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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25화 (25/190)
  • 제25화

    인호는 커피를 마시며 조태형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마누라가 꿈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좋았죠. 일에 미쳐 살았던 제가 좋은 남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컸죠. 꿈속에서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사죄했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이러더군요.”

    - 미안한데 나한테 왜 그래요?

    “도대체 어째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매일 꿈에 나타나 똑같은 말을 하더군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내가 뭘 어떻게 했냐고.”

    - 추워요. 배도 고파요.

    “배가 고프고, 춥다고 말을 하더군요. 도대체 죽은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인들에게 물으니 묫자리를 잘못 쓰면 그럴 수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마누라의 묫자리는 굉장히 유명한 지관에게 의뢰해 찾은 명당입니다.”

    조태형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보여준다. 아내가 잠든 곳 주변을 찍은 사진이었다.

    인호는 풍수지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 비하면 많이 아는 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인호의 눈에 조태형이 보여준 아내의 묫자리는 그의 말대로 명당이었다.

    산이 바람을 막아주고 정면이 탁 트여있다. 해가 떠 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무덤에 해가 드는 곳으로 보였다.

    “춥고 배고프다고 말하던 마누라가 어느 날부턴가는 이런 말을 하더군요. 선녀님에게 가 보라고. 선녀님이 자기를 도와줄 수 있다고.”

    “선녀님이요?”

    “네. 그래서 물었죠. 선녀님이 누구냐.”

    - 설화 선녀님이에요. 그분이 절 도울 수 있어요.

    “설화 선녀요? 무속인입니까?”

    “네. 알아보니 강남 일대에 아주 유명한 무속인이더군요. 아주 유명한 무당의 신딸이고 돈 많고 권력 가진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고 합니다.”

    유명한 무당의 신딸이라는 말에 인호가 한 사람을 떠올렸다.

    ‘지리산 만신.’

    계룡산 박수와 더불어 한국의 무속인들의 대부, 대모 격인 존재였다.

    “그래서 만나 보셨습니까?”

    “네. 마누라가 매일 같이 꿈에 나타나는데 어쩌겠습니까?”

    “뭐라고 합니까?”

    “묫자리를 잘못 써서 그랬다고 합니다. 묫자리를 자기가 말하는 곳으로 옮기고 굿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주 많은 돈이 든다고 했겠군요.”

    조태형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장해야 하는 곳이 유명한 정치인, 재벌가에서 묫자리로 사용하는 곳이라서 비용이 많이 든다고……. 그리고 굿을 해야 하는데 굿 비용이 20억이라고 하네요.”

    “하, 하하.”

    굿 한 번 하는 데 드는 비용이 20억 원이라니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

    “일단 개인적으로 좀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조태형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한다.

    “조금 빨리 해주시면 안 될까요? 마누라가 매일 꿈에 나타나 보채는데 아주 죽겠습니다.”

    “다음에 뵙죠.”

    인호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문을 열고 나가려던 인호가 고개를 돌리며 조태형에게 물었다.

    “꿈속에 나타나는 분이 사모님인 건 확실합니까?”

    * * *

    꼴꼴꼴-

    호박색 액체가 잔을 채운다.

    “자-, 한잔하자.”

    땡초가 잔을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인호는 그와 건배한 후 술을 들이킨다.

    “크으-, 좋다. 동생들하고 술을 마시면 나를 너무 어려워해서 술맛이 안 나. 그러니까 자주 좀 와라.”

    “뭐 좋은 일하는 사람이라고 자주 찾아옵니까?”

    “나 요즘 정말 선량하게 산다니까? 술값으로 눈탱이 씌우지도 않아.”

    인호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땡초가 운영하는 클럽들은 하나같이 매출이 높았다.

    “오늘은 무슨 일로 왔냐?”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옵니까?”

    “응. 너 일 있어야만 오잖아.”

    인호가 웃으며 땡초의 잔에 술을 채워준다.

    “무슨 일인데 그래?”

    “사람 하나만 조사해 줄래요?”

    “사람을 조사해? 나 불법적인 일 안 한다니까. 그리고 그런 건 전에 소개해 준 동생한테 말하면 되잖아.”

    “내가 직접 아는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그래요.”

    “다 그렇게 인연 맺는 거지. 혹시 알아? 나중에 그 동생이 너한테 도움 받을 일 있을지. 누굴 조사해야 하는데?”

    “설화 선녀라고…….”

    탁-!

    “강남 설화 선녀?”

    “알아요?”

    땡초가 바로 반응을 보인다.

    “용하다고 소문났잖아. 나도 한 번 간 적 있거든. 그런데 장난 아니야.”

    - 다음 주 수요일에 가게 문 닫아.

    “딱 그다음 주 수요일에 일제 단속 나왔잖아. 부적값으로 1억 나가긴 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무사했지.”

    “부적값이 1억이나 해요?”

    “그 정도면 싸지. 단속 맞아서 털렸어봐. 1억이 뭐야? 몇 배는 더 깨졌을걸. 그런데 설화 선녀는 왜?”

    “그냥 일이 좀 있어요.”

    “흐음, 일이라. 내가 알면 안 되는 일?”

    인호가 잠시 생각하다 조태형의 일을 말해주었다.

    인호의 이야기를 다 들은 땡초가 볼을 긁적인다.

    “그런 일 흔하지 않아? 죽은 조상님이 꿈에 나타나 호통치면서 묫자리 옮기라고 하는 이야기는 많잖아.”

    “그렇죠. 많죠. 드라마에서도 많이 써먹는 소재이고. 그런데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어요.”

    “그게 뭔데?”

    인호가 술을 들이마신 후 참외를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사람이 죽으면 저승사자와 함께 저승으로 가요. 삼도천을 건너가게 되는데 그러면 이승으로는 절대 못 돌아와요. 간혹 저승으로 가지 못하는 영혼들이 있는데 그런 영혼들을 망령이라고 불러요. 망령들이 이승에 남는 이유가 미련이나 한 때문이에요. 그래서 대부분의 망령들이 악령이 되는 거예요. 형한테 붙어 있던 악령들도 그런 악령들이고요.”

    악령이라는 말을 들은 땡초가 몸을 부르르 떤다. 악령들 때문에 힘들었던 때가 떠오른 것이다.

    “자-, 이제 봅시다. 저승사자의 눈을 피해 망령이 되는 경우를 확률로 따지면 0.0001%도 되지 않아요. 조금 전 말한 그분이 저승사자의 눈을 피해 이승에 남을 확률이 그렇다는 거예요. 여기서 중요한 건 왜 남편 꿈에 나타나서 춥다느니, 배가 고프다느니 하는 말을 하냐는 거예요. 그것도 설화 선녀라는 사람을 딱 집어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말을 하면서.”

    “흐응, 그러니까 네 말은 그 일을 꾸민 것이 설화 선녀 본인이다?”

    “아직은 의심이죠. 실제로 그분 사모님이 꿈에 나타나 그랬을 수도 있고요.”

    땡초가 씨익 웃는다.

    “좋아. 알아봐 줄게. 대신 나도 부탁 하나 하자.”

    “나한테 부탁하지 말라니까요.”

    “이상한 부탁 아니야. 나중에 설화 선녀 만나러 갈 때 나도 같이 가자. 그게 부탁이야.”

    인호가 땡초를 바라보다 피식 웃는다.

    “왜 가고 싶은데요?”

    “평소에 너 일하는 거 꼭 한번 보고 싶었거든. 그 정도는 괜찮잖아.”

    * * *

    “왜 그렇게 청승 떨고 있냐?”

    사무실에 들어가니 사기꾼이 멍하니 앉아 있다.

    “그냥-, 조금 그러네.”

    “본래 그런 거다. 든 자리는 표가 안 나도 난 자리는 표가 나는 거야.”

    뚱보가 떠나간 후 사기꾼이 유난히 말수가 줄었다. 지금 앉아 있는 자리도 항상 뚱보가 앉던 자리였다.

    “청승 그만 떨고 나가서 영업이라도 뛰어. 일하다 보면 조금 괜찮아질 거야.”

    “위로는 해 주지 못할망정 일을 시켜?”

    사기꾼이 툴툴거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선다.

    “서울역에나 한번 가봐. 요즘 거기 안 가봤잖아.”

    서울역은 사기꾼이 즐겨 가는 장소다. 주변 망령들의 집합소와도 같은 곳으로 사기꾼은 그곳에서 망령들을 상대하는 것을 좋아했다.

    사기꾼이 알겠다는 듯 손을 흔들고는 벽을 뚫고 사라진다.

    “위로도 좀 해 주고 그래요. 뚱보하고 딱 붙어 다니던 녀석이라 상심이 클 거예요.”

    창밖에 고개를 내밀고 있던 영감이 인호의 맞은편에 앉는다.

    “나라고 뭐 다를까? 나도 심란하다. 뚱보 저승사자에게 끌려가는 데 남의 일 같지 않고. 아무튼 그래.”

    “에휴, 영감님도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와요. 참한 할머니 망령하고 데이트 좀 하고요.”

    “참한 할멈은 무슨-.”

    “민정이는 어디 갔어요?”

    “너 나가고 조금 뒤에 손님이 와서 같이 나가던데.”

    “손님이요?”

    인호가 의아한 듯 묻는다.

    “나도 처음 보는 사람이야. 아무튼 나는 그만 참한 할멈 찾으러 간다.”

    혼자 남은 인호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하하, 안녕하세요. 제가 너무 오랜만에 전화 드렸죠? 아이고, 그렇다고 대뜸 욕부터 하세요. 한 번 찾아봬야 하는데 좀처럼 시간이 안 나네요.”

    인호가 전화를 하고 있을 때 이민정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디 갔다 오냐? 누구 왔었다며?”

    “아-, 들으셨어요? 손님이 왔었어요.”

    “손님? 우리 사무실에?”

    “대은 그룹 이철호 회장님이 직원을 보내셨어요.”

    “왜?”

    돈을 준다는 것을 거절했더니 고가의 차와 대은 그룹 기획조정실 과장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그 덕에 기획조정실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데 앞으로 꼬박꼬박 월급을 받게 되었다.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봐서 없다고 말했어요.”

    “잘했네.”

    “그런데 자꾸 필요한 걸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회장님이 지시했다나 뭐라나.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필요한 게 없더라고요.”

    인호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뭐라도 보답하고 싶어 하는 이철호의 마음은 알지만, 끝도 없이 계속되는 호의가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인호의 입술이 씰룩거린다.

    “아니다. 회장님께 도움을 받을 일이 있겠네.”

    “네? 뭐라고 하셨어요?”

    “아니야.”

    인호가 빙긋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소장님은 어디 다녀오셨어요?”

    “땡초형 만나고 왔어.”

    그리고 보니 이번 의뢰도 이철호와 관련 있는 것이다.

    “운전면허 학원 등록했어?”

    “넵! 바로 했죠. 그런데 저 운전면허 따면 운전하게 해 주실 거예요?”

    “당연하지.”

    “아싸! 벤츠다!”

    인호가 혀를 차며 말한다.

    “내가 원래 타던 차 줄 테니까 운전에 익숙해질 때까지 타고 다녀.”

    “그 똥차요?”

    “또, 똥차? 내가 얼마나 관리를 잘한 줄 알아? 앞으로 10년은 끄떡없어.”

    “아무리 그래도 저한테 그 차는 좀 아니죠.”

    “네가 뭐?”

    이민정이 생긋 웃는다.

    “가녀려 보이지만 육감적이고, 또 지적인 이미지잖아요. 그 차는 저하고 안 어울려요.”

    “아-, 듣고 보니 그렇네. 너하고 딱 어울리는 차가 있어.”

    “어떤 차인데요? 람보르기니? 포르쉐?”

    인호가 마주 웃으며 말한다.

    “버스.”

    “이씨!”

    “커피 한잔하자.”

    “직접 타 드세요.”

    이민정는 토라진 듯 자기 자리로 가 앉는다.

    인호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커피를 타서 소파로 돌아왔다.

    “민정아.”

    “왜요?”

    “요즘 이상한 것들 달라붙고 그러지 않지?”

    “네. 괜찮아요. 갑자기 그건 왜 물어요?”

    “왜는? 걱정되니까 묻지. 이상한 조짐 보이면 바로 말해야 한다.”

    “네.”

    인호는 소파에 등을 기대며 휴대폰으로 뭔가를 검색한다.

    그러다 30대 중반의 여자 사진과 함께 떠 있는 ‘강남 설화 선녀’라는 제목의 기사를 클릭한다.

    천천히 기사를 읽으며 인호가 중얼거렸다.

    “도대체 정체가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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