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3막 (에필로그) (2)
침대에 누워 있던 코넬리아는 누운 자세에서 공중으로 펄쩍 뛰었다. 소녀가 구르는 엉덩이에 삐그적, 병상 침대가 흔들거렸다.
“야, 야아. 아야, 잠시만. 로드리?”
조금 움직이려는 것만으로도 배가 쿡쿡 쑤셔왔다. 그래도 코넬리아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최소한의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잖아 나. 너와 나는 오랜 친구 사이~ 니까, 나 알지 응?”
“그래. 잘 안다.”
당황해서 흐르는 진땀이 뺨을 타고 흐르는 코넬리아를 보면서.
브랜디 빛 눈동자인 로드리는 그윽하게 말했다.
“내 인생의 반려자… 그게 바로 너.”
“으아악!”
손을 벌벌 떨면서, 코넬리아는 바깥에 크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절제된 비명을 질렀다. 덜덜 떨리는 손바닥으로 감싼 뺨은 살짝 달은 열기가 퍼져 온다.
“그건 아니지. 아니, 정확히는 그게 아닌 건 아닌데!”
“호칭이 문제입니까. 부인?”
“끄으으윽—”
코넬리아의 가느다란 목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천년 묵은 낡은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것만같은 소리.
그 소리는 악문 앞니 틈 사이로 술술 흘러나오고.소녀는 손바닥에 파묻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입에 올리는 것조차도 낯간지러운 호칭이 자신에게 향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무슨 깃털로 옆구리를 간지럽히는 것만 같은 민망한 대화가, 다른 사람도 아닌 로드리의 목소리로 들려온다는 것까지.
하나하나로 떼어 놓아도 파괴력을 가진 상황이 결합하여, 끔찍한 상승효과가 일어났다.
버틸 수가 없었다!
“왜 그러는가. 간호사를 부를까?”
그렇다고는 해도, 걱정하는 로드리의 마음에 짐을 하나 더 얹고 싶지는 않다.
“괜찮아. 조금 당황했을 뿐이야.”
뱃속 깊숙하게 숨을 들이마신 후 내쉬면서 긴장을 풀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마음속으로 단어를 한 번 고른 다음, 입을 열었다.
“로드리. 지난밤의 일은—”
“코니.”
그 신중한 말을 단칼에 자른 로드리는 소녀가 당황할 사이도 없이 곧장 말을 이었다.
“내가 싫으면 언제든지 말을 해라.”
“으, 으응?”
“만약 네가 말을 하지 않고 내가 알아서 눈치채기를 바란다면, 정말로 난 알아차리지 못한다. 나를 멀리하고픈 감정이 있다면 숨김없이 나에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을 해도 말이지.”
이 정도로 낮은 자세로 말을 하면 거꾸로 코넬리아 쪽이 더 미안해진다.
“내가 널 특별하게 싫어하거나 거리를 두고 싶을 리가 없잖아.”
“그런가.”
조금 전 앤시아가 썼었던 의자에 앉은 로드리는 정복 안주머니에서 수첩 하나를 꺼냈다.
구원군의 검은 십자가 문양이 새겨진 수첩. 그 안을 잠깐 살펴보더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 그러면 결혼은 유지해도 되는 것으로.”
“야 이-”
속에서 무언가 울컥하면서 머릿속에서 혈압이 빡 올라가는기분이 들었다. 기분 탓이기를 빌었다.
“로드리. 그러잖아도, 거기에 지금 할 말이 있는데.”
“그런가.”
조금 대화가 길어질 화제라고 판단했는지, 로드리는수첩을 다시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래. 할 말이란 게 뭔가. 부인.”
침착하자….
이런 가벼운 도발에 넘어갈 정도로 나는 가볍지 않아…!
자기 다짐을 단단히 하면서, 애써 지은 사무적인 미소를 포기하지 않는 코넬리아는 말을 이었다.
“지하 공간에서 있었던 일은 나에겐 예상치 못한 일의 연속이었거든. 한데, 너에게는 그렇지 않아 보였는데 말이지.”
“그렇다. 나 대신 네가 총에 맞는 것 빼고는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딱히 뭘 숨기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살짝 기댄 로드리는 무릎 위로 느슨하게 낀 손깍지의 엄지를 마주 누르면서 말했다.
“매우 급박한 순간, 우리 둘 사이에 여신 앞의 언약으로 맺어지는 일족의 연을 이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부부가 되었다. 그저 그뿐이다.”
그렇게 말한 로드리의 눈빛은 ‘그게 무슨 문제인가?’란 의문이 담겨 있다.
“서로를 배신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 서로가 힘들면 서로에게 지탱하는 존재. 운명을 함께하는 운명 공동체의 관계. 너와 나 사이의 이런 관계. 소꿉친구나, 부부나.”
깍지 낀 손가락을 하나하나 풀면서 그는 말했다.
“어차피 똑같은 거 아닌가?”
“이 자식~ 그 잘생긴 얼굴로 그럴싸한 궤변이나 늘어놓고~”
하하. 소녀는 지금 자신의 입은 웃고 있지만 아마도 눈은 안 웃고 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말이었다.
코넬리아는 자신의 표정에 확신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동요하고 있었다.
‘이상하네… 머리가 제대로 안 돌아가서 그런가?’
언제나 자신을 괴롭히는 지끈거리던 두통은 아직 없다.
그렇기는 해도 배에 총을 맞고 조금 전까지 의식을 못 차리고 있었던 자신의 컨디션이 나쁘다는 정도는 눈치를 챌 수 있다.
잘 알면서도, 어떻게 대응을 할 수가 없는 지금.
침대에 갈 시간을 넘기고 잠이 쏟아질 때의 그 모습처럼, 코넬리아에게 틈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걸 로드리는 놓치지 않았다.
“결혼은 결국 당사자 사이에 맺는 관계에 다른 이름 하나를 붙이는 것이다. 요컨대, 조금 독특한 별명일 뿐이다.”
“뭐야… 그 정도일 뿐인 거야?”
“그렇다. 별거 아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로드리는 “다만.” 하는 운을 떼었다.
“네가 죽으면 나도 죽어야겠지. 내가 죽으면 너도 죽어야 하고.”
“어, 어라… 이상한데 그건…?”
괜히 어깃장을 놓는 말이 아니었다. 둘 다 결혼을 입에 올리고 있어도. 그 같은 단어 사이에서 둘이 연상하는 의미는 달랐다.
아무리 머리가 조금 멍해진 코넬리아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이상하면 눈치를 챌 수밖에 없었다.
“국교(國敎)에서 맺는 결혼과 종립구원군에서 맺는 결혼은 의미가 다른 거였냐. 일족이라고 모두가 다 그럴 리는 없잖아. 음, 그러니까—.”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코넬리아는 겨우겨우 기억을 되짚었다.
“—일족이 표징으로 연결된다고 했었지. 그렇다는 게 단순히 신학적인 은유가 아니라는 거지.”
“그렇다. 그렇게 묻는 걸 보아하니, 아직 너에게는 안 보이는 모양이군.”
로드리는 허리춤의 회중시계 뚜껑을 열고 시간을 확인하면서 말했다.
“말 그대로다. 은유가 아니다. 구원군은 표징으로 이어져 있다. 너에게는 정말 보이지 않는 건가.”
그 질문에 코넬리아는 왼손에 끼고 있는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표징을 묻는 건 아니지?”
“참 기이하군.”
손을 풀고 다리를 꼬아 앉은 로드리. 뭔가 심각하게 신경 쓰이는지, 비스듬하게 흉터가 있는 그의 이마에 살짝 주름살이 찌푸려진다..
“네 특수한 상황과 연관이 있을지 모르겠다만. 역시, 네 눈에 안 보이는 건 나로서는 당황스럽군.”
“다른 사람한테는 어떻게 보이길래 그러냐. 네 눈에는 어떻게 보여?”
“여기, 에서 시작되는 빛이”
소녀의 표징을 가리킨 로드리의 왼손에도, 마찬가지로 은빛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나에게로 이어져 있다. 최단 거리로.”
“으~음….”
아무리 유심하게 자신의 손가락을 감싸고 있는 표징을 살펴보아도, 특별한 「빛」이 눈에 보이거나 하진 않았다.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원한다면 다른 구원군을 불러서 언제든 확인시킬 수 있다. 너에게는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의미가 깊은 말이구먼….”
로드리의 짧은 말이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지는, 지금의 코넬리아도 눈치를 챌 수 있다. 별로 반기고 싶지 않은 추측이 떠올랐다.
“너와 나 사이에는 무슨 색의 빛이야.”
“하얀색이다.”
“너랑 앤시아 사이에는?”
“노란빛이다. 민들레처럼 샛노랗지. 아.”
로드리는 뭔가 떠오른 것처럼 가볍게 말을 이었다.
“참고로 흰색은 부부 사이를 나타내는 색이다.”
“뭐, 뭐라고—!”
등 뒤에서 소름이 쫘악 돋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던 코넬리아는 간신히 충동을 참았다.
이성이 힘을 쓴 건 아니다. 단지 뱃속에서 밤송이가 뒹구는 것처럼 아픈 통증이, 소녀의 경거망동을 억제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구원군에 속한 사람들 눈에는… 다 보인다는 거야?”
“그렇다.”
“하, 마마마말도 안 돼.”
애써 태연하려는 척. 소녀는 코웃음을 쳤다.
“과학적으로 불가능해.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이 너와 구원군들에게 보인다니. 어린 아이의 꿈같은 소리야.”
“이 자리에서 광학(光學)을 말하는 거라면, 나도 네 의견에 동의한다. 구태여 믿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그 태도는 고치는 게 좋을 거다.”
코넬리아를바라보면서.
의자에 앉아 있던 로드리는, 손을 뻗었다. 앤시아처럼 장갑을 끼고 있는 그 뻗은 손은 소녀의 턱 끝을 부드러이 감쌌다.
“난 너처럼 똑똑하진 않다. 대신 나보다 슬기로운 사람의 고견은 항상 새겨듣지.”
몸을 일으켜, 로드리는 코넬리아에게 바짝 다가왔다.
“뭐.”
뭐 하는 거야. 이렇게 소녀가 말하기 전에, 로드리의 오른손이 코넬리아의 왼손을 붙들어 잡았다.
“네 몸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코니?”
“손 놔.”
바이스로 고정이라도 한 것처럼 단단하게 소녀의 손목을 쥔 로드리는, 그 손을 놓기는커녕 오히려 자신 쪽으로 코넬리아를 끌어당겼다.
“네가 뒤집어쓴 죄는 논리적인 납득이 되는가. 지금 네 모습과 너의 위치, 너의 등에 짊어진 책무. 그 무엇 하나도 너는 제대로 타인에게 설명할 수 없다.”
턱 끝을 잡힌 코넬리아는, 올려다보는 로드리의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릴 수도 없다.
물론 그러든지 말든지 어차피 코넬리아는 그럴 생각조차 없었지만.
“왜 이러는 건데. 이유를 말해.”
“평범한 말보다 강한 메시지의 충고를 하는 거다.”
침대 위로 한쪽 무릎을 걸터앉아 올리고 있는 로드리는 영락없이 소녀를 내려다보는 자세다. 억지로 소녀의 행동을 결박하고 있는 그 모습은.
언뜻 보면, 누가 보면, 오해라도 할 모습이었지만.
“너는 좀 더 겸허해야 한다. 네가 모르는 영역을 네 시선으로 재단하지 마라.”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그런 겸손한 자세로는 평생 입 뻥긋도 못 하고 살 건데?”
“말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게 그거잖아!”
부들부들. 로드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힘주는 코넬리아의 팔이 떨렸다.
‘으윽… 겨… 경의사 파워…!’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워도 마치 나무 그루터기를 미는 것처럼 로드리의 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남이 널 제멋대로 가지고 노는 게 싫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로드리는 코넬리아가 바짝 쥐어짜는 힘 따위는 전혀 못 느끼는 거로 보였다.
“그러면 그 반대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정말로 널 위해 하는 말이다.”
“아, 그래! 참 고맙네!”
로드리를 올려다보는 소녀의 눈빛은 태양이라도 태울 것처럼 이글거렸다.
“알았으니까 빨리 놔. 난 이런 거 제일 싫어!”
“그래. 놓아주겠다. 코니.”
코넬리아의 손목을 쥐고 있던 힘이 풀렸다. 로드리는 소녀의 그 손을 그대로 놓지 않고.
“이건 돌려받도록 하지.”
스르륵, 하고.
소녀의 손가락에서 표징을 빼어냈다.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그 광경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인 코넬리아. 그 예상 밖의 얌전한 반응이, 로드리는 그게 거꾸로 놀라운 눈치였다.
“널 괴롭히려는 건 아니었다.”
로드리는 어딘가 복잡해 보이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다른 구원군에게 너와 나 사이의 빛이 보이는 걸 원하지 않는 거지. 나는 네가 곤란하길 바라지 않는다.”
“아, 그… 그래. 곤란하지. 응.”
벌어지는 일에 잠깐 정신을 못 차렸던 코넬리아는, 앞선 대화와 이어지는 로드리의 말에 겨우 흐름을 잡았다.
“로드리. 잠시만 내 말을 좀 들어봐.”
“음.”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의 말에 언제나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주는 모습은 고맙다. 이불을 걷고 침대 바깥으로 앉은 코넬리아는, 손바닥으로 침대를 팡팡 두들겼다.
“나란히 앉아서 얘기하자. 불편하니까.”
“나는 딱히 괜찮은데.”
“내가 불편하다고. 난 누가 날 내려다보는 걸 싫어하거든. 그러니까 여기 앉아.”
코넬리아의 명령 아닌 명령에 그는 순순히 소녀 옆에 앉았다. 그가 앉은 쪽으로 침대 매트리스의 코일이 움푹 들어가자, 소녀의 몸이 로드리 쪽으로 기우뚱, 흔들렸다.
‘그래. 말하자.’
네가 내 발목을 잡을 일은 없다. 오히려 발목을 잡는 건 내 쪽이다.
‘그러니까 이런 관계는.’
그대로 코넬리아의 몸은 계속 기울어지고.
툭.
코넬리아의 머리가 그의 팔에 닿았다.
“고마워. 로드리.”
낯간지러운 느낌은 없이.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감사의 인사였다.
“너에게는 가장 먼저 이 말을 해야 했었는데.”
“아까 들어왔을 때도 나한테 고맙다고 말했었다.”
“내가?”
“네 습관이다. 틈만 나면 고맙다고 하는 거. 몰랐는가?”
로드리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그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딱딱하다’고 말한다.
표정의 변화가 적고, 좋게 말해서 침착한 그의 목소리는 밋밋하고 단조로운 높낮이니까.
그렇지만 코넬리아는 알 수 있었다. 이건 지금 놀리고 있는 거다.
“응. 처음 알았어. 알려줘서 고마워.”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건, 연한 노을이 비스듬하게 들어오는 정사각형의 창문. 걷어진 커튼 너머로는 아직 낮의 여운에 잠겨 있는 하늘이 비쳐 보인다.
매일같이 보는 풍경은 당연하게 찾아오는 게 아니다.
하루를 살아남아야 그다음 날의 하루를 맞이할 수 있다는, 이 당연한 사실.
그걸 지식으로 알고 있고 정보로서 뇌에 새기고 있어도, 절실하게 깨닫는 건, 계기가 찾아왔을 때만 가능했다.
“네가 아니었으면 난 거기서 죽었겠지. 그건 정말 감사 인사를 몇 번은 해도 부족할 정도야. 정말 고마워.”
“고맙지 않은 부분도 있다는 거지.”
“그런 건 눈치채더라도 모르는 척 넘어가면 안 되냐?”
“네가 나에게서 눈치를 바라다니, 정말 심각하게 다쳤나 보군. 머리는 괜찮은가?”
“누구 덕분에 다쳤는데!”
여느 때처럼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말이 멈추고.
잠깐 둘 사이에 채워지는 침묵.
그 침묵은 조금 전에 감정의 날카로움이 서로를 찌를 때 마냥 거북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고요함이다.
말없이.
지저귀는 새소리에 뒤섞인 풀벌레 소리는 이곳에 서서히 저녁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