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락 흥신소-1화 (프롤로그) (1/190)

프롤로그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시각.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골목에 중년의 사내가 사내아이 손을 잡고 들어선다.

볕이 잘 들지 않는 골목 특유의 악취에 사내가 인상을 찌푸린다.

골목 깊숙한 곳.

이곳이 서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낡은 2층 건물이 보였다.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낡은 간판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건물만큼이나 낡아 보이는 간판은 당장이라도 뚝하고 떨어질 것만 같다.

극락 흥신소

간판에 적힌 상호명을 확인한 중년 사내가 다시 한번 인상을 찌푸린다.

“작명 센스하고는.”

제01화

인호는 사무실에서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다.

“거 계속 빈둥거리지 말고 나가서 일하라고, 일.”

사무실에는 책상, 4인용 소파, 작은 냉장고가 전부다.

벽에는 세 개의 액자가 걸려있는데 모두 3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사내들의 사진이다.

“전생에 못 처먹고 죽은 귀신이 붙었냐? 나가라는 말 안 들려?”

인호가 아무도 없는 소파를 가리키며 짜증 섞인 고함을 내지른다.

“야, 야-! 그거 비싼 거라고. 만지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하냐?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지?”

책상을 향해 몸을 돌려 소리를 지르던 인호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냉장고 옆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하여튼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요. 전부 안 나가?”

탁자 위에 있는 명패를 들어 올린다.

그러더니 출입문을 가리키며 당장이라도 명패를 던질 듯 고함을 지른다.

“나가! 나가라고!”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중년 사내가 어린아이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왔다.

사내는 인호를 발견하고는 어색하게 웃으며 출입문을 가리킨다.

“나갈까요?”

어색하게 웃으며 명패를 내려놓은 인호가 사내에게 다가가 팔을 잡아끈다.

“아이고, 나가시기는요. 날도 더운데 어딜 나가세요.”

“바깥보다 여기가 더 더운 것 같은데요?”

8월의 폭염이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지만 사무실에는 에어컨도, 선풍기도 보이지 않았다.

“하, 하하. 일단 시원하게 물 한잔하시죠.”

인호는 사내를 억지로 소파에 앉힌 후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사내에게 한 잔 따라준다.

사내는 물을 마시며 인호를 보며 의아한 듯 묻는다.

“한여름에 무슨 옷을 그렇게 입으셨어요? 그리고 보니 땀도 안 흘리시네?”

“하하, 제가 원래 더위를 조금 덜 탑니다.”

냉방 기구도 없는 무더운 사무실 안에서도 인호는 긴 와이셔츠 위에 슈트까지 입고 있었다.

“아들이세요?”

“네.”

인호가 사내와 함께 온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똘망똘망하게 생겼네요. 아빠 닮았나 봐요.”

“그런 소리 많이 듣습니다.”

“꼬마야. 너도 앉아. 아저씨가 맛있는 거 줄까? 코코아 어때? 달콤해서 아주 맛있는데.”

아이가 대답은 하지 않고 아버지 옆에 바짝 붙는다.

“하하, 애가 낯을 많이 가리나 보네요.”

“그보다 아까는 왜 그러신 겁니까?”

“네? 무슨 말씀이시진 모르겠네요.”

“막 나가라고 소리 질렀잖아요. 왜 그러셨어요?”

“아하!”

인호가 손가락을 튕겼다.

“사무실에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요. 그래서 연기 연습한 거예요. 한번 보실래요? 앉아 있으면 돈이 나오냐? 당장 나가서 일 구해와. 안 나가? 나가라고!”

인호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아이가 아버지 뒤로 숨는다.

“아, 미안. 너한테 한 말 아니야. 그보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소문 듣고 왔습니다.”

“아, 그러셨구나. 제가 이쪽 계통에서 조금, 아주 조금 유명하지요. 그런데 어느 분 소개로 오셨습니까?”

“그런 것도 말을 해야 하나요?”

인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니지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던지 그 일을 아는 사람은 저와 선생님 단 두 사람뿐일 겁니다. 제가 받는 수고비에는 비밀 보장에 대한 것도 포함이 되어 있으니까요. 자, 그러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볼까요?”

사내가 아이를 힐끔 바라본다.

“아들이 아픕니다.”

“딱 봐도 건강해 보이진 않네요.”

낯빛이 창백하고 눈 밑에 심하게 다크서클이 자리하고 있다.

인호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다 움찔하는 모습을 보고는 손을 거둔다.

“유명한 병원이란 병원은 다 가봤습니다. 하지만 의사들은 한결같이 아들의 몸이 정상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건 뭡니까?”

인호가 탁자 위에 꺼내놓은 투명한 수정구를 보며 사내가 물었다.

“나중에 알게 되실 테니 일단 계속하십시오.”

“교회에도 가 보고 절에도 가 봤습니다. 심지어 무당에게 굿도 해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인호가 다 안다는 듯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셨구나. 그렇다면!”

탕!

인호가 탁자를 세게 내려치자 사내와 아이가 깜짝 놀란다.

인호가 눈을 부릅뜨고는 사내를 응시한다.

“정말 잘 오신 겁니다. 제가 그쪽 분야의 전문가지요. 자, 시작할까요?”

“자, 잠시만요.”

사내가 다급히 말했다.

“네? 왜 그러시죠?”

“이곳이 뭘 하는 곳입니까? 선생님께서는 정확히 뭘 할 줄 아십니까?”

인호가 의아한 듯 사내를 바라본다.

“제 소문 듣고 오셨다면서요?”

“들었지요.”

“그런데 그런 질문은 왜 하시죠?”

“소개를 해준 사람이 그냥 용하다고만 해서…….”

인호가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건넨다.

“극락 흥신소 소장 정인호…… 대한민국 영매 협회 회장?”

“하하, 그렇습니다. 제가 이곳 소장이고, 영매 협회 회장이기도 하지요.”

“영매 협회요? 그런 곳도 있습니까?”

“영매 모르세요? 영어로 싸이킥이라고 합니다.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면 죽은 이의 영혼과 소통을 할 수 있다는 뜻이죠.”

사내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자 인호가 웃으며 설명해 준다.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 보셨습니까?”

“네, 봤지요.”

“거기 나오는. 거, 이름이 뭐더라? 아, 우피 골드버그. 그 우피 골드버그가 맡았던 역할이 바로 영매죠.”

“아-!”

사내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영매시면 영혼을 보시고 그러는 겁니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비슷합니다.”

사내가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묻는다.

“아이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인호가 환하게 웃으며 수정구를 손으로 쓰다듬는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잠시 후면 아주 잘 찾아왔다고 생각하시게 될 겁니다.”

수정구를 쓰다듬는 인호를 보며 말없이 앉아 있던 아이가 입을 열었다.

“저거 우리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거랑 똑같아. 손으로 쓰다듬으면 안에서 전기가 생겨서 반짝반짝 빛이 나.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정전기 때문이래.”

순간 정적이 흘렀다.

사내가 미심쩍은 눈으로 인호와 수정구를 바라보았다.

인호가 이제 막 빛이 나려는 수정구를 황급히 탁자 아래로 내리고 아이를 보며 어색하게 웃는다.

“요즘 사람들이 도통 이런 것들을 믿지를 않아서요. 눈에 보이는 것만 믿기 때문에 저희들도 어쩔 수 없이 이런 소품들을 이용하고는 하지요.”

인호가 아이의 볼을 살짝 잡고 흔든다.

“참 똑똑한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인상을 찌푸리자 냉큼 손을 뗐다.

“자, 그러면 진짜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사내는 미심쩍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인호는 호흡을 크게 한 후 천천히 눈을 감더니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사내가 무슨 말인가 하려 할 때 인호가 눈을 떴다.

인호의 눈에 잠시지만 푸른빛이 일렁이더니 곧 사라졌다.

놀란 사내가 아이의 어깨를 감쌌다.

인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본다.

“아드님의 주변에 영혼이 떠돌고 있습니다.”

“네?”

사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묻는다.

“영혼이 떠돌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드님이 아픈 이유가 아마도 그것 때문일 겁니다.”

사내가 주먹을 쥐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어디? 어디 있습니까?”

“그런다고 보이는 게 아닙니다.”

“정말 우리 아이 주변에 영혼이 있는 겁니까?”

의심스러워하는 사내를 보며 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인호가 아이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정확히는 아이의 위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왜 거기 있어?”

“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누구와 이야기하는 겁니까?”

사내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듯 인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 그런 거였네요. 무당도 당신하고 똑같았습니다. 이거 사기 아닙니까?”

인호는 사내가 뭐라고 떠들던 신경 쓰지 않고 다시 말을 한다.

“꼬마야. 너 왜 거기 있냐니까?”

인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사내가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닫았다.

인호가 고개를 끄덕거렸고, 잠시 후 긴 한숨을 내쉬고는 아이에게 묻는다.

“민수라고 알아?”

“민수요? 제 친구예요.”

“너 이름이 태경이지?”

사내가 놀란 눈으로 인호를 바라보았다. 아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민수가 태경이에게 어떤 친구지?”

“제일 친한 친구예요. 하지만…… 하지만…….”

태경이가 고개를 숙인다. 무릎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민수는 한 달 전에 하늘나라에 갔어요.”

사내가 놀란 듯 태경이를 감싸 안았다. 아마도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래, 그렇구나. 우리 태경이 혹시 민수하고 평생 놀아준다고 약속한 적 있어?”

잠시 생각하던 태경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 아파서 병원에 있을 때 병문안 가서 약속했어요.”

인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내를 바라봤다.

“대충 무슨 일인지 짐작은 하시겠지요?”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경이 주변에 있는 영혼이 바로 친구 민수예요. 들으신 것처럼 태경이가 민수와 평생 놀아주기로 약속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민수는 죽어서도 태경이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 거고요.”

사내가 인호의 손을 꼭 잡는다. 이제야 인호의 말을 믿는 것 같다.

“소, 소장님.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설마 평생 이렇게 태경이를 괴롭히는 것은 아니겠죠?”

인호가 태경이 위쪽을 바라보며 말한다.

“알아. 네가 태경이 괴롭히는 게 아니라는 건. 하지만 그래도 네가 태경이 곁에 있으면 태경이가 많이 아파. 아저씨 말 알아듣겠어?”

인호가 이번에는 태경이와 눈을 맞춘다.

“태경아. 지금 민수가 앞에 있어. 이제 그만 놀고 하늘나라로 가려고 해. 그러니까 인사해 주렴.”

인호가 태경이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 순간 인호의 눈에 또다시 푸른빛이 일렁였다.

“민수야!”

태경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눈앞에 희미한 푸른빛이 보이더니 점점 선명해진다.

바로 한 달 전에 죽은 친구인 민수다.

- 태경아. 나 때문에 아팠어? 미안해.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아니. 괜찮아. 내가 약속했잖아. 나는 네가 곁에 있는지도 모르고.”

태경이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내는 놀란 눈으로 태경이를 바라볼 뿐이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됐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었다.

- 태경아. 이제 나갈게. 너 따라다니면서 다른 친구들도 보고, 선생님도 보고 재밌었어.

“안 돼!”

태경이가 빽하고 소리를 지른다.

“가지 마. 민수야 가지 마. 내 친구 민수야 가지 마. 나 아파도 되니까 가지 마.”

눈앞의 민수를 잡으려 했지만 태경이의 손은 헛되이 허공을 가를 뿐이다. 민수가 손을 뻗지만 마찬가지였다.

- 오래오래 살아. 나처럼 일찍 하늘나라 오지 말고. 나중에, 아주 나중에 우리 다시 만나자. 그때는 정말…….

민수가 환하게 웃는다.

- 히히. 그때는 정말 평생 재미있게 놀자.

민수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가지 마. 민수야, 가지 마. 내가 잘못했어. 나 아파도 괜찮아. 민수야!”

울며 소리 지르는 태경이를 꼭 끌어안으며 사내 역시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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