 가서 커피나 한잔하시죠. 제가 커피 쏩니다.”

* * *

곧게 뻗은 검지를 소매를 걷은 왼팔로 가져간다. 드러난 왼팔은 기이한 모양의 검은 문양으로 가득했다. 인호가 검지로 문양 중 하나를 푹 찌른다.

놀랍게도 손가락은 살가죽을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쑥 뚫고 들어간다.

“크흑-.”

꽉 깨문 이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온다.

인호의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잠시 후 빼낸 검지는 검게 물들어 있었다. 눈을 감은 채 뭔가를 중얼거린 인호가 눈을 뜬다.

그의 두 눈에 푸른 빛이 반짝인다.

검지를 지면으로 향하게 한 후 기이한 도형을 그린다. 검게 물든 손가락이 본래의 색을 찾는다.

인호는 같은 행위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영감과 사기꾼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인호를 바라본다.

“인호가 웬만해서는 아픈 티 잘 안 내는데……. 진짜 아픈가 보네요.”

“죽은 인호 아빠의 말로는 생가죽을 강제로 벗겨내는 고통이라고 하더라.”

사기꾼은 그 고통이 상상됐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아-, 하아-.”

인호가 벽에 등을 기대며 거친 숨을 토해낸다. 의자에 앉아 인호를 바라보던 유소영이 생수병을 건넨다.

“고마워요.”

“뭘 하신 거예요?”

인호가 자신이 그린 기이한 도형을 바라본다. 유소영을 중심으로 둥글게 그린 도형은 한 귀퉁이만 뚫려있다.

“봉령진封靈陳이라는 겁니다. 이름 그대로 영혼을 봉인하는 결계예요. 아직 완성된 결계는 아니고. 저기 열린 곳으로 박소영 씨가 들어올 겁니다. 그러면 전 결계를 완성할 겁니다. 그러면 박소영 씨는 이 결계 밖으로 나갈 수 없어요.”

인호가 검지를 물어뜯는다. 흐르는 피를 입에 머금고 바닥에 뱉어낸다. 그러자 검게 그려진 기이한 도형, 봉령진이 흐릿하게 빛난 후 사라진다.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는 소영 씨의 결정에 달렸습니다.”

유소영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뭘 하면 되죠?”

인호가 의자를 힐끔 바라본다.

“기다리면 됩니다.”

벽에 등을 기댄 인호가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망령들이 좋아하는 음기가 강해지는 시간. 밤이 될 때까지.”

* * *

주위가 어둠으로 물든 시간.

유소영은 의자에 앉은 채 묵주를 돌리며 기도하고 있었다.

묵주를 돌리는 손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주변 온도가 급격히 낮아진 탓이다.

천천히 눈을 뜬 유소영이 흠칫 몸을 떨었다.

“안녕, 소영아. 우리 오랜만이지?”

새빨간 두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소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잘 아는 얼굴이었다. 아니,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소영아.”

“그래. 나 소영이야. 너하고 이름이 같아서 괴롭힘당했던 소영이.”

악령 박소영의 목에는 빨간 상처가 있다. 목을 매고 죽을 당시에 생긴 상처로 보였다.

“미영이 소식 듣고 온 거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소영아.”

“미안하다고? 왜? 너희들은 죄책감 같은 것 느끼지 못하잖아. 너희들한테 우리 같은 애들은 그냥 벌레잖아. 그런데 뭐가 미안해?”

“아니야.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용서를 바라진 않을게. 네가 죽은 후 나는…….”

“아하!”

박소영의 눈에 어린 붉은 기운이 더 강렬해진다.

“이제 보니 수녀가 됐구나. 내가 죽은 게 네 책임 같았어? 죄책감 때문에 수녀가 된 거야?”

박소영의 얼굴에 검은 기운이 거미줄처럼 뻗어나간다.

“수녀가 되면 지은 죄가 사라져? 응? 수녀가 되면 너 때문에 죽은 애들의 원한이 풀려?”

파파파팍- 펑- 펑-

주변의 가로등들이 터져나간다.

“그리고 죽은 게 나 혼자뿐인 것 같아?”

박소영의 눈에서 피눈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그녀는 앉아 있는 유소영을 향해 손을 뻗으며 싸늘하게 말한다.

“내가 죽고 결국 우리 엄마도 자살했어. 알아! 그러니 너도 죽어. 억울해하지 마. 너 죽이고 양미라 그년도 죽일 거니까. 캬하하하하! 다 죽여 줄게!”

“컥-!”

박소영에게 목을 잡힌 유소영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때였다.

“거기까지.”

어둠 속에서 인호가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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