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24화 (24/190)

제24화

- 경기도 양평 호수 인근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폭발이 일어난 곳은 유명한 화가 유모씨의 자택이었습니다. 경찰과 국과수가 조사를 진행 중입니다. 경찰의 중간 발표에 의하면 가스 폭발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유 씨는 집안에서 폭발에 휘말려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사체 주변에 술병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만취 상태에서 봉변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찰은 전했습니다.

“왔냐?”

뉴스를 보고 있을 때 뚱보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뚱보를 본 인호가 가벼운 한숨을 토해낸다.

뚱보의 몸이 흐릿하다. 인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인호가 한숨을 쉰 이유는 뚱보의 몸에 희미하지만 붉은빛이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저질러 버렸냐?”

뚱보는 말없이 소파에 앉는다.

“선업을 쌓는 것은 힘들지만 악업을 쌓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동안 내 곁에 머물렀으니 누구보다 잘 알잖아.”

“알아.”

“그런데도 그런 결정을 했다는 것은…… 후우-.”

다시 한숨을 토해낸다.

“네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아니다. 그만하자. 그나저나 올 때가 됐는데.”

그때였다.

“지금 내 얘기하는 거냐?”

“양반되기는 글렀네요.”

인상을 구긴 채 쏘아보는 저승사자에게 인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살짝 고개 숙인다.

저승사자는 인호가 아닌 뚱보를 바라보았다.

“망자 이상민.”

“네.”

“그간 저 망종 곁에 있어 가야 할 곳으로 가지 않고 있음에도 두고 보았다. 이번에 네가 한 짓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알고 있느냐?”

“죄송합니다.”

뚱보가 시무룩하게 대답한다.

“너로 인해 황유찬이 죽게 되며 다른 두 사람의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게 되었다. 모든 것은 네가 자초한 일인 것을.”

뚱보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인호야. 그동안 고마웠어. 그리고 영감님도, 사기꾼도 고마웠어.”

뚱보가 작별을 고한다.

“차사님.”

인호의 부름에 저승사자가 고개를 돌린다.

“뚱보가 잘못한 것 맞습니다. 하지만 이유 없이 악행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찌 보면 뚱보의 행동도 인과율에 어긋나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과율.

모든 일은 원인에서 발생한 결과이며, 원인이 없이는 아무것도 생기지 아니한다.

인호가 정확히 알지는 못 하지만 저승의 규율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바로 ‘인과율’이다.

누군가 사람을 죽였다. 그러면 그는 무조건 살인자들이 가야 하는 등활지옥에 가게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만약 그렇다면 자의와는 상관없이 전쟁에 참전한 이들은 모두 등활지옥에 가야 했다.

반대로 황유찬은 직접적으로 김민석을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등활지옥보다 더 참혹한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뚱보의 경우도 분명한 원인이 있었다. 황유찬이라는 악인의 악행이 그 원인이다.

뚱보의 몸에 어린 붉은 빛이 악령들처럼 강렬하지 않은 것이 그 이유이리라.

“다른 이도 아닌 네가 인과율을 따지는 것이냐?”

저승사자의 호통에 인호가 딴청을 피운다.

“망자 이상민이 받게 될 형벌은 이미 정해졌다. 상제께서 직접 결정하신 일이다.”

인호가 눈을 감는다.

“망자 이상민.”

“네.”

“이제 그만 가자.”

뚱보는 사무실에 있는 이들과 차례로 눈을 맞추더니 마지막으로 인호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그동안 고마웠어. 그리고 먹는 것밖에 모르던 날 내치지 않고 보듬어 줘서 고마워. 지옥에 가서도 절대 잊지 않을게. 만약 환생하게 된다면 그때 은혜 갚을게.”

“됐어, 임마.”

뚱보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본 후에야 저승사자를 따라 사라졌다.

“하아-.”

인호가 답답한 듯 한숨을 토해낸다. 이민정도, 망령들도 어깨가 축 늘어져 있다.

“민정아. 오늘은 일할 기분이 아니네. 먼저 들어갈 테니까 사무실 문단속 잘하고 들어가.”

“술 마실 거면 같이 마셔요. 저도 한잔하고 싶어요.”

인호가 고개를 흔든다.

“아니. 오늘은 혼자 한잔하고 싶어서.”

인호가 사무실 문을 열려 할 때였다.

똑- 똑- 똑-

* * *

대은 그룹 회장실.

두 번째 방문하는 것이라 그런지 조금은 익숙하다.

“일찍 연락 못 해 미안하네. 전에 사람을 보냈는데 아무도 없었다고 하더군.”

“하하, 괜찮습니다. 마무리는 잘하셨습니까?”

“소미 잘 보냈고. 금수만도 못한 그것들은 평생 바깥 공기 마시기 힘들 거야.”

재계 서열 5위 대은 그룹의 회장이 가진 권력은 막강하다.

그가 마음먹고 정치권과 검찰에 로비를 했을 테니 박미라와 박한경은 평생을 감옥에서 썩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바깥세상에서 이철호의 보복에 당하느니 감옥에서 썩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원하는 것이 있나? 돈을 달라면 돈을 줄 것이고, 권력을 달라면 권력을 주지. 당장 계열사 사장 명함이라도 파 줄 수 있네.”

“하하, 농담이 심하시네요. 회장님. 저한테 사장이라는 자리가 어울리기나 하겠습니까? 평생 직장 생활 한 번 해본 적 없는 놈입니다.”

“그러면 돈을 줄까? 얼마면 될까? 달라는 대로 주지. 자네도 알겠지만 가진 재산은 많은데 물려줄 사람이 없거든.”

이철호의 음성에 물기가 가득했다.

“금자 할머니가 많은 돈을 주셨어요. 할머니도 회장님과 비슷하시잖아요.”

“듣고 보니 그렇군. 금자 누님 재산이 상당할 텐데 정말 많은 돈을 받았군.”

“그 정도는 아니고요.”

인호는 광혜원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어딘가 후원한다는 말을 얼핏 듣기는 했는데 그곳이 광혜원이라는 곳이었군. 그곳의 책임자와 연결해주게. 쓸 곳도 없는 돈 좋은 일이라도 해야지. 그래도 뭔가를 주긴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군.”

이철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뭘 주던 거부할 생각 말게.”

“가진 것이 많으면 그만큼의 근심이 늘어나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제게 뭘 주실지 모르겠지만 광혜원 아이들에게 베풀어 주시죠.”

“거참. 남들은 더 갖지 못해 안달인데 말이지. 일단 알겠네.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하지. 이번에는 다른 문제인데. 소미의 장례식을 치를 때 오랜 친구가 왔었네. 그 친구가 요즘 이상한 일을 겪고 있다고 하더군.”

이철호가 인호의 눈치를 살핀다.

“자네에 관한 이야기를 함부로 다른 이에게 전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친구의 이야기가 조금 이상해서 말이야. 부탁인데 그 친구를 한 번 만나 줄 수 없겠나?”

“어떤 분이신데요?”

“어렸을 때 동네 친구야. 금자 누님도 잘 아는 친구지. 지금은 우리 회사의 1차 벤더 회사를 운영하고 있지.”

“알겠습니다. 시간 내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 * *

사기꾼이 주위를 빙빙 돌며 방정을 떤다.

“이야, 이 때깔 봐라. 죽인다, 죽여.”

극락 흥신소가 있는 건물 앞 도로에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 전에 우리 집에 왔을 때 타고 온 차가 완전 구닥다리라고 집사가 말을 하더군. 내 마음대로 고른 것이라 마음에 들지 모르겠군.

이철호가 보내준 차였다.

독일 B사의 최고급 세단이었다.

“이거 가격이 3억은 넘을걸? 크크, 대기업 회장님이라 그런지 손이 커도 너무 크네.”

“그러게. 커도 너무 커서 문제네. 부담돼서 타겠냐?”

“부담되기는. 어차피 탈 거면서. 이제 어디 다닐 맛 나겠다.”

이민정이 손에 검은 봉지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온다.

“넌 어디 갔다 오냐?”

“슈퍼요.”

“사무실에 커피 떨어졌어?”

“아니요. 짜잔-, 막걸리 사 왔지요.”

봉지에서 막걸리를 꺼낸 이민정이 마개를 벗겨 바퀴에 뿌리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정식으로 고사를 지내고 싶은데 소장님 그런 것 싫어하시니 약식으로 하죠.”

“거참. 니 차도 아닌데 왜 니가 설쳐?”

“소장님 차면 나도 자주 탈 텐데 사고 나면 안 되잖아요.”

이민정이 장난스레 윙크한다.

“그런데 차가 정말 좋아요. 실내는 더 좋겠죠?”

삑- 삑-

인호가 문을 열어주자 이민정이 냉큼 조수석에 탄다.

“기왕이면 운전석에 타지 왜 조수석에 타?”

“저 운전면허 없어서 거기 탈 일 없어요.”

“그 나이 먹도록 운전면허도 안 따고 뭐 했냐?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내일 당장 학원 등록 해.”

“먹고 죽으려고 해도 돈 없거든요.”

“사원 복지 차원에서 지원해 줄 테니까 등록해.”

이민정이 눈을 가늘게 뜬다.

“설마 술 마시고 대리운전시키려고 운전면허 따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잘 아네.”

인호가 운전석에 올라탄다.

“어디 가시게요?”

“응. 고객 만나러 가야 해.”

“저도 같이 가요.”

이민정이 따라붙는다.

“그럼 나도 가자.”

“엣헴!”

언제 나타났는지 영감도 뒷자리에 타 있었다.

“그래. 갑시다. 가.”

우우웅-

“이야, 엔진 소리 예술이다.”

차를 출발시키기 전 인호가 고개를 돌려 뒷자리를 바라본다.

얼마 전이라면 가운데 자리에 뚱보가 앉았을 것이다.

인호의 마음을 읽은 것인지 사기꾼이 씁쓸하게 말했다.

“뚱보 이 녀석 이렇게 좋은 차도 못 타보고.”

* * *

한광 테크.

이철호가 친구라며 소개 준 사람이 운영하는 회사에 도착했다.

경비는 고급 세단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경비실 밖으로 뛰어나와서 공손하게 그들을 맞이했다.

“이 봐라. 전에 똥차 끌고 다닐 때는 매번 입구컷 당했는데 이제는 하이패스네.”

창문을 여니 경비가 다가와 묻는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대은 그룹에서 왔습니다.”

인호가 명함 한 장을 경비에게 건넸다.

- 기획조정실 과장 정인호

이철호가 준 두 번째 보상이 바로 이 명함이었다.

단순히 명함만 파서 준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대은 그룹 기획조정실에 인호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앞으로 생활할 때 대은 그룹의 명함이 도움이 될 때가 있을 거라며 이철호가 조치해 준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사장실 있는 건물이 어디죠?”

“저기 보이는 3층 건물입니다.”

“감사합니다.”

차를 주차한 후 내린 인호는 공장을 둘러보았다.

“공장이 상당히 크네. 하긴 대은 그룹 1차 벤더 회사이니 준 대기업 수준이겠지.”

건물로 들어서서 3층으로 올라간다.

“조태형 사장님 뵈러 왔습니다.”

“정인호 씨?”

“네, 맞습니다.”

“사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비서가 인터폰으로 인호가 왔음을 알렸다.

“들어가시면 돼요.”

사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소파에 앉아 있던 조태형이 일어나며 악수를 건넨다.

“조태형이라고 합니다.”

“정인홉니다.”

인호가 대은 그룹 명함이 아닌 극락 흥신소 명함을 내밀었다.

“철호에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특별한 일을 하신다고.”

“네. 조금 특별하죠. 회장님 말씀으로 요즘 이상한 일을 겪으신다고요.”

“네. 그런데 그게 이상한 일이기는 한데…….”

조태형이 말끝을 흐렸다.

“일단 회장님께 듣기는 했는데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비서가 커피를 인호 앞에 내려놓고 나간다.

조태형이 커피로 입을 축인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즘 밤마다 죽은 마누라가 꿈에 나옵니다. 죽은 마누라가 꿈에 나올 수도 있어요. 그런데 조금 이상해요. 일단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선명해요. 잠에서 깨도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그리고 마누라가 꿈속에서 자꾸…….”

인호가 계속 이야기하라는 듯 바라보자 조태형이 말했다.

“이상한 말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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