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7화
“인호 왔어?”
포장마차의 주인아주머니가 인호를 반긴다.
이른 저녁임에도 포장마차 안에는 한 자리를 빼고는 모두 만석이다.
단골인 포장마차가 안주가 맛있어 주변에서 인기가 많은 편이다.
인호가 빈자리에 앉으니 곧 주인아주머니가 소주 한 병과 잔 두 개를 가져다 둔다.
“오늘 꼼장어 어때요?”
“물 조오치! 꼼장어로 할까?”
“네.”
“어깨가 축 늘어졌다? 무슨 일 있어?”
아주머니가 오뎅 국물을 한가득 떠 준다.
“아니에요. 일은 무슨…… 요즘 장사는 어때요?”
“네 덕분에 꿀 빨고 있지.”
“그런 말은 또 누구한테 배운 거예요?”
인호가 피식 웃는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자릿세를 받겠다며 매일 같이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동네 양아치들 때문이었다.
그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 인호였다.
거창하게 해결이라고 할 것도 없이 땡초의 동생 몇 명을 이곳에 불러 함께 술을 마신 것뿐이다.
자릿세를 받겠다며 온 양아치들은 땡초의 동생들을 보고 얼음이 되어 버렸다.
‘여기 우리 단골집이니까 잘해라’라는 한 마디에 깨갱하고 꼬리를 말아버린 양아치들은 그 이후로 한 번도 이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잔 두 개에 소주를 가득 채운다. 그중 하나를 들어 허공에 빙빙 돌린 후 바닥에 뿌린다. 주변에 있는 손님들이 뭘 하나 싶어 인호를 힐끔거렸다.
인호는 다른 이들의 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주를 입에 털어 넣는다.
“크으-.”
빈속에 마시는 첫 잔이 선사하는 이 짜릿함이 좋다.
“크으-.”
“캬아-. 치사하게 사람이 셋인데 한 잔이 뭐냐? 하여튼 인색한 새끼라니까.”
맞은 편에 앉아 구시렁거리는 세 망령을 보며 인호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사람? 한 잔도 감사하게 생각해. 내가 아니면 누가 소주 한 잔 줄 것 같아? 영감님은 이제 후손들이 젯상도 안 차리잖아요.”
목소리가 컸는지 다른 손님들이 일제히 인호를 바라본다.
혼자 와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듯 말을 하니 이상하게 볼 만도 했다.
인호가 웃으며 자신의 귀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다.
무선 이어폰을 본 사람들이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린다.
망령들 때문에 주저리주저리 떠들기에 이런 일은 일상다반사였다.
그래서 항상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갈 때면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통화하는 척을 했다.
다시 잔을 채운 후 냉큼 비운다. 오뎅 국물을 한 숟갈 떠 입에 넣는다. 고춧가루를 뿌린 오뎅 국물에 입가에 웃음이 걸린다.
“한가하게 여기서 술이나 처마실 때냐? 혜미 쳐 죽인 새끼 안 찾아?”
사기꾼이 등 뒤 테이블에 앉은 여자의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톡톡 건드리며 말한다.
“내가 찾고 싶다고 찾을 수 있는 거냐? 이쪽 일에 특화된 애들이 찾고 있으니 곧 연락 오겠지.”
“그러니까 유 형사한테 말을 하라니까. 그러면 직빵이잖아.”
“그만해라.”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저번에 저승사자도 경고했잖아.”
“그만하라고 했잖아. 사람이…… 아니지. 망령이 말을 하면 좀 들어라. 응?”
인호가 잔을 채워 홀짝 마신다.
사기꾼의 말대로 친분이 있는 강력계 형사를 통하면 쉽고 빠르게 뺑소니 차량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 그러다 큰일 난다. 그런 새끼를 왜 네가 처벌하겠다고 그러는데? 응? 법이 괜히 있냐? 그런 새끼 어떻게 해 봐야 네 손만 더러워지는 거야.”
영감까지 한 손 거든다.
“영감.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국회 앞에서 분신자살한 거 알죠?”
세 망령이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그 사람 가족들 먹여 살린다고 힘겹게 일하던 사람이었어요.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대리운전하고. 그런데 어떤 개자식이 학원 마치고 집에 가는 그 양반 딸을 강간했네. 그 강간범 새끼 초범이라고 3년인가 받았어요. 졸라 재밌는 게 그 씹새가 모범수라고 2년 있다가 출소를 했어요. 그 새끼 교도소 있는 사이에 강간당한 딸은 결국 자살했고.”
다시 소주 한 잔을 마신다. 기분 탓인지 달던 소주가 쓰게 느껴졌다.
“그 여학생 아버지가 그 강간범 새끼 제대로 처벌해 달라고 일인 시위하고 뭐하고 아무튼 다 했나 봐. 그런데 아무도 이야기를 안 들어줘. 그래서 어떡해? 자기 목숨 내걸고 마지막으로 외친 거야. 자기 몸에 불 질러가면서 억울하게 죽은 자기 딸, 그 딸 죽인 강간범 새끼. 그래서 외친 거라고.”
아주머니가 테이블에 꼼장어를 내려놓는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기운 좀 내.”
“고마워요.”
다시 소주를 마신 후 꼼장어를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죄지은 개새끼는 살아 있는데 부모님 기쁘게 해 드리려고 열심히 공부한 죄 밖에 없는 학생과 그 학생 위해 허리가 휘어라 고생만 한 아버지가 죽었어. 그 개새끼는 살아 있는데 말이야.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인호야. 그래도 순리라는 게 있지 않냐. 네가 그러는 건 순리에서 벗어나는 거야.”
영감이 걱정스럽게 말을 하자 인호가 쓰게 웃는다.
“나도 잘 알아요. 그리고 아직 결정 난 것도 없어요.”
* * *
소주를 세 병을 비우고 나서야 포장마차를 나왔다.
어둠이 내린 거리에서 한 시간가량 이리저리 배회하다 집으로 향한다.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을 때였다.
“재수 없게 핏자국이 있냐?”
사기꾼이 구시렁거렸다.
흐릿한 가로등의 불빛에 검은 얼룩이 보인다.
“너한테 아직 재수라는 것이 남아 있기는 하냐?”
인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사기꾼을 흘겨봤다.
멍- 멍-
덥수룩하게 자란 털이 눈을 덮은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해피구나.”
인호가 쪼그려 앉는다.
멍- 멍-
해피는 동네에서 폐지를 주워 파는 할머니가 키우는 개다.
인호가 이 동네로 이사 온 것이 12년 전이었고.
할머니와 해피는 그 전부터 이 동네에 살고 있었다.
멍- 멍-
해피가 인호를 보고 한 번 짖고, 몸을 돌려 또 한 번 짖는다.
평소에도 인호를 잘 따르던 해피지만 오늘은 유난히 난리다.
“왜? 어디 가자고?”
인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건지 해피가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야, 야. 천천히 가.”
오르막을 오르던 동네 주민이 인호를 힐끔 쳐다본다.
큰길로 나간 해피는 빠른 속도로 달렸다.
한참을 쫓아가던 인호가 숨을 헐떡이며 멈추자 해피 역시 멈췄다. 그러더니 어서 오라는 듯 꼬리를 흔들며 멍, 멍 짖어댄다.
“하여튼 저질 체력이라니까. 그거 뛰었다고 헥헥대기는.”
인호가 사기꾼을 쏘아보고는 숨을 고른 후 해피를 향해 달려갔다.
* * *
대성 종합 병원.
해피가 인호를 이끈 곳은 인근에 있는 병원이었다.
해피는 응급실 앞 의자로 달려갔다. 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는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다.
옷이 이리저리 찢겨 있고 신발 한쪽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할머니.”
인호가 다가가며 말을 하자 할머니가 고개를 든다.
“총각.”
오며 가며 인사를 하고, 가끔 언덕을 오를 때 리어카를 밀어주기도 하던 사이다.
인호는 옆자리에 앉으며 할머니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괜찮으세요?”
잠시지만 할머니의 몸에서 푸른빛이 일렁인다.
멍- 멍-
할머니가 환하게 웃는다.
“해피 왔구나. 이 할미 마지막으로 보려고 왔어.”
“할머니…….”
인호의 눈이 빨개졌다. 아랫배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훅치고 올라온다.
“우리 해피 어쩌누. 할미 잘못 만나서 맛나는 것도 한 번 못 먹고.”
멍- 멍-
해피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리어카를 끌고 올라가다 허리를 삐끗했어.”
성인 남자도 끌기 힘든 리어카를 한없이 연약한 할머니가 매일같이 끌고 다니다 보니 다치는 일도 잦았다.
오늘도 삐걱거리는 리어카에 폐지를 잔뜩 줍고 언덕을 올라갔을 것이다.
“살살 좀 하시라니까.”
“미안.”
“저한테 왜 미안해요.”
할머니가 환하게 웃고는 해피를 바라본다.
“나 해피하고 작별 인사하고 싶은데.”
“그러세요.”
인호가 뒤로 물러섰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세 망령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할머니를 바라본다.
“그렇게 서로 의지해 살더니…….”
사기꾼이 손등으로 코를 훔친다.
뚱보도 속이 편하지 않은지 설탕이 잔뜩 묻은 핫도그를 우울하게 우물거린다.
“우리 해피. 할미가 많이 미안해.”
할머니가 꼬리를 흔들며 고개를 숙이는 해피를 향해 손을 뻗는다.
해피를 쓰다듬어 주려고 했지만 그 손길은 허무하게 통과되어 버린다.
“우리 해피. 이 할미 살리겠다고 리어카 바퀴 밑으로 들어갔어. 우리 해피 아니었으면 내가 죽었을 거야. 우리 해피, 미안해. 이 할미가 맛난 것도 못 주고, 배부르게 먹여 주지도 못해서 정말 미안해.”
할머니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해피의 몸에서 푸른빛이 일렁인다. 흐릿해지는 몸. 해피는 마지막까지 할머니를 향해 꼬리를 흔들며 멍, 멍 짖는다. 그 소리가 마치 ‘사랑해요’,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고개를 돌리며 밤하늘을 바라보는 인호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인호는 눈물을 닦은 후 몸을 돌리며 환하게 웃는다.
“몸은 좀 어떠세요?”
“가벼운 타박상이래. 옷도 리어카 손잡이에 걸려서 그런거고. 정말 괜찮아.”
“신발 한 짝은 또 어디 갔어요?”
“나도 잘 모르겠네. 구급차 타고 병원 와 보니 없더라고.”
“할머니 집에 가요.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인호가 할머니를 일으켜 부축한다.
할머니는 걸음을 옮기면서도 해피가 사라진 곳을 몇 번이고 돌아보며 눈물을 흘렸다.
“수령(동물의 영혼)을 보는 건 또 오랜만이네.”
“자기 죽으면 할머니 혼자 남으니까. 그러니까 할머니한테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 거지. 그나저나 저 할머니 이제 혼자서 어떻게 사누.”
세 망령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인호와 할머니의 뒤를 쫓았다.
* * *
사무실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들어선다.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데 건장한 체격과 날카로운 인상이 평범해 보이진 않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땡초 형님 모시고 있는 유정우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형님.”
“아, 그래?”
드디어 기다리고 있던 소식이 온 것 같다.
“일단 앉자. 커피 줄까?”
“감사합니다, 형님.”
인호가 믹스 커피를 타서 유정우 앞에 내려놓는다.
“어떻게 됐어? 찾았어?”
“네, 형님. 찾았습니다.”
유정우가 품속에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건넸다. 그 안에는 사진 몇 장이 들어있다.
“2756.”
검은색 벤츠다.
“형님께서 말씀하신 사고 날짜 이틀 후에 카센타에 입고된 적이 있다고 하네요. 앞 범버가 망가져서 수리를 받았다고 합니다. 카센타 사장이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네. 이상한 점이 좀 있었다고 했습니다. 현금으로 결재할 테니 수리 기록을 남기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러면서 수리비보다 몇 배나 되는 돈을 지불했답니다.”
“찔리는 것이 있으니 그랬겠지.”
“그 사장 말로는 자기가 그 일을 오래 해서 망가져 들어 온 차만 보면 왜 망가졌는지 딱 감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차는…….”
인호가 손을 들어서 유정우의 말을 자르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사진 속 벤츠를 바라보며 시린 음성으로 말한다.
“사람을 치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