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0화 〉4막 (上) 유학소녀 - 1 (100/111)



〈 100화 〉4막 (上) 유학소녀 - 1

바다 위 국경(國境)은 아무런 표식이 없다.

지도에 그어진 국경선은 오로지 얇디 얇은 종이 위에서나 존재할 뿐. 그 경계를 수도 없이 넘나드는 배와 비행선에게 ‘국경을 넘었다’는 의미는 그저 ‘바다건너편에 도착했다’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계를 넘는 것.
아직 거기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

두 국가가 전쟁에 버금가는 적대적 상황일 때조차도 교류는 변하지 않는다. 거기에 날씨가 아무리 거칠어도 티켓만 끊으면 바다 너머로 간단하게 오갈  있는 해저 터널이 개통하면서, 사방이 바다로 둘러쌓인 연합왕국에서 국경의 의미는 더욱 희미해져만 갔다.

『텅─』

열차 객석칸 스피커에서 들려오기 시작하는 둔탁한 벨소리. 두 어 번의 헛기침 소리가 지나간 후, 기차가 출발할 때 들었던 차장의 목소리가 다시금 나오기 시작했다.

“「RPR 501편 해저열차를 탑승하신 승객분들- 지금 연합왕국, 연합왕국에 진입하였습니다- 곧 엘포트에 도착하오니 미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

방송이 흘러나오는 중간부터 객석칸은—좌석 등급과 상관 없이 일제히—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계급과 국적과 인종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일반 객석칸은, 기본적으로 신대륙식 구성이다. 두 명이 겨우 마주보고 지나갈 정도의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좌석들은 열차의 진행 방향 쪽으로 나란히 늘어져 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한 사철(私鐵, 민간 자본으로 노선을 구축하고, 운영하면서 그 운송 과정의 수익을 충당하는 철도회사)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최대한 좁은 자리에 사람을 꽉꽉 밀어 넣기 위해서 설계된, 좋게 말하면 서로 뒤통수만 보면서   있는 디자인.

반면 일등석과 특등석은 이제는 과거로 흘러가고있는 구대륙식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4인석  하나하나가 마치 작은 마차를 타는 것처럼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데, 그렇다고 옆 칸의 소음까지 막아주진 못한다. 각자 소란스럽게 자기 짐을 챙기면서 수납공간에서 여행 가방을 꺼내는 둥, 시끌벅적 와르르하는 흥겨운 공기 속에서.

“슬슬 보이려나.”

턱을 괸 채.
귀족 영애는 고개를 창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가지런하게  갈래로 땋아 내린 엷은 밀크티 빛의 부드러운 머리칼. 사이로 살짝 비치는 귀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 세공을 거친 호화로운 장미 문양의 귀걸이가 반짝인다.

입고 있는복장부터 손에 끼고 있는 팔찌와 새하얀 실크 장갑과 반지까지.  무엇 하나 흠잡을 구석이 없는 훌륭한 숙녀는 아직 어른의 성숙함이 묻어나지 않지만, 그렇기에 성장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싶은   후반 언저리의 이목구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소녀의 엷은 보랏빛 눈동자에 비치던 창문은 갑자기 밝아졌다.

소녀는 가볍게 휘파람을 풀었다.

하얀 뭉게구름이  하늘. 그 하늘이 비치면서 깊게 부서지는 파도가, 한가득 담긴 유리창.

바닷물을 머금어 빨간 녹이 슬어 붙어있는 트러스·아치 위로 힘차게 내달려가는 증기기관차는, 「삐이이이익──」하는 요란한 경적과 함께 수평선 위로 눈부신 궤적을 남긴다.

「덜커덩-」

흔들리는 소녀의 찻잔에 담긴 홍차가 부드럽게 사선으로 기울어진다. 커다랗게 방향이 변하는 열차 창문의 풍경에서 푸른 바다가 밀려나고 서서히 각지고 뾰족한 건축물이 채워진다.

연합왕국 서방 국제교역도시, 『엘포트』.

좁은 해협을 따라 마주하고 있는 공화국과 끊임없이 교류하는 도시이자, 공화국 너머 대륙으로 뻗어 나가는 진출(進出) 거점.

날씨가 맑은 날이면 역사가들이 연도를 헤아리기 전에는 ‘섬’과 ‘대륙’을 오가는 거대한 곶이었으며, 연합왕국과 공화국 사이의 해저 터널이 개통된 후에도 그 지위는 변하기는커녕 더욱 공고해졌다.

둥근 만의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에서 뻗어져 나오는 해저 터널과 해상 철도는 바다를 짧게 가로지르고, 곧바로 도시 정중앙의 터미널을 향해 부드럽게 선회하기 시작했다.

“로즈 아가씨.”

소녀의 맞은편 좌석에 앉은, 모녀 관계로 보기에는 좀 젊은 나이의 여자. 그녀는 읽고 있던 두꺼운 책에 책갈피를 끼우고 일부러  소리가 나도록 덮었다.

“바다는 공화국에서도 질리도록 보지 않았습니까.”
“그땐 따분하게 가만히 서서  거고. 지금은 기차 안에서 멋지게 움직이면서 보는 거죠.”
“이제 창문은그만 보세요. 눈에 띕니다.”

열차는 어느새 주택가 사이의 노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터미널에 당도하기까진 적잖이 빠른 속도를 유지하니,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객석 안의 모습을 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하물며 여자애가 누구인지는 알 도리가 없으리라.

목 끝까지 셔츠 단추를 채운, 단정하고도 엄격한 복장의 여성의 말은 단순한 트집에 가깝다. 안경을 고쳐 쓰면서 여성은 딱딱한 악센트로 말했다.

“프리스카 가(家)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일을 저질렀다가는, 조부님께 무슨 소리를 들을지 잘 아시잖습니까.”
“ ‘잘 아시잖습니까’라고? 선생은 기억력이 좋네요. 저는 다 까먹었습니다.”

이상한 잔소리에 피식하고 대놓고 비웃는 소녀—로즈 프리스카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느라 돌린 고개를 바로 하지 않았다.

“몇 년 사이에 이렇게 그리워질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 정도로 좋습니까.”
“선생은 안 그래요?”
“아가씨의 시간과 저의 시간은 다릅니다.”

선생이라고 불린 여성은 올빼미처럼 둥글고 깊은 안경 너머로, 로즈의 옆얼굴을 노려보았다.

“열다섯 살에서 열여덟 살로 성장하는 아가씨의 삼 년은 너무나 기나길 겁니다. 하지만 스물여섯 살에서 스물아홉 살이  저에게는, 수없이 스쳐지나갔던 시간이었을 뿐입니다.”
“그래. 삼 년… 길고 행복한 시간이었죠. 오늘로 끝이지만.”
“학업에 몰입하시느라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저조차도 놀랄 만한 집중력이었습니다.”
“마지막 쇼핑은 너무 좋았어요. 동생이랑 다시 한번 가고 싶은데, 할아버지께  부탁드리면 되려나.”

대화가 이어지는 듯하면서도 서로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둘.

그 사이에 밖으로 비쳐 들어오는 광경이 달라졌다. 노선에 바짝 달라붙은 칙칙한 건물의 노벽 만이 보이는가 싶더니. 곧이어 귀 아픈 제동음과 함께 기차는 서서히 속력을 떨어뜨렸고.

이윽고, 정지.

「퓌시이이이익──」

넓은 해협 아래로 쉴 새 없이 달린 장거리 운행이 끝낸 증기 열차 차량 아래로, 냉각 증기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새벽 안개가 끼는 것처럼 열차 플랫폼은 순식간에 새하얀 증기로 뒤덮였고. 그 증기는 이내 수없이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의 기세에 옅어졌다.

선생의 옆에서 바짝 붙은 채 내린 로즈는 주변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몇 시간 전까지 있었던 공화국과는 결이 다른 공기는, 낯설면서도 그리운 기묘한 감각을 불러왔다.

뭔가 감격에  있는 소녀와는 달리, 그 뒤에 서 있는 선생의 눈은 둥그런 안경 아래로 가느스름해졌다.

열차 플랫폼의 옆으로 늘어진 앙증맞은 건물들의 주홍색 지붕 사이로 보이는, 군데군데 솟아올라 있는 정체불명의 실루엣. 가로등보다는 높지만, 그렇다고 마냥 쇠기둥이나 설치물은 아니다.

햇빛에 번들거리는 그 모양은 흡사 철로 빚은 사람의 머리.

인간을 모방하여 만든, 군용 가압증기활동장치 『오토마톤』이다.

신문의 흐릿한 흑백 사진에서 보았던 것들이 마치 등줄기 높은 가로수처럼 여기저기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풍경은 어딘가 이상했다. 시선을 주변으로 돌린 선생은, 바로 자신들의 코앞에도 이질적인 금속 물체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무슨 행사라도 하는 걸까요?”

심각한 어투는 아니었지만 로즈 또한 이상한  눈치챈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군인이나 군 병기를 마주할 일은─일반적으로는─없다.

열차에서 방금 내린 승객 중 몇몇은 로즈처럼 어딘가 위화감을 느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수가 적은 경계심은,  외의 압도적인 평화로움에 묻혀버린다.

플랫폼에서 오가는 이들 그 누구도 변해버린 엘포트의 풍경에 조금도 괘의치 않는 눈치였다. 심지어 역무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조차도 가벼운 미소를 머금으며 여러 손님에게 환영의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특별히 그런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만. 심각한 건 저희뿐인  같습니다.”
“뭐, 선생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마지 못해서 이해하는  같아도 소녀의 눈빛에는 아주 옅은 의아함이 담겨 있었다. 그 기분은 선생 또한 마찬가지다.

오토마톤이 역 곳곳에 배치된 게 하루 이틀 된 모습은 아니다.

익숙해서는 안 되는 풍경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

“저희도 다른 사람들처럼 긴장은 풀고, 얼른 이동하는 게 좋겠습니다. 저희 수행원들과 짐으로 플랫폼을 오래 채우고 있는 것도 민폐이니 말입니다.”

하하 웃는 선생의 등 뒤로, 십 수 명에 가까운 소녀의 수행원들이양손과 등에 짐을 들고 있다.

보통 공화국이나 연합왕국 안에서는 어딜 이동하든지 기본적으로는 짐을 이동할 때에 마차를 사용한다. 그게 편하다고 무작정 짐을 싸서 들고 오면, 지금처럼, 짧은 거리라도 사람 손으로 장소를 옮길 때는 이 고생이다.

“예. 그렇게 하죠. 우선 역사 건물 안으로…─”

고개를 끄덕인 로즈도 살짝 웃는 낯으로 말을 하다가.

호흡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둘과 일행들과 그 밖의 수많은 승객과 역무원과 마중 나온 사람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플랫폼에서.

기관 정지 상태로 조종사도 없이 세워져 있던 오토마톤.

그 머리 부분에서 끼익하는 불길한 금속음과 울려 퍼짐과 동시에, 나사  개가 퉁겨져 나왔다.

주먹보다 조금 더 큰 나사 하나가 로즈를 향해 총알처럼 날아왔다. 그리고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인 로즈의 여행 모자를 스치고 떨어졌다.

「터엉─」

어딘가를 조이고 있어야 할 부품이 바닥에 노란 불꽃을 튕겼다. 아직 이변을 알아차린 사람은 로즈와 선생, 둘 뿐. 소녀는 위를 바라보았다.

로즈의 몸뚱어리만 한 금속 부품이, 당장이라도 플랫폼 위로 떨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아직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몇 초 후에 찾아올 분명한 비극.

“아가씨!”

선생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 그 말이 로즈의 행동을 막으려고 한 건지, 아니면 서두름을 재촉하려는 건지는  수 없었다. 앞으로도 알 길은 없으리라.

그녀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로즈는 그녀는 장갑을 벗었다.

실크장갑을 벗은 오른손 손바닥으로 이마를 덮은 로즈는, 곧바로 자신의  눈 위로 손을 쓸어내렸다. 손은 그대로 그녀의 눈을 가리고, 날카롭게 뻗은 코와, 굳은 입술과 살짝 둥근  끝을 차례로 훑으며 빠르게 타고 내려왔다.

아주 찰나의 순간 가려졌다가 드러난 로즈의 시야.

조금 전까지 크게 휘어졌던 오토마톤의 머리는 어느샌가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다.

“후우.”

짧게 숨을 토해내고.

로즈는, 다시 실크장갑을 오른손에 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플랫폼의 사람들은 마중 나온 친구와 가족에게 기쁨의 포옹을 하느라 바빴다. 얼굴 한 번 마주한 적 없는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이미 불귀의 객이 되었을 그들을 바라보며, 소녀는 문득 손이 허전함을 느꼈다.

급하게 장갑을 벗느라고 휘말린 반지가 저만치 플랫폼 구석으로 굴러가 있었다.

“선생.”
“예.”
“그루터기 아래로 달려가는 여우를 본 적 있습니까?”
“예? 무슨 말입니까, 아가씨?”
“─아닙니다. 혼잣말입니다.”

그녀가 손을 뻗자 반지는 그대로,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부유하는 양, 로즈의 손바닥으로 등속직선운동으로 돌아왔다.

“공화국까지 유학을 갔다  보람이 새삼 느껴집니다. 선생.”
“아가씨 설마, 제가 모르는 사이에 리력(理力)을 쓰셨습니까?!”

둑이 터진 것처럼 쏟아지려는 선생의 잔소리는, 곧 이어진 로즈의 다음 말에 통째로 메워졌다.

“그럴 리가 있겠어요. 선생. 당신이 아는 사이에 썼다고.”
“예… 예에?”

혼란에 빠진 선생은 신경도 안 쓰고, 로즈는 팔을 넓게 벌리면서 “스으으읍-” 하고 숨을 들이켰다.

“이 촌스러운 냄새가 좋아.”

그렇게 말한 그녀는 손가락을 튕겼다.

“부르셨습니까. 아가씨.”

신사복을 입은 노년의 집사가 다가왔다. 로즈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무릎 위로 묶어 올리면서 말했다.

“달리고 싶어. 시어도어 씨. 테니스 슈즈를 가져오세요.”

잠시 후.
그녀는 뒷굽이 높아서 걷는 것도 불편한 구두를 벗었다. 그리고 공화국에서 한창 또래 여자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고무 밑창의 활동성 좋은 단화로 갈아 신었다.

 자리에서 발을 두 어 번 콩콩 구르고.

로즈는 플랫폼에서 역사로이어지는 계단으로, 전력 질주를 시작했다.

“어, 어어!”

다른 수행원들도 갑작스러운 주인님의 달음박질에 당황하긴 마찬가지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반응이 빠른 건 선생이었다.

“갑자기 달리면  됩니다! 아가씨!”

아무리 봐도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수도원 스타일의 청년인데도, 선생은 용케 로즈의 뒤를 놓치지 않고 겨우겨우 따라간다. 애타는 선생의 외침을 귓바퀴 너머로 떨어뜨린 소녀는 엘포트 역사에서 빠져 나와, 길거리에 대기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이륜마차에 후다닥 올라탔다.

“아가씨, 잠시만요! 아가씨!”

소녀를 놓칠세라 선생도 헐레벌떡 쫓아왔다. 충분히 출발할 틈이 있었지만 어째선지 마차의 바퀴는 구르지 않았다. 그 이유가 궁금해도 고민할 여유가 없다. 이마에 살짝 땀방울이 맺힌 선생이 올라타자마자 로즈가 마부 칸으로 뚫린 창을 콩콩 두들겼다.

“출발!”
“예에. 어디로 모실까요?”

마부의 당연한 질문에. 계속해서 앞만 바라보던 로즈의 고개가 이제야 천천히 옆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열차 안에서도  번도 마주 보지 않았던 선생을 바라보았다. 얇은 자수정 빛의 눈동자가 향하자, 이번에는 선생이 마부가 앉아있는 자리 뒤편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잠시만, 팁은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선생은 아직 열려 있는  바깥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녀는 저만치 멀리서 헉헉거리는 수행 인원들에게 왼팔을 뻗어서 검지와 중지 손가락 두 개를 치켜세워 보여주었다.

제법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들  하나가 ‘알아보았다’라는 수신호를 보내자, 그제야 그녀는 다음으로 마부에게도 알려주었다.

“엘포트 제2 정거장으로 갑시다. 이왕이면 탑승 게이트에 가까운 입구로.”

그렇게 말하고 문을 닫는 동시에 마부가 고삐를 흔들었다.

좀 전까지 타고 있었던 열차와 엇비슷한 세기로 마차 바퀴가 덜컹거리기 시작되자, 선생은 “휴우~” 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로즈 아가씨… 이제 집으로 돌아가시면, 그렇게 경박하게 뛰면 안 되십니다….”

이마에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닦는 선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로즈는 팔짱을 낀 한쪽 팔로 턱을 괴어서, 이번에는 마차의 조그마한 창문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레인폴까지 가는 데에 며칠 정도 걸릴까요. 이틀이면 충분하겠죠?”
“저희가 왕국을 떠날 때는 그 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제는 그만큼은 안 걸립니다.”

품에서 수첩을 꺼낸 선생은 미리 베껴  엘포트의 여러 정거장의 시간표를 재차 확인하였다.

“지난달부터 레인폴에도 수도 직행 노선이 열렸습니다. 수도 앨버스에서 갈아타면, 레인폴까지 이제 하루도 안 걸려요.”
“오호. 빠르네요.”

소녀의 야무진 눈이 살짝 움찔하는 걸 선생은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관심이 없는 로즈는 별로 볼 것도 없이 칙칙하게 흙먼지로 뒤덮인 마차 창문으로 향한 시선을 돌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나를 놀리려는 장난이라면 화낼 거예요.”
“제가 뭣 하러 아가씨에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딱 봐도 고지식함의 결정체로 생긴 선생은 안경을 고쳐 쓰면서 말을 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아가씨를 저택으로 모셔드려야 저의 해방도 빨라집니다. 주급을 받은 후 잔여 경비 계산을 하러 곧바로 세무사를 찾아가야 하니까, 그러니까행여라도 이상한 걱정은.”
“알았어, 알았어. 나도 선생을 진심으로 의심한 거 아니야.”

뭔가 지쳤는지 이번엔 로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가라앉은 분위기는 마차 바퀴가  번 구르는 사이에 사라졌다.

“케이트.”

느닷없이 아가씨가 이름으로 부른다. 선생─케이트는 수첩을 보면서 답했다.

“예. 로즈 아가씨.”
“아가씨 빼고.”
“로즈.”
“내 옆에 앉으세요.”

수첩을 다시 안주머니에 넣고, 케이트는 로즈 옆에 앉았다.

소녀는 선생의 머리 뒤로 손을 돌렸다. 한 손으로 능숙하게 머리핀을 풀자, 둥글게 땋아 올렸던 갈색 머리카락이 한순간에 흘러내렸다.

케이트의 턱 끝을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살짝 힘을 당겨 주면서, 고개를 앞으로 포개었다. 입술이 겹쳐지는 감촉을 느껴지자, 선생은 눈을 감았다.

로즈는 눈을 감지 않았다.

- 그녀가 내게 묻기를
- 4막


엘포트에서 수도 앨버스까지는 경식 비행선으로 이동한다. 험준한 산맥을 굽이굽이 헤쳐 지나가는 열차보다도 비행선이 압도적으로 시간을 단축해준다. 단축해도 여기에 한나절이 소모된다.

일단 앨버스에게 도착하면, 거기서 곧장 제1행정도시(第一行政都市) 레인폴까지 이동하는 건 간단하다.

앨버스 중앙 터미널에서 레인폴의 외곽 전원 지역에 자리를 잡은 프리스카 가의 저택까지, 사륜마차로  시간. 로즈가 자신의 수많은 수행원과 함께 저택에 돌아왔을 때는 막 해가 저물고 저택 곳곳에 가스등과 전등의 불빛이환하게 밝혀질 때였다.

“아가씨!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아는 얼굴 사이로 모르는 얼굴이 드문드문 섞인 가사 사용인들이 허리를 굽히면서 환영 인사를 해주었다. 로즈는 너무 비굴해 보이지는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오만하지 않을 정도의 미소를 지으며 저택으로 들어갔다.

삼 년 만에 돌아오는 집.

그리고 삼 년 만에 뵙는, 할아버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