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26화 (26/190)
  • 제26화

    “이야. 건물 죽이네요.”

    “놀라지 마라. 이 건물이 설화 선녀 꺼잖아.”

    “하, 하하.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는 거야?”

    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고는 땡초와 함께 건물로 들어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장 윗층을 누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이들 모두가 설화 선녀를 만나기 위해 온 사람들이리라.

    기다리는 사람들 중 몇몇은 텔레비전을 통해 낯이 익은 이들이었다.

    ‘저 사람은 국회의원 아니야?’

    내년이 선거이니 자신의 당락에 대해 궁금해 찾아온 듯하다.

    인호와 땡초는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2시에 예약되어 있습니다.”

    “아-, 최태훈 씨?”

    “네. 제가 최태훈입니다.”

    땡초가 히죽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는 인호와 함께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든다.

    “이번에 태화전자 주식이…….”

    “그 이야기 들었어? 탤런트 XX하고 화승 그룹 망나니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너도 이렇게 차려입으니까 진짜 대기업 다니는 사람 같다.”

    땡초가 인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같은 게 아니라 그게 맞는 겁니다. 전 오늘 대은 그룹 기획조정실 과장이에요.”

    “알지. 잘 알지.”

    인호는 평소의 두껍고 까만 정장이 아닌 깔끔한 회색 슈트를 입고 있었다.

    “정우는 만났고?”

    땡초가 소개해 준 흥신소 소장 유정우가 설화 선녀에 대해 조사를 해 주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조사를 하긴 했지만 인호가 원하는 내용은 없었다.

    “네. 만났죠. 다음에 만나면 소주 한 잔 산다고 전해주세요.”

    김혜미의 뺑소니 사건을 조사해 준 것이 유정우였다. 매번 도움을 받으니 언제고 보답을 해야 했다.

    “그런데 정말 설…… 아니, 아무튼 사짜야?”

    설화 선녀가 사기꾼이냐는 질문을 하며 땡초가 조심스레 주위를 살핀다.

    이곳을 찾은 이들 모두가 설화 선녀의 열렬한 추종자들이기에 말을 조심해야 했다.

    “지금부터 알아봐야죠.”

    “내가 봤을 때 네가 생각하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우리 가게 단속 나오는 것도 맞췄잖아.”

    “하아-, 이 형님 어디 가서 사기당하기 딱 좋겠네.”

    “어떤 시러배 잡놈이 감히 나한테 사길 치냐?”

    인호가 땡초만 들을 수 있게 작은 소리로 말한다.

    “앞으로 무당이 되었던 점쟁이가 되었던 미래의 일을 알려준다고 하는 사람의 말은 절대 믿지 마세요.”

    “응?”

    “미래의 일은 누구도 몰라요. 심지어 저 위에 계신 분도 미래의 일은 몰라요.”

    인호가 눈동자를 위로 하며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인간이 미래의 일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모두 신내림 받잖아. 그 신이 알려주는 것 아니야?”

    인호가 답답하다는 듯 땡초를 바라본다.

    “그런 재주 있었으면 점쟁이 노릇이나 하고 있겠어요? 미래 정보로 자기가 잘 먹고 잘 살지.”

    “그런 힘은 자기를 위해 쓸 수 없다고 하던데.”

    “다 개소리에요. 무속인들이 현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맞출 수 있어요. 그리고 다른 이에게 붙은 악령, 악귀들은 떼어 줄 수 있어요. 하지만 미래의 일은 맞추지 못해요. 신이 정해 놓은 운명조차 뒤틀리고 시시각각 변하는데 그 미래를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그러면 우리 가게 단속은 어떻게 맞췄어?”

    “그러니까 지금부터 알아본다고 했잖아요.”

    인호가 이야기를 끝내자 ‘최태훈 씨 들어가세요’라는 데스크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자.”

    땡초와 함께 복도 안쪽 끝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실내의 풍경은 인호에게 아주 익숙했다. 전형적인 무속인의 신당이다.

    30대 중반 정도의 여자가 푹신한 방석에 앉아서 땡초와 인호를 바라봤다.

    “이게 누구세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하하, 사업이 바빠서요.”

    “전에 오셨던 일은 잘 해결됐지요?”

    “네. 선녀님 덕분에 무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설화 선녀가 화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인호가 설화 선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름다운 얼굴이다. 웃음도 선해 보인다. 수수하게 화장을 했지만 굉장히 빛이 나는 얼굴이다.

    “함께 오신 분은?”

    “선녀님이 너무 용하시니까 제가 모시고 왔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가게 단골이신데 대은 그룹 기획조정실에 계신 분이세요. 정 과장님 인사드리세요.”

    인호가 살짝 고개 숙인다.

    “정인호라고 합니다.”

    “대은 그룹 기획조정실에 근무하신다고요?”

    “네.”

    “얼마 전에 그룹에 큰일이 있었지요?”

    대은 그룹의 사건은 뉴스에서도 한동안 계속해서 보도했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네, 그렇지요.”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하아-, 그게…….”

    인호가 말끝을 흐리니 땡초가 눈치를 살피다 말한다.

    “대은 그룹 기획조정실장님하고 정 과장님하고 조금 사이가 안 좋으시거든요. 정 과장님이 회장님 총애를 받고 있지만 아무래도 직속 상사다 보니 많이 껄끄러워 하세요. 이번 인사이동에 혹시 우려할만한 일이 있을까 궁금해서 오신 거예요.”

    “아-, 그렇군요.”

    설화 선녀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감고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린다.

    잠시 후 눈을 뜬 설화 선녀가 인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한다.

    “미래를 보는 일이라 지금 바로 답을 못 드려요. 제가 뫼시는 할머님께 치성도 드려야 하고 준비할 것이 많아요.”

    “당연히 그러시겠죠.”

    땡초가 인호 대신 대답한다.

    “돈도 제법 필요해요. 굿을 해야 하거든요. 일단 오늘은 제가 부적 한 장 드릴 테니 굿을 하기 전까지 지니고 계세요.”

    말을 하더니 곧 부적을 그릴 준비를 한다.

    노랗게 물들인 괴황지에 붉은 도료로 부적을 그리는데 경면주사였다. 인호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설화 선녀를 보며 씨익 웃는다.

    괴황지나 경면주사 모두 최고품이다. 이민정의 부적을 만들어 준 도사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등급으로 보였다.

    “호신부입니다. 지니고 계시는 것만으로 삿된 기운으로부터 몸을 보호해 줍니다. 굿은 다음 주 수요일에 하는 것으로 하지요.”

    설화 선녀는 굿의 비용을 직접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녀와 대화를 마치고 나가면 비용에 대해 설명해 주는 사람이 따로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다음 주 수요일에 뵙도록 하죠.”

    아니나 다를까 인호와 땡초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한 남자가 붙어서 굿에 필요한 비용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인호의 차 조수석에 탄 땡초가 혀를 내두른다.

    “무슨 굿 값이 3억이나 한다니?”

    “그러는 형도 부적값으로 1억 줬다면서요.”

    “그거야…… 그런데 정말 굿할 거야?”

    그 말에 인호가 의미 모를 웃음을 짓는다. 땡초가 답답한지 무언가 물으려 할 때 인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네. 딱 맞춰서 전화 주셨네요. 일단 만나 봤어요. 뭐 그렇죠. 네, 그때 뵐게요.”

    전화를 끊은 인호가 차를 출발시키며 말한다.

    “좀 진득하니 기다려 봐요. 영화 볼 때 내용 미리 다 알고 보면 재미가 있겠어요?”

    * * *

    회장실에 앉아 보고서를 확인하던 이철호는 노크와 함께 들어 온 비서실장을 보며 묻는다.

    “그런 부탁을 했다고?”

    “네, 회장님.”

    “이유는 모르고?”

    “네. 다만 회장님께서 하신 부탁과 연관이 있다고만 했습니다.”

    “내가 한 부탁이라. 필요하니 이런 부탁을 했겠지. 조치는 잘 취했고?”

    “네. 정인호 씨가 부탁한 것을 정확히 전달해 두었습니다.”

    “잘했군.”

    이철호가 앞에 놓인 차로 입을 적신다.

    “자네가 볼 때 그 친구 어떤 것 같아?”

    “정인호 씨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친구.”

    “만난 적이 몇 번 없어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조사한 것을 토대로 평가한다면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금자 씨에게 받은 돈 중 일부를 광혜원을 리모델링하는 데 사용했더군요. 그리고 남은 돈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쓴 돈이라고 해 봐야 주변 사람들을 돕는 용도가 전부입니다.”

    “돈 욕심이 없는 것 같기는 하더군.”

    이철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 친구가 부탁한 일 잘 처리하도록 해.”

    “네, 회장님.”

    * * *

    띠리릭-

    도어락이 열리고 인호가 안으로 들어섰다.

    “키야. 언제 봐도 정말 좋다. 앞으로 쭉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치?”

    따라 들어 온 사기꾼이 집 안을 둘러보며 말한다. 영감은 벌써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인호야. 여기 집값이 20억이 넘는데.”

    인호는 3일째 집이 아닌 이곳으로 퇴근을 했다.

    DE 펠리스.

    대은 그룹이 삼성동에 만든 주상복합 건물로 매매가격이 상상을 초월했다.

    “찾아봐.”

    인호가 말하자 사기꾼이 집안 곳곳을 둘러본다. 인호 역시 이곳저곳을 살핀다.

    “아무것도 없는데? 잘못 짚은 것 아니야?”

    “이때쯤이면 수작을 부릴 줄 알았는데 말이지. 수요일까지 3일 남았으니 기다려 보자고.”

    인호가 소파에 앉으려 할 때였다. 인터폰이 울린다. 경비실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 정인호 씨 되시죠? 경비실에 택배가 하나 와 있는데요.

    발신인이 누군지 물으려던 인호는 뭔가를 알아차렸다는 듯이 씨익 웃는다.

    “지금 내려갈게요.”

    인호가 고작 3일 이곳에서 지냈다. 그 말은 누군가 인호에게 이곳으로 택배를 보낼 리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택배가 왔다는 것은 인호가 기다리던 것이 도착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기꾼이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도 눈치를 챈 것이다.

    인호가 경비실로 내려가 작은 상자를 들고 돌아왔다.

    “뭐 들었냐?”

    “만년필이네?”

    유명한 브랜드의 고가 만년필이다.

    그런데 수취인에는 인호의 이름이 정확히 적혀 있는데 발신인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일단 선물이니 받아 두자고.”

    만년필을 챙긴 인호가 샤워를 한 후 잠을 잤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아주 오랜만에 그의 꿈속에 나타났다.

    * * *

    “하하, 누님. 너무 오랜만에 오신 거 아니에요?”

    한선미는 입구에서 팔짱을 끼며 살갑게 구는 남자를 가볍게 흘겨본다.

    “나 안 오면 젊은 애들하고 놀고 좋잖아.”

    “설마요. 제가 누님한테 일편단심이잖아요. 누님 오시길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데요. 들어가세요. 특실 준비해 뒀어요.”

    “오늘은 오래 못 있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오랜만에 오셨으면 오랫동안 있다 가셔야죠.”

    “내가 어디 노는 사람이니?”

    강남 논현동의 유명 호스트 바 이카루스.

    이카루스의 에이스인 현민은 단골손님인 한선미와 함께 특실로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오자마자 고급 대리석 테이블 위로 술과 안주가 세팅되었다.

    “누님. 한 잔 드세요.”

    한선미는 현민과 건배한 후 독한 위스키를 단숨에 비운다.

    “후우-, 좋네.”

    “그렇죠?”

    현민이 한선미의 입에 안주를 넣어준다.

    그렇게 두 사람이 위스키 한 병을 거의 다 비울 때 즈음이었다.

    룸의 문이 열렸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누구야!”

    현민이 쏘아붙이듯 외쳤다.

    열린 문으로 한 사람이 들어온다.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는 맨들맨들한 대머리의 남자였다.

    남자를 본 한선미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대머리 남자의 뒤로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따라 들어오며 웃으며 말한다.

    “설화 선녀님. 이런 곳에서 다 뵙네요?”

    인호가 한선미, 아니 설화 선녀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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