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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28화 (28/190)
  • 제28화

    인호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사무실에 출근했다.

    이상하게 눈이 일찍 떠졌는데 할 일이 마땅치 않아 출근한 것이다. 커피포트로 물을 끓여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을 때였다.

    똑- 똑-

    인호가 의아한 듯 출입구를 바라본다.

    이민정이 왔다면 노크를 할 리 없었다.

    “누구세요?”

    “소장님. 유 형삽니다.”

    “유 형사? 문 열렸어. 들어와.”

    문이 열리고 강남 경찰서 강력반 소속 유 형사가 들어온다. 그의 뒤에는 50대 남자가 서 있다.

    “안녕하십니까. 강남구청 안전관리과장 박창수라고 합니다.”

    “아, 네.”

    인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 형사를 바라본다. 무슨 일로 왔냐고 묻는 것이다.

    “이틀 전에 사건이 접수됐어요. 그런데 사건이 평범하지 않아서요.”

    평범하지 않은 사건이고 인호를 찾아왔다면 답은 하나다.

    “내 쪽 일이다?”

    “아직 확신은 없어요.”

    인호는 두 사람에게 소파에 앉으라 말하고 커피를 타 주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구청 안전관리과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박창수였다.

    “저-, 소장님. 혹시 귀신 골목이라고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귀신 골목이요?”

    “저기 증권사 있는 건물 뒤쪽 골목인데…….”

    “아-, 거기요.”

    인호도 잘 아는 곳이다.

    그리고 오늘 두 사람이 왜 찾아왔는지도 알 수 있었다.

    “잘 알죠. 그런데 거기 그냥 두셔도 돼요.”

    “네? 그냥 둬도 된다고요?”

    “네. 거기 망령이 있기는 해요. 그런데 남에게 해코지하거나 하는 나쁜 망령이 아니에요.”

    인호의 책상 위 중국산 도자기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사기꾼이 중얼거린다.

    “야경꾼 양반 요즘도 사람 놀래키고 그러나? 전에 네가 한소리하고 나서는 안 그러잖아.”

    사기꾼의 말이 두 사람에게 들릴 리 없었다.

    “거기 있는 망령이 아주 오래전에 활동했던 야경꾼이었어요. 무슨 이유에서인지 죽은 후 저승으로 가지 않고 근처를 배회하고 있죠. 거기서 들리는 탁, 탁 소리는 누가 따라오는 소리가 아니라 야경꾼 망령이 나무를 부딪쳐 나는 소리예요.”

    “아-, 그렇습니까? 사실 제 전임 과장님께서도 그 골목 때문에 골치를 많이 썩으셨습니다. 민원이 들어와 가로등 수 늘리고, CCTV를 설치해도 썩 나아지는 것이 없었거든요. 몇 개월 전에 가로등을 네 개나 더 설치했습니다.”

    잠시 말을 끊은 박창수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 야경꾼이라는 망령이 정말 사람을 해코지하지 않습니까?”

    “당연하죠. 내가 잘 아는데 그럴 망령은 아니에요.”

    순박한 망령이다.

    십 년도 더 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인근에 불이 난 것을 야경꾼 망령이 요란을 떨어서 일찍 발견해 화재를 조기에 진압한 적도 있었다.

    유 형사가 진지한 어조로 말한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응?”

    인호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유 형사를 바라본다.

    “전미영이라는 여성이 그 골목을 지나다 죽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외상이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신기하게 눈을 크게 뜬 채로 죽었는데 제가 보기에는 겁에 질린 눈동자 같았습니다.”

    사기꾼이 인호의 옆으로 와 앉는다.

    “사람이 죽어? 야경꾼이 사람을 죽였다고?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못 죽일 양반인데?”

    인호가 무언갈 생각하는 듯 하더니 말한다.

    “현장에 직접 가 봐야 알 것 같은데.”

    * * *

    폴리스 라인이 쳐진 현장에는 경찰들이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십여 명의 기자들이 눈을 번득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인호와 유 형사가 다가서자 폴리스 라인 주변을 경계하던 경찰이 길을 열어준다.

    “반장님. 자주 뵙네요.”

    오 반장이 인호를 보고는 인상을 구긴다.

    “표정 좀 푸세요. 도와 드리려고 온 거 아닙니까. 제가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매번 왜 그러세요.”

    오 반장은 못마땅하다는 듯 고개를 휙 돌리고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다.

    “우리 힘으로 범인을 잡지 못해서 그러시는 거예요. 사명감이 투철하신 분이거든요.”

    “잘 알지.”

    오반장은 인호가 아는 이 시대의 몇 없는 진짜 경찰이었다.

    “저기야?”

    “네, 소장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주변을 조사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사람 모양의 테이핑이 있다.

    “가서 찾아봐.”

    “네?”

    “아니야.”

    영감과 사기꾼에게 야경꾼 망령을 찾아보라고 한 것이다. 두 망령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인호가 테이핑에 가까이 다가간다.

    “뭔가 느껴지세요.”

    “아주 나쁜 기운이 느껴지네. 유 형사 말대로 사람이 벌인 일이 아니야.”

    악령의 기운이 진하게 느껴진다. 이틀이나 지났다는데 이 정도로 기운이 진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매우 강력한 악령일 것이다.

    인호는 더 살필 것도 없다는 듯 다시 몸을 돌렸다.

    “벌써 가세요?”

    “말했잖아. 사람이 벌인 일이 아니라고. 증거? 그런 거 못 찾을 거야. 유 형사는 일단 경찰의 방식으로 수사해봐. 나는 내 방식대로 알아볼 테니까.”

    * * *

    인호는 사건 현장에서 멀지 않은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

    “목적이 없어. 목적이.”

    망령들이 일을 벌일 때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 색귀는 여자를 탐하고, 아귀는 음식을 탐한다. 창귀, 물귀신은 자기가 죽은 곳에서 다른 이들이 죽게 한다.

    그 골목길은 아주 오래전, 인호가 태어나기 전부터 야경꾼이 활동하던 곳이었다.

    야경꾼에도 당연히 목적이 있었다. 불이 나지 않게 경고하는 것이 야경꾼이 하는 일이다.

    야경꾼이 있는 골목에 다른 망령이, 그것도 사악한 악령이 출몰했다. 그리고 사람을 해쳤다.

    “왜 죽였을까? 그 여자에게 원한이 있나?”

    원한이 있다면 일은 의외로 간단하게 풀릴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인호가 의심하는 이유는 사건 현장에 남은 악령의 기운 때문이다.

    악한 기운이 너무 강하다. 그 말은 여자를 죽이기 전에도 이미 수많은 악행을 쌓은 악령이라는 뜻이다.

    인호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사기꾼과 영감이 유리를 뚫고 안으로 들어온다. 그들 뒤에는 잔뜩 겁을 먹은 듯 몸을 움츠리고 있는 망령이 있었다.

    “야경꾼 아저씨.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하, 하하. 그래. 오랜만이네. 인호도 잘 지냈지?”

    “제가 어떻게 사는지 뻔히 아시면서 뭘 그러세요.”

    인호가 씨익 웃는다.

    “우리 할 이야기 있죠?”

    먼저 입을 뗀 것은 사기꾼이었다.

    “그 골목에 그 악령이 나타난 것은 얼마 안 됐대.”

    “인호 네가 사람들 놀래키지 말라고 해서 딱따기도 안 쳤거든. 그런데 그 망할 악귀 녀석이 나타나서 사람들 조심하라고 딱따기 친 거야.”

    야경꾼이 억울하다는 듯 말한다.

    “악령이 노린 사람이 이틀 전 죽은 그 여자가 처음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전에 한 명을 더 노렸는데 그 여자는 도망쳤대.”

    사기꾼이 야경꾼을 보며 씨익 웃는다.

    “이 양반이 그 여자 돕겠다고 도망치는 여자를 따라갔다네. 그래서 그 여자 집이 어딘지 안데.”

    * * *

    딩동-

    이민정은 초인종을 누른 후 주변을 둘러본다.

    지은 지 오래된 낡은 빌라였다. 벽에 낙서도 많고 퀘퀘한 냄새도 났다.

    -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양미라 씨 댁이죠. 혹시 본인이신가요?”

    그러자 안쪽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기다려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이민정이 말한다.

    “이주 전에 안 좋은 일을 겪으셨다고요.”

    - 경찰이에요? 이미 다 진술 했는데요.

    “경찰은 아…….”

    뒤에 서 있던 인호가 앞으로 나선다.

    “양미라 씨. 강남서 정인호 형사라고 합니다. 추가 진술받아야 할 게 있어요.”

    - 나는 할 말 없어요.

    인호가 인상을 찌푸린다.

    “또 다른 피해자가 나왔어요. 양미라 씨는 운 좋게 살았지만 이번 피해자는 양미라 씨처럼 운이 좋지 못했어요.”

    또다시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어요. 그러니 문 좀 열어봐요.”

    - 누가 죽었죠? 미영이? 아니면 소영이? 누구예요?

    인호가 묘한 눈빛으로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본다. 인호가 대답하지 않자 안에서 양미라의 음성이 들려온다.

    - 가장 잘못한 건 소영이예요. 그러니까 나는 이제 그만 괴롭혀요!

    쿵, 쿵 소리가 들리고 쾅 하며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방에 들어가 버린 것이리라.

    인호가 몸을 돌린다.

    “가자.”

    “설득해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인호가 웃으며 말한다.

    “이미 다 들었는데 무슨 이야기를 또 들어?”

    인호가 계단을 내려가며 휴대폰을 꺼낸다.

    “어, 유 형사. 나야. 뭐 좀 알아봐 줘야 할 것 같은데.”

    * * *

    강남 경찰서 외부 흡연장.

    “소장님!”

    유 형사가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그의 손에는 몇 장의 종이가 들려있었다.

    “내가 일하는데 방해하는 것 아니지?”

    “설마요.”

    “그거야?”

    “네.”

    유 형사가 가져온 종이를 인호에게 건네주고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옆으로 와 앉는다.

    “양미라 씨하고 죽은 전미영 씨하고 같은 고등학교 동창이더라고요.”

    “소영이라는 여자는?”

    “두 사람의 반에 소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두 명 있어요. 유소영, 박소영. 소장님이 찾는 친구는 유소영일 거예요.”

    단정적으로 말하는 유 형사를 인호가 의아한 듯 바라본다. 유 형사가 커피를 마시며 씁쓸하게 말한다.

    “박소영이라는 친구는 죽었거든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떻게 죽었는데?”

    유 형사가 다 마신 커피잔을 구기며 담배를 꺼내 문다.

    “이게 조금 이상한데 박소영이라는 친구가 죽은 곳이 바로 그 골목이에요. 예전에 그 골목에 전봇대가 있었는데 거기서 목을 매었더라고요.”

    유 형사가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낸다.

    “제가 혹시나 해서 당시에 같은 반이었던 사람들에게 전화해 봤거든요. 양미라, 전미영, 유소영 이 세 친구가 학교에서 일진으로 유명했다고 하네요. 박소영이라는 친구는…….”

    “괴롭힘당하던 친구고?”

    유 형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예상하는 그걸까요?”

    일단 정황만 본다면 유 형사가 예상하는 것이 맞으리라.

    “근데 조금 이상한 게 있어요. 그렇게 원한이 깊은데 왜 10년이나 지나서 복수를 할까요?”

    “당연한 거야.”

    “네?”

    인호가 설명해 준다.

    “사람이 원한을 품고 죽어. 저승사자의 눈을 피해 이승에 남지. 복수를 해야 하니까. 그런데 복수가 하고 싶다고 바로 복수를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사람들이 티비나 영화를 보고 막 죽자마자 영혼이 돼서 복수하고 그러는 줄 아는데 그거 큰 착각이다.”

    “그러면요?”

    인호가 손에 든 종이 한 장을 살짝 흔든다.

    “망령이 종이 한 장 움직이는데도 다 힘이 필요해. 이제 막 죽은 망령들은 흉내도 못내. 이 정도 하려면 적어도 몇 년은 망령으로 지내야 해. 물론 악령이 힘을 발휘하는 것이 조금 빠르긴 해. 악업을 쌓는 만큼 힘이 강해지거든.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힘, 내가 그 골목에서 느꼈던 강렬한 기운을 쌓으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해.”

    “그 말은 박소영이라는 친구가 죽어서 10년 동안 힘을 키운 다음 복수를 하는 거라고요?”

    “나야 모르지.”

    인호가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유소영이라는 여자에 대해 알아봐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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