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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흥신소-18화 (18/190)
  • 제18화

    차에서 내린 인호는 허름한 건물을 올려 보았다.

    “여기가 뭐 하는 곳인데요?”

    “가 보면 알아.”

    영감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엘리베이터는 있었다.

    “6층 눌러.”

    인호가 6층을 누른다.

    “다시 6층 눌러.”

    의아한 듯 영감을 바라보다 다시 6층을 누른다. 6층이 취소됐다.

    “5층 누르고. 다시 5층 취소.”

    일단은 시키는 대로 했다.

    “다시 6층 눌러.”

    6층을 누르니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리를 하던가 하지.”

    엘리베이터가 불안하게 덜덜 떨렸다. 엘리베이터가 6층에 도착했다.

    “뭐야?”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우웅-

    엘리베이터는 불안하게 몸체를 떨며 다시 움직였다.

    “뭔데요?”

    영감은 인호를 보며 피식 웃을 뿐이었다. 조금 올라간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좁고 긴 복도였다. 중간에 하나 있는 등은 복도 전체를 밝히지 못해 조금 어두웠다.

    “진짜 말 안 해줄 거예요?”

    “가자고.”

    영감이 먼저 걸음을 옮기더니 복도의 끝에 문 앞에 선다.

    “노크는 짧게 두 번, 그리고 길게 두 번.”

    똑똑- 똑- 똑-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문을 열어준다. 딱 봐도 평범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어서 오세요. 몇 번 방 오셨어요?”

    인호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영감이 말한다.

    “1번.”

    “1번 방이요.”

    “오-, VIP 손님이셨네요. 이리 오세요.”

    남자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문밖 복도와는 달리 환한 복도였다. 복도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문이 있는데 그 문의 수가 족히 서른 개는 넘어 보였다.

    남자가 인호를 안내한 곳은 가장 안쪽의 방이었다.

    “일 마치시고 안에 있는 벨 누르시면 됩니다.”

    남자가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정면의 문에는 디지털 도어락이 설치되어 있다.

    “2, 6, 7, 9…….”

    인호는 영감이 말하는 대로 번호를 차례대로 누른다.

    “6, 9, 1.”

    “많기도 하다.”

    번호는 모두 열여섯 개였다.

    번호를 모두 누르자 ‘철컥’하며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둥근 손잡이를 돌리니 그대로 문이 열렸다. 문의 두께가 30센티미터가 넘는 것을 보며 인호가 ‘오’하며 탄성을 토해냈다.

    안에 들어서자 센서등이 켜졌다.

    “헐-! 이게 다 뭐래요?”

    인호는 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쩍 벌렸다.

    방 정 중앙에 엄청난 양의 돈이 쌓여 있었다. 티비에서 봤던 한국은행에 돈이 쌓여 있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이게 다 금자 할머니 돈이에요?”

    “그래. 그 몹쓸 아들 녀석이 참고 기다렸으면 자기 것이 될 돈이기도 하지.”

    “설마 이 돈 전부를 저한테 주는 거시는 거예요? 금자 할머니가 그렇게 하라고 해요?”

    “설마 그러겠냐?”

    영감이 돈이 쌓여 있는 곳으로 갔다.

    “가로 열 뭉치, 세로 열 뭉치. 위로 백 단. 오만원권 한 묶음에 5백만 원이니까 한 단에 5억이네? 백 단이면?”

    “5, 5백억?”

    “금자 할멈이 예전에 유명한 복부인이었다고 하더라. 할멈이 산 땅들이 모두 금싸라기로 변했데. 사실 그 아들 녀석도 제 엄마가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는지 몰랐다고 하네. 할멈은 이 돈의 절반을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했데.”

    “나머지는요?”

    “광혜원이라고 들어봤어?”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얼마 전에 뉴스에 나온 도곡동 광혜원이요?”

    “그래.”

    도곡동에 있는 광혜원은 이름으로 알 수 있듯 고아원이다.

    “본래 광혜원 건물 주인이 죽고 그 아들이 재산을 물려받으며 광혜원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라고 했나 봐. 할멈 말로는 원래 건물주와 친했는데 아들에게 광혜원은 반드시 보존해달라고 했는데. 그 아들 녀석이 돈 욕심에 광혜원을 내쫓으려고 했대.”

    “어딜 가나 욕심 많은 아들이 문제네요.”

    “광혜원 건물의 가격이 450억 정도 한다고. 그 돈으로 광혜원 살려달래. 그게 할멈 부탁이야.”

    “450억이요? 가격이 살벌하네요. 그런데 그래도 50억이 남는데요?”

    인호가 은근한 말투로 말했다.

    영감이 못마땅한 눈으로 인호를 바라보며 말한다.

    “나머지는 네 수고비.”

    “오케이!”

    인호가 환하게 웃으며 돈더미에 다가가 냄새를 맡았다.

    “하아-, 새 돈 냄새는 언제 맡아도 좋아요.”

    “그렇게 영업, 영업 노래를 부르더니 돈 많이 벌어 좋겠다?”

    “하하, 좋죠. 그런데 이 돈을 다 어떻게 옮겨요?”

    “이곳, 사설 금고 직원에게 말하면 알아서 옮겨준대.”

    인호가 오만원권 한 묶음을 들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기다려라, 화염병. 오늘은 소고기 뭇국이다.”

    * * *

    “인호야. 50억으로 뭐 할 거야?”

    사기꾼이 생글생글 웃으며 인호의 옆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사무실 옮기자. 사실 여기 너무 좁잖아. 외지기도 하고. 이러니 손님이 오겠냐고. 그래. 이 기회에 차도 바꾸자.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15년이나 된 차를 타고 다녀? 요즘 사람들 3년만 되면 차 바꾼다. 외제차는 조금 그렇겠지? 국산 세단도 아주 잘 나와.”

    인호가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사기꾼을 보며 피식 웃는다.

    “생각만 해도 좋지? 사무실은 강남역 인근이 좋겠다. 보증금 많이 넣으면 월세도 쌀 거야. 차는 제네시스로 하고. 어때? 좋지?”

    “좋네. 아주 좋아.”

    인호가 커피 한 잔을 타서 소파로 돌아온다.

    “사기꾼.”

    “응? 왜?”

    “이 사무실이 나한테 어떤 의미인지 아냐?”

    “의미? 구질구질함의 상징? 그런 거야?”

    “유일하게 내 명의로 된 재산이다. 집도 전세고, 네 말대로 15년 된 차 중고로 팔아봐야 쇠 값밖에 더 나오겠냐? 여기가 내 유일한 재산이야. 그것도 아버지가 물려주신 유산이다. 그런데 여길 팔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영감이 대화에 끼어든다.

    “이 사무실 집기들도 모두 인호 아버지가 손수 하나하나 장만한 거야. 네가 앉아 있는 소파도 그렇고.”

    “아-, 그래서 하나 같이 다 구질구질하구나.”

    사기꾼이 인호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돈도 생겼는데 그냥 쌓아만 둘 거야? 돈이라는 건 쌓아두면 그냥 종이 쪼가리야. 써야 의미가 생기는 거라고.”

    “돈이 없어서 문제지 설마 돈 쓸 곳이 없겠냐?”

    인호가 한마디 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야, 어디 가려고?”

    문을 열고 나가던 인호가 웃으며 말한다.

    “돈 쓰러.”

    * * *

    “아이구, 할머니. 좀 적당히 쌓으세요. 이걸 혼자서 어떻게 끌어요?”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인호를 보고는 환하게 웃는다. 이빨이 다 빠져서 몇 개 보이지 않았다.

    “괜찮아. 그런데 어딜 가는 길이야?”

    “네. 일 좀 보러 가려고요. 그리고 할머니한테 볼 일도 있고요.”

    “나한테?”

    할머니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인호가 환하게 웃으며 뒤로 감추고 있던 손을 앞으로 내민다.

    인호의 손 위에는 아주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올려져 있었다.

    강아지를 본 할머니의 눈동자가 떨렸다.

    “해피야.”

    강아지는 털이 눈을 가리고 있는데 털의 색이며 외견이 얼마 전 죽은 할머니의 반려견 해피와 꼭 닮아 있었다.

    “해피 닮은 녀석 찾는다고 고생 좀 했어요.”

    인호가 어서 와서 안아보라는 듯 손을 앞으로 내민다.

    할머니가 다가와 떨리는 손으로 강아지를 안아 들었다. 아직 너무 어려 낑낑거리는 강아지를 품에 안기도 하고 볼에 부비기도 했다.

    “우리 해피 어렸을 때 모습을 꼭 빼다 박았네.”

    “그렇죠?”

    “나 주려고 산 거야?”

    “네. 할머니 혼자 계시면 쓸쓸하잖아요.”

    “고마워, 정말 고마워.”

    할머니가 환하게 웃었다. 웃고 있는데 눈동자가 글썽였다.

    “해피야. 우리 해피 할미하고 행복하게 살자.”

    강아지의 이름이 해피로 정해졌다.

    “네, 할머니. 해피하고 행복하게 사세요.”

    “집으로 가실 거죠? 제가 리어카 끌게요.”

    “아니야. 내가 해도 돼.”

    “해피 안고 오세요.”

    리어카를 끌고 앞장서니 할머니가 해피를 품에 안고 따라왔다.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언덕 위 할머니의 집 앞에 도착했다.

    할머니는 집 앞에 쌓여 있는 박스들을 보고는 의아한 듯 말했다.

    “누가 이런 걸 여기다 버리고 갔을고.”

    “버린 거 아니에요. 제가 시킨 거예요. 해피 사료하고 필요한 거 해서 이것저것 샀어요. 해피가 아직 아기라 밖에서 지내기 힘들 거예요.”

    “많이 비쌀 건데.”

    “괜찮아요. 제가 이번에 좋은 일 해서 돈 많이 벌었거든요.”

    “돈을 벌었으면 모아서 집도 사고 장가도 가야지.”

    “하하, 그러게요. 해피하고 안에 들어가 계세요. 제가 다 옮겨 놓을게요.”

    “미안해서 어째.”

    “괜찮아요. 저 힘 쎄요. 어서 들어가세요.”

    * * *

    인호는 바쁘게 돌아다녔다.

    죽은 혜미의 할머니 집에 냉장고와 세탁기를 바꿔 주고 평소 인연이 있던 이들에게 한 가지씩 선물을 했다.

    “자-, 이제 날개 부러진 선풍기하고 안녕이다.”

    “우와! 에어컨이다!”

    일곱 살 먹은 준민이 녀석이 환하게 웃으며 넓지 않은 방을 콩콩 뛰어다녔다.

    “감사해요, 오빠.”

    “감사는 무슨-. 학원 잘 다니고 있지?”

    “네. 오빠한테 폐만 끼치는 것 같아 너무 죄송해요.”

    “됐거든. 열심히 공부해. 그게 나한테 보답하는 거야. 알지?”

    “네, 오빠.”

    두 해 전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죽어 두 아이만 남게 되었다. 당시 누나인 인혜가 중학교 3학년이었고 준민이는 5살이었다.

    본래 두 아이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보육 시설로 가야 했다.

    하지만 죽은 어머니의 동생, 즉 이모가 두 아이의 양육권을 받으며 보육 시설로 가지 않게 되었다.

    “이모는 여전히 연락 없고?”

    “네.”

    이모라는 여자는 아이들의 부모님이 죽으며 남긴 보험금을 꿀꺽한 후 어디론가 사라졌다.

    서류 절차도 제대로 해결해 놓지 않아 이제는 보육 시설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법적으로 이모라는 보호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감을 통해 두 아이의 어려운 형편을 전해 들은 뒤부터 인호가 많지 않은 돈이나마 지원을 해주고 있었다.

    “준민이 내년이면 초등학생이네?”

    “네!”

    “학교 들어갈 때 삼촌이 가방 좋은 걸로 사줄게.”

    “우와! 신난다!”

    철없이 웃으며 방방 뛰는 동생을 보며 인혜가 미안한 듯 고개를 숙인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야, 임마. 이럴 때는 그냥 감사합니다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너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면 내가 몇 배로 다 받아 낼 거야. 그런 줄 알아.”

    “네, 꼭 갚을게요. 오빠가 주신 것들 다 몇 배로 꼭 갚을게요.”

    인혜가 환하게 웃는다. 그런데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인호가 그런 인혜의 어깨를 가볍게 안아주었다.

    “괜찮아. 힘들면 웃지 않아도 돼.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넌 그래도 되는 나이니까. 괜찮아.”

    인혜가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호가 준민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운 후 번쩍 안아 들었다.

    “준민아. 우리 오늘 갈비 먹으러 갈까?”

    “갈비요? 좋아요! 갈비다, 갈비!”

    “하하, 그래. 갈비다, 갈비. 갈비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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