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1화 (11/190)

제11화

넥타이는 목에 감긴 줄을 빙빙 돌리며 주방에서 음식 장만 중인 인호를 힐끔거렸다.

소파에 앉은 화염병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다.

“오늘도 똥국이고만.”

“쉿-!”

넥타이가 눈을 부라렸다.

“인호 성질 건드리지 마라. 잘못하면 똥국도 못 얻어먹는다.”

“무슨 일 있데?”

“어제 사기꾼 녀석 왔다 갔는데 인호 목돈 나갔다더라.”

“목돈? 어디다 돈을 쓰고 젯상에 올릴 음식 준비할 돈이 부족해? 너무하는 것 아니야?”

“조용하라고.”

순간 칼질 소리가 잠시 멈추자 넥타이가 다시 눈을 부라렸다.

“억울하게 죽은 처자 할머니가 살 집을 사는 데 돈이 조금 부족해서 보탰다고 하더라.”

“하여간 지 앞가림도 못하면서 오지랖은 우주 최강이라니까.”

탁-!

칼이 도마를 때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손에 칼을 쥔 인호가 몸을 홱 돌리며 화염병을 쏘아본다.

“그래. 나 오지랖 넓다. 그 덕에 팔자에도 없는 망령들 젯상 준비한다고 이러고 있다. 이 기회에 그냥 오지랖이고 뭐고 다 때려치워?”

“하, 하하. 우리 인호가 오늘따라 왜 이리 예민하실까? 화염병도 니가 걱정되니까 하는 소리잖아.”

“걱정은 얼어 죽을……. 매일 지 젯상에 고기반찬 안 올린다고 구시렁거리기만 하지. 아니, 살아생전에 고기 못 먹고 죽었어? 왜 이리 매일 고기 타령이야?”

그 말에 화염병이 발끈했다.

“그래. 고기 못 먹고 죽었다. 어쩔래? 집구석이 하도 가난해서 고기 못 먹었다. 살아생전 제대로 먹어보지도 못한 고기 죽어서 좀 먹겠다는 게 그리 잘못됐냐?”

“잘못 아니지. 앞으로 고기 많이 먹고 잘 살도록 해. 나가는 문은 어딘지 알지? 그동안 즐거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화염병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인호의 옆에 다시 나타난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고개를 푹 숙인 화염병이 말했다.

인호의 집에 사는 망령들은 집을 떠나지 못한다. 인호의 영력이 미치는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있는 애들은 밥값이라도 하지. 니들은 뭔데? 매일 집에서 탱자탱자 놀면서 밥이나 축내고 있잖아. 그러니 제발 좀 불평은 그만해라. 알겠냐?”

* * *

사무실에 들어선 인호가 인상을 와락 구긴다.

“어이쿠, 이게 누구신가? 적지에 동료를 혼자 내팽개치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도망치신 망령님들 아니신가?”

“하하하, 오해야, 오해.”

사기꾼이 씨익 웃으며 인호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털어주고는 그를 소파로 이끈다.

“설마 그랬겠냐? 뭐 어떻게 아다리가 딱 맞아떨어져서 부장님 오실 때 우리들이 열심히 일하고 싶어진 것뿐이지. 이해하지?”

“이해는 개뿔. 어딜 쏘다니다 며칠 만에 온 거야. 위험한 거 몰라?”

인호의 사무실에 머무는 망령들 또한 인호의 영력의 영향을 받는다.

집에 있는 망령들에 비해 영성이 강하지만 며칠 동안이나 인호의 영력에서 벗어나 있으면 위험했다.

“우리 인호 많이 걱정했구나.”

“걱정? 이걸 확 그냥 강제로 승천시켜버려?”

“릴렉스, 릴렉스. 우리들이 그동안 뭘 했는지 알면 아주 깜짝 놀랄걸?”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야?”

인호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바게트를 전투적으로 씹어 삼키던 뚱보가 외친다.

“사고 안 쳤거든? 우리 일하고 왔거든?”

“일? 무슨 일? 또 어느 장례식장 가서 이제 막 죽은 망령들한테 사기나 쳤겠지.”

“이씨, 아니거든. 정말 일 했거든. 우리들이 관악산에서…….”

“쉿. 거기까지.”

사기꾼이 뚱보의 말을 끊는다.

“관악산? 무슨 말이야? 관악산에서 뭘 했는데?”

사기꾼이 특유의 간사해 보이는 웃음을 짓고는 ‘딱’하며 손가락을 튕긴다.

“이만 안으로 들어와.”

“뭐? 누가 들어와?”

그때 창문을 뚫고 한 망령이 쑥 들어온다. 그 망령을 보는 순간 인호가 빽하고 언성을 높였다.

“야! 아무 망령이나 막 데리고 오지 말라고 했지? 앙? 여기가 무슨 망령들 반상회하는 곳이야? 그리고 저 꼴은 또 뭐야?”

들어온 망령은 여자였다.

그런데 평범해 보이는 모습은 아니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듯 머리가 으깨져 있고 팔다리가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딱 봐도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망령이구만!”

“아니에요! 저 자살하지 않았어요.”

여자 망령이 뾰족한 목소리로 외쳤다.

“알겠어요. 그쪽 자살 안 했다고 해요. 거참 성깔 있네. 그나저나 니들은 여기까지 데리고 올 거면 정상적인 모습으로 데리고 와도 되잖아.”

“죽었을 때 모습을 봐야 할 것 같아서 일부러 그랬어.”

인호가 한숨을 내쉬고는 여자 망령에게 말한다.

“이름이 뭐예요?”

“이소미요.”

“좋아요, 소미 씨. 지금 본인 모습이 흉측한 것은 알고 있어요?”

이소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 모습조차도 굉장히 괴기스러웠다.

“소미 씨.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요. 소미 씨. 죽기 전 거울 봤죠?”

“네.”

“그때 모습을 떠올려 봐요. 그리고 그렇게 되고 싶다고 강하게 염원해요.”

이소미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일단 시키는 대로 해 봐요.”

이소미가 눈을 감는다. 순간 그녀의 몸이 일렁이더니 희미한 빛이 그녀를 감싸고 잠시 후 사라졌다.

“이제 좀 보기 좋네.”

머리가 터지고 사지가 꺾여 있던 이소미의 모습이 변해있었다.

이소미는 정상으로 돌아온 자신의 팔다리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어떻게 된 거예요?”

“간단해요. 소미 씨 살아생전의 모습으로 변한 거예요. 망령들은 죽는 순간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 그 모습 그대로 지내거든요. 하지만 지금 하신 것처럼 하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어요. 자-,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죠? 일단 앉아봐요.”

이소미가 소파에 앉는다.

인호가 커피포트에 물을 끓인다. 선반 위에 놓인 병에서 찻잎으로 보이는 것을 꺼내 뜨거운 물로 우려낸다.

“망한초라는 잎으로 우린 차에요. 망령들이 유일하게 맛을 느낄 수 있는 차에요. 참고로 그거 비싼 겁니다.”

“비싸기는 개뿔…….”

“쓰읍-.”

인호가 사기꾼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이소미가 망한초 차를 마신다. 표정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인호는 무릎에 팔꿈치를 올린 채 상체를 살짝 숙이며 이소미에게 묻는다.

“이제부터 소미 씨 이야기를 해 볼까요? 자살이 아니라고 했죠? 그러면 소미 씨를 누가 죽였죠?”

“엄마요.”

“네?”

인호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아-, 새엄마요.”

“아-! 새엄마. 새어머니가 왜 소미 씨를 죽였을까요?”

“소미 씨 아버님 직업이 뭔지부터 물어봐.”

사기꾼이 인호의 옆에 냉큼 앉으며 말한다.

“고객님하고 대화 중인데 자꾸 끼어들어라? 좋아요. 소미 씨 아버님 직업이 뭐예요?”

“회장님이요.”

“아-, 회장님이셨구나. 하하, 회장님. 나도 회장님 많이 아는데. 동네 조기 축구회 회장님도 알고, 상가 번영회 회장님도 알고. 우와-, 무려 나도 대한민국 영매 협회 회장이야. 하하, 농담이고요. 아버님이 회장님이시라고? 어떤 회장님이신데요?”

인호의 말이 웃겼는지 이소미가 피식피식 웃는다.

“대은 그룹 회장님이세요.”

“대은 그룹이요? 내가 아는 그 대은 그룹? 재계 서열 5위 그 대은 그룹?”

“네, 맞아요.”

“아버님 함자가 이 철자 호자 쓰세요?”

이소미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쩐지 낯이 많이 익더라니. 소미 씨 티비에도 몇 번 나오고 그랬잖아요.”

“아빠하고 같이 몇 번 나갔었죠.”

사기꾼이 옆에서 ‘구라는’하고 중얼거리자 인호가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사기꾼의 몸이 뒤쪽으로 훅 밀려났다.

인호가 소파에 등을 기대며 심각한 표정으로 묻는다.

“소미 씨, 새어머니가 왜 소미 씨를 죽였을까요?”

“그걸 꼭 들어야 아냐? 재벌 집안이잖아. 돈 많은 사람들이 서로 물고, 뜯고, 할퀴고, 죽이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

“돈.”

“그렇지. 돈이지, 돈. 소미 씨가 형제 하나 없는 무남독녀래.”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무남독녀라면 유일한 상속자라는 말과 같다.

이소미의 새어머니가 대은 그룹 이철호 회장의 유일한 상속자인 이소미를 죽여 그 재산을 가로채려 한 것이리라.

“소미 씨.”

“네.”

“잘 오셨어요. 제가 소미 씨 가슴 속에 쌓인 한 다 풀어드릴게요. 접수 완료입니다.”

* * *

“하아-, 어렵네. 어려워.”

극락 흥신소 인근 카페에서 인호가 한숨을 토해내고 있다. 맞은편에는 사기꾼이 그런 인호를 보며 히죽히죽 웃고 있다.

“천하의 정인호도 못 하는 게 있구나.”

“심기 불편하니 웃지 마라. 대기업 회장님 만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사기꾼과 뚱보가 이소미를 데리고 왔을 때만 해도 대박이 났다며 좋아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현실의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바로 재계 서열 5위의 대은 그룹 회장을 만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막무가내로 찾아가 만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 당신 딸은 실종된 것이 아니라 죽었습니다. 그것도 당신의 새 부인에게 말이죠.

라고 말할 수도 없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미친놈 취급당하고 이철호 회장의 경호원들에게 개처럼 끌려 나갈 것이 분명했다.

“명운이에게 부탁하지 그래?”

사기꾼의 말대로 사주명리학의 김명운이라면 방법이 있을 것이다.

유명한 가문들, 재벌들, 정치가들이 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짓기 위해 김명운을 찾기 때문이다.

그런 쪽으로 인맥이 매우 넓어 대은 그룹 이철호 회장과 인연이 있을지도 몰랐다.

“되겠냐?”

“크크, 그러게 왜 멀쩡하게 산 사람 사주로 사혼식을 치러. 모르긴 해도 명운이도 이번에 엄청 혼났을 거다?”

그걸 알기에 가까운 사이이기는 하지만 연이어 어려운 부탁을 할 수는 없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인호가 창밖으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다 지나가듯 물었다.

“그나저나 영감은 어디 간 거야? 이러다 정말 위험해져.”

“이틀 전인가? 어떤 망령이 영감을 봤다고 하던데.”

“어디서?”

“대치동.”

“거기 뭐라도 묻어 놨데? 도대체 거기서 뭘 하는 거야?”

사기꾼이 볼을 긁적이며 묘한 표정을 짓는다.

“웬 할머니 망령 근처를 서성인다나 뭐라나?”

“하아, 하여튼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어요. 아니, 그 나이 잡숫고 그러고 싶으시대? 그래서 거기가 어딘데?”

* * *

강남구 대치동 고급 빌라촌.

인호는 차를 운전하며 창밖의 풍경을 보며 혀를 내두른다.

“이런 곳에 살려면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아야 하는 거야?”

“엄청, 무지하게 많이?”

“에라이, 그걸 누가 모르냐?”

“부동산 하던 망령 이야기로는 이 빌라촌에서 가장 싼 집이 47억이래.”

“4, 47억? 미쳤구만. 당장 4백 7십만 원도 없고만.”

“그러게 왜 오지랖을 부려?”

“그러면 어떡하냐? 그 돈으로는 괜찮은 집을 못 구하는데. 혜미 씨 할머니가 언덕배기 높은 곳에, 그것도 3층, 4층 이런 곳에 사셔야겠냐?”

사기꾼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니 구시렁거리지 말라고. 그리고 너 잘하고 있어.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 아니겠냐? 소미 씨 일 해결하고 한 밑천 단단히 잡으면 되겠네.”

“그러니 니가 사기꾼 소릴 듣는 거야.”

사기꾼이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긴 거 같은데? 그런데 분위기가 요상하다?”

인호가 근처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자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노란 폴리스 라인이 보였다. 주변에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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