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7화 (17/190)

제17화

최부자의 집은 굉장히 컸다.

우선 정원의 규모부터 남달랐다.

충청도이기에 서울만큼 땅값이 비싸지 않을 테지만, 이 정도 규모의 정원을 가꾸고 유지하려면 어지간한 재력으로는 꿈도 꾸지 못했다.

정원 뒤로 보이는 집 역시 대단했다. 지금까지 인호가 본 집들 중 이철호 회장의 집 다음으로 크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오셨습니까.”

60대 초반의 남자가 박갑수에게 다가와 꾸벅 인사했다.

“굿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예가 과하십니다.”

“아니지요. 누가 감히 계룡산 박 박수에게 함부로 하겠습니까. 그나저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여전하지요?”

“그렇지요.”

최부자로 보이는 남자가 착잡한 표정으로 대답하다 인호를 발견하고 박갑수에게 묻는다.

“저분은 누구십니까?”

“아주 용한 분이시지요.”

“용해요?”

“네. 충청도에 제가 있고, 전라도에 만신이 있다면 서울에는 이 친구가 있지요.”

“그 정도로 용하신 분이십니까? 모시는 분이 대단하신가 보지요?”

“하하, 저하고는 조금 다른 쪽으로 용합니다. 제가 이 집 일을 해결하지 못해 도움을 청했습니다.”

최부자, 최성찬이 인호에게 꾸벅 인사한다.

“최성찬이라고 합니다.”

“정인호라고 합니다.”

인호가 인사하며 명함을 건넸다. ‘극락 흥신소’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더 이상의 의문은 표하지 않는다.

박갑수가 이상한 사람을 소개할 리 없다는 믿음 때문이리라.

“들어가시죠.”

정원을 거닐며 박갑수가 상황을 짧게 설명해줬다.

“이 집 딸이 머물던 방에 계속해서 요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딸이 사용하던 방의 집기가 날아다니고 밤마다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려. 그리고 집 주인분과 안주인 되시는 분의 꿈에 날마다 나타나 서럽게 운다는 거야.”

한이 남은 망령들이 하는 전형적인 패턴이라 할 수 있다.

“일단 따님이 쓰시던 방 먼저 볼까요?”

최성찬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호와 박갑수를 2층으로 안내했다.

“느껴지냐?”

“네. 너무 선명하게 느껴지네요.”

2층에 올라오니 밖에서보다 확실히 망령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최성찬이 방문을 열었다.

방안을 살피던 인호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죽은 사람은 한 명인데 망령은 셋이 있네요. 왜 그럴까요?”

챙-

인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박갑수가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칼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기이한 모양으로 접은 종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칼은 박갑수의 분신과 다름없는 ‘신칼’이다.

인호가 손을 들어 박갑수를 저지한다.

“거참.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요.”

인호가 손을 들어 문 반대편의 침대를 가리킨다.

“미명귀未命鬼에 창귀倀鬼, 그리고 복살령腹殺靈까지 있네요. 흔히 보기 힘든 망령들이 다 모여 있네요.”

미명귀는 시집을 가서 일찍 죽은 여자 귀신을 뜻한다.

창귀는 물귀신, 혹은 호환을 당해 죽은 이들을 이르고.

복살령은 말 그대로 뱃속에서 태어나지 못하고 죽은 망령을 말한다. 태어나지 못했기에 ‘귀’가 아니라 ‘령’이라 불린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망령이 셋이나 되다니요?”

최성찬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 어떻게 합니까? 일단 제가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거든요. 집주인께서는 잠시 밖에서 기다리시겠습니까?”

“제 딸의 일입니다. 당연히 저도 있어야죠.”

인호가 고개를 젓자 박갑수가 나선다.

“일단 믿고 맡겨 보시지요.”

그 말에 최성찬이 고집을 꺾고 뒤로 물러섰다.

인호와 박갑수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인호는 근처의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인호가 말한 것처럼 침대에 세 망령이 앉아 있었다.

여자, 남자, 그리고 형태가 없어 흐릿한 덩어리처럼 보이는 망령까지.

“아가씨가 이 댁 따님이세요?”

“네.”

“그럼 옆에 분은요?”

물에 흠뻑 젖어 머리칼이 얼굴에 딱 달라붙은 시퍼런 낯빛을 가진 창귀, 망령을 보며 묻는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저 아기는 그쪽 뱃속에서 태어나지 못하고 죽은 거죠?”

“네.”

인호가 이해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어떤 상황인지 이해되셨어요?”

“이 댁 따님이 어떤 남자와 사랑했고 아이를 잉태했는데 죽었나 보군. 그래서 남자가 비관 자살을 했고 태중의 아이가 복살령이 된 것인가?”

“정확합니다.”

박갑수가 침대를 향해 몸을 돌린다.

“내가 이 친구처럼 그쪽 분들을 직접 보고 대화를 나눌 재주는 없어요. 하지만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은 있어요. 사람이 죽은 후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그쪽 분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에게 좋지 않다는 것. 이야기를 직접 듣지 못하니 뭘 원하는지도 몰라요. 다만 이 친구와 대화 잘 나누시고 부디 이승의 한은 모조리 떨쳐 버려요.”

그 말을 끝으로 박갑수가 방 밖으로 나갔다.

인호가 세 망령들을 보며 웃으며 말한다.

“자-, 이제 대화를 나눠볼까요?”

* * *

“여기가 맞습니까?”

“네. 그곳을 중심으로 찾아보시면 될 것 같네요.”

잠수 장비를 착용한 남자가 수경을 끼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최성찬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의 저수지였다.

인호는 자신의 옆에 선 창귀, 아니 최성찬의 딸 최은혜가 사랑했던 남자 서태곤을 바라봤다.

“정말 많이 사랑했나 봐요.”

“네.”

서태곤은 최은혜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곧바로 저수지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은혜는 제 삶의 이유였으니까요. 그리고 우리들의 아이는…….”

서태곤의 몸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울고 있는 것이리라. 인호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은혜 씨 아버님을 원망하지는 않으세요?”

“네. 아버님은 저라는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으니까요. 더더욱 은혜 뱃속에 아이가 있는 것도 몰랐죠.”

다행이다.

만약 서태곤이 최성찬에게 원한을 품었다면 이 정도로 일이 간단하게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손각시라 불리는 처녀귀신 만큼이나 무서운 게 물귀신이다.

한 시간가량 서태곤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찾았습니다.”

잠시 후 잠수부가 꺼낸 것은 바로 서태곤의 시신이었다.

죽음의 순간 삶의 애착이 생길지 몰라 자신의 몸에 무거운 돌을 쇠사슬로 묶고 자물쇠를 채운 후 열쇠를 물속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그 덕에 수중 용접을 할 수 있는 잠수부를 불러 쇠사슬을 잘라낸 후에야 시신을 꺼낼 수 있었다.

물에 불어 기괴한 모습이었지만 인호는 서태곤의 시신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음을 택할 만큼 용기를 지닌 사람이 아닌가.

장례 전문가가 와서 서태곤의 시신을 조심스럽게 다뤘다.

“걱정하지 말아요. 바라는 대로 다 이뤄 드릴 테니.”

* * *

최성찬의 아내는 대성통곡 중이었다.

“은혜야, 미안해. 엄마가 아무것도 모르고. 엄마가 미안해. 얼마나 엄마가 원망스러웠을까. 우리 딸 불쌍해서 어떻게 하누.”

그런 아내를 보며 최성찬 역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연은 이러했다.

최성찬의 아내가 딸 최은혜에게 선을 보라고 했다. 이미 서태곤을 사랑하고 있던 최은혜는 당연히 선을 보기 싫다고 했다.

어머니와 몇 번이나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최은혜의 뱃속에 서태곤의 아이가 잉태되어 있음은 알지 못했다.

그날도 최은혜는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고 집을 나섰다. 서태곤을 만나 위로를 받으려는 것이었다.

택시에서 내려 약속 장소로 가려던 중 최은혜는 음주운전 차량에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엄마가 미안해. 불쌍한 우리 은혜.”

최성찬이 인호에게 다가왔다. 소매로 눈물을 닦았지만, 눈물이 잘 멎지 않았다.

“담배 한 대 태우러 가시겠소?”

최성찬과 함께 정원으로 나왔다.

“나는 담배를 태우지 않습니다. 소장님이라도 한 대 태우세요.”

“저도 담배 안 피웁니다.”

멀리 있는 산을 아련하게 바라보던 최성찬이 말한다.

“고맙습니다.”

최성찬이 바라보고 있는 산은 오늘 딸 최은혜와 서태곤, 그리고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묻은 산이다.

최성찬이 갖고 있던 산 중에 터가 좋은 곳을 찾아 세 사람을 안장했다.

최은혜와 서태곤은 사혼식을 치러주었고 태어나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은 아이에게는 두 사람이 지은 태명을 붙여주었다.

“약소하지만 성의입니다.”

최성찬이 하얀 봉투를 건넸다.

인호는 사양하지 않고 봉투를 받아 품에 넣었다. 이 돈은 최은혜에 대한 사죄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집사람이 저 지경이라 멀리 마중은 못 나갑니다.”

“들어가서 위로해주세요.”

최성찬이 안으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박갑수가 다가온다.

“내가 빚 하나 졌다.”

“꼭 갚으세요.”

“당연히 그래야지. 언제고 내가 필요한 일 있으면 불러라. 그럼 나 먼저 간다.”

“차 타고 가시죠.”

“아니야. 시내에 사야 할 것도 있고. 운전 조심해서 올라가라.”

박갑수가 떠나가자 인호가 차에 올라타고 조금 전 최성찬이 바라보던 산으로 향했다.

이제 막 봉분을 만든 무덤 세 개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가운데 무덤은 아주 작았다.

인호가 다가가자 무덤 속에서 세 망령이 몸을 일으켰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인 걸요. 이제 한도 다 푸셨으니 가셔야 할 곳으로 가셔야죠.”

인호가 한걸음 옆으로 비켜선다. 그러자 뒤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저승사자가 앞으로 나섰다.

“가십시다. 조금 더 지체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망령들을 이끌고 떠나던 저승사자가 잠시 멈춰 몸을 돌리고는 말한다.

“최근에 네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다.”

“하하.”

저승사자가 몸을 돌리며 마지막 한 마디를 뱉었다.

“씨방새야.”

* * *

“아-, 거 쫌 나가서 영업 좀 뛰라니까? 여기서 빈둥거리면 누가 밥을 줘? 떡을 줘?”

소파에 앉아 뚱보를 괴롭히고 있던 사기꾼이 뚱한 표정으로 인호를 쏘아 본다.

“계룡산 잘 다녀와서 왜 그런데? 혹시 계룡산 박수가 돈 잘 벌어서 셈난 거야? 그런 거야?”

“헛소리할 시간 있으면 영업을 뛰라고.”

햄버거를 먹고 있던 뚱보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소미 씨 아빠한테 돈 많이 받을 거잖아.”

인호가 인상을 와락 구긴다.

“말 잘했다. 받을 거지. 받은 게 아니잖아. 야! 버는 돈은 없고 쓰는 돈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나도 돈돈 하기 싫거든? 그러니까 가서 영업 좀 뛰라고.”

사기꾼과 돼지가 구시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선다.

“하여튼 꼭 이렇게 해야 말을 들어요. 아니, 자발적으로 뭔가 하면 얼마나 좋아. 나라고 매번 이렇게 싫은 소리 하고 싶겠냐고.”

소파에 앉아 물을 마실 때 영감이 나타났다.

“어디 다녀오시나 봐요?”

“응. 저기 사거리 장례식장에 다녀왔어.”

“젯밥이라도 얻어 드시고 오셨어요?”

“뭐 그러려고 간 건 아니고. 주변 망령들한테 정보조사차 다녀왔지.”

“뭐 좀 건지셨어요?”

“건지긴. 얼마 전에 부장님 다녀가신 게 소문이 쫙 나서 망령들이 몸 사린다고 코빼기도 안 보여. 이게 다 너 때문이야.”

“하, 하하. 망령들하고 친목도모 못 하셔서 서운하셨어요? 아이코, 죄송합니다.”

“너는 꼭 말을 그런 식으로 하더라.”

영감이 다시 밖으로 나간다.

“어디 가세요?”

“알아서 뭐하게?”

벽에 고개만 쏙 내민 영감이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영감의 머리가 다시 벽 속으로 사라지자 인호가 다급히 외친다.

“금자 할머니가 어딜 좀 가라고 했다면서요. 거기가 어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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