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극락 흥신소? 뭐야? 마누라가 보냈어?”
인호가 빙긋 웃는다.
“하! 거참-, 재밌네. 마누라가 얼마 주기로 했어? 백만 원? 아니지. 요즘 그쪽도 단가가 비싸졌지? 오백? 얼마 주기로 했는지 몰라도 내가 두 배 줄게.”
“두 배? 확 땡기는데?”
“뭐 가지고 있어? 수진이 하고 함께 찍힌 사진? 아니면 내가 수진이 사준 집? 뭔데?”
“아이고야. 점점 죄가 늘어나네.”
“무슨 개소리야!”
“일단 앉아.”
윤재상이 넥타이를 길게 늘어트리며 자리에 앉는다. 인호는 위스키 한 잔을 따라 윤재상에게 건넸다.
“갈증 나지? 한잔하자.”
인호가 잔을 들어 올리자 윤재상이 앞에 놓인 위스키를 단숨에 비웠다.
“뭐 하자는 건데? 이렇게 연출을 했으면 목적이 있을 거 아니야? 돈? 줄게. 얼마면 되는데?”
“글쎄. 얼마면 될까? 그것보다 혹시 지옥에 대해 알아?”
“지옥? 잘 알지. 지금 니가 앉아 있는 그 자리가 지옥이야. 나한테 이렇게 하고 멀쩡할 것 같아? 니가 갖고 싶어하는 돈 줄게. 대신 그 돈을 받는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할 거야. 그 대가가 바로 지옥이야.”
인호가 위스키를 들이켰다.
“등활지옥이라는 곳이 있다. 사람을 죽이면 가는 지옥이야. 뜨거운 불이 끊임없이 몸을 태워. 그런데 몸이 다 타면 찬 바람이 불어서 다시 깨어나네? 그리고 다시 태워. 그게 등활지옥이야.”
“왜? 내가 사람을 죽였을까 봐?”
“흑승지옥이라는 곳도 있다. 사람을 죽이고 도둑질까지 한 놈들이 가는 곳이야. 지옥의 옥졸들이 불로 달군 사슬로 꼼꼼히 묶어. 그리고 불로 이글거리는 가시덤불에 던지지. 그걸로 끝이냐? 아니거든. 활도 쏘고, 창으로 찌르고. 아무튼 끔찍한 곳이야.”
윤재상이 인호를 쏘아본다.
인호는 잔에 얼음을 넣고 위스키를 채운 후 다시 한 모금을 마셨다.
“규환지옥은 더 끔찍하지. 살인, 절도를 하고 음탕한 짓을 한 녀석들이 가는 곳이야. 기름이 펄펄 끓는 가마솥, 그도 아니면 단숨에 영혼까지 태워버릴 정도로 뜨거운 쇠로 만든 방에 갇히는 거야.”
쨍그랑-
윤재상이 잔을 집어던졌다.
“그래서 뭐? 내가 사람 죽이고, 도둑질도 하고, 음탕한 짓까지 했다고?”
“일단 하나는 네 입으로 시인했잖아. 수진이? 이름은 좋네.”
인호가 소파에 등을 기댄다.
“한 어머니가 계셨다. 돈이 많은 어머니셨어. 덕분에 아들놈은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이 잘 살았지. 먹고 싶은 것은 다 먹고, 갖고 싶은 것은 다 갖고 말이야. 그 아들놈이 어렸을 때는 엄마가 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어. 그런데 대가리가 커지다 보니 욕심도 커진 거야.”
윤재상이 입술을 질겅인다.
“엄마가 갖고 있는 것까지 갖고 싶어진 거지. 때 되면 알아서 다 자기 것이 될 텐데 말이야. 그래서 어떻게 했게? 패륜이라는 말 알아? 패륜을 저지른 거야.”
인호가 앞에 놓인 젓가락을 든다.
“푹-, 푹-, 푹-.”
“그만해. 이 개새끼야.”
인호가 윤재상을 보며 계속 무언갈 찌르는 시늉을 했다.
“열두 번을 찔렀네. 그렇게 엄마는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났어. 하지만 아들놈은 웃었어. 왜? 엄마의 것이 다 자기 것이 되었으니까. 그런데 그 아들놈이 몰랐던 것이 있어. 그게 뭘까?”
눈이 벌겋게 변한 윤재상이 인호를 노려본다.
“뭘 몰랐냐고? 열두 번을 찔린 어머니가 아들놈이 떠나갈 때까지 살아 있었다는 거. 그리고 그 아픈 몸을 이끌고 아들놈이 흘리고 간 시계를 감춘다고 마지막 숨을 붙잡고 주방까지 기어가 숨겼다는 거.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호가 빙긋 웃는다.
하지만 인호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다.
“그 아들놈이 패륜을 저지르고도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거란 거.”
“무, 무슨 개소리야!”
인호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말한다.
“너 좋은 시계 차더라. 그게 2억이 넘는다며? 그 시계 니 어머니 주방 싱크대 밑에 숨어있다.”
“닥쳐!”
“어떻게 하냐? 조만간 경찰이 그 시계 찾을 텐데.”
윤재상이 벌떡 일어나 입구로 달려간다.
쾅- 쾅- 쾅-
“문 열어. 당장 문 열라고!”
“안 열려. 말했지? 그 문 열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야.”
“그게 누군데!”
“알고 싶으면 앉아.”
윤재상이 다시 자리에 앉는다.
“왜 그랬냐?”
“뭘? 다 알면서 뭘 물어? 아들놈이 자기 것이 될 것을 미리 갖게 된 거지.”
“그래서 어머니를 열두 번이나 찔렀냐?”
“열두 번이었어? 그거까지는 못 셌네.”
“조금의 죄책감도 없냐?”
“그런 게 있었으면 엄마를 찌를 수 있었겠냐?”
인호가 다시 웃는다. 여전히 눈에선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래. 고맙다. 이렇게 다 말해줘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혹시 녹음이라도 하고 있어? 그런데 어쩌나? 당사자의 동의가 없는 녹음은 증거로 아무런 효력이 없는데.”
“그런데 어쩌나?”
인호는 윤재상이 한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여기 당사자가 있는데.”
윤재상의 옆에는 그의 어머니인 할머니가 앉아 있다. 할머니의 눈에도 쉴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 *
“놔! 이거 놓으라고! 내가 누군지 알아? 어디서 나왔어? 강남서? 내가 강남 경찰서 서장하고 어떤 사인지 알아?”
“네, 네. 잘 알겠어요. 어떤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강남 경찰서 서장님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일단 경찰서로 가 봐요.”
유 형사는 후배 형사가 윤재상을 끌고 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룸 안으로 들어왔다.
“소장님. 저도 한 잔 주세요.”
꼴꼴꼴-
“지금 일하는 시간 아니야?”
유 형사가 소매를 걷으며 말한다.
“아-. 이제 막 근무가 끝났네? 시간이 참 빨리 가요.”
“시계도 없는 놈이 소매는 왜 걷어. 한잔하자.”
인호가 유 형사와 잔을 부딪쳤다.
“이번에도 그렇게 아신 거예요?”
인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덕분에 나쁜 새끼 잡을 수 있었어요.”
“증거품은?”
“이미 챙겨서 국과수에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 시계가 2억이 넘는데요. 아셨어요?”
“알았지. 그래서 더 속이 쓰리지.”
유 형사가 위스키를 들이켰다.
“세상이 말세에요. 돈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내가 그 새끼한테 말하지 않은 게 하나 있어.”
“그게 뭔데요?”
잔을 빙빙 돌린 인호가 위스키를 마신 후 말한다.
“무간지옥.”
“지옥이요?”
“무간無間. 없을 무, 틈 간. 틈이 없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고통이 멈출 틈이 없어. 그곳이 바로 무간지옥이야.”
“그런 새끼는 무간지옥인지 하는 그곳에 가도 돼요. 한 잔 잘 마셨습니다.”
“벌써 가게?”
“저 새끼하고 만남의 시간 가져야죠. 갑니다.”
유 형사가 문을 열고 나갔다.
인호가 남은 술을 단숨에 비운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조금 전까지 윤재상이 앉아 있던 곳에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아들 죄 감추려고 그렇게 노력하셨는데 제가 다 망쳐 버렸네요.”
유 형사가 말했던 칼로 찌르면서 끌고 다녔다던 그 자국은 할머니가 윤재상의 시계를 감추기 위해 억지로 기어서 움직인 자국이었다.
“아드님이 더 이상 죄를 지으면 안 되잖아요.”
“이미 죗값이 크잖아요. 무간지옥이라고 했나요? 그곳이 정말 있나요?”
인호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쪽 덕분에 우리 아들 더 이상 죄를 안 지어도 되잖아요. 며느리한테도 미안하네요. 재상이 감싼다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어요. 나 대신 며느리한테 말 좀 전해줄래요? 미안하다고.”
“네…… 크흡-, 네. 꼭 전해 드릴게요.”
감정을 추스른 인호가 할머니에게 고개를 숙인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죗값은 나중에 치르겠습니다.”
할머니가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한데 부탁 하나 할 수 있을까요?”
“말씀하세요.”
할머니가 인호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아까 말한 그 무간지옥이라는 곳…… 재상이 대신 내가 가면 안 될까요?”
인호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 * *
수많은 위패가 모셔져 있는 방.
향에 불을 지핀 인호가 방석 위에 바른 자세로 앉았다.
- 이금자李金子.
정성스럽게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다.
지전에 불을 붙여 향로 위에 놓는다.
“인생만사. 인간이 살아가며 만 가지 일을 겪는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겪지 말아야 할 일도 있고 반드시 겪어야 할 일도 있다고 합니다.”
인호는 잠시 말을 끊은 후 다시 입을 뗀다.
“남들은 겪어보지 못한, 아니 겪지 말아야 할 일을 겪으셨습니다. 부디 이승에 남긴 것 없이 미련 없이 떠나셨으면 합니다.”
향로 앞에는 할머니, 이금자가 웃고 있었다.
“미련 없어요. 걱정이 남을 뿐이에요.”
“죄송합니다.”
“그쪽이 미안해할 거 없어요. 제가 자식 교육 잘못한 탓이에요. 그럼 이만 갈게요.”
인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큰절을 올린다.
“부디 좋은 곳으로 모셔 주세요.”
이금자의 옆에 모습을 드러낸 저승사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인호를 쏘아본다.
한참을 그렇게 인호를 보던 저승사자가 이금자에게 몸을 돌린다.
“망자 이금자.”
“네.”
이금자가 웃으며 답한다.
“갑시다. 조금 늦으면 삼도천 마지막 배를 놓쳐요.”
흐릿해지는 이금자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인호가 이를 꽉 깨물었다.
“윽-, 크흑-.”
고통을 억지로 참으며 벽에 등을 기댄다.
와이셔츠 위로 드러난 살이 꿀렁거린다. 그리고 잠시 후 그곳에 검은 문양이 새겨졌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던 인호가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헉-, 헉-. 부모란 그런 거다. 모든 걸 주는 거다. 자신의 목숨마저 주는 것이 부모다.”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는다.
“누군가는 그렇게 보고 싶고, 불러보고 싶은 엄마다.”
* * *
“영감님.”
“왜?”
소파에 앉은 영감이 사기꾼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직도 안 풀렸어요? 결국 내가 인호 데리고 가서 다 잘 풀렸잖아요.”
“잘 풀려? 이게 잘 풀린 거야?”
“죄를 지으면 죗값을 치러야 하잖아요. 더욱이 패륜이에요. 그 새끼 떵떵거리면서 잘 사는 모습 보고 싶었던 거예요?”
“…….”
영감은 대답하지 못했다.
“영감님. 다 순리대로 된 거예요. 더 이상 미련 두지 마세요.”
“왜 불렀어?”
“아-, 인호 어머니 말이에요. 내가 한 번도 못 봐서 그런데. 어떤 분이세요?”
“갑자기 그건 왜?”
“그냥 궁금해서요.”
사기꾼은 이금자를 보며 하염없이 울던 인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냥 모르는 편이 좋아.”
“그래도 우리가 가족 아닙니까? 가족끼리 비밀 있으면 되겠습니까? 나도 뭘 알아야 인호 힘들 때 힘이 되어 줄 거 아닙니까.”
“휴우-.”
영감이 긴 한숨을 토해낸다.
“인호네 집안, 그러니까 정씨 집안에 시집온 여자들은 다 똑같은 최후를 맞이해.”
“최후요?”
“그래. 너도 알겠지만 인호가 하는 일이 평범하지는 않잖아.”
“그렇죠.”
“업보라는 것이 있다. 인호의 조상들이 쌓은 그 업보가 대를 이어 그 자식에게 전해져. 그러면 그 자식을 잉태한 여자라고 해서 멀쩡할까?”
사기꾼이 벽에 걸린 사진들을 힐끔 바라본다.
“대대로 정씨 가문 사람들은 단명한다. 오지랖이 하도 넓어 쌓지 않아도 될 업보를 쌓기 때문이야. 덕분에 생목숨 하나 잃는 거지. 정씨 집안 남자와 결혼한 여자는 그 업보를 잉태한다. 그래서 결국 단명하게 돼.”
“그러면 인호는 엄마 얼굴도 기억 못 하는 거예요?”
“인호 엄마가 인호 세 살 되던 해에 죽었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인호는 지 엄마 기억해. 그래서 더 힘들어하는 거다.”
영감이 사기꾼에게 말했다.
“그러니 더 이상 인호 들쑤시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