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23화 (23/190)
  • 제23화

    “그래서 민석 씨 시체에 피가 거의 없었던 거군요.”

    인호가 쓰게 웃는다.

    자신의 피를 짜내 그림을 그렸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이유를 알았으니 이만 돌아가세요. 나는 황유찬을 죽일 겁니다.”

    “안 됩니다. 그러면 민석 씨는 정말 악령이 됩니다.”

    “상관없어요. 황유찬은 내 인생을 망가트렸어요. 나도 그 개자식을 망가트릴 거예요. 황유찬을 죽이고, 그가 사랑하는 자식들도 모조리 죽여 버릴 겁니다.”

    “민석 씨. 나한테 맡겨요.”

    인호가 김민석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민석 씨의 잃어버린, 아니 황유찬에게 빼앗긴 명예를 되찾아 드릴게요. 황유찬에게 복수도 해 줄게요. 민석 씨, 오랫동안 갇혀 지냈잖아요. 그냥 죽이는 것으로 복수가 되겠어요? 그러니 내가 복수해 드릴게요. 그가 가진 모든 것 다 빼앗고 망가트려 줄게요.”

    “싫어!”

    뒤에서 외침이 터져 나온다.

    “내가 죽일 거야.”

    뚱보가 사기꾼과 영감의 팔을 뿌리치고 인호에게 다가온다.

    “내가 죽일 거야. 내 동생 민석이 죽인 그 개새끼! 내가 죽일 거야.”

    뚱보의 눈에 붉은 기운이 얼핏 보였다.

    “정신 차려!”

    인호가 버럭 소리친다.

    망령이 악령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잠시의 선택으로 악령이 되는 것이다.

    “네가 그 개새끼 죽이면? 민석 씨는 행복할까? 너는 행복해? 네가 죽여도 민석 씨에게 업이 가는 거야. 그래, 좋겠다. 형, 동생이 나란히 지옥에 가면 좋겠어 아주. 그렇게 되길 바라는 거야?”

    “…….”

    뚱보가 인호를 쏘아본다. 눈에 어렸던 붉은 기운이 옅어지고 있다. 뚱보가 말아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말한다.

    “하지만 인간의 법으로는 그 자식 처벌할 수 없잖아. 그래서 인호 너도 직접 처벌하는 거잖아. 그 재벌 자식에게 손각시 붙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잖아.”

    “그러니까!”

    뚱보를 보던 인호가 천천히 몸을 돌려 김민석과 마주한다.

    “나한테 맡겨요.”

    인호가 억지로 웃는다.

    “내가 이런 일 잘해요. 뚱보, 아니 상민이에게 물어보세요. 내가 아주 전문가예요. 그러니 내게 맡겨요.”

    김민석이 뚱보를 바라본다.

    “상민이 형.”

    “민석아.”

    뚱보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내 동생 민석이. 착한 우리 민석이. 왜 그랬어? 형 그림 그려주기로 약속했잖아.”

    “미안해, 형.”

    뒤에서 사기꾼이 ‘지도 죽어놓고’라고 중얼거리다 인호의 쏘아보자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운다.

    “인호 말 들어. 인호가 정말 이런 일에 전문가야.”

    “하지만…….”

    “내 동생 민석이는 형 말 정말 잘 들었는데.”

    김민석이 뚱보의 눈물을 닦아 주며 피식 웃는다.

    “형은 여전히 잘 우네. 살이 찐 것도 여전하고.”

    “히히,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잖아. 아-, 나 죽었지.”

    “형은 어쩌다 죽었어?”

    “그, 그게 말이지…….”

    누군가의 강렬한 눈길이 느껴져 인호가 몸을 돌린다.

    검은 정장을 입은 저승사자가 인호를 쏘아보고 있다. 인호가 어색하게 웃다 표정을 지우고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저 둘에게 시간 좀 주시겠습니까?”

    * * *

    “다, 당신에 왜 거기서 나와!”

    떨리던 음성은 숫제 악에 받친 외침이 되어 있었다. 황유찬의 뒤로 어색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는 이민정이 서 있었다.

    지하실에서 올라온 인호 역시 자신을 쏘아보는 황유찬을 보고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당황을 감추고 특유의 느물느물한 음성으로 말한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거기 왜 들어갔냐고!”

    “어딜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지 않습니까.”

    “…….”

    황유찬은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듯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인호의 말처럼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박주완을 통해 도움을 구한 것 역시 그였다.

    무슨 말인가를 하려 할 때 인호가 먼저 선수를 쳤다.

    “별거 없던데요. 거기 누가 살았었나요? 침대가 있던데.”

    “살긴 누가 삽니까.”

    황유찬이 몸을 휙 돌렸다. 인호가 그의 곁에 다가선다.

    “저희 대화를 좀 나눠야 할 것 같은데요.”

    황유찬과 함께 거실 소파로 향하며 이민정에게 신호를 보낸다. 이민정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후 소파에 앉는다.

    “몇 가지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

    황유찬은 불편한 눈빛으로 인호를 쏘아 볼 뿐이다.

    “박 신부님 말씀을 들으니 계속 악몽을 꾸셨다고요? 현실과 흡사한 악몽이었다죠?”

    “네, 그렇습니다.”

    “혹시 평소에 원한을 사거나 한 일이 있으십니까?”

    “지금 절 취조하시는 겁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취조는 경찰이 하는 거죠. 뭘 알아야 대처를 할 것 아닙니까. 이쪽 세계에서는 별의별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나조차 잊고 있던 일에 원한을 품은 이가 죽어 해코지하기도 하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호가 빙긋 웃는다.

    “원인을 제거해야죠.”

    “원인이요?”

    “네. 잘은 모르시겠지만 주변에 원한을 산 누군가가 사용하던 물건이나 남긴 물건이 있을 겁니다. 그곳에 그의 원혼이 깃든 거죠. 그것을 처리하지 못하면 계속 같은 일을 겪게 되실 겁니다. 혹시 뭐 생각나시는 것 없습니까?”

    인호의 물음에 황유찬이 모르겠다는 듯 딴청을 피운다.

    “가령…….”

    인호가 말끝을 흐리며 황유찬을 바라보자 황유찬 역시 인호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림 같은 거라던가.”

    “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아니. 왜 그렇게 놀라세요? 그냥 그림 그리시는 분이니까 예를 든 것뿐인데. 혹시 뭐 찔리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그런 것 없습니다.”

    황유찬이 화가 난 듯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요? 그러시구나. 그러면 지하실에 있는 석양 그림은 본인이 그리신 겁니까?”

    석양 그림이라는 말이 나오자 황유찬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 내가 그린 겁니다.”

    “아-, 그러세요? 굉장히 잘 그린 그림이더군요. 직접 그리셨다니 묻겠습니다. 그림 속에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 화가는 물속에 빠졌을까요? 혹시 화백님의 작품관과 연관이 있는 겁니까?”

    “그, 그건…….”

    황유찬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잠시 그의 대답을 기다리던 인호가 웃음을 지우고 차가운 음성으로 말한다.

    “대답 못 하겠지. 당신이 그린 그림이 아니니까.”

    “무슨 말입니까?”

    “무슨 말이긴. 당신이 지하실에 가둬두고 그림을 그리게 했던 김민석이 그린 그림이라는 말이지.”

    “다, 당신-.”

    무릎 위에 올린 황유찬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황유찬은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황급히 손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죄라는 것이 그래요. 감추려고 해도 다 보이거든. 지금까지 김민석이 그린 그림을 마치 당신이 그린 것처럼 행세하고 다녔지? 돈도 많이 버셨을 테고 명성도 얻으셨을 거야.”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김민석이 누굽니까?”

    “거참-, 끝까지 오리발을 내미시네. 당신.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박 신부님께 나에 대해 못 들으셨나 보네. 나는 영혼과 직접 대화를 나눕니다. 이미 김민석 씨에게 모든 이야기를 다 들었어요.”

    황유찬이 떨리는 눈빛으로 인호를 바라본다.

    “큭, 크크크크.”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던 황유찬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지금 나더러 그 말을 믿으라고? 신부에게 무슨 말을 듣고 온 모양인데. 왜? 신부가 날 떠보라고 하던가?”

    인호가 고개를 비스듬하게 한 채 황유찬을 바라본다.

    “김민석? 그 녀석 알지. 제발 그림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사정을 했었지. 하지만 거절했어. 그뿐이야.”

    “아-, 그러셨구나. 그래서 이곳저곳 사진을 찍고, 동영상 촬영을 해서 민석 씨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하셨어요?”

    “…….”

    황유찬이 멈칫한다.

    사진과 동영상 이야기는 자신과 김민석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주머니 속의 손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지만, 애써 침착을 가장하며 말했다.

    “그래서 뭘 어쨌다고? 증거 있나? 그리고 내가 김민석을 죽였나? 그 녀석 스스로 죽은 거야. 그래, 네 말이 맞아. 그 녀석이 그린 그림을 내가 그린 것처럼 행세했어. 그런데 어쩌나? 증거가 없잖아. 그림을 그린 녀석은 이미 죽었고, 나는 은퇴했는데.”

    황유찬이 거실 한켠에 놓인 장식장에서 양주병을 꺼내 돌아왔다.

    그는 마개를 벗긴 후 주둥이를 입에 대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으. 김민석이 귀신이 네게 말해주던가? 어째? 김민석이 귀신은 잘 지내고?”

    인호는 황유찬이 하는 양을 지켜보기만 했다.

    “나만 그럴 것 같아? 이 바닥에서 이런 일 흔한 일이야.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이 열 손가락을 모두 합쳐도 세지 못할 정도야. 알겠어?”

    “그렇군.”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많이 배우신 분이니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는 말을 잘 아시겠네. 당신이 쌓은 업은 결국 당신에게 돌아가게 돼 있어. 당신이 김민석을 죽이지 않았다고? 꼭 칼로 찌르고 목을 졸라야 죽이는 건 줄 알아? 죽음으로 내모는 것 역시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야.”

    “경찰 아니라며. 그리고 설령 내가 그 녀석의 그림으로 행세한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 봐야 얼마나 처벌받을 것 같아?”

    “인간들의 법으로는 그렇겠지.”

    인호가 소파에 등을 기대며 황유찬을 바라보며 말한다.

    “당신이 쌓아 올린 명성과 업적이 독이 되어 당신의 목을 조를 거야. 그 누구도 당신 편이 돼주지 않을 거고. 단 한 사람도 당신을 위해 입을 열지 않겠지.”

    인호의 차가운 음성에 황유찬이 이를 꽉 깨문다. 그는 인호를 쏘아보며 다시 술을 들이켰다.

    “심지어 죽은 후 저승의 판관들조차 당신을 위해 변호하지 않을 거야. 오히려 당신에게 더 참혹한 형벌을 내릴 걸? 별로 궁금하진 않겠지만 미리 알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지옥이란 곳은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어. 형벌이 시작되면 매 순간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지. 하지만 당신은 결코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어. 당신이 다른 이에게 했던 것처럼. 민석 씨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택한 것처럼. 당신은 그렇게 고통 받게 될 거야.”

    인호가 자리에서 일어서 현관으로 향하자 이민정이 그 뒤를 쫓았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황유찬의 악에 받친 외침이 들려온다.

    “그런 말 한다고 내가 겁먹을 것 같아? 나 황유찬이야! 거장 황유찬이라고!”

    인호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다.

    인호는 조소를 머금은 채 말한다.

    “그 명성 잘 즐기세요. 그것도 며칠 남지 않았으니까.”

    집에선 나온 인호는 이민정과 함께 차에 올랐다.

    “사람이 어쩜 저렇게 뻔뻔할 수 있죠?”

    “사람이니까.”

    “네?”

    부르르릉-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 욕망이라는 항아리는 아무리 채워도 가득 차지 않으니까.”

    인호가 차를 출발시켰다.

    뒷자리에는 세 망령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5분가량 이동했을 때 뚱보가 말했다.

    “인호야. 나 다시 가서 민석이 그림 조금만 더 보고 오면 안 될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라.”

    “안 그래. 잠시 다녀와도 되지? 사무실까지 가는 길은 잘 아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인호가 대답을 하지 않자 뚱보의 몸이 뒤로 쭉 밀려나며 차 밖으로 나간다.

    “저렇게 보내도 되는 거야?”

    사기꾼의 물음에 인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