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 (47/112)

<47화>

혼자 있어도 들리고, 다 같이 있어도 들리는 저 괴성이 어디에서 울리는 건지 도통 괴이쩍기만 했다.

“알았다!”

마구간지기가 번뜩 소리쳤다.

“말 울음소리 같은데요!”

“저게 말이 우는 소리라고?”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새틴은 마구간지기를 쳐다보며 의문했다.

말을 키워보지는 않았어도 승마로 조금은 접해봤다. 하지만 저리도 기이하게 우는 울음은 처음이었다.

“예예, 분명합니다. 맞습니다. 다시 들으니 얼룩 놈 목청이랑 엄청 비슷해요. 저도 저런 울음은 거의 못 들어봐서 여태 고민했네요.”

마구간지기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무래도 아까 주인님의 상마 준비를 도우면서 뒤처리를 제대로 해 놓지 않았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마님. 이놈이 정신머리를 얻다 두고 사는지, 원. 주인님께서 들으셨으면 금방 아셨을 텐데……. 얼룩이는 주인님께서 새 말을 하사받기 전에 가장 좋아하셨던 녀석이거든요. 마구간에 문제가 생기면 큰일이니 금방 해결하고 오겠습니다.”

해답을 얻은 마구간지기가 민망함으로 벌겋게 얼굴을 붉히며 뛰어나갔다.

새틴은 허탈해져서 웃지도 못했다.

맙소사. 여러 사람 잠 못 들게 한 괴성의 정체가 고작 말 울음소리였다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던 탓에 괜한 겁을 먹었다. 다른 사용인들도 기가 막힌 표정으로 새틴의 안색을 살폈다.

“죄송해요, 마님.”

“그러게 왜 마구간 관리를 엉망으로 해서 한밤에 여러 사람 놀래는지……. 다음부터는 저희도 저이에게 마구간 한 번 더 살펴보라고 꼭 주의를 시킬게요.”

“됐어. 별일 아니면 다행이지.”

“네, 마님. 주무시겠어요? 방으로 모셔드릴,”

“으어, 어어어어억!”

사뭇 다른 정적이 내려앉았다. 새틴은 그 자리에 굳어 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혈색이 사라진 얼굴들이 어찌할 바 모르고 새틴만 쳐다보고 있었다.

“디번이에요.”

라리가 창백하게 속삭였다.

새틴은 등잔 하나를 움켜쥐고 문으로 걸어갔다. 열린 문틈으로 달빛이 뽀얗게 스며들고 있었다.

달이 크게 뜬 밤이라 불빛 없는 집 안보다 집 밖이 차라리 더 밝았다.

그러하다 해도 음영의 한 겹 차이였으나,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감싼 마구간지기가 무언가를 피해 비틀비틀 도망쳐오다가 이내 뒤엉켜 땅바닥을 구르는 모습을 목격하기에는 충분했다.

땅바닥에 엎어진 마구간지기가 두 팔로 엉금엉금 기면서 다가오려 기를 썼다. 달빛 아래 부정형의 형태가 언뜻 보였다.

놈은 검은 연기를 닮았다. 어찌 보면 그림자로도 충분히 착각하고도 남을 생김새였다.

‘그것’이 마구간지기에게 엉겨 붙었다.

아마도 머리 부분이라고 짐작되는 일부분이 길쭉하게 늘어나면서 그의 얼굴을 물어뜯었다.

마구간지기가 몸부림을 치며 버둥거렸다.

붉은 핏줄기가 확 튀는 순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하나같이 넋을 빼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러댔다.

“아악!”

악령이다. 저것이 바로 악령이었다.

어째서 악령이 나타났던 첫날 알아보지 못했는지 새틴은 이제야 깨달았다.

저리도 검은 것을, 저리도 흐트러진 것을 어떻게 알아본단 말인가. 밤은 놈의 보호막이었다.

마구간지기의 비명은 조금 전 말의 울음소리와 아주 흡사했다.

서려 있는 기운이 같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끔찍하던 괴성은 말이 공포에 질려 우는 소리였다.

새틴을 발견한 마구간지기가 애원했다.

“마님, 살려주십쇼! 저 좀 살려주세요!”

이 집에 남아 있는 유일한 주인. 마귀를 물리쳤던 델 마레의 후손.

마구간지기가 매달릴 사람이 저뿐임을 알면서도 새틴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떻게, 저걸 어떻게…….

“……루브.”

지금 있어야 하는 남자가, 하필이면 이 자리에 없다. 이 순간에도 악령은 마구간지기를 엉망으로 물고 뜯어댔다.

새틴은 사용인들을 둘러보았다. 일부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고, 일부는 발을 구르면서 마구간지기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전부 악령을 처음 겪는 이들이었다. 마구간지기를 도울 방법은커녕 공포로 질려 기절하기 직전의 희뜩한 낯빛들만 가득했다.

“마님, 마님!”

마구간지기가 새틴을 애타게 불렀다. 새틴은 정신을 차렸다. 손에 들고 있던 등잔을 내려보고서 악령과의 거리를 가늠했다.

“이거라도 던져 봐, 저쪽으로!”

제 팔심으로는 반절도 채 못 던질 거리였다. 새틴은 사용인 하나를 붙잡고 등잔을 쥐여주며 명령했다.

“예?”

“어서!”

새틴의 재촉에 사용인이 등잔을 내던졌다.

악령은 조그만 불덩이가 날아들자 흠칫 놀랐는지 마구간지기를 놓고 몸을 줄였다. 그러나 날아가면서 바람에 휩쓸린 불은 힘없이 사그라졌다.

악령이 도로 몸을 부풀렸다.

“악!”

“이쪽을 봤어요!”

“문, 문 닫아야 돼요!”

“마님, 위험해요!”

아우성이 몰아쳤다. 마구간지기의 팔이 축 늘어졌다.

죽은 건지 기절한 건지 분간할 겨를이 없었다.

마구간의 말들과 마구간지기를 공격한 악령은 이미 집안에 모여 있는 다음 희생자들을 발견한 참이었다.

새틴은 일단 다급하게 문을 닫았다. 등잔 하나에 의지해 모인 사람들이 서로를 감싸 안고 부들부들 떨었다. 새틴도 라리와 체온을 맞댔다.

“밖은…… 어떻게 됐을까?”

“모르겠어요.”

라리가 울먹였다.

“저게 악령이에요? 마님, 저는 무서워요…….”

마찬가지였다. 새틴은 스르르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루블리에가 악령이 나타났다고 알려줬던 날 뭐라고 대답했더라. 어쩐지 황당해져서 이백 년 전 전설이잖아, 하고 대꾸했었다. 그러자 루블리에는 이렇게 반박했다.

‘단순한 전설은 아니야. 그 시절에는 분명 현실이었어.’

저런 게 과거에는 정말 현실이었구나.

그래서 마귀를 물리친 초대 법황이 역사의 영웅이 되었던 것이다.

어둠을 갑옷으로 둘러쓴 악령들과 마귀가 활개 치던 세상이라면 매일 반복되는 밤이 악몽이었을 터이므로.

밖이 적요하니 더 두려웠다. 마구간지기가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하는데 악령이 어디 있을지를 모르니 섣불리 문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등이 오싹오싹 추웠다. 문을 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이 치열하게 싸워댔다. 일 분 일 초가 숨이 멎도록 길었다.

그때였다.

“마님! 저기…… 저기 좀 보세요!”

누군가 경악하며 악을 썼다.

“으악!”

“오, 맙소사, 맙소사!”

“신이시여…….”

“마님, 뒤로 오세요!”

문틈 사이로 드리워진 좁은 어둠이 뭉클거렸다

자세히 보니 어둠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들어 오려는 그림자였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손이 떨려 새틴은 등잔을 엎을 뻔했다. 주저앉은 채로 사람들이 엉덩이를 제각각 떠밀었다. 아우성이 휘몰아쳤다.

어쩌지, 저걸 어쩌지?

마귀. 악령. 뒤죽박죽으로 흐트러진 머릿속을 새틴은 애써 가다듬었다. 아카데미에서 저것들에 대해 뭐라고 배웠더라.

저런 놈들이 돌아다니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분명 버틸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이백 년 전 사람들이 구상했던 방법을 후손인 제가, 이 칼데브란카 사람들이 못 떠올릴 리 없다.

새틴은 분주하게 기억을 더듬었다. 바로 얼마 전에도 루블리에와 이 화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눴었다.

‘우리 예전에 아카데미에서 배웠던 거 생각나? 마귀는 방심하는 틈을 타 그림자에 스며든다.’

악령은 마귀의 수족이라 했다. 그러면 마귀의 약점을 악령 역시 넘어서지 못할 테다.

아까 집어던진 등잔에 움찔 몸을 사리던 광경도 떠올랐다.

“마님!”

새틴은 틈을 비집고 기어드는 악령에 가까이 다가갔다. 등잔의 불이 틈새를 비췄다.

순간 불에 덴 듯 악령이 확 움츠러들었다. 그림자는 사람의 어두운 일면만을 뜻하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놈은 실제로도 그림자에 숨어들었고, 그림자를 빼앗기니 멈칫거렸다.

“다들 진정해.”

새틴이 목소리를 높였다.

눈에 띄게 안도한 라리가 힘을 돋웠다.

“맞아요, 조금만 있으면 팔라딘께서 오실 거예요!”

델 마레의 사용인들은 루블리에를 팔라딘으로, 카 딜론의 사용인들은 주인님으로 통칭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금 라리가 선택한 팔라딘의 호칭은 그 이상의 의미였다.

악령 상대로 신성 기사단의 팔라딘만큼 믿음직한 존재도 없을 것이다.

그래, 루브. 루블리에가 올 거다.

그는 저를 염려하는 남편이니까. 새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악령은 끈질기게 어둠을 찾아 스며들려 했다. 그때마다 새틴은 그림자를 지워 악령을 밀어냈다.

“빨리 사라져버려라!”

용기를 얻은 사용인이 악령을 향해 소리쳤다.

악령도 비집고 들어올 기회가 줄어들자 아까보다 성글게 굴었다. 순간 새틴이 흠칫했다.

“……안 돼.”

악령에 너무도 겁을 먹은 나머지 근방의 목장과 민가를 깜빡 잊고 있었다. 그리고 악령은 그 목장에서 염소를 첫 제물로 삼았다.

위치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집에서 사냥을 허용하지 않으면 다른 만만한 상대를 찾아 악령은 떠나갈 테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우리들만 살겠다고 민가와 축사의 위험을 방관하는 건 옳은 일인가?

파수꾼 가문은 사람을 지키기 위해 마귀와 싸웠고 나라를 수호하라는 명을 받은 가문이 아니었나?

루블리에가 야간 순찰을 하는 이유도 그 사명감 때문이다.

악령은 이 수도에 근접해 피 맛을 봤다.

지금까지는 이 근처를 배회하며 멀리 떨어지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그건 우연히 운이 좋았다고 봐야 했다.

루블리에의 말마따나 시가지 한복판으로 들어가면 피해는 극심해질 것이다.

게다가 저 악령이 다른 데로 숨어버리면 루블리에의 야간 경계 근무도 끝나지 않는다.

마냥 당하기만 하는 입장이었다면 용기를 내지 못했겠으나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약점을 하나 습득했다.

놈은 불을 무서워한다. 이건 근방의 민가 사람들은 아직 모르는 이 집만의 유일한 방패였다.

저 악령과는 오늘 밤 여기서 결판을 내야 했다.

“……놈이 들어오도록 문을 열자.”

새틴의 지시에 사용인들이 기함했다.

“네?”

“마님, 무슨 말씀이세요!”

“저놈을 잡아야겠어.”

새틴이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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