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21화 (21/190)
  • 제21화

    - 현대 자연주의의 거장 황유찬 화백이 돌연 은퇴를 선언하며 마지막 전시회가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황유찬 화백은 지금까지 수많은 명작을 남겨 세계 미술계에 인정 받고 있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 * *

    삼성동에 위치한 나래 화랑.

    “우리 인호 돈 벌더니 취미가 아주 고상해지셨어.”

    사기꾼이 히죽 웃는다.

    “그래. 이게 정상이지. 언제까지 만화나 볼 거야.”

    “내가 만화를 언제 봤냐?”

    “언제 보긴? 이틀 전 오전 열 시 이십칠 분 경? 그리고 닷새 전 오후 네 시 즈음? 보던 웹툰 제목이 뭐였더라? 형수와의…….”

    인호의 인상이 와락 구겨지자 사기꾼이 딴청을 피운다.

    “오호-. 우리 소장님께서 그런 고오상한 취미가 있으셨구나.”

    이민정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아니다. 오해다. 쟤가 왜 사기꾼이겠냐?”

    “흐응-, 뭐 그렇다고 해요.”

    “정말 아니라고!”

    “알았다니까요. 그런데 정말 여긴 왜 오신 거예요? 사기꾼 말대로 고상한 취미 때문에 온 거예요?”

    “그래. 나도 이제 그림 감상도 하고, 클래식도 좀 듣고. 그렇게 살려고.”

    인호가 화랑 입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뒤에 남은 이민정과 세 망령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인호는 입구에서 카탈로그를 산 후에 입구부터 전시되어 있는 그림들을 차례로 살피기 시작했다.

    “호오-, 그림 좋네.”

    해가 질 무렵의 호수를 그린 그림에 앞에 선 사기꾼이 고개를 까딱거린다.

    “보면 뭐 아냐?”

    “이거 왜 이래? 나 예전에 그림도 취급했던 사람이야. 흐음, 붓 터치가 아주 섬세해. 여기 수면에 나무가 비친 것 보이지? 표현이- 뭐라고 해야 할까?”

    인호가 계속 말해보라는 듯 바라보자 사기꾼이 어색하게 웃는다.

    “잘 그렸네.”

    사기꾼이 볼을 긁으며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네.”

    “뭐가 이상해?”

    “거짓말이 아니고 내가 정말 그림도 취급했거든. 보통 나이 든 화가하고 젊은 화가의 그림이 조금 달라.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아무튼 달라. 그런데 이 그림 그린 황유찬인지 하는 화가는 나이가 많지 않나?”

    “나이 많지.”

    황유찬은 올해 67세다.

    “영감님은 어때요? 괜찮은 그림 같아요?”

    “나 이 화가 알아. 가끔 뉴스와 신문에 나오잖아.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하다고 하더라.”

    영감은 죽기 전 상당한 재력을 가진 부자였다. 아주 오래전에 지나가는 말로 그림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는 말도 했었다.

    “이 그림도 임자만 잘 만나면 꽤 비싸게 팔리겠네.”

    “꽤 비싼 게 얼만데요?”

    이민정이 영감에게 묻는다.

    “2년 전인가 황유찬 화백의 그림 한 점이 47억에 팔렸었어.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서 그린 그림이라는데 상당했지.”

    “헐-, 47억. 나 47만 원도 없는데.”

    인호가 다음 그림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황금빛으로 물든 논에서 추수를 하는 농부를 그린 그림이다.

    “뚱보. 왜 말이 없어? 그림 안 좋아해?”

    뚱보가 고개를 흔든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뚱보가 시무룩하다. 손에 든 닭꼬치도 먹지 않고 들고만 있었다.

    “그림 안 좋아하면 말해. 그냥 가게.”

    “아니야. 나 그림 좋아해.”

    “뻥 치시네.”

    사기꾼이 뚱보의 볼을 손가락으로 폭폭 찌른다.

    “니가 그림에 대해 알기나 해?”

    “나도 그림 잘 알거든? 내가 아는 동생이 그림 엄청 잘 그리거든.”

    “호오-, 니가 아는 누구? 얌마! 은둔형 외톨이에 식충이가 그림 그리는 아는 동생이 어디 있어?”

    “우씨-! 있다고!”

    인호가 사기꾼에게 눈치를 준다.

    “그런데 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 보이잖아.”

    “그냥…….”

    뚱보가 그림을 힐끔거린다.

    “우리 민석이도 그림 잘 그렸는데.”

    “민석이? 민석이가 누군데?”

    “광혜원에 있던 동생. 나랑 엄청 친한 동생이야. 내가 광혜원 나올 때 민석이가 그랬어. 나중에 다시 만나면 내 초상화 그려준다고.”

    인호는 며칠 전 박주완이 술자리에서 한 말을 떠올렸다.

    - 상민이라는 아이가 있었어. 먹을 것에 욕심이 대단한 녀석이었지. 그 녀석은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먹을 것만큼은 절대 양보 안 해.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상민이라는 녀석이 민석이에게만큼은 굉장히 잘 해줬어. 자기 먹을 걸 줄 정도로 말이야. 그 녀석 뭐하고 사나 몰라? 매정한 녀석 성인이 돼서 떠난 후 연락 한번 없네. 요즘도 예전처럼 많이 먹는지 궁금하네.

    “그 후로 민석이라는 친구 소식 들은 건 없고?”

    “없어. 나도 힘들게 살아서.”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민석이 만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시무룩하던 뚱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그러더니 손에 들고만 있던 닭꼬치를 전투적으로 씹으며 말한다.

    “정말 기분 좋을 것 같아.”

    “그렇구나.”

    이후에도 그들은 평범한 관람객들과 같이 그림 몇 점을 더 둘러봤다.

    화랑의 중앙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앉아 있었다.

    노인의 주변에는 젊은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노인은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거나 함께 사진을 찍고 있었다.

    “황유찬 화백님.”

    인호가 노인에게 다가선다.

    “네.”

    “하하, 반갑습니다. 평소부터 화백님의 작품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셨습니까.”

    노인, 황유찬이 인호가 건네는 손을 잡는다.

    “아직 정정하신 것 같은데 벌써 은퇴라니요.”

    황유찬이 어색하게 웃는다.

    인호는 황유찬의 얼굴을 천천히 살핀다. 메이크업을 했지만 눈 밑이 까맣고 휑하다. 입술을 바짝 말라 있다. 악수를 할 때 느낀 것이지만 손도 가늘게 떨고 있다.

    “화백님. 건강 잘 챙기세요. 은퇴를 하신다니…… 미술계 전체에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사를 건네고 몸을 돌린다.

    뒤에서 황유찬의 시선이 느껴졌다.

    “저 노인네 조금 이상한데.”

    화랑을 벗어날 때 사기꾼이 은근한 투로 말한다.

    “내가 너 같은 능력은 없지만 그래도 촉은 좋은 편이잖아. 너 그림 감상하려고 간 게 아니라 저 노인네 보러 간 거지?”

    인호가 피식 웃는다.

    “하여튼 눈치는 참 빨라요.”

    * * *

    며칠 후, 양평.

    양평 호수에서 멀지 않은 곳의 전원주택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아름다웠다.

    끼익-

    차가 멈추고 인호와 이민정이 차에서 내린다.

    “우와, 집이 너무 예뻐요. 나도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

    “이런 집에서 살려면 돈 많이 벌어야겠다.”

    “소장님 따라다니다 보면 저도 큰돈 벌지 않겠어요?”

    “큰돈은 개뿔-.”

    인호가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른다.

    그러자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나왔다.

    “화백님. 안녕하세요.”

    “누구신…… 며칠 전 화랑에서 뵈었던 분이군요.”

    “하하, 맞습니다. 정인호라고 합니다.”

    인호가 명함을 꺼내 황유찬에게 건넨다.

    “극락 흥신소? 뭔가를 의뢰할 일은 없는데요.”

    “박주완 신부님 소개로 왔습니다.”

    황유찬이 묘한 눈빛으로 인호를 바라본다.

    “신부님이 말씀하신 전문가가 그쪽이십니까?”

    “네. 제가 그 전문갑니다. 하하, 이 바닥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런 사람이죠.”

    “전시회에 왜 왔던 겁니까?”

    “의뢰를 받기 전에 어떤 분인지 한 번 뵙고 싶었거든요.”

    인호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제가 뭘 하면 됩니까?”

    “아무것도 안 하셔도 됩니다. 일단 어떤 문제가 있는지 둘러볼 생각이거든요.”

    그때 이민정이 황유찬에게 묻는다.

    “화백님. 저기, 저 나무 이름이 뭐예요? 너무 멋져요.”

    “아-, 저 나무는…….”

    황유찬이 나무에 대해 설명한다.

    “정말 대단하세요. 제가 정원 조경에 정말 관심이 많거든요. 가르침 좀 주시면 안 될까요?”

    이민정이 애교를 섞어 말하자 황유찬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황유찬과 함께 정원을 가로지르는 이민정은 손을 등 뒤로 돌린 채 검지와 엄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 그 집에 가면 무조건 그 양반 붙잡아 둬.

    인호가 이민정에게 내린 지시였다.

    “아주 고약한 냄새가 솔솔 풍기는 곳이구나.”

    사기꾼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한다. 영감도 사기꾼의 말에 동의하는지 인상을 찌푸린다.

    “좋은 곳은 아니로구나.”

    인호가 영감의 옆에 있는 뚱보를 바라본다.

    뚱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불안한 표정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고약한 냄새의 정체가 뭔지 확인해 보자고.”

    인호가 세 망령들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림을 하나 찾아야 해.”

    인호의 말에 망령들이 ‘어떤 그림’이냐며 묻는다.

    - 피처럼 새빨간 석양을 그린 그림이었어. 그 그림에서 아주 강력한 힘이 느껴졌지. 아주 사악한 기운이었어. 내가 그 그림을 보자 황 화백이 당황하며 그림을 감추더군. 그 집에 가게 되면 그 그림을 찾아봐. 그 그림이 이번 일의 열쇠가 될 것 같거든.

    “석양을 그린 그림.”

    망령들이 흩어진다.

    인호는 거실과 집 곳곳을 살폈다. 집에는 그림이 아주 많았다. 특히 황유찬의 작업실인 아틀리에가 그랬다. 하지만 붉은 석양을 그린 그림은 보이지 않았다.

    1층과 2층까지 모두 살폈지만 그림을 찾을 수 없었다.

    잠시 후 다시 모인 망령들 역시 그림을 찾지 못했다.

    “후우-, 다른 곳으로 옮겼나?”

    “저-.”

    뚱보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왜 그래?”

    “저기 계단 밑에 문이 있는데 지하로 내려가는 문인 거 같아. 그런데 들어갈 수가 없었어.”

    “못 들어간다고?”

    일반적으로 망령인 뚱보가 들어가지 못하는 문 같은 건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있기는 했다.

    강력한 결계가 펼쳐져 있거나 뚱보보다 강력한 기운을 지닌 무언가가 안에 있다면 그럴 수도 있었다.

    인호는 뚱보가 말한 곳으로 갔다.

    “호오.”

    잘 보이지 않게 위장을 해두었지만 확실히 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 문 안쪽에서 아주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깟 문이 뭐라고.”

    사기꾼이 문으로 다가간다.

    “야, 사기꾼.”

    인호가 말리려 했지만 사기꾼은 문을 통과하려 했다.

    “컥-!”

    사기꾼이 뒤로 튕겨 나갔다. 반대편 벽 속으로 사라진 후 다시 돌아온 사기꾼을 본 인호가 인상을 찌푸린다.

    사기꾼의 모습이 눈에 띄게 흐릿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영체에 강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인호가 천천히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순간 인호의 눈이 파랗게 번뜩였다.

    인호가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닿지 않았음에도 손가락 끝이 저려왔다.

    붉은 기운이 일렁이며 인호의 기운과 부딪치며 반발을 일으킨다.

    까득-

    이를 꽉 깨문 인호가 결국 문을 잡고 옆으로 밀었다.

    그때였다.

    끼아아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렸다.

    “이, 인호야.”

    영감이 침을 꿀꺽 삼키며 인호를 불렀다.

    “인호야. 준비를 더 해서 다시 와야 하는 것 아니냐?”

    사기꾼의 말에 인호가 열린 문을 바라보며 말한다.

    “아니.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우드득-

    인호가 목을 좌우로 비틀었다.

    “오랜만에 힘 좀 쓰겠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