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20화 (20/190)

제20화

문을 열고 들어선 이를 본 인호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너 웬일이냐?”

짧은 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대답도 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턱 앉는다.

“사기꾼, 뚱보 안녕. 영감님 안녕하셨어요?”

“에잉, 그렇게 선머슴아처럼 행동할 거면 짧은 치마나 입지 말던가.”

영감이 다리를 벌리고 앉은 여자가 못마땅한지 혀를 찬다.

“하하, 그러게요?”

혀를 쏙 내민 여자가 다리를 꼬았다.

“너 왜 왔냐고. 내가 여기 오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했죠.”

너라고 불린 여자, 이민정이 인호의 시선을 피해 딴청을 피웠다.

“너는 임마 망령들 가까이 있으면 안 된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해. 그리고 보니 부적도 없네? 그건 또 어디 떼 놓고 왔어?”

인호가 이민정에게 준 부적은 도력이 어찌나 대단한지 중국에서도 인정을 받는 도사에게 특별히 부탁해 만든 것이다.

당연히 제작하는 데 사용된 비용만 해도 상당했다.

“잃어버렸어요.”

“응? 잃어버려? 그게 어떤 물건인지 알고?”

“알죠.”

이민정이라고 해서 그 부적이 어떤 물건인지 모를 리 없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민정이 부적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다. 잃어버렸다는 말은 진실이 아닐 것이다.

“저랑 비슷한 애를 만났어요.”

“비슷한 애?”

그 말을 들은 인호는 이민정을 처음 만났던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밤늦은 시간 좁은 골방에서 불도 켜지 않은 채 망령들에게 감싸여 있던 어린 소녀였다.

영성이 얼마나 뛰어난지 주변의 망령들이 계속해서 꼬였다.

착한 망령들만 꼬이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망령들이 훨씬 더 많다.

길을 지나다 강한 영력을 느낀 인호가 집에 방문하며 이민정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처음 이민정을 만났을 때 그녀의 부모님과 상의한 후 지리산 만신에게 보내려 했다.

이 정도의 영성이라면 일반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신은 이민정이 자신과는 인연이 없다고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지리산 만신의 말이기에 인호도 더 이상 부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평소 인연이 있던 도력이 높은 도사에게 부적 제작을 의뢰하는 것이었다.

영성을 옅게 하고, 귀문을 강제로 닫는 부적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을 역행하는 것이기에 부적을 만드는 것이 간단하지 않았다.

결국 많은 돈과 노력으로 부적이 완성되었고 이민정은 평범한 아이, 아니 평범한 척하는 아이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후로 이민정은 가끔 인호를 찾아오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인호는 이민정을 매몰차게 내쳤다.

부적의 힘으로 막고 있지만 영적 존재인 망령들과 자주 교감하면 부적이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호의 주변 망령들은 인호와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영성이 강해졌기에 이민정의 부적과는 상극이라 할 수 있다.

“애가 불쌍해요. 매일 망령들에게 시달리고요. 그중에 변태 악령도 있어요. 이제 열두 살짜리 애한테 이상한 소리를 계속해요.”

“그래. 그 애 불쌍한 건 알겠다. 그러면 너는? 이제 너는 어떻게 할래? 바깥에 이상한 잡것들의 기운이 느껴지는 걸 보니 네가 달고 온 것들이구나.”

사기꾼이 눈을 부라리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어떤 시러배 잡놈들이 감히 내 나와바리를 침범해! 뚱보, 가자.”

사기꾼과 뚱보가 벽을 뚫고 사라진다.

“여전하네요.”

“사람, 아니 망령이 쉽게 변하냐?”

“저는 어떻게 하냐고요? 오빠가 있잖아요.”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나도 어떻게 할 수 없어서 부적 만든 거잖아.”

이민정이 씨익 웃는다.

“여기 오기 전에 지리산 다녀왔어요. 만신 할머니가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했어요. 어렸을 때처럼 아무 망령이나 막 달라붙고 그러지는 않을 거래요. 오랫동안 부적을 차고 다녀서 몸에 도력이 남았다나 뭐라나.”

“그래서 뭘 어쩌라고?”

이민정이 인호의 옆자리로 자리를 옮긴 후 팔짱을 낀다.

“저 여기 취직 좀 시켜 주세요.”

“갑자기?”

“직장에서 짤렸단 말이에요. 하-, 내가 정말 이런 말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부장 새끼가 완전 변태에요. 은근슬쩍 엉덩이 만지고, 어깨에 손 올리고, 머리카락 쓰다듬고.”

“너 설마-!”

“헤헤, 네. 생각하시는 그거 맞아요.”

인호는 골치가 아픈 듯 이마를 꾹꾹 누른다.

“그래서 그분 그곳은 안녕하시고?”

“아쉽게도 알은 깨지지 않은 것 같아요. 확 터트려 버렸어야 했는데.”

“얌마! 한 남자의 인생 망치는 거야.”

“그러니까 취직시켜주세요. 남자들의 인생을 위해서.”

“안 돼. 너 여기 있으면 그나마 남아 있는 도력 다 날아가 버려.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거야?”

이민정이 한숨을 내쉰다.

“부적을 하고 있다고 망령을 보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전 망령들을 다 볼 수 있어요. 망령이 절 못 보는 거죠. 벌써 십여 년을 이렇게 살았어요. 그런 제가 예전으로 돌아가는 걸 신경이나 쓰겠어요? 일 좀 시켜 주세요. 저 여기 취직 못 하면 굶어 죽어요. 저 망령되면 여기 딱 달라붙어 있을 거예요.”

인호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흔든다.

“아니. 도대체 여기서 할 일이 뭐가 있다고 취직이야.”

“아무래도 저처럼 미모가 출중한 직원이 있으면 여러모로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이민정의 외모가 뛰어난 것은 사실이다.

“여전히 손님 없어서 사무실 유지 힘들고 그러죠?”

“아니거든? 요즘 아주 따뜻하거든. 유능한 직원들이 있어서.”

벽을 뚫고 들어오는 사기꾼과 뚱보를 보며 말한다.

“그렇지. 우리가 많이 유능하지. 주변에 서성이는 망령들 싹 정리하고 왔어. 아직 시체에 구더기도 끼지 않은 것들이더라고. 그런데 민정이는 여기 왜 왔데?”

“저 오늘부터 여기서 일할 거예요.”

“응? 갑자기?”

“네. 갑자기요.”

“인호가 싫어할 텐데.”

“어쩔 수 없어요.”

사기꾼이 인호를 바라보자 인호가 못마땅한 듯 고개를 휙 돌렸다. 그 모습을 본 사기꾼이 히죽 웃는다.

“극락 흥신소에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는 날이 다 있네. 이런 날 그냥 지나갈 수 없지. 인호야. 회식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회식은 얼어 죽을.”

* * *

“이 집 족발 맛집이네. 아주 쫄깃쫄깃하고 밑간도 잘 되어 있네.”

사기꾼이 족발을 우물거리며 웃는다.

소주도 한잔한 사기꾼이 ‘캬아’하며 추임새를 터트렸다.

인호는 족발과 보쌈을 맛있게 먹고 있는 망령들과 이민정을 바라보았다.

이민정은 체중 관리는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 엄청난 양을 흡입하고 있다.

이민정이 먹는 족발과 보쌈이 줄어가는데 망령들이 먹는 것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족발과 보쌈을 먹고 있었다.

회식이 끝나게 되면 저 음식은 잘 처리해서 폐기해야 했다.

영혼의 손이 탄 음식을 살아 있는 인간, 즉 생자가 먹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탈이 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많이 시켰으니까 천천히 먹어.”

“인호야. 너도 먹어라.”

혼자 소주만 홀짝이는 인호를 보며 영감이 말했다.

“네, 먹고 있어요. 영감님도 많이 드세요.”

인호가 잔을 들자 이민정이 냉큼 잔을 든다.

“오빠. 우리 짠해요.”

“오빠? 취직했으면 호칭 먼저 정리하지?”

“그러면 사장님? 아니구나 소장님! 소장님, 우리 짠 한번 해요.”

인호가 못 말린다는 듯 이민정을 바라보다 그녀와 잔을 부딪친다.

“여기 있으면 예전처럼 망령들이 귀찮게 할 거야. 이 주변 망령들은 상관없어. 내 주변 사람이라는 걸 알면 절대 귀찮게 안 할 거야. 그러니 되도록 이 주변을 벗어나지 마.”

“넵! 소장님.”

회식을 즐기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발신인을 확인한 인호가 뚱보를 힐끔 쳐다본다.

“박 신부님이네.”

커다란 뼈를 입으로 가져가던 뚱보가 흠칫 몸을 떤다.

“괜찮아. 그냥 전화야. 여보세요.”

인호가 통화 버튼을 누른다.

그렇게 몇 마디를 나누던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뚱보를 바라본다.

“하, 하하. 이 근처시라고요?”

* * *

극락 흥신소 인근의 막창집에서 인호와 박주완이 마주 앉아 있었다.

“얼굴 본 지 몇 시간이나 지났다고 전화를 다 주셨어요?”

“왜? 전화하면 안 되냐?”

“그건 아닌데. 평소에 전혀 연락 없으시잖아요.”

박주완이 소주를 한입에 털어 넣고 막창 한 점을 들어 입에 넣는다.

“인호야. 나 좀 도와주면 안 되겠냐?”

“하하.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네요. 박 신부님 입에서 도와달라는 말이 다 나오고요.”

박주완은 다른 구마사제들처럼 다른 영력이 있는 이들, 예를 들자면 인호나 박수, 만신과 같은 이들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인호와 같은 이들을 ‘이단’, 혹은 ‘부정한 것’으로 취급했다.

박주완만 해도 다른 이들을 인정하긴 하지만 그들과 깊게 엮이는 것을 꺼리는 편이었다.

과거에도 박주완과 엮인 적이 있었다. 서로 관계가 틀어진 것은 아니지만 썩 유쾌한 만남도 아니었다.

“토마스가 바티칸으로 갔다고 했잖아.”

“네, 그랬죠. 반 시체가 됐다면서요.”

“그래. 부정한 것에 물들어 버렸어.”

인호가 놀란 눈으로 박주완을 바라보았다.

인호나 박주완 같은 사람들은 언제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언제든 사악한 존재들에 의해 변을 당하거나 그보다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대표적인 심각한 상황이 박주완이 말한 상황이다.

인호가 악귀, 악령이라 부르는 것들을 천주교에서는 악마라 부른다.

때로는 구마사제들이 강력한 악마와 마주하고 그들에게 물들어 버리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강력한 성력을 지닌 구마사제들이 악한 것에 물들게 되면 아주 강력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의식을 치르는 겁니까?”

“그렇게 되겠지.”

의식이라 말을 하지만 결국 악에 물든 구마사제를 하느님의 이름으로 죽이는 것이다. 토마스 신부는 인호와도 인연이 있는 사람이었다.

인호가 씁쓸한 표정으로 소주를 마신다.

“우리 같은 사람들의 결말은 두 종류야. 은퇴할 때까지 무사히 역할을 수행하다 노년을 보내던가, 아니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토마스 신부처럼 악에 물들어 희생될 것이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최선은 아닐지 몰라도 최악의 상황을 방지할 수 있으니까.”

“천주교의 방식은 존중합니다. 이쪽 세계에도 그와 비슷한 경우가 있으니까요.”

당장 자신만 해도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어떻게 도움을 드리면 되는데요? 아니, 일단 무슨 일인데요?”

박주완이 소주를 들이킨다.

“우리 광혜원 출신 아이와 연관된 일이야.”

“광혜원이요?”

“그래. 광혜원에서 성인이 되어 나간 아이야. 그 아이가 죽었어.”

뚱보의 얼굴이 떠올랐다.

뚱보가 죽어 저승에도 가지 못하고 자신의 주변을 떠도는 것을 박주완이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박주완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속이 타는지 그는 소주를 몇 잔이나 들이켰다.

모든 이야기가 끝났다.

소주를 마신 후 막창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인호가 말했다.

“네, 알겠어요. 도와드릴게요.”

천천히 고개를 든 인호가 박주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대신 무조건 제 방식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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