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22화 (22/190)

제22화

황유찬은 계속해서 집 쪽을 힐끔거렸다.

“저 이제 안에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꽃을 보며 곁눈질로 황유찬을 살피던 이민정이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어머! 화백님. 이 꽃 너무 예뻐요. 그런데 제가 지식이 짧은 건지 무슨 꽃인지 잘 모르겠어요.”

아름다운 이민정이 팔에 매달리며 묻자 집을 힐끔거리던 황유찬이 웃으며 몸을 돌렸다.

“이 꽃은 아마존에만 서식하는 꽃입니다. 정말 어렵게 들여온 거죠. 관리가 쉽지 않죠.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꽃입니다. 꽃 이름은…….”

허리를 숙인 채 꽃에 대해 설명하는 황유찬을 보며 이민정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 *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사기꾼의 말에 인호가 그를 바라본다. 조금 전 충격 때문에 여전히 몸이 조금 흐릿하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지.”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아래로 향한 계단을 내려간다. 세 망령들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인호의 뒤를 쫓았다.

“강력해. 너무 강력한 기운이야.”

지하에 도착한 영감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인호의 곁에 머물며 여러 악령들을 대했지만 단연코 지금 느껴지는 기운처럼 강력한 기운을 지닌 악령은 없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슬픔이 느껴져.”

뚱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린다.

인호가 주위를 살핀다.

한 구석에는 싸구려 철제 침대가 있고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 쓰는 이젤도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주변으로 물감과 팔레트, 붓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저기 있네.”

드디어 찾았다.

피처럼 붉은 석양을 그린 그림이 침대 옆에 걸려있었다.

“끔찍한 기운이군.”

그리고 그 그림에서 아주 강력하고, 악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하실의 문에 흐르던 기운과 같은 기운이다.

인호가 그림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지박령이라면 모습이 보일 텐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강력한 기운이 느껴질 뿐.

“인호야. 저 그림 좀 봐.”

뚱보의 말에 인호가 그림을 자세히 살핀다.

집 근처의 양평 호수를 배경으로 한 그림이었다. 그림 아래쪽에 무언가 있다.

호숫가에 이젤이 놓여 있다.

이 그림을 그린 이가 풍경 속에 자신도 넣으려 한 것처럼.

“그런데 사람이 없네.”

이젤만 있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없다.

“저기 있잖아.”

뚱보가 손을 들어 그림의 중앙을 가리킨다. 그곳에는 아주 작고 둥근 무언가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사람의 머리였다.

그때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머! 씨발, 깜짝이야!”

사기꾼이 펄쩍 뛰며 뒤로 물러선다.

그림 속, 호수 중앙에 빠진 사람의 머리가 천천히 뒤로 돌아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얼굴이지만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였다.

눈이 붉게 번들거리고 있는데 얼핏 보면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야, 어디가!”

사기꾼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뚱보가 그림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인호가 황급히 그 앞을 막아서며 손으로 뚱보를 밀쳐낸다.

인호의 손에서 파란빛이 흘러나오며 뚱보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하지만 뚱보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자세히 보면 뚱보의 입술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속삭이듯 들리던 말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석아. 민석아. 민석아.”

뚱보는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그림을 향해 다가선다. 인호가 다시 뚱보를 밀쳐내며 외친다.

“그림 속에 있는 것은 네가 알던 민석이가 아니야!”

“아니야! 우리 민석이야!”

뚱보가 빽하고 소리친다.

뚱보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뚱보. 아니, 상민아!”

뚱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걸음을 멈춘 뚱보가 인호에게 천천히 몸을 돌린다.

“내 이름…… 어떻게 알아?”

“휴우-, 신부님이 말씀해 주셨어. 이상민이라는 아이가 있었다고. 먹을 것에 욕심이 아주 많은 아이였다고. 그리고 그 상민이가 딱 한 사람에게만 자기 먹을 것을 나눠 줬다고. 바로…….”

인호가 그림을 향해 몸을 돌린다.

“김민석.”

“우리 민석이야. 정말 민석이야. 저기 봐. 민석이가 물에 빠져 울고 있어.”

“민석이가 맞아. 하지만 민석이가 아니기도 해.”

그는 이미 악에 기운에 물들어 악령이 된 상태였다.

- 꺼져!

그림 속, 호수 속의 머리가 사악함이 가득 담긴 외침을 토해낸다.

“사기꾼, 영감님.”

두 망령이 인호를 바라본다.

“뚱보 이쪽으로 오지 못하게 막아요.”

인호가 그림을 향해 다가간다.

그림을 정면으로 마주한 인호가 말한다.

“김민석 씨. 나 정인호라는 사람이에요. 김민석 씨도 잘 아는 박주완 신부님과 이상민 씨와도 잘 아는 사람이에요.”

- 꺼져! 안 꺼지면 모두 죽여 버릴 거야!

“그러지 말고 저하고 얘기 좀 합시다.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 하지만 김민석 씨가 억울하게 죽은 것은 알겠습니다. 그리고 김민석 씨가 무엇을 하려는지도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마세요. 당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 죽인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김민석 씨. 그러면 지옥 가요.”

사악하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상대했던 악령들처럼 ‘악’ 그 자체의 기운은 아니다. 지하실에 내려선 후 뚱보가 말한 것처럼 ‘슬픔’이 느껴지는 기운이었다.

“여기 김민석 씨가 좋아하던 형 이상민 씨도 있어요.”

- 상민이 형.

떨리는 음성이다.

인호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선다.

그림 속 호수에 빠져 있던 사람, 김민석이 점점 호숫가로 나오고 있었다.

호수에서 걸어 나온 김민석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여전히 붉게 빛나고 있다.

“민석아. 내 동생 민석아. 형이야, 상민이 형.”

- 형.

울먹이는 듯한 음성이다.

김민석이 점점 커지더니 그림을 뚫고 밖으로 나온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이다.

- 민석이의 사체를 확인하러 갔어. 그런데…… 마치 흡혈귀에게 피를 모두 빨린 것처럼 몸에 피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어.

박주완의 말이 떠올랐다.

다가오려는 뚱보를 사기꾼과 영감이 뒤로 잡아당긴다.

“김민석 씨.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스무 살이 되고 광혜원을 나왔어요. 그리고 황유찬 화백의 문하생으로 들어갔죠.”

김민석이 눈을 감았다 다시 뜬다.

그의 눈에서 조금 전보다 더욱 강렬한 붉은 기운이 줄줄 뻗어 나왔다.

* * *

성인이 된 후 광혜원을 나온 김민석은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고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해 제대로 된 직장을 잡지 못했다.

잘 시간 줄이고,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며 돈을 모으던 김민석의 유일한 즐거움은 미술 전시회에 가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고아가 아닌 제대로 된 가정에서 자랐다면 그림을 그리는 직업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황유찬의 개인 전시회가 열리는 화랑에 갔다. 그림을 감상하고 있을 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그림 좋아하나?”

전시회의 주인공 황유찬이었다.

황유찬은 김민석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도움이 되는 조언들도 많이 해주었다.

전시회가 인연이 되어 가끔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인연이 깊어질 때 즈음 황유찬이 한 가지 권유를 했다.

- 내 문하생이 될 생각 없나? 나이가 드니 힘에 부치는 일이 많아. 심부름도 해주고 그림도 배워 볼 생각 없나?

김민석은 당연히 승낙했다.

그림에 관해 제대로 된 배움을 가질 기회가 없었기에 황유찬의 권유는 단비와도 같았다.

김민석은 황유찬의 집에 함께 머물렀다. 아내와 사별한 황유찬은 양평의 전원주택에서 혼자 살았다.

황유찬은 남는 방은 미국에 살고 있는 자식들이 오면 사용한다며 김민석에게 지하실에서 머물라고 했다.

그림을 배울 수 있다면 지하실이 대수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날부터 김민석은 황유찬을 도와가며 그림을 배웠다. 그림에 재능이 있던 김민석은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황유찬의 지식을 머리에 담아갔다.

그림 실력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황유찬은 김민석의 재능을 항상 칭찬했다.

그랬던 황유찬이 어느 날인가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손님이 찾아온다며, 자식들이 온다며, 지하실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다.

점점 그런 날이 많아지고 언젠가부터 김민석을 지하실에 감금하다시피 했다.

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지원을 해주고, 그림에 대한 가르침도 계속 주었기에 김민석은 이상하다 느끼면서도 불만을 늘어놓진 않았다.

황유찬은 가끔 사진을 들고 지하실로 내려와 ‘한 번 그려봐’라고 말했다. 사진을 찍은 곳을 동영상에 담아 함께 주었다.

김민석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고 거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 해 그림을 그렸다. 그림이 완성되면 황유찬이 지하실로 내려왔다.

완성된 그림은 자신이 잘 보관하고 있겠다며 가지고 나갔다.

- 그렇게 8년을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림을 가지러 내려왔던 황유찬이 실수로 휴대폰을 놓고 갔다. 황유찬은 휴대폰 사용도 막았기에 김민석에게는 휴대폰도 없었다.

김민석은 황유찬의 휴대폰을 보며 한참 동안 망설이다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인터넷에 접속해 황유찬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황유찬의 개인 전시회에 관한 기사가 주르륵 나왔다. 김민석은 그것들 중 최근의 기사를 클릭했다.

그리고 크게 분노했다.

- 내 그림이었어요. 황유찬은 내가 그린 그림들을 가져다 마치 자신이 그런 것인 양 전시회를 열었던 겁니다.

사실을 알게 된 후 김민석은 어떻게든 지하실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휴대폰 인터넷 검색 목록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것을 알게 된 황유찬이 지하실의 입구를 밖에서 잠가버렸다.

본격적인 감금이 시작된 것이다.

황유찬은 생활에 필요한 것들, 그리고 그림에 필요한 것들을 지원해주며 김민석을 설득했다.

- 김민석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어봐야 아무도 오지 않아. 미대를 졸업한 것도 아니고 인맥도 없지. 차라리 내 이름으로 전시회를 여는 것이 좋아. 그림을 팔아 돈을 벌게 되면 반을 네게 줄게. 돈을 모아 남들처럼 떵떵거리며 살면 되잖아. 네가 그렇게 노래 부르던 광혜원 아이들에게 좋은 것도 해줄 수 있고.

김민석은 황유찬의 설득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속 분노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 돈을 주겠다던 황유찬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때 깨달았죠. 이 사람은 나에게 돈을 줄 마음이 없구나. 아니, 내가 밖으로 나가 진실을 말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구나.

김민석은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준비했다.

김민석은 지하실에 감금되기 전 해가 질 무렵의 호숫가를 거니는 것을 좋아했다.

석양이라도 지는 날이면 그 아름다움에 빠져 멍하니 앉아 자연이 만든 작품을 감상했다.

김민석의 마지막 작품은 그 ‘석양’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그림이 아니었다.

김민석은 그림에 사용할 빨간색의 물감 대신 다른 재료를 이용했다.

- 제 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피처럼 붉은 석양을 그린 그림이 아니라, 정말로 붉은 피로 그린 석양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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