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8화
“인적 사항이 없네?”
서류 봉투 안에 들어있는 것은 사진뿐이었다.
“저 형님…….”
꺼내기 곤란한 말이 있는지 유정우가 말끝을 흐린다.
“편하게 이야기해. 대충 짐작하고 있으니까.”
사진 속의 차는 굉장히 고급이었다.
카푸어족이라고 해서 집도 없이 차 한 대에 몰빵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시대라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너무 비싼 차였다.
이런 비싼 차를 평범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루트는 일반적으로 없었다.
“한선호라고 아십니까?”
“한선호?”
“유성 그룹 개망나니라면 아시겠습니까?”
“아-, 그 망나니.”
대한민국 재계 서열 6위의 유성 그룹에는 유명한 망나니가 있었다.
현 회장인 한유성의 손자로 잊을만하면 뉴스와 신문에 갑질 논란으로 등장하곤 했다.
후계 구도에서 밀린 차남의 두 번째 아들로 지금까지 친 사고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의 사고 이력은 어이없게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초등학생이 학교에서 교사에게 막말하고 친구들을 폭행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일진 놀이를 하며 수많은 학생들을 괴롭혔다.
나이를 들어서도 철이 들지 않았는지 잊을만하면 대중매체에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 쓰레기 새끼라고?”
“네, 형님. 더 조사를 해보려고 했지만…… 아시겠지만 저 하나로 끝이 아니지 않습니까.”
땡초에게까지 피해가 갈 수 있다는 말이다.
대기업에는 로열 패밀리들을 전담해서 케어하는 이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로열 패밀리들을 위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땡초가 아무리 잘나가는 건달이라고 해도 유성 그룹이라는 재벌 집안에 비교하면 달 아래 반딧불이일 뿐이었다.
“너는 여기까지. 나머지는 내가 한다.”
“위험합니다.”
오늘 인호를 처음 본 유정우가 그를 걱정한다.
“너 나 잘 모르지?”
“큰형님이 아끼시는 동생분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아끼기는 개뿔. 너는 네가 사는 세상이 험하다고 생각하지?”
“아무래도 그렇지요.”
“그래. 네가 사는 세상 험한 세상 맞아. 그런데 내가 사는 세상은 말이야.”
인호가 들고 있는 벤츠 사진을 구겨 버렸다.
“아주 무서운 세상이거든. 그래서 그 개새끼한테 그 무서움을 맛보게 해주려고. 그냥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정우가 놀란 눈으로 인호를 바라본다. 잘못 본 것인지 몰라도 조금 전 인호의 눈에서 파란빛이 일렁였다.
침을 꿀꺽 삼킨 유정우가 커피로 바짝 마른 입을 적신다.
“어쨌든 고마워. 이 은혜는 꼭 갚을게.”
* * *
사주 카페 미로.
안으로 들어선 인호가 탁자에 다리를 올리고 잠들어 있는 중년 사내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똑- 똑-
맞은편 의자에 앉아 탁자를 두드리니 사내가 천천히 눈을 뜬다.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그러다 눈앞에 인호가 있음을 확인하고는 인상을 와락 구긴다.
“젠장. 아침부터 일진이 사납더니.”
“오랜만에 보는 동생한테 꼭 그런 말을 해야 해요?”
“동생은 얼어 죽을. 지 필요한 일 없으면 전화도 안 하는 놈이. 그리고 제발 좀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그런 것 좀 안 하면 안 되냐? 우리 그냥 평생 타인처럼 살자, 제발. 응?”
“사주명리학을 공부한다는 사람이 할 말입니까? 인연이라는 것이 끊고 싶다고 끊어져요?”
“내 말이! 이놈의 인연은 쇠심줄도 아니고 뭐 이리 질기냐고. 그래서 오늘은 왜 왔는데?”
인호가 사진 한 장을 꺼내 김명운 앞에 내려놓는다. 김명운은 사진을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더니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
“오랜만에 니 얼굴 본 것도 기분 나쁜데 오자마자 똥을 뿌려? 응? 형 사업장에 화분을 들고 올 생각은 안 하고 왜 똥을 뿌리냐고.”
“그 정도예요?”
“이건 뚱보다 더 구려.”
“누군지는 알고요?”
“유성의 한선호잖아. 재벌가 개망나니들 중 독보적인 개망나니. 최강의 씹새인 씹새 오브 씹새.”
인호가 웃자 김명운이 눈을 가늘게 뜬다.
“니가 왜 이 사진을 꺼내냐? 이 새끼 또 뭐 잘못했냐?”
“그런 것은 알 거 없고요. 이 새끼 사주 좀 알 수 있어요?”
“맡겨놨냐? 사주 맡겨놨냐고. 그리고 내가 왜 이 새끼 사주를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천하의 현학 선생께서 왜 이러실까? 대한민국 정재계 유명인사들 사주 형님이 싹 꿰고 있다는 거, 이 바닥 사람 중에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지금이야 사주 카페에서 유유자적하고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현학 선생이라 불리던 유명인사다.
권력자와 재벌가 아이들의 작명, 사주 풀이 등을 전담했는데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10대, 20대들 중 김명운이 이름을 지어 준 사람들이 아주 많다.
“사주는 알아서 뭐 하게? 또 이상한 짓 꾸미려는 거지?”
“…… 아니에요.”
“2초.”
“네?”
“너 방금 대답하는데 2초 망설였다고. 너도 알겠지만 사주라는 게 그냥 둘러대는 말이 아니야. 사주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있어.”
“알지요.”
“아는 놈이 다른 사람의 사주를 알려달라는 헛소리를 하냐?”
“사람이 아니니까.”
인호의 음성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인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김명운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탁탁 소리 나게 두드린다.
김명운도 잘 알고 있다. 인호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럴 리가 없다는 것을.
오히려 인호이기에 더욱 조심스러워할 것이다. 그런 인호가 이렇게 부탁할 정도면 반드시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유는 알아야 할 거 아니야.”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인호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김명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인호의 이야기가 모두 끝나자 김명운이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분노를 애써 삭히는 것이 느껴졌다.
“인호야. 무슨 말인지 잘 알겠어.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너도 알잖아. 사주라는 게 그래. 살다 보면 사주가 바뀌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사주에서 벗어나지 못해. 너는 지금 그 사주를 비틀려는 거야.”
“어떻게 안 돼요?”
“너 하나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야. 나도 엮인 일이라고. 천기누설이 별 게 아니야.”
“하아-.”
인호가 한숨을 토해낸다.
이곳에 오면서도 김명운에게 한선호의 사주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평소 말을 막 하고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김명운이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내다.
탁-
갑자기 김명운이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내 사주가 어떤지 아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중년에 제대로 꼬이는 사주거든. 크크, 거 봐라. 오지게 꼬였잖아.”
김명운이 메모지에 무언가를 적어 꼭 접어 인호에게 던진다.
“그 씹새 사주다. 그걸로 뭘 하던 네 자유야. 다만 한 가지만큼은 약속해라.”
“말해요.”
김명운은 자신이 찢어 놓은 한선호의 사진을 입에 구겨 넣고 잘근잘근 씹는다.
“내가 위험 감수한 만큼…… 퉤!”
사진을 뱉고는 싸늘하게 말한다.
“뭘 하든 제대로 해라.”
* * *
사주명리.
한국에서는 흔히 사주팔자라고 한다.
사주는 인간의 운명을 지탱하는 네 가지 기둥을 뜻하는데 태어난 연, 월, 일, 시를 의미한다.
팔자는 사주를 간지로 풀어놓은 여덟자를 가리킨다.
사주명리의 근본 논리는 만물은 모두 쓰임이 있으며, 그 쓰임은 만물의 태어난 시점과 연관이 있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한다.
태어나며 정해진 쓰임. 그리고 태어나며 정해진 상극. 태어나며 정해지는 한 사람의 인생.
그것이 사주명리다.
그렇다고 사주가 인간의 인생 모두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태어나며 미래의 인생이 결정되어 버린다면 그것만큼 비참한 세상도 없을 것이다.
다행히 살아가는 모든 순간, 행하는 모든 행위, 그리고 선택들이 작게, 어떤 때에는 크게 사주에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사주의 변화는 순리를 따른다.
좋았던 사주가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역시 순리다. 그것이 그 사람의 팔자인 것이다.
순리가 있다면 그 반대도 있다.
초자연적인 힘, 혹은 존재에 의해 사주가 바뀌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 폐공사장의 여고생들이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홍대의 한 클럽.
인근에서 가장 잘나가는 클럽답게 입구에는 길게 줄이 늘어섰다.
인호도 그 긴 줄에 섞여 있다.
한 시간가량을 기다린 끝에 곧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끼이익-
검은색 차 한 대가 클럽 입구로 들어와 급정거한다. 클럽 앞을 지켜서고 있던 가더들이 재빨리 달려가 차 문을 열어준다.
차에서 두 명의 청년들이 내린다.
인호가 두 청년 중 머리가 짧은 쪽을 잠시 바라본다.
명품으로 온몸을 도배한 청년들은 가더에게 팁을 주고는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주차 관리인이 발레파킹을 하기 위해 청년들의 차에 올라탄다.
시동을 걸고 멀어져 가는 차를 보며 인호가 중얼거린다.
“검은 벤츠 2756.”
잠시 후, 인호가 입장할 차례가 됐다.
입구를 막아선 가더가 인호를 위아래로 쓸어봤다. 볼을 긁적이는 것이 인호를 곱게 들여보내 주지 않을 것 같았다.
인호가 품속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가더에게 건넨다.
SN 엔터테인먼트 스카우트팀 정인호.
명함을 확인한 가더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으로 비켜선다.
홍대에서 가장 핫한 클럽이기에 연애 기획사에서 스카우트 목적으로 오는 것이 드문 일도 아니었다.
클럽에서 스카우트되어 유명 연예인이 되면 가게 홍보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가더의 어깨를 두드려 준 인호가 안으로 들어갔다. 가짜 명함이었지만 이럴 때는 아주 유용했다.
시끄러운 음악이 귀를 괴롭힌다. 누군가에게는 흥겨운 음악이 누군가에게는 소음 공해일 수도 있었다.
요란하게 돌아가는 조명들 아래서 알아듣지도 못할 음악에 미친 듯이 몸을 흔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인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적당히 해라.”
“네? 저 아세요?”
몸을 흔들던 여자 한 명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인호를 바라본다.
“그쪽한테 한 말 아니에요.”
인호의 시선은 여자의 뒤쪽을 향하고 있었다.
여자의 뒤에서 혀를 내밀고 목을 핥던 망령이 인호의 시선을 느끼고는 움찔하더니 이내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사라진 망령뿐 아니라 수많은 망령들이 보였다. 어쩔 수 없다. 이런 곳은 망령들에게도 아주 인기가 많았다.
죽은 망령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생기였다.
미친 듯 생기를 방출하는 이곳이야말로 망령들에게는 초호화 호텔 뷔페 못지않은 곳이라 할 수 있었다.
인호는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두리번거리다 이내 목표를 발견했다.
검은색 벤츠 2756의 주인인 한선호가 한 여자의 허리를 안고 걸어가고 있었다.
인호는 재빨리 걸어가 한선호의 어깨에 부딪혔다.
“아-, 씨발. 뭔데?”
“미안. 술을 좀 많이 마셔서.”
인호가 마시지도 않은 술 핑계를 대고는 비틀대며 손을 흔든다.
한선호가 욕지거리 몇 마디를 더 뱉어내다가 함께 있는 여자가 재촉하자 짜증을 부리며 떠나간다.
“조심해라.”
인호는 진부한 대사를 내뱉고는 멀어지는 한선호의 등에 대고 중얼거렸다.
“부디 너도 조심해라.”
흔드는 인호의 손에는 머리카락 몇 가닥이 쥐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