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흥신소?”
박미라가 인호를 쏘아본다.
“남의 뒷조사나 하며 벌어 먹고사는 거머리가 여길 어디라고 와? 이 집사. 뭐해요? 당장 내쫓지 않고.”
인호는 박미라가 자신을 거머리, 버러지라 불러도 빙긋 웃고 있을 뿐이다.
의외로 얼굴에 불쾌함이 떠오른 것은 이철호였다.
“당신.”
“네.”
“말 좀 가려서 하지 그래?”
“제가 못 할 말이라도 했나요?”
“흥신소 하는 사람이 거머리고 버러지면 사채하던 사람은 뭐야?”
박미라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서, 설마 지금 우리 아버지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 거예요?”
“누가 그렇데? 그저 말조심하라는 말이야. 사채하던 장인어른도 처남, 아니 박 변호사 같은 장한 아들, 그리고 당신 같은 딸 키울 수 있는 거잖아.”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이철호는 박미라에게 주던 시선을 거두고 인호를 바라본다.
“자네.”
“네, 회장님. 말씀하십시오.”
“자네 말대로 다 불러 놨어. 이제 자네가 나설 차례야.”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나도 잘 몰라. 그저 이 친구가 뭘 좀 하겠다고 해서 하라고 한 것뿐이야. 뭘 할지 몰라도 당신하고 박 변호사가 있어야 한다더군.”
이철호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소파에 등을 기댄다.
인호가 박미라를 보며 묻는다.
“박미라 씨 맞으시죠?”
“…….”
“명동 사채 시장의 큰손 박성수 어르신 따님이시고요.”
“감히 그 입에 누구 이름을 올려!”
인호는 상관없다는 듯 박한경에게 묻는다.
“박한경 변호사님? 아버님이…… 여기 계신 박미라 씨하고 같은 분이시네요?”
“그렇습니다만.”
변호사라는 직업 때문인지 박한경은 박미라와 달리 차분했다.
“두 분은 이복 남매시네요. 박 변호사님이 전처 소생이시고 박미라 씨가 재혼한 분 소생이시네요.”
“당신이 이 자리에 있는 이유와 우리들이 이복 남매라는 것이 상관이 있습니까?”
“상관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어요. 자-, 지금부터 제가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릴 거예요. 어떤 이야긴지 궁금하시죠?”
인호가 빙긋 웃는다.
그 꼴이 보기 싫었는지 박미라가 인상을 찌푸린다.
“한 여자가 있었어요. 아버지가 대기업의 회장님인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난 여자죠. 불쌍하게도 여자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는 어린 딸을 위해 새장가를 갔죠. 새어머니는 여자에게 아주 잘해주셨어요. 자기 배 아파 낳은 자식처럼 정말 아껴주셨죠. 여자는 잘 자라 성인이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인호가 갈증이 나는지 박미라 앞에 놓인 차를 단숨에 비운다.
“경치 좋은 곳에서 사진이나 찍을까 해서 아버지의 별장에 가게 되었어요. 당연히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곳에 선객이 있었네요. 여자에게 아주 익숙한 차 두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고 하네요. 그 차가 누구 차였을까요?”
“…….”
“…….”
차분하던 박한경의 얼굴에 균열이 일어난다.
“여자의 새어머니와 외삼촌의 차였어요. 여자는 두 분이 왜 별장에 왔을까 궁금해서 몰래 안으로 들어갔죠. 그리고 그곳에서 봐서는 안 될 것을 보게 돼요.”
“그, 그만!”
박미라가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이철호가 더 크게 외친다.
“조용히 듣고 있어. 한 번 더 저 친구 말을 끊으면 내가 화가 많이 날 것 같으니까.”
“집사님. 잠시 이리로.”
집사가 인호에게 다가온다.
인호가 그의 귀에 무언갈 속삭인다. 집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2층으로 향했다.
“여자의 취미는 사진 촬영이었어요. 답답할 때 훌쩍 경치 좋은 곳으로 떠나 몇 날 며칠 사진만 찍다 오곤 했죠. 우연인지 그때 여자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있었죠. 여자는 보지 말아야 할 더럽고 은밀한 모습을 사진에 담게 돼요. 새어머니와 외삼촌은 자신들이 하던 추잡한 짓에 취해 그런 사실도 몰랐죠.”
그때 2층에 올라갔던 집사가 내려온다. 그의 손에는 서류 봉투 하나가 들려있었다.
인호가 이철호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집사가 봉투를 이철호에게 건넨다.
“여, 여보. 보지 마세요. 다 모략이에요.”
“뭐가 모략이라는 뜻이지? 이 안에 뭐가 들어있을 줄 알고?”
“당신도 아시잖아요. 박 변호사 제 오빠에요. 제가 어떻게 오빠하고-.”
“당신 이야기였어? 이봐, 자네. 지금 우리 집 이야기 한 거였어?”
인호가 어깨를 으쓱한다.
“글쎄요. 저도 오며 가며 들은 이야기라. 일단 그 사진 보시죠.”
이철호가 서류 봉투에 손을 넣자 박미라가 달려들었다.
짝-!
이철호의 손이 박미라의 뺨을 후려쳤다.
“가만히 있어. 이 이상 나를 자극하지 마.”
이철호가 손짓하자 경호원 두 명이 다가온다.
“지금부터 저 두 사람 못 움직이게 해. 알겠어?”
“네, 회장님.”
경호원들이 박미라와 박한경의 옆에 바짝 붙었다.
이철호가 서류 봉투에서 사진을 꺼내서 보는 이철호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후우-. 하, 하하.”
긴 한숨을 토해낸 이철호가 곧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토해낸다.
“박 변호사.”
“네, 회장님.”
“오래전 회사 창립 기념일에 동생을 데리고 온 것이 이런 이유였나?”
“아, 아닙니다. 오해십니다.”
“오해라고?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이철호가 사진을 박한경에게 집어 던진다. 공중을 부유하던 사진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두 사람이 육체적 욕망을 채우는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었다.
“이야기 계속할까요?”
“하게.”
“새어머니는 몰랐지만, 외삼촌은 그때 자신들의 추악한 짓이 들통난 것을 우연히 알게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의 고용인이 유서의 내용을 바꾸겠다고 하네요. 자신의 모든 재산을 딸에게 주겠다며 유서를 바꾼 거죠. 외삼촌은 생각합니다. 아-, 그때 그 일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쳤구나. 그리고 생각합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도 밥도 되지 않겠구나. 선수를 쳐야겠다. 그래서 여동생과 작당합니다. 회장의 유일한 상속자인 여자를 죽이기로.”
인호가 박미라를 향해 몸을 돌린다.
“블라우스가 아주 예쁘십니다. 딱 봐도 명품인 것 같네요. 명품 맞죠?”
“…….”
박미라는 몸을 부들부들 떨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너무 하셨네요. 그 블라우스. 그날 입으셨던 거잖아요.”
“무, 무슨 말이야?”
“응? 그런데 가장 아래 있는 단추 하나가 안 보이네요? 원래 열어두는 곳이라 모르셨나?”
박미라가 무의식중에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인호의 말대로 가장 아래쪽 단추 하나가 없었다.
“회장님.”
인호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한다.
“지금쯤 소미 씨 시신 찾았을 겁니다. 연락해 보세요. 소미 씨의 오른손에 뭐가 쥐여 있는지.”
까득하며 이가는 소리가 들렸다.
“김 박사. 나요. 그래. 차, 차…….”
이철호의 목소리가 거세게 떨린다.
“찾았다고? 우리 소미가 맞고?”
인호가 살짝 고개를 돌려 이철호를 바라본다.
이철호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벌겋게 변한 두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김 박사. 혹시 우리 소미 오른손에 무언갈 잡고 있소? 그래요? 그 손 펴 볼 수 있겠소? 기다리리다.”
잠시 말이 없던 이철호가 ‘알겠소, 고맙소’라는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당신.”
“…… 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있던 박미라가 화들짝 놀란다.
“그 옷 나와 함께 이탈리아 갔을 때 산 옷이지?”
“네? 네-, 마, 맞아요.”
“우리나라에서는 판매가 안 되는 옷이라 당신밖에 없다고 말했었지?”
대답 대신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만 요란하게 들렸다.
“왜 그랬나?”
“…… 뭘요? 저 아니에요. 똑같은 옷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건가?”
“오빠, 아니 박 변호사하고 그런 것은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소미는 정말 아니에요. 여보. 아니 회장님. 저 믿으시죠? 제가 얼마나 소미에게 잘했는지 아시잖아요. 제가 어떻게 그런 소미를 벼랑에서 떠밀어요.”
인호가 피식 웃는다.
“소미 씨 산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말한 적 없는데.”
“…….”
박미라가 무릎을 꿇고 기어서 이철호 앞으로 갔다.
“여보. 정말 아니에요.”
그녀는 이철호의 바짓자락을 잡고 벌벌 떨며 말하다가 인호를 쏘아보며 외친다.
“저 사람이 거짓말하는 거예요. 당신과 나 사이 갈라놓으려고 거짓말하는 거예요.”
“좀 떼어 놓지.”
경호원이 다가와 박미라를 뒤로 잡아끈다.
“이거 놔! 감히 어디 손을 대고 있어! 놓지 못해?”
경호원에게 질질 끌려가며 악을 썼다.
“이 집사.”
“네, 회장님.”
“밖에 있는 사람들 들어오라고 해.”
집사가 현관문을 열어주자 네 명의 남자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그중에는 인호가 잘 아는 얼굴도 섞여 있었다.
유 형사가 인호를 보고 살짝 고개를 숙인 후 동료 형사들과 함께 박미라와 박한경을 끌고 갔다.
여전히 울고 있는 이철호를 잠시 보던 인호가 몸을 돌렸다.
지금은 어떠한 위로의 말도 소용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 인호 씨.”
한 여자, 아니 여자 망령이 앞을 가로막는다.
“이 정도밖에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이소미였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리고 정말 고마워요. 인호 씨 아니었다면 아빠가 저 사람들에게 계속 속았을 거예요. 저-,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부탁이요?”
“네. 아빠가 저 어렸을 때 엄마 돌아가시고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울기도 많이 우셨고요. 그때마다 제가 아빠 울지 말라고 했던 게 있는데 부탁 좀 드릴게요.”
* * *
이철호가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다.
그 앞에는 인호가 서 있다.
“저…… 이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해 보겠습니다.”
인호와 이철호의 사이에는 이소미가 서 있다. 물론 그녀의 모습은 인호에게만 보였다.
이소미가 환하게 웃으며 허리에 손을 올린다.
인호가 멀뚱히 서 있자 ‘어서요’하며 보챈다.
인호가 허리에 손을 올리자 이소미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율동을 시작한다.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
한 발 한 발 옆으로 가며 손가락으로 볼을 누르고, 무릎을 굽혔다 펴며 환하게 웃기도 한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이철호가 인호가 하는 양을 바라본다.
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고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밤새 꿈나라엔 아기 코끼리가…….”
인호는 이소미가 추는 율동을 따라 추며 노래를 불렀다.
이철호는 그 모습을 보며 서럽게 울었다.
“소미야. 내 딸 소미야. 아빠가 미안해. 아빠는 우리 소미 위해서…… 소미 엄마 만들어 주려고…….”
이철호가 오열한다.
이소미가 간절한 눈빛으로 인호를 바라본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인호가 이철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회장님. 아주 잠시입니다.”
“무슨-.”
인호가 이철호의 어깨를 살짝 친다. 인호의 눈에서 파란빛이 반짝였다.
“아빠.”
갑자기 들려오는 말소리에 이철호가 흠칫 몸을 떨었다.
천천히 고개를 드니 그곳에는 환하게 웃는 이소미가 서 있었다.
살아 있는 상태가 아니라 그런지 반투명한 푸른빛의 모습으로.
“소, 소미야.”
“아빠. 울지마. 아빠가 울면 내가 너무 슬퍼지잖아. 이얏-! 우리 아빠 울지 말라고 내가 오리지널 버전으로 보여줘야겠다.”
이소미가 허리에 손을 얹고 율동을 시작한다.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
이소미를 보는 이철호가 울고, 그런 이철호를 보며 율동을 하는 이소미도 울고.
“하아-.”
몸을 돌리는 인호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