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0화 (10/190)
  • 제10화

    사무실로 들어서는 인호의 눈에 퀭하다.

    소파에 앉아 있던 사기꾼과 뚱보가 인호가 들어서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디 가려고?”

    “어딜 가긴? 요즘 흥신소 수입이 없잖아. 우리들이 나가서 영업 좀 제대로 뛰려고.”

    사기꾼이 어색하게 웃더니 뚱보의 옆구리를 툭툭 찌르며 조금씩 옆으로 이동한다.

    “우리가 진짜 왕건이 낚아 올 테니까 기다려. 알았지?”

    “내가 니들 수작을 모를지 아냐? 앙? 부장님 오신다니까 꼬리 말고 도망치려는 거 아냐?”

    “야, 정인호! 우리 그렇게 의리 없는 망령들 아니야!”

    사기꾼이 버럭 소리친다. 인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사기꾼을 쏘아본다.

    “그런 놈이 색귀 앞에서 나하고 상관없는 착한 망령이라고 하던 일마저 하라며 도망쳤어?”

    “그때는…… 내가 있으면 네가 불편할까 봐 자리 피해준 거지. 설마 내가 도망쳤겠냐?”

    “아, 그러셨어? 에휴, 내가 니들한테 뭘 기대하겠냐? 가라, 가. 기왕이면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응? 니들 안 봐야 나도 속이 편할 것 같거든?”

    “우리가 가긴 어딜 가냐? 하여튼 애가 말을 꼭 그렇게 서운하게 해요. 아무튼 일단 우린 영업 뛰러 간다.”

    사기꾼과 뚱보가 사무실 벽을 통과해 사라진다.

    소파에 앉아 한숨을 내쉰 인호가 캐비닛을 보며 말한다.

    “영감님은 안 가세요?”

    캐비닛에서 영감이 고개를 쏙 내밀었다.

    “나 있는 거 알고 있었어?”

    “그럼 모릅니까? 대놓고 쳐다보는 눈길이 느껴지는데? 왜요? 거기 숨어서 저 부장님한테 된통 당하는 거 구경하려고요?”

    “에이, 아니지. 내가 아무리 더 이상 갈 곳 없는 망령이지만 그 정도로 배포가 세진 않다. 아휴, 부장님이라니.”

    “알면 빨리 가세요. 아까 그 의리 없는 녀석들처럼 가서 제대로 된 건수라도 물어오세요. 그게 저를 돕는 거니까요.”

    “크흠, 그러면 나도 영업 뛰러 가볼까? 수고하고. 부장님 만나면 안부 꼭 전해주고.”

    영감이 냉큼 벽을 통과해 사라진다.

    “안부는 무슨. 내가 믿을 사람이…… 아니, 믿을 망령이 없어요. 이럴 때 옆에 있어 주면 얼마나 든든하고 좋아?”

    인호의 시선이 벽에 걸린 시계로 향한다.

    틱- 틱-

    초침이 움직이며 내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탁탁탁-

    인호의 구두가 바닥을 때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인호는 혀로 마른 입술을 핥으며 시계만 주시하고 있을 뿐이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고.

    그동안 인호가 한 것이라고는 불안한 듯 다리를 떨고, 입술을 질겅거리며 시계를 본 것뿐이었다.

    세 시간이 지나고 네 시간이 다 되어 갈 무렵.

    틱- 틱-

    천둥소리처럼 들리던 시계 초침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들려오는 선명한 소리.

    또각- 또각- 또각-

    구두 굽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다. 인호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또각- 또각-

    점점 더 선명해지는 구두 소리.

    어느 순간 소리가 멈췄다.

    인호의 눈이 사무실 입구로 향했다. 말아 쥔 채 무릎 위에 올려 둔 손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자 인호가 ‘하아’하고 참았던 숨을 토해낸다.

    “누, 누구세요?”

    “인호 씨.”

    절대 듣고 싶지 않은 음성이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여, 열렸습니다.”

    문이 천천히 열리고 벌어지는 문틈 사이로 한 여자가 보였다.

    검은 바지 정장을 입고 있는 창백한 피부의 여자.

    그 여자를 본 인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부장님. 오셨습니까.”

    안으로 들어 온 여자가 인호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인호 씨. 우리 오랜만이네요. 그렇죠?”

    “하, 하하. 그렇죠. 한 2년쯤 된 것 같네요.”

    “1년 2개월이요.”

    “네?”

    “작년 초여름에 인호 씨가 억울하게 죽은 망령 한 풀어 준다고 살인범 자살하게 만들었을 때 봤으니 1년 2개월 됐어요.”

    “아, 그거밖에 안 지났구나.”

    인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수건으로 얼굴을 훔친다. 한여름에 두꺼운 정장을 입어도 더위를 느끼지 못하는 인호의 얼굴이 땀으로 흥건했다.

    인호가 자신을 바라보는 부장을 마주 본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 아래로 큰 눈이 인상적이었다. 오똑한 코와 도톰한 입술, 아름다운 얼굴이다.

    안 그래도 아름다운 이목구비인데 색조 화장까지 해서 더 아름답다.

    “부장님. 차 한 잔 드릴까요?”

    “커피로 부탁할게요.”

    “커피! 네, 알겠습니다.”

    커피포트에 물을 붓고 전원을 켠다.

    그러는 동안에도 인호는 곁눈질로 부장을 힐끔거렸다. 그녀는 처음 왔을 때처럼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믹스 커피를 타서 부장 앞에 내려놓은 인호가 곧바로 고개를 푹 숙였다.

    “부장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 사주로 사혼식을 거행하다니 제가 정말 미쳤었나 봅니다. 백 번, 천 번, 만 번 제 잘못입니다.”

    탁-

    부장이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는다. 인호가 고개를 살짝 들며 부장의 분위기를 살폈다.

    붉은 립스틱을 칠한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정말 잘못한 걸 알긴 해요?”

    “네, 당연하죠. 무조건 제가 잘못했죠.”

    “…….”

    부장은 말없이 인호를 바라본다. 인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부장과 시선을 교환했다.

    무표정하던 부장의 얼굴에 변화가 생긴 것은 그 순간이었다.

    “부장님 제발…….”

    인호가 간절함이 담긴 음성으로 말했다.

    부장의 눈이 그렁하게 바뀌더니, 그 순간 큰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부장은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물기가 가득한 음성으로 말한다.

    “그런데 왜 그랬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부장님. 정말요. 그러니까 제발 울지 마세요. 네? 부탁이에요.”

    인호가 소파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는다.

    “인호 씨가 그럴 때마다 제가 얼마나 많이 혼나는지 알아요?”

    “네, 알죠. 상제께서 줄빠따 치신다면서요. 그러니까 울지 마세요.”

    “엉엉엉.”

    부장은 이내 목놓아 울기 시작한다.

    “엉엉…… 차사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흑흑,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부장들 집합시키고 막 욕하고. 패앵-!”

    부장은 인호가 내민 손수건으로 시원하게 코를 푼다.

    여전히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로 마스카라가 다 번지고 립스틱마저 입술 주변에 범벅이 되어 있다.

    부장은 자기 얼굴이 엉망이 되는지도 모르고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인호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불안한 눈으로 부장을 바라만 보고만 있었다.

    “누군 저승사자가 되고 싶어서 된 줄 아나. 무슨 일만 있으면 들들 볶고…… 엉엉, 때려치우고 싶어도 그러지도 못해.”

    부장의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인호 씨.”

    부장은 엉망이 된 얼굴을 들어 인호를 바라본다.

    “네, 부장님. 말씀하십시오.”

    인호가 무릎 위에 두 손을 올려놓은 채 고개를 푹 숙인다.

    “재작년에 나한테 그랬죠?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라고.”

    “그랬죠.”

    “그런데 왜 그랬어요?”

    “일단 혜미 씨가 불쌍하기도 하고 그 나쁜 자식이 뻔뻔하게 살아가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걸 왜 인호 씨가 단죄해요?”

    인호가 뭐라고 변명을 하려 했지만 부장이 먼저 입을 뗀다.

    “법이 있잖아요, 법이. 그런 나쁜 놈들 심판하라고 만든 것이 법이잖아요.”

    “그 법이-!”

    갑자기 언성을 높인 인호가 눈물로 인해 화장이 범벅이 된 부장의 얼굴을 보고는 작은 한숨을 토해낸다.

    “그 법이 그 개자식들을 단죄하지 못하니까요. 돈 있는 것들, 권력 쥐고 있는 것들은 죄를 지어도 죗값을 치르지 않아요. 부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대신 그들은 죽은 후 다른 이들보다 몇 배의 고통을 감내해야 해요.”

    “맞죠. 하지만 과연 그들이 그런 걸 신경이나 쓸까요? 그리고 그 개자식들이 사후세계에 어떤 벌을 받던 상관 없어요. 제가 화가 나는 건 그런 쓰레기 같은 자식들 때문에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이에요.”

    인호가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혜미 씨가 무슨 죄가 있어요? 이빨이 없어 냉면도 못 드시는 할머니 이빨 해 드린다고 사회초년생 작은 봉급 쪼개서 적금 붓던 아가씨예요. 할머니는요? 부모 없이 키운 금쪽같은 손녀가 웬 미친놈 때문에 객사했어요. 할머니는 이제 누굴 의지해서 살아요?”

    “인호 씨가 무슨 말 하려는지 잘 알아요. 하지만 그것 역시 이미 다 정해진 그들의 운명이에요.”

    부장이 인호의 손에서 생수통을 빼앗아 마신다.

    “저승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초가 있어요. 어떤 초는 아주 길고, 어떤 초는 매우 짧아요. 초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아요?”

    “사람의 명命이겠죠.”

    “맞아요. 사람은 하늘에서 정한 운명을 거스를 수 없어요. 혜미 씨는 날 때부터 지닌 명대로 살고 간 거예요.”

    “그래서 제가 화를 내면 안 됩니까?”

    “이해해요. 화내도 돼요. 하지만 방법이 틀렸잖아요.”

    인호가 소파에 등을 기대며 눈을 감는다.

    그라고 해서 부장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런 일을 재차 벌인 자신이 받아야 하는 벌 역시 가볍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생겨 먹어서요.”

    “그게 인호 씨 매력이잖아요. 아니구나. 정씨 가문의 매력이죠.”

    부장이 사무실 벽에 걸린 사진들을 보며 말한다.

    “제가 오늘 온 이유는 한 가지 사실을 전해주기 위해서예요.”

    인호가 침을 꿀꺽 삼킨다.

    “인호 씨가 하도 말썽을 부리고 다니셔서 상제께서 특단의 조치를 내리셨어요.”

    “특단의 조치요?”

    “네. 이름하여 정인호 사고 전담 테스크포스.”

    “하, 하하. 뭔가 굉장히 거창한 이름이네요. 제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테스크포스까지 조직이 됐습니까?”

    부장의 눈이 다시 글썽인다.

    인호가 다시 무릎을 꿇고는 고개를 조아린다.

    “죄송합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부장의 표정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인호가 묻는다.

    “도대체 뭐 하는 곳이고 또 구성원이 누굽니까?”

    “아직 확실히 결정되지 않았어요. 참고로 그 조직의 수장은 저예요.”

    “네? 왜요? 부장님 아주 바쁘시잖아요. 보잘것없는 저 때문에 부장님의 일에 지장이 있으면 안 되죠.”

    “그 바쁜 부장이 바쁜 와중에 매번 누구 때문에 조인트 까이는진 아세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게 결정되었으니 알고 있어요. 그럼 전 이만.”

    부장이 일어나려다 다시 앉는다. 주머니에서 거울을 꺼내 얼굴을 확인한 부장은 인호를 쏘아본다.

    뜨끔한 인호가 부장의 시선을 외면한다.

    “이씨. 화장 다시 해야 하잖아요.”

    * * *

    “아저씨. 거기 좀 똑바로 들어요.”

    트럭에서 장롱을 내리는 이삿짐센터 직원에게 인호가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 상자에는 깨지는 물건들이 들어있어요. 그렇게 막 흔들면 안 돼요.”

    그런 인호를 인자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노인은 죽은 김혜민의 할머니였다.

    “인호 총각. 괜찮아요. 그 정도로 안 부서지고 안 깨져요. 나중에 내가 다시 정리하면 돼요.”

    “그래도요.”

    인호가 웃으며 할머니 옆으로 다가선다.

    “날도 더운데 저기 그늘에 가서 앉아 계세요.”

    “아니에요. 인호 총각도 나 때문에 고생하는데 나만 편하게 쉬면 안 되지.”

    “그런 게 어딨어요.”

    할머니를 그늘로 이끈 인호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잘 지내시죠?”

    할머니의 얼굴에 일순간 그늘이 졌지만, 이내 사라진다.

    “혜미가 어제 꿈에 나왔어요. 전에는 말없이 울기만 했는데 어제는 밝게 웃더라고요. 다 인호 총각 덕분이에요. 그리고 이렇게 집도 알아봐 주고 너무 고마워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저 혜미하고 친했거든요. 집은 마음에 드세요?”

    “언덕도 없고 좋아요. 1층이라 계단 오를 필요도 없고.”

    “집이 조금 좁죠?”

    “전에 살던 집도 좁았어요. 이 정도면 궁궐이에요.”

    “다행이네요.”

    인호가 옅게 웃는 할머니를 바라본다.

    ‘혜미 씨는 좋은 곳으로 갔을 거예요. 그러니 할머니도 행복하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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