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전신의 촉각이 곤두섰다.
루블리에는 새틴이 다리를 오므리게 두지 않았다.
그는 새틴의 몸을 샅샅이 들여다보고 맛을 보았다. 시시각각 배 속이 조여들었다.
아랫배에서 시작된 기묘한 울렁임이 발가락 끝까지 밀려갔다.
새틴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확실히 다른 의미로 두려웠다.
깜빡깜빡 못 참겠다고 여겨지는 순간마다 더 거센 파동이 있었다. 실로 놀라웠다.
너무도 생소한 느낌이라 그만 물러나고 싶기도 했고, 자꾸만 고조되는 이 감각의 다음을 알고 싶기도 했다.
그래도 다른 건 다 참을 만했다. 돌이켜보니 어쨌든 참아낸 뒤였다.
하지만 루블리에가 제 가장 깊은 곳에 손을 대었을 때는 이성이 날아갔다.
“루…… 브, 이거, 있잖아, 이건…….”
손가락이 그곳을 가르고 조심스럽게 두드리자 새틴은 까무러치도록 당황했다.
“아파?”
루블리에가 묻는 ‘아파’는 이쯤 되면 습관이었다.
자신이 손만 대도 아플 거라고 염려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새틴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아프진 않은데…….”
낯설어서, 어색해서 그래.
뭘 해야 하는지 어려워서 그래.
차마 솔직한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내가 널 아프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디가 굵게 도드라진 손가락이 내부로 진입했다.
젖은 길은 몸속 깊은 체온으로 따뜻했다.
매끄럽게 잘 받아들인다 싶었으나 새틴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긴장으로 파르르 떨었다.
안이 확 좁아졌다.
“어…… 차라리 아픈 게 낫지……. 뭐라고 해야 해? 이걸.”
소름이 오싹오싹 돋았다. 새틴은 숨을 가파르게 토해냈다.
“새틴, 괜찮아. 떨지 마.”
“내가 나 아니게 될 것 같잖아.”
“그래도 돼.”
루블리에는 새틴을 다독였다.
“그게 내가 바라는 거야. ……여긴 나와 너, 둘 뿐이야. 어떤 모습을 보여도 부끄럽지 않아.”
어찌할 수 없이 입구는 좁았다.
마음의 준비를 끝냈다고 해도 결코 새틴이 편하지 않을 것이다. 루블리에는 몸의 요철을 맞췄다. 힘을 실어 밀고 들어갔다.
아까와는 완전히 상반된 압박감에 새틴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아파!”
차라리 아픈 게 낫겠다는 좀전의 각오가 싹 사라진 듯한 비명이었다.
그는 감각의 덩어리를 자극했다. 막혔던 진입이 조금 나아졌다.
통증도 통증이거니와 생소한 충격으로 물기 스민 눈이 된 새틴이 루블리에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됐어?”
루블리에는 턱도 없는 질문을 하는 새틴을 내려다보았다.
“네 표정을 봐선 그렇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아직…….”
“아직……?”
너무 버거웠다.
기사니까 선천적으로 체격이 큰 게 좋은 거겠지, 하며 살았는데 지금은 그의 훌륭한 체격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이 버거운 곳을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오는 루블리에가 신기했다.
그를 받아들이는 제 몸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제 안에 이리도 깊은 공간이 있는 줄 처음 깨달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흐윽……. 새틴은 비어져 나오려는 신음을 참았다. 왜 밤이 부부만의 사정인지를 알겠다.
제 속을 완전하게 열어 보여주는 기분이었다. 모든 무장을 해제하고 날것 그대로 부딪혔다.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었다.
거친 호흡이 잘박잘박 흩어졌다. 루블리에는 미간을 좁혔다.
한 팔로 제 무게를 버티며 다른 손으로 새틴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겁먹은 큰 눈에 서린 빛을 계속 확인하면서, 긴장을 풀고 힘을 빼게 유도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밀어 열었다.
루블리에는 신음을 억눌렀다.
도발 한 번에 침실로 달아나고 유령처럼 몸을 숨기던 기한부 아내는 사라졌다.
벅찬 몸이 아파도, 힘들어도 그만두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땀에 젖은 손이 루블리에의 등에 매달렸다.
“새틴, ……새틴.”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 새틴은 간헐적인 떨림으로 화답했다.
깊이 몸을 묻어온 그가 귓가에 대고 짧은 단어들을 밀어 넣었다.
새틴, 네가, 너무. 절반은 들렸고 절반은 들리지 않았다.
입구를 통과할 때의 빠듯함이 아플 뿐, 적응하니 견딜 만했다.
도리어 저를 꽉 채운 감각에 신경이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어찔해 목이 메었다. 새틴은 아득하게 생각했다.
네가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어.
그리고 무언가를 생각할 사치마저 사라졌다.
그가 움직이는 대로 몸이 먼저 반응했다. 소리를 냈는지, 내지 않았는지, 울었는지, 울지 않았는지 기억할 겨를도 없었다.
열락이 한없이 부풀었다. 눈앞의 세상을 뒤흔드는 자극이었다.
이 감각이 어디로 도달할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나 이 끝에 무엇이 있든 간에 상관없다는 마음만 남았다.
아우성치던 열기가 폭발했다.
두 쌍의 손가락이 서로 얽혔다.
절정과 동시에 나른한 탈력감이 찾아왔다.
새틴은 땀에 젖은 옆얼굴을 이불에 묻었다.
하지만 루블리에가 이내 새틴의 얼굴을 그러안았다.
이마를 맞대고, 코를 비비고, 입술을 찍었다. 새틴은 반쯤 넋을 잃은 채로 그의 친밀한 키스를 받았다.
“꿈만 같아.”
철없는 소년기부터 시작된 기나긴 기다림이 드디어 끝을 맺었다. 루블리에는 비로소 고백했다.
이 말을 하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들었다.
“사랑해, 새틴.”
사랑. 문득 새틴은 루블리에의 학창 시절에 자신이 있었다던 이야기를 돌이켰다.
이제야 변화의 시작점에 발을 들여놓기로 결심한 제게 사랑이라는 단어는 아직 크고 무거웠다.
“응.”
궁금해졌다.
어떤 감정이어야 사랑이라고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을까.
오랜 약혼자였던 기요른을 상대로도 사랑한다고는 느껴본 적이 없다.
그와는 친구이자 남매이자 한배를 탄 동업자 같은 사이였을 뿐이었다. 새틴은 속엣말을 숨겼다.
이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도 몰랐던 남녀의 깊이를 너로 인해 배울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어.
루블리에가 억지로 대답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은 장점이었다.
지쳐서 늘 누워 잠들던 자리로 굴러가려던 새틴은 등 뒤에서 제 허리를 다시금 끌어당기는 힘에 제지당했다.
그녀는 루블리에를 불안하게 되돌아보았다.
“……루브?”
루블리에가 척추를 따라 입술을 묻었다.
“잠들지 마. 아직 안 끝났어.”
그는 속으로 키리온에 대해 불평을 쏟았다.
그의 친구는 신혼을 맞은 루블리에에게 사흘의 휴가를 준 적이 있었다. 지금 보니 그 사흘이 얼마나 짜디짰는지 실감 났다.
사흘이 아니라 일주일 동안 침실에서 나오지 말래도 가능할 것 같은데 말이다.
하나 지금은 그 사흘조차 없다.
루블리에는 벌써 돌아올 아침이 싫어졌다.
* * *
까무룩 선잠에 빠진 와중에도 맨살을 훑고 매만지는 손길이 느껴졌다. 새틴은 부스스 눈을 떴다.
아윽, 절로 앓는 소리가 났다.
“……저리 가.”
그는 밤새 새틴을 끌어안고 잤다. 엉킨 팔다리가 숨 막히게 무거워서 몇 번인가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루블리에가 놓아주지 않아 포기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맞아? 왜 이렇게 집요한데?”
부끄러움이나 수줍음 따윈 날려버린 지 오래였다.
그런 걸 챙겼다가는 루블리에를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루블리에는 당당했다.
“처음이니까 집요하게 공부해야지.”
“누가 들으면 아카데미에서 모범생이었는 줄 알겠다. 이 열정으로 공부했으면 수석으로 졸업했을 텐데.”
“난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만 집중하는 편이거든.”
그건 그랬다. 루블리에는 검술에는 누구보다 굉장한 두각을 드러냈으나, 그 외의 학문에는 별반 흥미를 보이지 않고서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기실 평균 성적은 새틴이 더 좋았다.
“내 재능을 하나 더 찾은 것 같군. 우리 좀 더 공부할까?”
“악!”
새틴은 끙끙 앓았다. 그가 물고 빤 몸이 쓰라렸다.
억울하게도 아픈 건 저 혼자뿐이었다.
“이게 뭐야. 왜 너만 멀쩡해?”
새틴의 항의에 루블리에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거 큰일인데.”
“뭐가?”
“네가 너무 허약해.”
“아냐. 난 지극히 정상이라구. 네가 심해…….”
검술이 업인 기사 체력을 평범한 아가씨 체력인 새틴이 감당하기는 무리였다.
“그만하고 제발 좀 출근해.”
새틴의 절실함을 읽었는지 밖에서 루블리에를 깨우는 시종의 알림이 마침맞게 들려왔다.
“저, 주인님. 준비하실 시간입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새틴이 루블리에를 밀어냈다.
“가, 빨리 가. 지각하겠어.”
새틴이 대는 얼토당토않은 핑계에 루블리에는 픽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어. 다녀올게, 새틴. 더 자.”
그는 이불을 뒤적여 누에고치처럼 꽁꽁 숨어 버린 새틴의 얼굴을 찾아내 그 이마에 키스했다.
“이따 저녁에 봐. 최대한 빨리 올게.”
* * *
“새틴이 악령을 잡았어. 강화했던 경비와 야간 순찰은 오늘 아침 부로 해제했어.”
신성 기사단 단장으로부터 보고를 들은 키리온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가볍게 웃었다.
“자네가 잡았겠지.”
루블리에는 곧장 정정했다.
“새틴이야.”
“야리야리한 자네 부인이 악령을 무슨 수로 잡나?”
“새틴도 파수꾼 가문의 후손인데 왜 못 잡겠어. 어지간한 사람들보다 훨씬 담대해.”
“하여간 결혼했다고 시시콜콜 아내 자랑은. 이거 어디 결혼 못 한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키리온이 눙치면서 빈 의자를 눈짓했다.
그러고 보니 키리온은 여자를 많이 만났으면서도 구체적인 결혼 계획을 내비친 바가 없었다.
당장은 법황의 건강 문제로 국무를 떠맡느라 시간이 없었다고 해도, 오히려 근 몇 년 안에 법황이 노환으로 승하할 사태에 대비하려면 슬슬 결혼과 후계 양성을 고민할 시기가 되었는데 말이다.
루블리에는 그를 슬쩍 재촉했다.
“자넨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기는 해? 대체 어떤 부인을 맞이하려고 아직도 혼자야?”
“맙소사. 자네 입에서 그 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군. 되레 결혼 생각이 없던 사람은 루브, 자네 아니었어? 사람이 몇 달 사이 이렇게 뒤바뀔 수가 있지? 방금 그 말을 난 내가 몇 년 뒤에 자네에게 잔소리처럼 하고 있을 줄 알았다고.”
농담 섞어 투덜거리던 키리온이 슬그머니 말꼬리를 꺾었다.
“이건 아무래도 자네 탓이 커. 그동안은 우리 둘 다 혼자라 결혼 따윈 안중에도 없이 지냈지 않나. 한데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요즘 집에 꼬박꼬박 들어가면서 날 등한시하니 나도 점점 외로워지기 시작했거든.”
“외로우면 가정을 꾸려. 농담이 아니고 정말로 결혼할 시기가 됐지. 평범한 귀족 가문에서도 후계로 말이 많은 판국에 하물며 자네에겐 성좌(聖座)가 걸려 있잖아. 법황 성하께서는 아무 말씀 없으신가?”
“글쎄. 자네한테 물어보고 싶군. 결혼하면 어때?”
질문을 질문으로 받아치던 키리온이 이내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었다.
“아, 내가 괜한 질문을 했어. 자네는 요즘 얼굴이 폈거든. 어제 뭐 좋은 일 있었나? 오늘 한층 훤해 보이는군. 하여간 그 결혼식 놓쳤으면 애먼 사람 하나 잡을 뻔했지. 그래, 사실 자넬 보면 나도 문뜩 결혼하고 싶어지긴 해.”
“해 보면 자네도 내 기분을 알게 될 거야. ……다만 결혼하면 말이지.”
키리온의 화려한 여성 편력을 기억하고 있던 루블리에가 노파심에 조언을 얹으려다 그만두었다.
결혼하고도 여자 문제로 속을 썩일 만큼 사리 분별이 안 되는 친구는 아닐 테다.
키리온은 자신의 직위에 따른 의무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놀 때는 놀아도 일할 땐 있는 힘껏 일했다.
법황이 병환으로 드러누우면서 우려했던 국무의 공백이 무사히 수습된 데에는 키리온의 역할이 제일 컸다.
그러니 친구로선 부디 이런 책임감이 가정에서도 잘 발휘되기를 기대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