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여기 무슨 일 났어요?”
인호가 은근슬쩍 끼어들며 물었다.
“저기 6층 사는 할머니가 죽었어요.”
“할머니요?”
“네. 어떤 미친 싸이코패스 새끼가 할머니를 글쎄 열두 번이나 칼로 찔렀데요.”
옆에 있던 여자가 누가 들을세라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그런데 그 이야기 들었어? 경찰들이 사건 현장 조사하려고 집에 들어가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대.”
“이상한 일이요?”
“네. 막 물건이 지 혼자 날아다니고 이상한 비명 소리도 들리고 그런데요.”
폴리스 라인 근처에는 경찰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인호가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본다.
“느껴지지.”
사기꾼의 말에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위쪽에서 강렬한 영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주민의 말대로 경찰들을 괴롭히는 망령이라면 악한 기운이 느껴져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가 봐야 알 것 같은데.”
영감이 저 위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요즘 서성인다는 할머니 망령은 저곳에서 죽은 할머니일 것이다.
“경찰들이 막고 있는데 어떻게 들어가려고?”
“다 방법이 있지.”
인호가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 때였다. 막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전화가 걸려왔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인호가 전화를 걸려던 그 사람이었다.
“어-, 유 형사. 오랜만에 전화했네. 참 타이밍 기가 막히다.”
인호가 빙긋 웃는다.
- 이상한 일이 생겨서 자문 좀 구하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이상한 일?”
대화를 나누는데 이상하게 상대의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누군가 폴리스 라인 안쪽 빌라 입구에서 걸어 나왔다. 전화를 귀에 대고 있는 건장한 체격의 사내는 인호를 발견하고는 피식 웃는다.
“하하, 소장님.”
“유 형사도 여기 있었어?”
“저희 관할 아닙니까. 그러는 소장님은 왜 여기 계세요?”
인호가 위를 힐끔 쳐다본다.
“근처를 지나고 있었는데 평범하지 않은 기운이 느껴져서 와 봤지.”
“역시 소장님이시네요.”
“무슨 일인데?”
“살인사건이에요. 그런데 사건 현장에서 이상한 일이 자꾸 생기네요.”
“물건이 막 날아다니고 비명 소리도 들리고?”
“어떻게 아셨어요? 이제 예지력도 생기신 거예요?”
인호가 피식 웃으며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주민들을 향해 눈짓했다. 유 형사가 ‘아’하며 인호의 팔을 잡아끌었다.
“저 좀 도와주세요.”
“내가 뭐 도와줄 게 있나. 그리고 민간인이 막 사건 현장 들어가고 그래도 돼?”
“저하고 같이 가는데 누가 뭐라고 합니까? 일단 들어가시죠.”
유 형사는 폴리스 라인을 넘으며 인호를 ‘자문을 구할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으로 올라간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또 폴리스 라인이 보였다.
입구에 한 남자가 인상을 찌푸린 채 서 있었다.
“유 형사. 어디 갔다 온 거야?”
“전문가 모셔왔습니다.”
“전문가? 무슨 전문…….”
말을 하다 인호를 발견한 남자가 피식 웃는다.
“대단한 전문가 오셨구만.”
“오 반장님도 계셨네요. 잘 지내셨죠?”
인호가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오 반장이 고개를 흔든다.
“아니, 잘 못 지냈어. 지금도 아주 불편한 상태고.”
“저 좀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끄응-.”
오 반장이 앓는 소리를 내다 길을 열어준다.
“방법이 없어서 허락하긴 하지만 난 아직도 너 안 믿어.”
“네, 네. 그러시겠죠. 저 믿지 마세요. 하지만 결과는 믿으셔야죠. 지난번 사건도 결국 제 말이 맞았잖아요. 그때 오 반장님이 곤란하셨던 건 아는데 결국 진범 잡았잖아요. 그러니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으십시오.”
“알겠어. 알았으니까 들어가 봐.”
인호가 안으로 들어가며 인상을 찌푸렸다. 피비린내 때문이었다. 넓은 거실이 온통 피바다였다.
거실 중앙에는 테이프로 사람이 쓰러진 모양을 그려 두었는데 할머니가 저곳에 쓰러져 죽은 것 같았다.
시체가 놓인 곳 주변으로 핏자국이 무언가로 쓸어내린 듯 길게 죽죽 그어져 있었다.
“미친 새끼가 칼로 찌르면서 질질 끌고 다닌 것 같아요.”
“하, 하하.”
“큰일이에요. 날이 갈수록 살인 수법이 흉악해지고 잔인해지고 있어요. 어때요? 뭐 좀 보이세요?”
인호가 몸을 돌려 오 반장에게 말한다.
“반장님. 죄송하지만 사람들 좀 물려 주시죠.”
못마땅한 눈빛으로 인호를 바라보던 오 반장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건 현장을 조사 중인 국과수 요원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오 반장마저 나가자 실내에는 인호와 유 형사만 남게 되었다.
인호가 소파 쪽을 바라보며 짜증 섞인 음성으로 말한다.
“영감님. 왜 여기 있어요?”
“영감님? 여기 누가 있어요? 아-, 소장님 주변에 있다는 그 망령들인가요?”
인호가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로 입을 가렸다.
소파에는 두 망령이 앉아 있었다.
영감과 이곳에서 죽은 할머니인 듯 보이는 망령이다.
“지금 굉장히 위험한 상태인 거 알아요?”
실제로 영감의 영체는 굉장히 흐릿해져 있었다.
“알아. 미안해. 저 사기꾼 녀석은 왜 데리고 온 거야?”
“저 사기꾼 녀석이 영감님 여기 있다고 알려 줬거든요? 사기꾼이 영감님의 생명의, 아니지 망명의 은인이에요. 그보다 왜 여기 있는데요?”
“사정이 좀 있었어.”
영감이 소파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힐끔 바라본다. 그러자 인호 역시 할머니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주 고운 할머니였다.
“할머니.”
“네.”
“죽으신 거 아시죠?”
“네, 알아요.”
“죽으셨으면 저승사자 따라서 명부로 가셔야지 왜 여기 아직도 이러고 계세요? 막 물건 내던지고 비명 지른 건 할머니가 하신 거죠?”
할머니가 인호를 멀뚱히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인호 옆에 어색하게 웃고 있는 영감을 바라본다.
“하아, 정말 내가 미치겠다. 영감님이 그랬어요?”
“다 사정이 있다니까.”
“도대체 무슨 사정이길래 경찰이 살인사건 수사하는 걸 방해해요?”
유 형사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 하자 인호가 손을 들어 저지했다.
인호는 영감과 함께 거실에서 조금 떨어진 주방으로 갔다.
“말해봐요.”
영감은 어색하게 웃으며 딴청을 피웠다.
“뭔데요? 뭔지 알아야 제가 뭐라도 할 거 아니에요.”
“그게 뭐냐면…….”
* * *
치익-
유 형사가 담배를 빨아 연기를 뱉는다.
“소장님은 담배도 안 태우시면서 라이터는 왜 들고 다니세요?”
“영업이지, 영업. 봐라. 지금도 영업하고 있잖아.”
“제가 영업 당하고 있는 거예요?”
“일단 그렇다고 하자.”
인호는 담배를 피우는 유 형사를 잠시 바라보다 입을 연다.
“범인은 곧 잡힐 거야.”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시네요. 뭔가 알아내셨나 봐요.”
“알아냈지. 그런데 바로 알려 줄 수는 없고.”
“뭔데요?”
“그런 게 있어.”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요.”
그러자 인호가 유 형사에게 지나가는 투로 툭 묻는다.
“유 형사는 지옥에 대해 좀 아나?”
* * *
“어딜 자꾸 가자 그래?”
“가보면 안다니까.”
“거참, 오늘따라 많이 이상하다? 왜 그러는데?”
“이 형이 좋은 곳 뚫었잖냐. 좋은 건 나눠 먹으라 했다고. 내가 특별히 너하고만 나눠 먹는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차에서 내린 남자가 조수석에서 내린 남자의 팔을 잡아끈다.
끌려가는 남자가 이상하다는 듯 친구를 바라본다.
“왜 그러는데? 부탁할 거 있어?”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순수하게 술 한잔하자는 거야. 여기 정말 죽인다니까.”
“너 요즘 도박한다더니 그거 때문에 이러냐? 나 요즘 엄청 피곤하거든? 얼마 필요한데?”
“아-, 새끼. 그런 거 아니라니까. 일단 들어가자. 들어가 보면 내가 왜 이러는지 다 알 거야.”
결국 친구의 팔을 뿌리치지 못하고 입구로 들어선다. 남자는 지하로 내려가기 전에 간판을 확인했다.
“노블레스? 이름은 좋네.”
지하로 내려가니 넓은 홀과 아름다운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 이틀 전에 오셨던 우리 잘생긴 오빠 아니세요? 벌써 제가 보고 싶었어요?”
“하, 하하. 그렇지 뭐. 내가 오늘 귀한 손님 모시고 왔으니까 정말 잘 모셔야 해.”
“두말하면 입 아프죠. 이쪽이 귀한 손님? 안녕하세요. 노블레스 제시라고 해요.”
“아-, 네.”
친구의 손에 끌려 온 윤재상은 자신을 제시라고 소개한 여자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인다.
“우리 가게 처음이시죠?”
“네. 그렇죠.”
“오빠는 친구 잘 둔 덕에 오늘 계 탄 거예요. 혹시 좋아하는 여자 스타일이 어떻게 돼요?”
“그게…….”
제시의 손에 이끌려 걸어가던 윤재상이 한쪽에 앉아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머리털이라고는 한 올도 없는 반짝이는 머리를 가진 남자였다.
남자는 윤재상을 보고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윤재상이 제시와 함께 사라지자 환한 머리를 가진 남자가 그 머리만큼이나 환하게 웃는다.
“부디 좋은 시간 보내라고.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 * *
“재상아.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야! 룸에 화장실도 없는 곳에 날 데리고 온 거야?”
남자가 엉덩이로 손을 가져간다.
“똥이다, 똥. 미안하다. 금방 들어갈게.”
“에라이, 더러운 새끼야.”
“오빠. 더러운 오빠는 볼일 보라고 하고 우리는 들어갈까요?”
제시가 룸의 문을 연다.
윤재상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룸 안이 너무 캄캄했다. 그가 제시에게 뭔가 물어보려 할 때였다.
탕-
문이 잠긴다.
덜컥- 덜컥-
쾅- 쾅-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문 안 열어?”
윤재상은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지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문을 두드리고 있을 때 안쪽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렸다.
“그래봐야 문 안 열려.”
“누, 누구야!”
캄캄한 실내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탁-
작은 소음과 함께 주변이 밝아졌다.
커다란 대리석 테이블이 보이고 상석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더운 여름 날씨에 에어컨도 틀지 않았는데 남자는 검은 겨울 정장을 입고 있었다.
“당신 누구야?”
“나? 글쎄. 과연 내가 누굴까?”
“지금 나랑 장난해? 너 누구야? 내가 누군지 알아? 상혁이 새끼하고 뭔가 꾸미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야. 당장 문 열어.”
“그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야.”
“그게 누군데? 너야? 아니면 상혁이 이 씹새끼? 그게 누구냐고!”
윤재상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일단 나는 아니니까 소리 좀 그만 질러라. 고막 터지겠다. 소리 지르니까 목 아프지? 앉아.”
“너 뭐 하는 새끼냐고!”
“그게 그렇게 궁금해?”
남자가 지갑에서 뭔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린 후 손가락으로 툭 쳤다. 윤재상이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을 집어 든다.
명함이었다.
그 위에는 ‘극락 흥신소 소장 정인호’라고 적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