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6화 (6/190)
  • 제06화

    “안 보는 사이에 얼굴이 훤해졌다?”

    “훤해져요? 요즘 노안 왔어요? 이 얼굴을 보고 그런 말이 나와요?”

    인호가 상석에 앉은 사내를 보며 장난스럽게 짜증을 부린다.

    머리털이 하나도 없는 이 민머리의 사내는 이름보다 ‘땡초’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명동 사채 시장에서 땡초라는 이름은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머리털이 없어 땡초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사채업자답게 돈이 걸린 문제라면 가족도 일개 채무자 취급을 할 정도로 냉혈한이었다.

    그의 돈을 빌려 제대로 갚지 못하고 흉한 꼴을 당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동종 업계에 있다 그와 마찰을 일으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은 이들 역시 부지기수였다.

    그런 땡초가 인호를 보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다.

    “요즘은 어때요? 여전해요?”

    “아니. 네 말대로 하니 점점 줄어들더라고. 요즘은 거의 괜찮아졌다고 봐야지.”

    땡초는 몹쓸 짓을 참 많이 했다. 그래서 그에게 원한을 품은 악귀들 역시 많았다.

    인호가 땡초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악귀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땡초를 보며 ‘오래 살긴 힘들겠네’라고 한마디를 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어떻게 안 것인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땡초가 인호를 찾아왔다.

    땡초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너무나도 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인호는 그를 돕지 않았다.

    하지만 땡초는 몇 날 며칠을 인호에게 찾아와 매달렸다.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나서야 인호가 그에게 들러붙어 있는 악귀들을 떼어주었다.

    그 후 땡초는 사채업을 때려치우고 지금 있는 이곳 노블레스를 비롯한 몇 곳의 고급 룸싸롱을 운영하고 있었다.

    “조심해요. 형은 한 번 더 그런 일 있으면 끝이야.”

    “누가 뭐래? 나 요즘 엄청 착하게 살거든? 여기 있는 아가씨들도 모두 정상적인 방법으로 면접 보고 뽑은 거야. 4대 보험도 다 들어 준다니까?”

    땡초의 주위에 악귀가 없는 것만 봐도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귀신들 쫓느라 공사 다 망하신 우리 인호 동생이 무슨 일로 나를 다 찾아왔을까? 너 나랑 어울리는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그 말대로 조직폭력배보다 더 악독하다는 사채업자와 인호가 가깝게 지내야 할 이유는 없다.

    “부탁할 것이 있어요.”

    “어이구야. 부탁? 살다 보니 이런 날이 다 있네. 그래 무슨 부탁? 참고로 나 요즘 착하게 살아서 나쁜 일은 안 한다.”

    “알겠습니다. 형. 전에 사채 할 때 심부름센타도 같이 했었죠?”

    “그랬지.”

    돈 빌려 간 이들이 잠수를 타거나 하면 정보를 모아야 할 필요가 있어 몇 곳의 심부름센터를 운영했었다.

    “그런데 다 독립시켰어. 요즘은 서로 연락도 잘 안 해.”

    “그래도 끈은 이어져 있을 것 아니에요.”

    “그렇기는 한데 왜? 누가 돈 떼먹고 도망쳤어? 아니면 애인이 바람을 펴?”

    “빌려 줄 돈도 없고 바람필 애인도 없습니다.”

    “아! 그랬지. 내가 그걸 깜빡했네. 말해봐.”

    인호가 김혜미의 뺑소니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땡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간다.

    “나도 나쁜 짓 많이 했지만 세상에 참 나쁜 놈들 많아. 손녀 하나 보고 살아가는 그 할머니 불쌍해서 어떻게 하니.”

    “그러니 부탁하는 거 아닙니까. 까만 벤츠에 번호판 끝자리가 56으로 끝난답니다. 사건 당일에 사고 현장 근처에 주차해 두었던 것 같아요. 벤츠쯤 되는 차에 블랙박스가 없을 리는 없잖아요.”

    “그렇지. 그러니까 네 말은 그 벤츠 차량을 찾아달라?”

    땡초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자, 그 차는 내가 어떻게든 찾아볼게. 내가 네 부탁 들어줬으니 이제 네가 내 부탁 들어줄 차례네?”

    “부탁이요?”

    땡초가 웃으며 테이블 위에 놓인 양주를 오픈한다.

    “오늘 나하고 죽을 때까지 마시는 거야. 오케이?”

    * * *

    “끄응-.”

    머리가 지끈거린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술을 마신 것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진짜 죽이려고 한 건가?”

    죽을 때까지 마셔보자던 땡초의 말이 떠오른 인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양주 다섯 병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다.

    샤아아아-

    물소리가 들린다.

    “아!”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기기 직전에 땡초가 여자를 불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몸을 일으키자 뇌가 흔들리는 것 같은 두통이 밀려온다.

    당장이라도 구토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일단 아무렇게나 벗어둔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그만 나오지?”

    인호가 양말을 신으며 말했다.

    “오빠. 뭐라고 그랬어?”

    “아, 아닙니다.”

    그러자 샤워를 하고 있던,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여인의 음성이 들려온다.

    “나오라고 했다.”

    좀 더 나직하게 말을 하니 침대에서 머리 두 개가 쑥 올라온다.

    갑자기 침대를 뚫고 머리가 올라왔음에도 인호는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사기꾼과 뚱보였다.

    “하, 하하. 알고 있었어?”

    “모르겠냐? 니들은 망령이라는 것들이 왜 매번 이럴 때마다 숨어서 엿보려고 하는데?”

    “망령이라고 남자가 아닌 건 아니거든?”

    “미친…… 거, 적당히 하시고 나오시죠?”

    인호가 벽을 보며 말을 하자 화려한 벽지로 도배된 벽이 쑥 올라온다.

    어색하게 웃으며 등장한 영감을 보며 인호가 와락 인상을 구긴다.

    “저 녀석들이야 젊은 나이에 요절했으니 그렇다고 쳐요. 영감님은 도대체 왜 그러는데요?”

    “하, 하하.”

    영감이 어색하게 웃자 사기꾼이 묘하게 웃으며 말한다.

    “원래 남자는 밥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다 그런 거야.”

    “말을 말자.”

    인호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려 하자 사기꾼이 앞을 가로막는다.

    “안 해? 그냥 가려고?”

    “도대체 뭘 기대한 거냐?”

    “아니. 나 잡아잡수 하는 물고기가 퍼덕이고 있는데 정말 그냥 간다고?”

    인호가 인상을 구기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엘리베이터를 타니 세 망령도 함께 탄다.

    “아니. 무슨 망령들이 엘리베이터를 타? 그냥 벽 뚫고 나가면 되잖아.”

    “야박하게 왜 그러냐? 우리 탄다고 전기세가 더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것보다 너 그거 맞지?”

    “그거? 그게 뭔데?”

    “왜 그거 있잖아. 아무리 노력을 해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 신체 부위가 있는 그런 거.”

    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사기꾼을 보다가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간다.

    “정말 고잔가?”

    뚱보가 중얼거리듯 말을 하자 영감이 고개를 흔든다.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어요?”

    “그냥 가자.”

    영감이 인호의 뒤를 쫓는다.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한창 피 끓을 나이에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내가 인호 얼굴로 태어났음 여자들 다 후리고 다녔을 텐데.”

    “크크,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런 미친 뚱보 새끼. 야, 인마. 그래도 나는 살아 있을 때 즐길 거 다 즐겼지. 넌? 개뿔이 아무것도 모르는 게 어디서 지랄이야? 사실대로 말해봐. 너 한 번도 못 해 봤지?”

    “아, 아니거든?”

    눈에 띄게 당황하는 뚱보를 보며 사기꾼이 낄낄거리며 몸을 옮긴다.

    “저런 녀석이 왜 총각 귀신이 안 됐는지 몰라.”

    “아니라고!”

    * * *

    “형도 이제 나이 생각해야지. 매번 그렇게 술 마시다 정말 죽어요.”

    “크크, 매번 그렇게 마시겠냐? 너 오랜만에 봐서 좋아서 그랬다, 임마. 그러니 자주 좀 와라.”

    “됐고요.”

    땡초와 함께 콩나물 해장국을 먹고 사우나에 왔다.

    땡초가 옷을 벗으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눈치를 보다 다른 곳으로 슬금슬금 피했다. 온몸을 화려하게 뒤덮은 문신 때문이다.

    인호가 옷을 벗자 근처로 오던 한 사내가 흠칫 몸을 떨고는 뒷걸음질을 쳤다.

    “누가 보면 니가 깡팬 줄 알겠다.”

    인호의 몸을 가득 뒤덮은 기이한 검은 문양을 보며 땡초가 피식 웃는다.

    “그런데 도대체 그건 무슨 문신이냐?”

    “알면 다쳐요.”

    인호가 말을 하며 웃는다. 왜인지 서글퍼 보이는 미소다.

    건식 사우나에 들어간 두 사람.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뜨거웠다.

    땡초는 얼굴에 줄줄 흐르는 땀으로 세수를 하듯 얼굴을 쓸었다.

    “인호야. 부탁 하나 해도 되냐?”

    “하지 마요.”

    “아니 넌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냉정하게 그러냐.”

    “형이 나한테 부탁할 일이 뭐 있겠어요?”

    망령이나 악귀와 관련된 일일 것이다. 그런 일이 아니라면 땡초가 인호에게 부탁할 만한 게 없었다.

    “당장 형은 멀쩡해 보이니 형 일은 아닌 것 같고. 형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 정상적인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 당연히 거절을 하지.”

    “하여튼 눈치는 빠른 새끼. 예전에 모시던 형님이 계신데 문제가 조금 있나 봐. 그래서…….”

    “그만 해요. 어차피 그 일 할 생각 없어요.”

    “차가운 새끼. 알았다. 안 할게. 그나저나 너 어제 했냐?”

    인호가 무슨 뜻인지 몰라 땡초를 바라보다가 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땡초의 얼굴에 수건을 던졌다.

    “하여튼 망령이나 사람이나 왜 이러는지 몰라.”

    * * *

    망령들이 사무실에서 빈둥거리고 있을 때 인호가 안으로 들어온다.

    “뭐 좀 건진 거 있어?”

    인호의 물음에 중국산 도자기를 이리저리 살피던 사기꾼이 말한다.

    “꽝이야.”

    “무슨 말이야?”

    “사고 현장 근처에 있는 망령들을 찾아다녀 봤는데 아무도 모르더라고. 그리고 더 발품 팔아봐야 알아낼 것도 없을 거야.”

    단정 짓듯 말을 하는 사기꾼을 인호가 의아한 듯 바라본다.

    “그날 근처 어떤 빌라에서 불이 났나 봐. 뉴스 봤지? 화재로 세 명 죽었다고.”

    “기억나는 거 같아.”

    “그때 저승사자가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왔었더라고. 어떻게 됐겠어?”

    저승사자에게 겁을 먹은 망령들이 꽁꽁 몸을 숨기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땡초가 뭔가를 알아낼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유 형사한테 좀 알아보라고 하면 안 돼?”

    영감의 말에 인호가 고개를 저었다. 인연이 있는 강력계 형사가 있지만, 그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은 없다.

    “너 설마…….”

    “설마는 무슨 설마. 알아볼 것도 없다면서 사무실에서 뭣들 하는데요? 다들 나가서 일해요. 일. 사기꾼. 안 나갈래? 요즘 한 건도 못 한 거 몰라?”

    “괜히 나한테 지랄이야.”

    사기꾼이 구시렁거리며 벽을 뚫고 사라진다.

    “뚱보. 너는 뭐 하는데? 당장 젯상에 올릴 채솟값도 없는데 그 샌드위치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잘 넘어가는데?”

    인호가 눈을 부라리자 뚱보가 황급히 사무실 밖으로 나간다.

    “영감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벽을 통과하려던 영감이 어색하게 웃으며 인호를 바라본다.

    “나 불렀어? 지금 일하러 나가잖아.”

    “일은 무슨…… 또 어디 가서 참한 할머니 망령 없나 기웃거리겠지. 됐고. 요즘 한강 간 지 오래됐죠? 거기나 가 봐요. 불경기에는 한강이 짭짤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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