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27화 (27/190)
  • 제27화

    “거기, 친구.”

    땡초가 설화 선녀의 옆자리에 앉은 현민을 부른다.

    “네?”

    “어른들 대화 좀 나누게 좀 나가 있지 그래?”

    “저-, 누구신지.”

    “쓰읍-. 그냥 좀 나가라면 나가라.”

    “네. 알겠습니다.”

    땡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현민이 도망치듯 밖으로 나갔다.

    땡초는 입구에서 가까운 소파에 앉았고, 인호는 안쪽으로 들어가 설화 선녀 가까이에 앉았다.

    인호가 현민이 따라 둔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우고 말했다.

    “신을 모시는 분이 이런 곳에도 오시네요.”

    “무당도 사람이거든요. 그보다 무슨 일이시죠?”

    인호가 웃으며 명함 한 장을 꺼내 설화 선녀에게 앞으로 밀었다.

    극락 흥신소 소장 정인호

    명함을 확인한 설화 선녀가 눈을 가늘게 뜬다.

    “대은 그룹 기획조정실 소속 아니었나요?”

    “거기 소속이 맞기도 하고, 흥신소 소장이기도 하고 그래요. 한 잔 드세요.”

    인호가 설화 선녀의 잔을 채워주며 대답했다.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일을 하셨던데요. 인맥을 통해 대은 그룹 기획조정실에 나라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도 하시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아보시고 말이죠.”

    - 오늘부터 기획조정실에 소문 하나만 내주시죠.

    인호는 설화 선녀를 만나기 전에 대은 그룹 비서실장을 만났다.

    - 기획조정실 소속 정인호 과장이 실장과 사이가 나쁘다. 그런데 정인호 과장은 회장님이 아주 아낀다. 그리고 돈도 아주 많다.

    인호가 잔을 채워 마신 후 사과를 입에 넣는다.

    “그리고 선물도 잘 받았어요.”

    그러면서 정장 상의 속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다.

    “덕분에 오랜만에 아버지, 아니 아버지 닮은 잡귀도 보고 좋던데요. 그 잡귀가 내가 아버지 무덤 자리를 잘못 써서 회사에서 승진을 못 하는 거라고 하던데. 그런데 조사를 하실 거면 제대로 좀 하시지. 우리 아버지 화장해서 강에 뼛가루 뿌렸어요.”

    술잔을 든 설화 선녀의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인호야. 나 정말 궁금한 거 있는데. 정말 설화 선…… 아니, 저 여자가 사기꾼이면 우리 가게 단속 나오는 건 어떻게 알았냐?”

    인호가 피식 웃는다.

    - 알아보니 강남 일대에 아주 유명한 무속인이더군요. 아주 유명한 무당의 신딸이고 돈 많고 권력 가진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고 합니다.

    이철호의 친구 조태형이 한 말이었다.

    “단골 중에 정치인, 공무원, 재벌가 사람들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주위에 있는데 형네 가게 단속 내보내는 게 일이겠어요?”

    “이런 지미럴-!”

    땡초가 당장이라도 달려들듯 하다가 인호가 손을 들자 도로 자리에 앉았다. 분노가 사라지지 않는지 어깨가 들썩이고 있다.

    그때였다.

    쾅-!

    “어떤 새끼들이 남의 업장에서 행패야!”

    건장한 덩치의 사내들이 우르르 들이닥쳤다. 선두에는 얼굴이 넓적한 남자가 서 있다. 그 남자를 본 땡초가 손을 흔든다.

    “여어-, 넙치 오랜만이다.”

    땡초를 본 남자, 넙치가 허리를 반으로 접는다.

    “땡초 형님. 오랜만에 뵙습니다요. 잘 지내십니까.”

    “그래. 요즘 여기 니가 관리하냐?”

    “네, 형님.”

    “미안한데. 내가 저 여자한테 볼 일이 좀 있거든. 이해 좀 해줘라.”

    “네, 형님. 좋은 시간 보내시지 말입니다.”

    넙치와 건달들이 밖으로 나가자 설화 선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다.

    그 모습을 본 땡초가 빙긋 웃으며 인호에게 말한다.

    “하던 거 마저 해라.”

    인호가 술을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잇는다.

    “찾아오는 사람들 중 돈 많고 권력 가진 사람들의 뒷조사를 했겠죠. 그리고 저한테 만년필 보낸 것처럼 선물을 보냈을 겁니다.”

    인호가 만년필 중간 부분을 돌린다. 반으로 분리가 된 만년필 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긴 머리카락이었다.

    “그렇게 보낸 선물 속에 이런 걸 숨겨 둔 거죠. 잡귀는 자신의 원념이 깃든 물건이 있는 곳에 언제든 찾아갈 수 있으니까. 그때부터 잡귀의 연기가 시작됩니다. 여보. 나한테 왜 그래? 나 너무 추워. 너무 배고파. 묫자리가 잘못됐데. 아들아, 아버지를 위해…….”

    “그만해!”

    설화 선녀가 빽 하고 소리친다.

    “원하는 게 뭐야? 돈이야? 얼마면 돼?”

    인호가 피식 웃는다.

    “돈이 필요했다면 이미 많은 돈을 벌었을 거예요. 대놓고 사기 치는 당신도 강남에 빌딩 가지고 있는데 나라고 못 할까?”

    “그럼 뭔데? 사기죄로 고소라도 하게? 그런데 어쩌지? 니들도 아는 것처럼 내 손님들 모두 대단한 분들인데. 내가 그 사람들 약점을 한두 가지 알고 있는지 알아? 내가 입만 벙긋해도 너희 둘은 당장 매장당해. 아니,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게 될걸.”

    “아이쿠, 무서워라. 선녀님 인맥 대단한 것 잘 알죠.”

    설화 선녀의 말대로 그녀가 단골들의 힘을 이용한다면 인호 한 사람 어떻게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저도 준비했죠. 선녀님 못지않게, 아니 더 대단한 인맥 가지신 분을 모셔왔어요.”

    “흥! 누굴 불러? 그래 불러봐. 어디서 개수작이야!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당장 후회하게 해 줄게.”

    설화 선녀가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그때 한 사람이 룸 안으로 들어오더니 설화 선녀를 보기 무섭게 호통을 친다.

    “망할 년! 못된 버릇은 아직 고치지 못했구나! 네가 어째서 쫓겨난 것인지 잊었더란 말이냐!”

    어디론가 전화를 걸려던 설화 선녀가 얼음이 된 듯 꼼짝도 하지 못했다. 벌벌 떨리는 입술을 겨우 떼 낸다.

    “어, 어머니.”

    “닥쳐라! 요망한 것! 감히 그 더러운 입으로 나를 그렇게 불러!”

    하얀 베옷을 곱게 입은 여자였다.

    환갑을 훨씬 넘은 나이임에도 50대 초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 여인을 ‘만신’이라 부른다.

    지리산 만신 이혜옥.

    지리산 능운정사의 주인이며 한국 무당들의 대모와 같은 존재가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내 분명히 널 쫓아낼 때 말했다. 그 더러운 입에 내 이름 담지 말라고. 그런데 감히 내 이름을 팔아!”

    “어, 어……. 오해세요. 저는, 저는…….”

    “다 알고 왔으니 거짓부렁 늘어놓을 생각하지 마. 신을 모셔야 할 몸으로 잡귀나 부리는 천한 것. 가진 재주가 고작 그 정도이니 내 이름 팔아 사기나 치고 살았겠지.”

    이혜옥이 성큼성큼 걸어온다. 훌쩍 뛰어올라 테이블 위에 올라서더니 설화 선녀에게 다가가 머리채를 틀어쥔다.

    “나로 인해 시작된 잘못을 내가 바로 잡을 것이야.”

    그때, 인호의 시선이 설화 선녀의 뒤쪽을 향했다.

    “어딜 가려고?”

    몸에 붉은 기운이 출렁이는 악령 하나가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인호를 바라본다. 설화 선녀의 사기행각에 도움을 준 그 악령이다.

    “아니지. 아버지에게 막말하면 안 되지. 아버지 아직도 묫자리가 불편하세요?”

    인호가 씨익 웃는다.

    “너는 따로 가야 할 곳이 있잖아.”

    어느새 인호의 뒤에는 인상을 와락 구긴 저승사자가 서 있었다.

    * * *

    “그 여자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왜? 설마 죽이기라도 할까 봐?”

    “무슨 말씀을 그리 살벌하게 하세요. 그냥 궁금해서 여쭤보는 거예요.”

    이혜옥이 차를 홀짝인 후 말한다.

    “남들 속여 가며 먹고 사는 아이이긴 하지만 이쪽 길을 열어 준 사람이 나다. 시작이 나에게서 비롯되었으니 끝도 내가 책임져야겠지. 앞으로 다른 사람들 등치는 일은 하지 못할 것이야.”

    한국 땅에서 만신 이혜옥의 눈에 벗어나 무속인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녀와 이해관계가 없는 무속인이라도 해도 그녀의 영향력마저 무시하긴 힘들었다.

    한마디로 설화 선녀의 무속인 인생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한평생 부러울 것 없이 살겠네요.”

    강남에 큰 빌딩을 소유하고 있으니 평생 놀고먹어도 될 것이다.

    이혜옥이 의미 모를 웃음을 짓고는 사무실 안을 둘러보며 말한다.

    “구질구질한 것은 아비나 자식이나 똑같구나.”

    “하하.”

    “남부럽지 않게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음에도 어째서 이렇게 사는 것이냐?”

    “떵떵거리며 살아서 뭐 합니까? 그리고 배에 기름 끼면 게을러져요. 제가 하는 일 아시잖아요. 편안함, 안전 따지면 일 못 해요.”

    “그러니까 왜 험한 가시밭길만 골라 다니냐는 말이야. 누가 알아주길 해? 남는 것이 있어?”

    “알아주는 사람도 있고 남는 것도 있습니다.”

    인호는 자신으로 인해 웃는 사람들을 떠올리자 괜히 웃음이 새어 나왔다.

    “미련한 녀석. 하는 짓이 지 애비하고 똑같아.”

    “아들이니까 당연하잖아요.”

    “세상 사람들이 다 너만 같으면 좋으련만. 설화 그년도 예전에는 참 착한 아이였어. 신내림을 잘못 받아 그렇게 된 게야.”

    “신내림을 잘못 받을 수도 있어요?”

    이혜옥이 과거를 회상하며 말한다.

    “신내림을 받기 위해 몸을 정갈하게 해야 할 시기에 삿된 것에게 물들어 버렸어. 나에게 내침을 당한 후 그것의 꼬임에 넘어가 이리된 것이지.”

    찻잔을 내려놓으며 이혜옥이 인호에게 묻는다.

    “그냥 모두 털어버리고 지리산으로 와 살 생각은 없는 게야?”

    “거기서 제가 할 일이 뭐가 있어요? 땅을 파먹고 살 팔자도 아니고요. 아시잖아요. 저 이 일 못 내려놔요.”

    “미련한 놈. 미련한 놈.”

    이혜옥이 혀를 쯧쯧 찬다.

    아마도 안타까운 마음 때문일 것이다.

    “계룡산에는 다녀가고 지리산에는 오지 않기에 전화나 하려고 했더니 이런 식으로 얼굴을 보게 되는구나.”

    “박박수께서 고새 고자질을 하셨어요?”

    “에끼, 이놈아. 그리 한가한 사람이더냐?”

    “그러면 어떻게 아셨어요?”

    “불어오는 바람이 알려줬다.”

    이혜옥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만 가련다. 따라 나올 필요 없다.”

    “네, 가시는 길 조심하시고요. 조만간 한 번 찾아뵐게요.”

    “말은 잘하지. 삼촌 보고 싶어 하는 애들 많으니 꼭 들러.”

    “네.”

    인호는 이혜옥이 사무실을 나간 후에도 그녀가 나간 문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 * *

    9시가 막 지나는 시간.

    지하철역에서 나온 전영미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빨리 집에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렇게 바쁜 걸음을 옮기던 전영미가 갑자기 멈춰 선다. 그녀의 고개는 오른쪽으로 돌아가 있다.

    골목이었다.

    저 골목으로 들어가야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 나왔다.

    하지만 이상하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 지난달부터 저 길을 이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소문일 뿐인데 내가 너무 민감한 건가?”

    저 골목으로 가면 누군가 뒤에서 따라온다는 소문.

    누군가 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데 막상 뒤를 보면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 소문을 접한 후부터 전영미도 골목을 이용하지 않고 있었다.

    “화장실 급한데.”

    지하철역을 나올 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아씨, 몰라.”

    전영미가 골목 안으로 들어선다.

    또각- 또각- 또각-

    자신의 하이힐이 지면을 때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자신의 발걸음 소리인데도 이상하게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그 소리 사이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발만 보고 걷던 전영미가 고개를 들어서 앞을 바라보았다.

    몇 개월 전만 해도 이 골목은 가로등의 수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최근 구청에 민원이 계속 들어갔는지 몇 개의 가로등이 더 설치되어 있었다.

    빛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또각- 또각- 또각-

    갑자기 드는 오싹한 느낌에 전영미가 발걸음을 서둘렀다.

    또각- - 또각- - 또각-

    전영미가 흠칫 몸을 떨며 걸음을 멈춘다.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잘못 들었겠지 생각하며 다시 걸음을 옮긴다.

    발걸음이 이전보다 빨라졌다.

    또각- 탁- 또각- 탁- 또각-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만큼 이질적인 소리.

    전영미가 이를 꽉 깨물고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그녀의 눈동자는 쉴 새 없이 떨리고 있었다.

    “휴우-.”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역시 그냥 소문일 뿐…… 꺄아아아악-!”

    다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전영미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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