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5화
인호가 여자 망령 옆에 쪼그려 앉는다.
“아는 할머니예요?”
여자 망령이 흠칫 몸을 떨고는 인호를 바라본다.
“제가 보이세요?”
“보이니 말을 걸지요. 보이기만 해? 대화도 통해요.”
여자 망령이 벌떡 일어선다.
“저 그러면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할머니와 관련된 부탁이에요?”
여자 망령이 고개를 끄덕인다.
인호가 횡단보도 반대편 길가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바라본다.
할머니는 스케치북에 글귀를 적어 줄을 매달아 목에 걸고 있었다.
- 뺑소니 목격자를 찾습니다.
- 7월 26일 저녁……
“뺑소니 피해자?”
“네.”
“저 할머니는?”
“제 할머니세요.”
“7월 26일에 죽었으면 딱 보름 됐네요.”
인호가 여자 망령을 보며 묻는다.
“혹시 까만 정장 입고 인상 더럽게 생긴 아저씨 못 봤어요?”
여자 망령이 고개를 흔든다.
“이 양반은 뭐 한다고 보름이 지나도록 인도를 하지 않은 거야? 직무태만이잖아.”
인호가 여자 망령을 힐끔 바라본다.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되는 거 알죠?”
“네, 알아요.”
가끔 망령들 중 자신이 죽은 줄 모르는 이들이 있다. 다행히 여자 망령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부탁이 있어요.”
“할머니에게 마지막 말을 전하고 싶은 거예요?”
“네. 가능할까요?”
“말씀하세요. 할머니가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일단 전해는 드릴게요. 아, 그리고 보니 아직 이름도 모르네요.”
“김혜미요.”
“말씀해 보세요.”
인호에게 향해 있던 김혜미가 고개를 돌려 건너편의 할머니를 바라본다.
금방 눈물이 글썽해지고 이내 주르륵 흘러내린다.
“우리 할머니…… 혼자 저 키운다고 정말 고생 많이 하셨거든요.”
“부모님이나 형제는요?”
김혜미가 고개를 흔든다.
“부모님은 저 어렸을 때 돌아가셨어요. 형제는 없고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가 혼자서 절 키우셨어요. 하루도 편하게 쉬시지도 못하고 매일 힘들게 일만 하셨어요.”
“에구, 저런.”
인호의 뒤에 서 있는 영감이 안타까운 탄식을 토해낸다.
“당신 좋아하시는 냉면 한 그릇 못 드시고 손녀 입에 맛난 거 넣어 주시겠다고 식당에서 일하고 밤에는 폐지 주우셨어요. 대학 졸업하고 취직해서 돈을 벌기 시작했고 이제 할머니 좋아하시는 냉면도 마음껏 사드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런데…….”
김혜미가 펑펑 운다.
“냉면을 사드렸는데…… 이가 모두 상하셔서 제대로 씹지도 못했어요. 바보같이 저는 그것도 몰랐어요. 우리 할머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아-.”
가슴이 먹먹해지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김혜미가 눈물을 닦으며 할머니를 온전히 눈에 담고는 말을 잇는다.
“부탁이 조금 많은데 괜찮을까요?”
“말해봐요.”
“보험이 있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그런 걸 어떻게 하는지 모를 거예요.”
“제가 도와 드릴게요.”
“그리고 제 방 옷장 가장 밑 칸 옷을 들추면 통장 있거든요. 취직하고 처음 할머니 냉면 사드릴 때 이빨이 없으신 걸 알고 그때부터 조금씩이기는 하지만 적금을 들었어요. 할머니 틀니라도 해 드리려고요. 그것도 좀 찾아서 드리면 안 될까요?”
“왜 안 되겠어요. 제가 잘 아는 치과 있어요. 솜씨 좋은 곳이니 할머니도 앞으로 냉면 잘 드실 거예요.”
김혜미가 환하게 웃는다. 아마도 냉면을 맛나게 먹는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김혜미는 알까?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냉면일 수는 있어도 가장 맛있는 냉면은 김혜미와 함께 먹는 냉면이라는 것을…….
“보험금이면 할머니 작은 빌라는 살 수 있을 거예요. 매번 집주인이 전세금 올려달라고 할 때마다 고개 숙이셨거든요.”
“제가 인맥이 넓어요. 공인 중개사도 알아요. 목 좋은 곳에, 할머니 힘드실 테니 언덕도 없는 곳으로 알아봐 드릴게요.”
“너무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김혜미는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러나 곱게 휘어진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하아-.”
결국 인호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고개를 돌리고 손바닥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숨을 크게 내쉬며 감정을 추스른 인호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한다.
“영감.”
“왜 인마.”
“나 진짜 웬만하면 오지랖 안 부리려고 했거든요. 얼마 전에 사자한테 경고받았어요.”
“하도 설치고 다니니 그렇지.”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 안 되겠어요.”
그 말에 영감이 혀를 찬다. 하지만 이내 피식 웃는다.
“그래야 정인호지.”
“혜미 씨.”
김혜미가 영문을 몰라 인호를 바라본다.
“죽을 당시 기억해요?”
망령들은 자신이 죽을 당시 마지막에 본 것을 사진처럼 기억하기 마련이다.
“네.”
“뺑소니 맞아요?”
김혜미가 고개를 끄덕인다.
“횡단보도가 초록불이라 건너는데 검정색 차가 달려왔어요. 그리고…….”
“차 번호는요? 차 종류는요?”
“차는 외제차였어요. 회사 전무님 차하고 같은 회사 차였어요. 벤츠요. 그리고 차 번호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요. 마지막 두 자리가 56이었던 것 같아요.”
“주변에 사람들은요?”
“없었어요. 그날 회사에서 회식한다고 늦게 왔거든요.”
“길가에 주차되어 있던 차도 없었어요?”
김혜미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한다.
“저쪽 멀리 하얀색 차가 한 대 있었어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인호가 길 건너 할머니를 바라본다.
잠시 후 횡단보도가 초록불로 바뀌고 인호가 횡단보도를 건넜다.
하지만 김혜미는 그러지 못하고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망령은 자신이 죽은 장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벗어날 수는 있지만, 아직 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길을 건넌 후 인호는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할머니 앞에 쪼그려 앉는다.
뺑소니 사고 목격자를 찾는다고 적어 둔 스케치북 위에 얼룩이 져 있다.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니 또 묵직한 뭔가가 치밀어 올라 울컥한다.
“크흠-. 하, 할머니.”
할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다.
인호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할머니에게 건넨다.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애써 웃어 보이려 했지만, 그 웃음마저 처연해 보였다.
“저 혜미 잘 아는 오빱니다.”
“네? 우리 혜미를 아시는 분이라고요?”
“네.”
할머니가 일어서려 땅을 손으로 짚는다. 하지만 힘에 부치는지 낑낑거리기만 할 뿐 일어서지를 못한다.
인호가 할머니를 부축해 일으켜 준다.
“혜미가 어제 꿈에 나왔어요.”
“우리 혜미가요?”
말을 하는 할머니의 입안에는 김혜미의 말대로 이빨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네. 할머니 더운데 매일 여기 계신다고 저더러 집으로 모시고 가달라고 부탁했어요.”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자글자글한 주름진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며 인호도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나중에 할머니 모시고 냉면도 사드리라고 부탁했어요.”
“혜, 혜미야. 내 새끼…… 할미는…… 할미는…….”
감정이 격해져 말도 잘하지 못하는 할머니를 인호가 가볍게 안아준다.
“할머니. 제가 약속드릴게요. 혜미 치고 도망친 그놈 꼭 잡을게요. 그러니까 저 믿으시고 집에 가세요.”
“정말이요?”
“그럼요. 제가 또 그런 거 엄청 잘해요. 그 나쁜 놈 잡아서 꼭 죗값 치르게 할게요. 그리고 할머님께, 혜미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게 할게요. 그러니까…….”
인호는 할머니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며 말했다.
“저하고 집에 가요.”
* * *
“어떤 개자식이 사람을 죽이고 토낀 거야?”
영감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들은 사기꾼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인호는 그런 사기꾼을 지켜보기만 했다.
뚱보 역시 화가 나는지 샌드위치를 으적으적 씹고 있다.
“그래서 니들이 할 일이 있어.”
“뭘 하면 돼?”
“사고 난 장소 인근에 있는 망령들 좀 찾아다녀 봐. 확인해 보니 인근에 지박령은 없더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주변에 활동하는 망령들 있나 좀 찾아봐.”
“알았어. 맡겨 두라고. 내가 어떻게든 그 개자식 찾을 테니까. 뚱보야, 가자.”
“응!”
뚱보가 남은 샌드위치를 입에 넣고 전투적으로 씹으며 사기꾼을 따라 벽을 통과해 밖으로 나간다.
“나도 나가 볼까?”
“영감은 그냥 쉬어요. 오늘 많이 돌아다녔잖아요. 그리고 요즘 마음도 편치 않을 텐데.”
“아무렇지도 않다니까 계속 그러네. 그리고 나는 직접 봤잖아. 돕고 싶어서 그래. 혜미라는 아가씨도, 혼자 남은 할머니도.”
“하여튼 정은 많아서. 영감이 나서면 나야 믿음 가고 좋지요. 내가 많이 의지하고 있는 거 알지요?”
영감이 피식 웃는다.
“맨날 구박하다 이럴 때만 그러지. 너는 어쩌려고?”
“저도 나름대로 알아봐야죠.”
“그 녀석에게 갈 거지?”
영감이 말하는 그 녀석을 떠올리고는 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땡초 형한테 가 보려고요.”
“아무래도 땡초 그 녀석이 이런 일에는 잘 어울리지. 그러면 나도 간다.”
* * *
반짝이는 네온사인이 밤거리를 화려하게 밝히고 있다.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는 취객, 길거리에서 대담하게 애정행각을 벌이는 커플, 우르르 떼를 지어 다니는 고등학생들까지.
인호는 ‘노블레스’라는 간판이 달린 건물로 다가선다. 그러자 검은 정장을 입은 큰 덩치의 사내가 인호의 앞을 막았다.
인호가 사내의 어깨를 툭 친다.
“수고가 많아.”
지나치려는 인호의 뒷덜미를 사내가 잡아챈다.
“이보시오, 아자씨.”
“응? 왜?”
“응? 왜? 이 아자씨가 못 자시실 걸 자시셨나. 아자씨 나 아요?”
“아니, 모르는데?”
“그런데 언제 봤다고 초면에 그렇게 말꼬랑지를 짤라 묵고 지랄 염병을 해쌌소. 그리고 아자씨가 뭔데 영업 시작도 안 헌 넘의 업장에 들어갈라허요?”
인호가 또 사내의 어깨를 툭 친다.
“들어갈 만하니까 들어가지. 그러면 나 간다.”
사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후 뒷덜미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당긴다.
“사람이 좋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니 말이 말 같지가 않소?”
기분이 상한 듯 인호가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한다.
“딱 3초 줄게. 만약 내 말이 끝나고 3초가 지난 후에도 니 손이 날 잡고 있으면…….”
“있으면?”
“그냥 가야지.”
인호가 몸을 돌리려 하자 사내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이 아자씨가 시방 나랑 장난 쪼개나. 큰성님 명령이고 뭐고 확 갈아 마셔 불랑께.”
“날 갈아 마시려면 조금 큰 믹서기가 필요할 텐데.”
“이 아자씨가 진짜 확…….”
“아이, 알었어. 장난이잖아. 그나저나 니네 큰 형님이 무슨 명령을 내렸냐?”
사내가 눈을 부라리며 인호를 쏘아본다.
“오늘 큰성님 중요한 손님이 오신다고 했응께. 아자씨는 그만 가쇼.”
“그러다 내가 니네 큰형님 중요한 손님이면 어떻게 하려고?”
“어떻게 되기는…….”
빡-
누군가 사내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사내가 몸을 돌리며 크게 외친다.
“어떤 시러배 잡…… 성님 나오셨습니까요.”
사내의 뒤로 키는 작지만 체구가 다부지고 인상이 험악한 사내가 서 있었다.
“어떻게 되기는 좆되는 거지.”
작은 사내가 다시 한번 사내의 뒤통수를 후려치고는 인호를 향해 꾸벅 인사한다.
“인호 형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