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1. 이거 나 혼자 하는 결혼이야?
결혼을 앞둔 이 세상 모든 신부들의 소망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다 같을 것이다.
그날만큼은 내가 반드시 주인공이 되어야만 해.
그 하루를 위해서 신부들은 가장 아름다운 드레스를 만들고, 또 가장 아름다운 부케를 고른다.
최고의 모습으로 웨딩 로드를 걸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가 되기를 꿈꾼다. 그러면 결혼식을 주관하는 사제는 신랑에게 물을 것이다.
“신랑은 오늘 이 아름다운 신부를 맞아 평생 아끼고 사랑할 것을 신 앞에 맹세합니까?”
신랑은 기꺼이, 감격하며 대답하리라.
“맹세합니다.”
신랑이 사랑의 맹세를 하면 사제는 이 성스러운 결혼을 신의 이름으로 축복할 터였다. 더불어 결혼식에 초청을 받은 하객들은 그날의 신부가 얼마나 빛이 났는지, 우아하고 화사한 신부를 바라보는 신랑의 눈길이 어찌나 열렬했는지, 그들이 지켜본 세상 최고의 신혼부부에 대해 한 계절이 지나도록 기억하겠지.
그런데.
그래야만 하는데.
“라리, 기요른이 언제 도착한다고 했더라?”
“그러게요. 오실 때가 되었는데요. 왜 안 오실까요…….”
새틴은 웨딩 로드 앞에 서서 라리를 쳐다보았다. 정각을 알리는 시계탑의 종소리가 들린 지 한참이건만 아직도 약혼자가 도착하지 않았다.
오늘이 결혼식 당일이었다면 당장 뒷목을 잡고 넘어갈 일이겠으나,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결혼식을 사흘 앞두고 있었다.
사흘. 딱 사흘만 지나면 새틴은 바로 이 교당에서 기요른과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천고가 높아 품격이 우아하고, 벽면을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 아래 빛무리가 색색으로 피어오르는 이 웅장하고 화려한 교당에서.
“어쩌죠? 아가씨. 셀 위오 가에 전령을 보내볼까요?”
라리가 걱정스레 물었다. 새틴은 잠깐 고민했다. 그러다 그냥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금방 오겠지, 뭐.”
어지간한 결혼 준비는 거의 다 마쳤고 오늘은 마지막으로 부족한 부분이 없는지 점검을 하러 들른 길이었다.
결혼식 준비를 총괄한 새틴의 눈에는 사흘 후 이 교당이 어떻게 변모해 있을지의 모습이 훤히 그려졌다.
천장의 오래된 샹들리에는 새로 제작한 크리스털 샹들리에로 교체될 것이다.
물론 낮의 결혼식이기 때문에 샹들리에를 직접 켜지는 않는다.
이 교당은 햇빛이 아름답게 들어 굳이 조명을 쓸 필요까지는 없었다.
도리어 일일이 불을 켜지 않아도 정오의 찬란한 햇빛이 샹들리에의 크리스털을 조각조각 반짝이게 해 줄 터였다.
신랑과 신부의 머리 위에서 수백의 색으로 빛나는 샹들리에는 분명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다.
마치 신께서 신혼부부의 앞날을 축복하는 형상으로 느껴지겠지.
그리고 웨딩 로드.
신랑, 신부가 걸어갈 교당의 중앙 통로에는 붉은 융단을 깔고 꽃잎으로 장식할 생각이었다.
교당이 지닌 분위기가 워낙 장엄하기에 너무 많은 장식을 넣으면 오히려 분위기를 해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새틴은 웨딩 로드가 끝나는 지점에 웨딩 아치만 하나 세우기로 결정했다.
신부의 부케와 같은 꽃으로 장식한 웨딩 아치 아래에서 사제는 새틴과 기요른의 성혼을 엄숙하게 선언하리라.
부유함과 화려함은 결혼식이 끝난 뒤 있을 정원의 피로연에서 뽐내도 충분했다.
꽃을 아낌없이 쓴 플라워 월을 곳곳에 세우고 하객들이 앉을 좌석마다 금 문양을 박아 넣은 식기를 배치한다.
커트러리의 손잡이에도 각 가문의 문장과 함께 그 자리에 초대받은 주인의 이름을 새길 것이다.
하객들은 음악을 즐기며 만찬을 대접받고, 신랑과 신부에 대해 끝없는 찬사를 늘어놓게 되겠지.
제게 주어진 최고의 결혼을 위해 새틴은 온갖 고생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평범한 집안이면 모르되, 새틴과 기요른의 집안은 이 칼데브란카 신성 교국의 다섯 파수꾼 가문에 속했다.
다섯 파수꾼 가문. 말 그대로 전국을 통틀어 정확히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위세였다.
델 마레와 셀 위오. 최고의 가문과 최고의 가문이 결합하는 이 결혼식을 두고서 사람들은 단둘만 모여도 희대의 만남이라며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댔다.
모두가 결혼식에 초대받으려 줄을 대는 바람에 하객을 가려 초청하기까지도 어마어마한 시간이 들었다.
물론 순수하게 축하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름난 두 가문이 과연 어떤 수준의 결혼식을 치르는지, 신랑과 신부의 사이가 어떤지를 확인하러 오는 하객들이 훨씬 많았다.
새틴의 입장으로선 당연히 티끌만 한 트집이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었다.
델 마레와 셀 위오는 자식들의 하나뿐인 결혼을 위해 교당의 낡은 시설을 새것처럼 뜯어고치는 공사부터 시작해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다.
한데 이 중요하기 짝이 없는 결혼식을 두고서 약혼자는 아직까지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잠깐. 이거 나 혼자 하는 결혼이야?”
완벽한 결혼식을 위해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초빙되어 노력한다 해도 결국 최종적으로는 새틴과 기요른의 마음에 꼭 들어야만 한다.
귀찮다고 가만히만 있으면 누구도 자신이 원하는 결혼식을 짠, 하고 떠먹여 주지 않는다.
엄청나게 길고 피곤하고 지루하고 고생스러운 과정을 거칠수록 결과물은 빛이 나는 법이다.
때문에 새틴은 결혼식의 전 과정을 손수 검토했다.
결혼식을 진행할 교당도 칼데브란카 교국 내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장소였고, 보통은 성혼 축복도 사제들이 집례하나 두 가문의 위신이 위신인지라 법황 성하의 명을 받아 콘첸트 추기경이 집례하기로 결정되었다.
라리가 새틴을 위로했다.
“잠깐 정신이 없어 늦어지시는 걸 거예요. 기요른님도 결혼식을 앞두고 다사다난하셨잖아요. 저번에는 다리도 다치셨고요.”
그래, 다리.
새틴이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로 바빴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필 결혼식을 앞두고 기요른이 다리를 크게 다치는 바람에, 새틴은 이 중요한 시기에 기요른 대신 그의 몫까지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때는 얼마나 놀라 기절할 뻔했던지.
아픈 것도 문제지만, 신랑이 다친 다리 때문에 지팡이를 짚고 절뚝절뚝 입장할까 봐 새틴은 가슴을 졸였다.
일찌감치 좋은 날을 낙점하고서 진행하는 결혼인데 이제 와서 날짜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이미 초대장이 나간 지도 한참이었다. 하여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와중에도 회복에 좋다는 약이란 약은 모조리 구해서 기요른에게 보냈다.
그나마 기요른도 아직 젊고 건강한 남자라 새틴이 보낸 약을 먹으며 회복에 전념한 덕분에 꽤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처음에는 자리보전하고 누워 진통제를 그리 마시더니, 한 일주일쯤 지나서는 지팡이에 의지해 몇 걸음씩 뗐고, 그제부터는 지팡이 없이도 잘 걸어 다닌다고 전해 들었다.
너무 바빠 직접 가서 확인하기보다는 종종 사람을 보내 소식을 가져오게 했지만, 기요른이 무리 없이 걷는 모습을 전령이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장담하여 새틴은 심장을 쓸어내렸다.
결혼식은 아무런 지장 없이 진행될 것이다. 반드시 아무런 지장 없이 진행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기요른님이 많이 늦으시네요.”
라리가 도무지 열릴 기미라곤 보이지 않는 교당의 문을 흘끔거렸다. 새틴도 더는 마음이 여유롭지 못했다.
뭐야, 결혼식이 어떻게 진행될지 안 궁금해?
결혼식 식순이나 하객석의 배치도, 교당과 피로연의 꾸밈새, 만찬으로 나갈 요리의 순서까지 하나씩 정해질 때마다 셀 위오 가에 소식을 넣으면 기요른의 반응은 항상 똑같았다.
“뭐든 네 마음대로 해, 새틴. 난 이런 쪽으로는 잘 모르잖아. 그러니까 네 마음에 들기만 하면 다 상관없어.”
어쩌다 의견을 물어봐도 소용없었다. 누구는 뭐 결혼식 2회차인가.
그동안은 아파서 신경을 쓸 겨를이 없겠거니, 하고 이해하긴 했으나 몸이 다 나은 지금까지도 약속 시간에 늦는 건 좀 너무했다. 좀이 아니라 많이 너무하다.
새틴은 서서히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좋은 것은 좋고, 싫은 것은 싫다.
겉으로 기질이 솔직하게 드러나는 새틴에게 부모님은 화가 날수록 웃으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그만한 경지에 다다르기에 자신은 아무래도 배움이 한참 먼 모양이다.
화가 나는데 어떻게 웃어?
암만 저에게 일임했다고 해도 직접 한번 보지도 않고 결혼식 당일이 되어서야 교당에 입장하겠다는 거야? 그게 신랑이야, 손님이야?
“라리, 마차 돌려서 셀 위오 가로 가 보자. 아무래도 기요른이 약속을 잊어버렸나 봐.”
“예, 아가씨.”
새틴은 빠른 걸음으로 교당의 문을 열고서 정원을 가로질렀다.
정원 입구는 대로에 맞닿아 있었다. 신의 손길은 항상 사람 가까이에 임해야 한다는 신성 교국의 방침 때문이었다.
“아가씨, 위험해요!”
막 정원 입구를 통과해 밖으로 나가려는데 라리의 비명이 울렸다.
새틴은 아슬아슬하게 몸을 뒤로 물렸다.
하마터면 거리를 후다닥 달려가던 사람들의 무리와 부딪힐 뻔했다. 그들은 새틴이 교당에서 나오는지도 모른 채 한 곳만 보면서 뛰었다.
사람들이 왜 저러지? 이 근처에 무슨 일이 생겼나?
의아해질 무렵에 그들이 왁자지껄 쏟아내는 이야기가 새틴의 귀에 들어왔다.
“지금 가도 안 늦겠지?”
“늦었어도 결과는 알 수 있겠지.”
“근데 무슨 일이길래 당장 뛰어가야 된다고 난리인 거야?”
“아까 안 듣고 뭐 했어? 셀 위오 가의 막내 도련님이 결투 신청을 하셨다잖아!”
“결투를? 왜?”
“왜는 왜야, 딜라일라 때문이지.”
“아아, 그 오페라 극장의 프리마 돈나?”
“딜라일라 때문이라면 그럴 만도 하네.”
“안 그렇게 생겨선 그분도 역시 남자였구만?”
뭐라고? 이게 무슨 소리야?
새틴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결혼식 사흘 전, 약혼자가 다른 여자 때문에 결투했다는 소식을 듣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