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4막 (上) 유학소녀 - 5
“아직 입에 안 댄 차야. 이것도 그렇고. 마음껏 먹어.”
“감사합니다.”
적당하게 식은 홍차가 담긴 찻주전자와 밋밋한 스콘이 담겨 있는 접시는, 은쟁반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언제든지 차를 마시면서 후식을 즐길 수있도록 세팅되어 있다.
빈 찻잔이 두 개 있는 걸 유심히 바라보는 로즈. 그녀의 앞에, 코니는 부드럽게 홍차를 따라주었다.
“코니 바로우. 내 이름이야.”
코니는 예전에 바트나에서 사용하였던 예비신분을 꺼냈다. 정부 기관에서 관리하는 예비신분인 이상, 서류로만 존재하는 게 아닌, 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는 귀족 영애다.
국가라는 든든한 뒷배를 믿고.
프리스카 가문 자제와 같은 격으로 대화할 수 있는 신분을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바로우 가문의 영애분이시군요.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과연 바로우 가문이라는 간판이 효과가 있는지, 한층 더 로즈의 말에 조심성이 담긴다. 그런 방심을 하면서 코니는 말했다.
“올해로 열세 살.”
“어리시네요. 그런데 바로우 가의 이런 귀여운 영애님을 만났다면 제가 기억 못 할 리가 없는데.”
눈을 가늘게 뜨고 로즈가 자신을 구석구석 살펴본다.
‘이런. 내 이야기를 너무 많이 말한 건가?’
이제 코니에게 ‘귀엽다’라는 말에는 반박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로즈가 아직 예비신분 자체를 의심하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깊이 파고들 기회를 남겨서 좋을 건 없다. 코니는 화제를 서둘러 돌렸다.
“사교회장에서 좀 떨어져서 봤어. 말은 안 섞었으니까 ‘만났다’라고 하긴 좀 그렇네. 그보다 로즈 양에게 궁금한 게 있는데.”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요.”
“끄악.”
코니는 피를 토했다.
물론 기분이 그렇다는 거고. 진짜로 피를 토하는 건 아니었다.
“괜찮아. 그냥 로즈 양이라고 부를게.”
약간의 내상을 입은 코니는 어렵게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네 사라진 약혼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제가 그걸 왜 말해야 하나요?”
“응. 그래, 그건 그렇지.”
솔직히 너무 뜬금없이 물어보는 질문이긴 했다. 스콘을 집어 들고 한 조각씩 떼어 입안에 넣어 삼키던 코니는, 뭔가 찾으려는 듯 몸을 더듬더듬하더니, 의자에서 일어났다.
“로즈 양. 서문 경비원 허락받고 여기로 바로 온 거지?”
“예. 본관은 소란스럽다고 경비원에게 들어서.”
“잘 그랬어. 거기는 오늘은 정말 좀 그렇거든.”
살짝 인상을 쓰면서 코니는 탁상전화기가 놓여 있는 테이블에서 연필을 들었다.
[로즈 프리스카가 왔다. 2층 동편 응접실. 속히 올 것.]
갈색 메모지에 짧은 문장을 휘리릭 써 갈기고, 둥글게 말아서 실로 돌돌 감는데.
“‘좀 그렇다’라는 게… 구체적으로 뭔가요?”
“으, 으응?”
“저따위가 감히 참석할 수 없을 정도로의 귀빈분들이 오신 건가요? 아니면 이제 저도 약속 없이는 찾아오면 안되는 집이 되어버린 건가요? 그것도 아니면….”
“아니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어두운 감정의 수렁으로 제 발로 들어가려는 로즈를 코니는 황급히 뜯어말렸다.
예전에도 느꼈던 거지만. 코니가 렉스 때 만났던 로즈는, 이상한 구석에서 묘한 피해 의식이 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파괴하는 자학적인 망상이다.
만약에 누군가가 지금의 로즈를 사진기로 찍는다면 얼굴의 절반은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겠지.
“로즈 양? 난 그냥 단순하게 말해서, 사람이 엄청 많이 모여 있다는 뜻으로 말했다고.”
“파티라도 하는 건가요.”
“나팔꽃 피는 이 아침부터? 하하.”
가볍게 웃으면서 코니는 황동 기송관(氣送管. 공기 압력으로 파이프 안의 물건을 빠르게 이동시키는 장치.) 튜브에 메모를 집어넣었다.
별채에서 본관으로 이어진 기송관은 코니의 메모지를 눈 깜짝할 사이에 옮긴다. 소녀가 급하게 전하려는 메시지─로즈 프리스카의 방문─는 몇 초 안에 무사히 전달되었으리라.
‘이젠 적당히 시간을 보내면 되는 거로군. 그 사이에….’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정말로 마음 놓고 해도 되는 말은 모래사장 모래성보다도 빈약하다. 코니는 탁상에 기대어 말했다.
“내가 너보다는 커빗 가의 소식에 밝을 거야. 내가 먼저, 네가 궁금해하는 건 뭐든지 하나 가르쳐줄게.”
“먼저 가르쳐준다는 말은, 그다음이 제 차례란 거지요. 거절하겠습니다. 당신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보증이 없습니다.”
“매정하네~.”
단칼에 돌아온 답변. 팔짱을 낀 채 턱을 만지작거리며 코니는 로즈의 맞은편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처음에 얼핏 보았을 때는 몰랐는데.
‘예전 특징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구나.’
입술 옆에 있는 작은 점이라든가, 짙은 홍차에 따뜻한 우유 약간 넣어 저은 밀크티 빛의 머리칼. 마치 자수정을 얇게 깎아서 눈자위에 새긴 것처럼 아름답게 반짝이는 연보랏빛 눈동자.
겉으로 보기에는 씩씩하게 기운이 넘치고 언제나 프리스카 가문의 무게를 짊어진 위엄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모습.
모든 게 그대로였다.
그 눈부신 화려함 뒤에 숨겨져 있는, 마른 우물보다 더 깊은 절망감마저도.
“로즈. 어, 그래. 로즈 양.”
헷갈리는 호칭을 바로 잡으면서 코니는 말을 이었다.
“지금 이렇게 둘이서 말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까 편하게 대화하자고.”
“편하게 대화… 말인가요?”
“응. 그러니까 뭐든 물어봐. 다 가르쳐줄게.”
“대가를 바라지 않는 호의는 없습니다. 무슨 속셈인가요.”
“그- 러- 니까- 그냥 가르쳐 주겠다고! 자아~”
싱글거리면서 소녀는 큰 선심을 베풀듯 양팔을 넓게 펼쳐 보였다.
“코니가 다 가르쳐줄게. 뭐든지. 뭐든지, 편하게 물어봐!”
“으음~… 정 그렇다면.”
물어볼 질문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로즈는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저희가 대화하는 거, 아무도 안 엿듣고 있는 거죠?”
“별채가 있는 이유가 그거지. 벽에 달린 귀는 본관뿐이거든. 그래서 애초에 처음부터 널 만날 때 여기서 모였던 거고.”
눈앞의 소녀가 한 말 중에서 시제가 조금 안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단순한 말실수겠거니 하고 로즈는 넘어갔다.
“그렇군요. 그럼 안심하고 물어봐도 되겠네요.”
로즈는 길게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알렉산드로스 커빗은 살아있나요?”
“일단은 죽은 거로 되어 있지.”
“그 말은 ‘안 죽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만.”
“질문이 단순하니까 답변도 단순한 거야. 로즈.”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 찾아오지는 않을까 걱정하는건지. 창밖을 내려다보면서 코니는 말했다.
“너도 어떤 소식을 들었으니까 여기로 온 거잖아. 그 사람이 죽은 척하고 도피를 했다던가, 할아버지와 대판 싸우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했다던가. 뭐어 귀족 영애에게 그렇게까지 나쁜 말은 안 했겠지만.”
적어도 소녀가 뒤에 꺼냈던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 대신 밤새워 뒤척이면서 침대 속에서 로즈가 고민해봤던 몇 가능성 중 하나이긴 했다. 약혼자와 조부 간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는 건, 어린 시절의 로즈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커빗 가의 가주(家主)는 그렇게 냉혈한은 아니다. 자신이 봤었던 모습은, 아무리 그래도, 손자에게 해를 가할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럼 다른 질문을 해야 했던 걸까요.”
어차피 눈앞에 있는 이 여자애는 바로우 가문의 영애. 괜히 아는 척을 하는 거겠지.
딱히 더 물어볼 생각 없이 중얼거린 로즈의 혼잣말에 코니도 큰 고민 없이 떠벌렸다.
“당연하지! 그렇다면 이번에는 더 괜찮은 질문을 던져봐. 네 탁월한 두뇌가 힘을 쓸 때라고.”
그 말에 로즈의 가느다란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차.’하고 코니는 속으로 혀를 찼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의도치 않게 로즈의 분노를 일깨우는버튼을 눌렀다. 가볍게 신변잡기를 주고받는 정도로 대화하려는 목적이었는데, 생각보다 심각한 대화가 될 분위기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불길한 짐작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알렉산드로스 커빗의 이중생활. 여기에 관하여 물어보고 싶은데요.”
“어?”
“아, 이거 코니는 모르는 건가요?”
어딘가 비릿한 미소를 띠면서. 로즈는 느긋하게 찻잔에 입을 대었다.
“하긴. 그와 약혼 사이였던 제가 아니면 모를 법도 하죠. ‘외부인’인 바로우 가문의 영애라던가.”
“끄… 끄으응….”
어째선지 ‘외부인’을 강조해서 말하는 로즈의 감정을 짐작할 수는 있었다. 그녀 처지에서는 별 접점도 없는 코니보다도, 자기가 훨씬 약혼자에 대해서 잘 안다는 걸 과시하고 싶은 거겠지.
문제는 그 과시가 코니에겐 핵심을 찔렸다는 사실이었다.
이중생활.
약혼녀에게까지 비밀로 하였던, 알렉산드로스 커빗의 숨겨진 생활.
여유가 흐르는 로즈와는 반대로. 실컷 강한 척을 할 때는 언제였는지, 코니의 이마엔 진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나눴던 대화를 바로 되짚어도 특별히 로즈에게 정보를 흘렸던 건 없었다. 그렇다면.
‘어디서 내 이야기를 들은 건가?’
지금처럼 코니의 몸이 된 이후의 일이라면 모를까, 그 예전의 사정은 프리스카 가문의 실질가주인 윌리엄 프리스카라면 훤하게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 무서운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친절히 사정을 설명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긴 해도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일단 질문을 끝까지해 줘.”
이야기를 더 들어봐야 알 일이다. 코니의 재촉에 로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 지인에게 들었는데 말이죠. 알렉산드로스 커빗이 모습을 감춘 건 3년 전, 제가 연합왕국을 떠나자마자 일어났다고 들었어요.”
그녀는 찻잔 받침을 들었다. 눈을 슬며시 감고 향을 음미하다가, 말을 이었다.
“어째서일까요. 코니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 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때에 돌아온 질문이었다.
남한테 물어보면서 에둘러서 따져 드는 건 자신이 있었지만, 거꾸로, 지금처럼 몰리면 스스로 생각해도 대처가 서툴다. 코니는 당황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 글쎄, 뭔가 좀 바…바빴던 거 아닐까?”
“오오.”
로즈는 감탄을 흘리면서, 찻잔을 내려놓았다.
“바로우 가문의 영애가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성의가 없는 답변을 하실 줄이야. 역시 저를 견제하고 있으신 건가요.”
“그럴 리가 있겠냐고!”
속이 쓰려온다. 코니는 따끔거리는 뱃속이 꼭 구멍이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기분이 그렇다는 거지, 이번에는 진짜로 뚫린 건 아니다.
아까의 기세등등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린 코니. 자기보다 몇 살은 어려 보이는 소녀를 살짝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로즈는 말했다.
“거짓말쟁이네요. 코니 바로우 양. 뭐든지 가르쳐준다고 말해놓고서, 지금 저에게 뭔가 숨기고 있잖아요.”
“일부러 숨기는 건 아니야. 단지, 그게….”
말해도 되는 건지.
말하면 안 되는 건지.
화가 나고 답답해도 코니 혼자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때 양 가문 사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약혼 사이였다고는 해도—그리고 다시 양 가문 사이의 이해관계에 맞게 파투가 난 전(前) 약혼 사이라곤 하지만—둘 사이의 일이라고 둘이서 나눌 만한 화제는 절대 아니었으니까.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 건 알겠어요.”
다시 싸늘해진 시선으로. 자리에서 일어선 로즈는 천천히 코니의 등 뒤로 걸어갔다. 그리고 소녀의 목 뒤를 톡톡, 가볍게 두드렸다.
“여기에 뭐 묻었네요.”
“응? 뭐가?”
별생각 없이 무의식중에 코니는 양손을 올렸다. 그 순간이 바로 로즈가 바라고 있던 자세라는 건 꿈에도 모른 채.
손을 머리 뒤로 돌리자마자, 소녀는 엄지손가락이 나란히 무언가로 동여매어 지는 걸 느꼈다.
“그대로 가만히 계세요.”
“로즈 양…? 이게 무슨 짓이니? 풀어주지 않으렴?”
얼마나 당황했는지, 코니는 정말로 동생을 달래는 언니 같은 말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신대륙국에서 개발된 폰디온 사(絲)니까 조심하세요. 그대로 얌전히 뒤통수에 손 붙이고 있으시면 안전합니다. 강하게 힘을 주면 엄지손가락이 한 마디 짧아질 거예요.”
“히…히에….”
완전히 얼어버린 코니의 앞으로 돌아서 온 로즈는, 소녀의 코앞에 섰다. 그리고 의자에 앉은 채 앙다물게 딱 붙이고 있던 코니의 무릎 사이로, 자신의 무릎을 억지로 박아 넣었다.
“으어?!”
갑작스러운 접촉에 당황할 겨를도 없이, 로즈는 코니의 턱을 단단하게 붙잡았다.
“흐음. 흠.”
마치 관절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코니의 머리를 다소 난폭한 손놀림으로 움직이며 여기저기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로즈.
“뭐머머머으베어—”
말을 하려고 코니가 입을 열기가 무섭게, 로즈는 왼손으로 소녀의 양 뺨을 눌렀다. 다물지 못한 소녀의 좁다란 입안을 유심히 바라보던 로즈는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나란히 붙였다.
“잠시만 참으세요.”
코니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의외로 로즈의 단단한 악력은 풀어지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프지 않으니까 힘 푸세요. 아주 잠깐만 거는 거니까 아마도 괜찮을 거예요.”
지금 이 상황에서 ‘아마도’라고 도망가는 구멍을 파는 게 말이 되냐고!
그렇게 따지고 싶었지만 마치쥐어짜이는 복어처럼 입술과 뺨이 양옆에서 조여지는 코니의 입에서는 “우에으에”하는 이상한 소리만 흘러나올 뿐이다. 그 소녀의 혓바닥과 윗입술과 입천장 사이로, 로즈의 오른손 검중이 파고들었다.
“으우에?!”
“조금만, 조금만 참으세요. 난폭하게 하고 싶진 않으니까…”
‘아니 지금도 충분히 난폭하다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어도 이미 소녀의 양다리는 로즈의 체중으로 단단히 제압되어 있다. 손으로 밀쳐내고 싶어도, 머리를 앞으로 숙이지 않는 이상 지금 뒤통수에 고정된 손을 움직이는 건 불가능.
옴짝달싹 못 하는 코니의 입속을 로즈는 두 손가락으로 천천히 헤집었다.
처음에는 혓바닥의 오돌토돌한 융기를 훑고,뺨의 부드러운 점막을 쓰다듬더니, 그대로 손을 90도 돌려서 입천장을 살짝 긁었다.
“으… 으응으…!”
“몇 초만 참으세요. 몇 초면 되니까.”
치과의사 같은 말을 하면서 로즈는 입술로 뭔가를 중얼중얼 외웠다. 그러더니, 갑자기, 쑤욱-하고 소녀의 목구멍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응으으!!!”
반사적으로 구토가 일어나려고 뱃속이 꿀렁거리려는 타이밍에 아슬아슬하게 로즈는 손을 빼내었다. 가느다란 두 손가락과 소녀의 입술 사이로 침이 둥근 곡선을 그린다.
코니와 마주 보는 정면 자세에서 거의 올라타다시피 하고 있던 로즈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비켜섰다.
“잘 참으셨어요. 이제 진실한 대화를 해볼까요.”
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오른손을 닦은 로즈는, 새빨개진 얼굴로 켈록거리는 코니의 엄지손가락에 감았던 실을 풀었다.
“너, 너어…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러는 거야?”
피가 안 통해서 얼얼한 엄지를 문질거리면서 코니는 자기가 생각해도마치 소설 속 삼류 악당 같은 대사를 내뱉었다. 그렇게 생각한 건 로즈도 마찬가지였는지, 질 수 없다는 마냥, 일부러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바로우 가문의 영애라고 하셨죠?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셔야죠. 단기 서약을맺었습니다. 바로, 당신의 입안에.”
“무슨─”
무슨 소리야, 라고 따지려는 바로 그 순간.
「쿠과광!!」 하고 문이 부서져라 세게 열렸다. 깜짝 놀란 로즈와,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놀라서 제자리에서 몸이 붕 떠버린 코니의 시선은 동시에 응접실 문으로 향했고.
“로즈 양~!!”
잘 아는 사람을 덩치 커다란 개라고 생각하는 게 엄청난 실례라는 걸 알면서도, 로즈는 자신을 향해 반갑게 달려오는 재클린에게서 언뜻 페티다의 모습이 엿보였다.
“우와, 키가 얼마나 자란 거야?”
재클린은 그대로 로즈의 옆구리를 양손으로 단단하게 잡은 채 그대로 번쩍 들었다!
“십 센티미터는 넘게 자란 거지?”
“예, 예에!!”
“몸무게도 ○킬로그램 정도 늘었고♬”
“그런 것까지 어떻게 아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