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9화 (9/190)
  • 제09화

    클럽의 남자 화장실 가장 안쪽의 대변기에 인호가 앉아 있다. 화장실 문에는 세 망령이 머리만 쏙 내민 채 인호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까 그 녀석 머리카락 뽑으면서 뭐 한 거야? 설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게 맞아?”

    영감이 걱정스럽게 묻는다.

    “맞아요. 귀문을 열었어요.”

    “인호야! 그러면 안 되잖아. 평범한 사람 귀문을 열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라서 그래?”

    “그 일 벌어지라고 연 거예요.”

    귀문은 귀신이 드나드는 문이다.

    귀문이 많이 열린 사람일수록 령과의 소통이 수월하다.

    나쁜 말로 하면 기가 허하여 헛것, 즉 자의와 상관없이 영적인 것을 보게 된다고도 한다.

    서양의 영매들, 동양의 무당이나 점쟁이들 중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에 비해 귀문이 더 많이 열려있어 령과의 소통이 수월한 사람들이다.

    귀문의 크기는 태어날 때 타고나기 마련이지만 간혹 후천적으로 귀문의 크기가 넓어지거나 좁아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원한을 많이 산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귀문이 넓어지게 된다.

    원한을 가진 채로 죽은 령들이 그들의 주변을 맴돌기 때문이다.

    이렇듯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의 령과 자주 접촉하며 귀문이 넓어지게 된다.

    인호는 조금 전 한선호의 머리카락을 뽑으며 그의 정수리를 손으로 툭 쳤다.

    보통의 망령들보다 영적인 힘, 즉 영성이 강한 인호였다.

    그런 인호가 작심하고 한선호의 귀문을 강제로 열어버린 것이다.

    인호가 정장 속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자 영감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뜬다.

    “그, 그거…….”

    “맞아요. 사주단자에요.”

    “너 임마 그거 당장 멈추지 못해? 귀문만 열어둬도 그놈 한평생 힘들게 살 거야.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죗값을 치르는 거야.”

    인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영감을 바라본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을 마주한 영감이 안타까운 듯 탄식을 토해낸다.

    “그걸 왜 영감님이 결정해요? 사람들이 단죄할 수 없는 놈이잖아요. 증거 찾아서 법원 가봐야! 지랄 맞은 재벌 할아버지, 아버지 덕에 집행유예 받고 나올 게 뻔하잖아요.”

    인호가 사주단자를 열자 안에는 곱게 접은 한지가 들어있다.

    “휴우-, 니 마음대로 해라. 그나저나 그거 누구 사주냐?”

    “인사동 손각시 사주에요.”

    세 망령이 화들짝 놀란다.

    “그, 그 미친 처녀귀신?”

    손각시.

    손말명 혹은 처녀귀신이라 불리는 망령. 망령들 중 가장 사악한 망령이 바로 손각시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수많은 손각시들 중 아주 유명한 손각시가 있었으니 바로 인사동을 떠도는 손각시였다.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사기꾼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럴 거면 그냥 죽여.”

    “내가 하는 일에 신경 끄지?”

    인호는 미리 준비한 한선호의 사주를 꺼낸다. 그리고 한선호의 머리카락을 안에 넣고 곱게 접은 후 사주단자 안에 손각시의 사주와 포개어 놓는다.

    “미친놈. 결국 사혼식을 해야겠다는 거냐?”

    사혼식이란 망자들 간에 혼약을 뜻한다.

    이승에 한을 품은 손각시와 몽달귀신, 즉 총각귀신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산 사람 사주로 사혼식을 하는 게 말이 돼?”

    말이 안 된다. 하지만 그 말이 안 되는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사주를 조금 비틀면 된다.

    물론 그렇게 하면 옥황상제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히겠지만.

    “이미 갈 데까지 간 놈 아닙니까.”

    어쩌면 이 일로 인호가 죽을지도 몰랐다.

    이미 지은 죄가 있으니 최악의 상황이 일어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저승사자가 괜히 경고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의 눈에는 뜻을 꺾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어 보였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어요. 이래죽나 저래죽나 어차피 죽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그냥 생긴 대로 살다 갈래요.”

    사주를 비틀고 한선호의 머리카락까지 넣었으니 이제 사혼식을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사주단자를 손바닥 위에 올려 위를 보게 하고 눈을 감는다.

    알 수 없는 말이 인호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잠시 후 감고 있던 눈을 뜨니 눈동자가 온통 푸른빛으로 변해있었다.

    “부디 백년해로하길 바란다.”

    인호의 중얼거림과 함께 사주단자가 푸른 불길에 휩싸여 재가 되어 사라진다.

    “하아-.”

    인호는 힘겹게 숨을 토해내며 변기에 기댄다. 얼굴이 온통 땀범벅이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인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 * *

    한선호는 차를 운전하며 계속해서 목을 쓰다듬었다.

    왜 그런지 몰라도 클럽에서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계속해서 누군가 목과 머리를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평소라면 클럽에서 만난 여인과 보낼 하룻밤도 포기하고 클럽에서 나온 참이었다.

    술을 제법 마셨지만 정신은 말짱하다. 이것도 그 이상한 느낌 때문인 것 같았다.

    “뭐지?”

    빨간 신호에 차를 세웠다. 평소라면 무시하고 지나갈 테지만 반대편 도로에 경찰차가 서 있었다.

    “땡땡이치고 있네. 이러니 나라꼴이 이 모양 이 꼴이지. 공무원이라는 새끼들이…….”

    한선호는 자신이 음주운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인지 걸죽하게 욕지거리까지 내뱉는다.

    빵- 빵-

    귀를 자극하는 크락션 소리에 시선을 위로 올린다. 빨간불은 어느새 초록불로 바뀌어 있었다.

    “씨발롬이 빵빵대고 지랄이야?”

    룸미러로 뒤를 바라본다. 뒤에 있는 차를 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는 순간이었다.

    한선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간다. 룸밀러에 비친 자신의 얼굴, 정확히 자신의 목에 보여서는 안 될 것이 보인다.

    파란 손 하나. 그 손이 자신의 목을 쓰다듬고 있다. 마른침을 삼킨 한선호가 천천히 고개를 조수석 쪽으로 돌린다.

    온통 빨간 눈이 보였다.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보이는 얼굴을 가진 여자가 붉은 눈을 들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여자의 새빨간 입술이 말려 올라간다.

    “너…….”

    여자는 여전히 한선호의 목을 쓰다듬으며 음산하게 말한다.

    “내가 보이는구나?”

    “으아아아악-!”

    부으으으으응- 콰쾅-!

    * * *

    - 오늘 새벽 두 시 경 홍대 인근 도로에서 음주운전으로 인한 추돌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참 다행한 일인데요. 하지만 사고 차량 운전자의 신분이 밝혀지며 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사고 차량의 운전자는 유성 그룹 한유성 회장의 손자인 한선호 씨였습니다. 한선호 씨는 이전에도…….

    뉴스를 보는 인호의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 손에는 눈빛만큼이나 차갑게 식은 커피가 들려있다.

    - 한 씨는 계속해서 ‘저리 가’, ‘오지 마’ 등의 이상한 말을 내뱉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한 씨가 잦은 논란으로 이번 음주 사건이 크게 번질 것을 우려해 심신 미약, 혹은 정신 질환 쪽으로…… …… 유성 그룹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한 씨는 유성 대학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될…….

    “이제 속이 시원하냐?”

    영감이 묻는다. 인호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는다.

    “평생 정신병원에서 썩어야겠네.”

    귀문이 열렸으니 곧 손각시뿐 아니라 다른 망령, 잡귀, 악귀들이 들러붙을 가능성이 크다.

    인호는 식은 커피를 들고 단숨에 마셨다.

    “하아-.”

    “이제 와서 후회하는 거냐?”

    “후회요? 제가 왜요? 저런 걸 보고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사기꾼이 손가락을 튕기며 인호의 말을 가로챈다.

    “사필귀정, 인과응보.”

    “그렇다네요.”

    인호가 소파에 걸쳐 둔 정장 상의를 걸치며 사무실 밖으로 나간다.

    “어디 가는데?”

    인호가 문을 열고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한다.

    “작별 인사하러.”

    차에 올라탄 인호가 향한 곳은 바로 김혜미가 뺑소니 사고를 당한 곳이다.

    김혜미는 여전히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그렇게 있다가 저승사자 만나요.”

    김혜미가 환하게 웃는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횡단보도 건너편을 향해 있다.

    그녀의 할머니는 그날 이후 이곳에 오지 않았다. 인호를 믿고 집에 계신 것이다.

    “혜미 씨 보험금도 제대로 수령했고 할머니 편하게 지낼 집도 다 알아봤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인호가 휴대폰으로 인터넷 뉴스를 검색해 김혜미에게 보여준다.

    “이놈이 혜미 씨 치고 뺑소니친 그놈이에요.”

    기사를 읽던 김혜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어떻게라는 의문은 갖지 말아요. 그냥 나쁜 놈이 벌 받았다고 생각하면 돼요.”

    인호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애꿎은 보도블록을 발로 툭툭 찬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에요.”

    “네.”

    “할머니는 내가 가끔 들여다볼 거예요.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떠나요.”

    김혜미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전과 같이 표정은 웃고 있는데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지 말아요. 혜미 씨 평생 선하게 살아서 좋은 곳으로 갈 거예요. 그러니까 저기 있는 아저씨 따라서 가시면 돼요.”

    김혜미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저승사자가 서 있었다.

    “저 아저씨가 인상이 조금 험악하기는 하지만 좋은 아저씨예요. 혜미 씨 잘 안내해 줄 거예요.”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을게요.”

    아니다.

    김혜미는 이제 곧 잊을 것이다.

    인호의 은혜뿐 아니라 인호라는 사람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인 할머니도 잊게 될 것이다.

    “부탁드립니다.”

    인호가 저승사자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못마땅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던 저승사자가 김혜미에게 말했다.

    “망자 김혜미.”

    “네.”

    “갑시다. 갈 길이 멀어요.”

    “네.”

    저승사자가 몸을 돌린다.

    그 뒤를 따라가던 김혜미가 몸을 돌려 인호를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든다.

    인호도 그녀의 마지막 길을 축복하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 * *

    극락 흥신소.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이 가장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초침이 12에 도착하는 순간.

    쿵- 쿵- 쿵-

    거대한 울림이 전해졌다.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인호가 눈을 뜨며 정면을 바라보니 맞은편 소파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야, 이 씨방새야.”

    “하여튼 저승사자라는 양반이 교양 없이 매번 씨방새는…….”

    “교양? 지금 교양이라고 했냐?”

    인호가 어색하게 웃는다.

    “죄송합니다.”

    “죄송? 지금 찢어진 입이라고 그런 말이 나오지? 앙? 미쳤어? 미친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산 사람의 사주로 사혼식을 해. 지금 너 때문에 명부가 난리 난 거 알아 몰라?”

    “네, 네. 잘 알지요. 정말 잘못했습니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어요.”

    “그런 말로 넘어갈 상황이 아니야 이 씨방새야. 상제께서 대노하셨어. 윗선들 다 끌려가서 줄빠따 맞고 있어.”

    “상제께서 줄빠따를 치신다고요?”

    인호가 놀란 듯 저승사자를 바라본다.

    “명부라고 뭐 다를 거 같냐? 일 잘하면 칭찬 받고 못하면 쪼인트 까이고. 다 그런 거야. 이 씨방새야. 니 덕분에 나는 쪼인트 확정이고.”

    “항상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몇 번을 말해. 이제 그만 하라고. 네가 그런다고 뭐가 그리 대단하게 바뀌겠어? 이번 일만 해도 그래. 김혜미 씨 억울하고 가여운 것 알아. 홀로 남은 할머니 불쌍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래도 그걸 왜 니가 나서서 지랄을 하냐고, 지랄을!”

    쿠르르르-

    지진이라도 난 듯 사무실이 흔들린다.

    “유구무언.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하지 마. 이번 일은 내 선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인호가 저승사자의 눈치를 살피며 묻는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부장님이 오실 거다.”

    “부, 부장님이요? 설마 아니죠?”

    “그 설마가 맞을 거다.”

    “제, 제발…… 사자님. 이건 아니잖아요. 부장님은 정말 아니잖아요.”

    인호가 저승사자의 소매를 붙잡고 애원하듯 말한다.

    저승사자가 매몰차게 인호를 뿌리치고는 일어선다.

    “그러니까 왜 지랄을 하냐고. 아, 모르겠고. 조만간 부장님 여기 오실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저승사자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곧 사라진다.

    홀로 남은 인호가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부장님은 정말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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