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3막 (에필로그) (1)
기억을 지우고 시간을 돌려도, 똑같은 선택지를 선택하리란 확신이 있었다. 그 상황에서 로드리가 은연중에 강조하였던 종립구원군의 기적을 바라는 게, 유일무이한 선택지였다.
아무리 인공심장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더라도, 그 펌프가 열심히 밀어내면서 온몸에 순환시킬 피가 사라지면 소용이 없으니까.
구원군의 일족이 되는 것. 그것 만이 유일하게 살아남는 길.
확신은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변함없이 마찬가지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미친 건가?’
하지만 그 확신에 찬 선택이 불러오는 부작용을 감당할 각오는 부족했던 것 같았다.
“끄으으~!”
이를 앙다물고 앓는 소리를 목구멍 안에서만 데굴데굴 굴리면서. 코넬리아는 병실 침대보를 주먹으로 팡팡 내려쳤다.
여신의 앞에서 언약(言約)을 맺었다. 그 정도의 강제성과 위력이 있어야, 그 자리에서 바로 자신이 구원군의 일족으로 인정이 될 수 있었겠지.
신학에 대한 방면으로는 지식이 어둡기에, 그 언약의 무게감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엄청 중요하고, 엄청나게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인식 정도로 짐작하고 있었다.
죽기 직전에는 이게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살고 나니까 죽을 만큼 자괴감이 드는 건 뭘까.
진짜, 이 심란한 기분은 뭘까?
‘내가 이렇게 약삭빠른 사람이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닫혀 있는 병실 문 바깥으로, 바닥을 울리는 걸음 소리가 점점 다가왔다.
그리고 우윳빛 유리 너머로 실루엣이 보이기가 무섭게 문은 벌컥 열렸다.
“안녕하십니까, 레이디!”
환한 표정으로 들어온 사람은 앤시아였다. 카키색 제복은 반듯한 각이 잡혀 있고, 검은색 군화에는 거울처럼 반짝거릴 정도의 광택이 흐르고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챙이 앞으로 둥글게 나와 있는 군모를 벗어서 출입문 옆의 옷걸이에 걸었다. 가지런히 땋은 검은 머리는 둥글게 뒷머리 위로 올려 묶여 있었다.
“맛있는 걸 사 왔습니다. 같이 먹읍시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기세인 그녀의 품에는 기다란 바게트가 고개를 내밀고 있는, 빵빵하게 부푼 갈색 종이봉투가 들려 있었다.
여전히 허스키하긴 하지만 제법 흥이 오른 목소리인 그녀의 옆으로,바퀴가 달린 철제 카트를 밀면서 간호사 둘이 따라 들어왔다.
앤시아는 코넬리아가 누워 있는 침대 옆 의자에 멋대로 앉고. 함께 들어온 간호사 중 한 명은 소녀의 수액 장치 팩을 교체하기 시작했다.
“아가씨. 아~ 하세요.”
다른 간호사는 어른 한 뼘보다 조금 더 긴 수은 체온계를 들었다.
“아~”
코넬리아는 순순히 입을 벌렸다. 선홍빛 혓바닥 밑으로, 서늘한 올버트제(製) 수은 체온계의 유리면이 파고 들어온다.
“잠시만 물고 있으세요~ 오 분 정도는물고 있어야 체온을 알 수 있어요~”
간호사의 말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거지만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인 것처럼, 코넬리아는 둥글게 웃었다. 그러면서 살짝 고개를 숙인 소녀의 눈에는 간호사의 가슴팍에 반짝이는 배지가 보였다.
육각형의 흑색 바탕에 호화로운 덩굴 문양이 얽혀 있는 황금색 십자가.
“여기는 바트나 중앙 교구 소속 종립병원 입니다.”
코넬리아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차렸는지, 앤시아는 곧장 대답하였다.
“작전을 끝마치고 당신을 제3지구에서 이곳으로 모셔온 지 한나절은 지났습니다. 의식을 차리셔서 다행입니다!”
“제3지구… 아아, 그래. 그런 곳이었지.”
입에 담아도 여간 친숙하지 않은 지역명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고작 몇 시간 정도 머물렀던 곳. 그 짧은 시간은 그야말로 사나운 폭풍처럼 전신을 할퀴고 지나갔다. 단지 비유적인 의미만은 아니었다.
“읏.”
따끔한 통증이 느껴지는 배를 본능적으로 손으로 감쌌다. 붕대로 단단히 감겨 있는 아랫배를 만지는 소녀에게 앤시아가 말을 걸었다.
“뭔가 궁금한 게 잔뜩 있어 보이는 얼굴입니다. 레이디.”
씩 웃은 그녀는 옆에 서 있는 간호사들에게 말했다.
“둘이서 대화하고 싶습니다. 잠시만 자리를 피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들어오기 전에 미리 말을 맞춰 뒀는지. 앤시아가 부탁하자마자 간호사는 자리를 비켜주었고.
금세 병실에는 둘만 남았다.
“흠.”
바로 조금 전까지 기분이 좋아 보였던 건 일부러 꾸며낸 모습이었을까. 어딘가 김이 샌 듯한얼굴로, 턱을 괴고 소녀를 바라보는 앤시아.
맑은 남색의 눈동자는 게슴츠레 반쯤 감겨 있다.
“으,으음…….”
약간 열이 나는지 얼굴이 복숭앗빛으로 물든 코넬리아.
둘 사이의 어색한 침묵으로 빈 곳은 바깥 소음이대신 메꾸었다. 누군가 카트를 끌면서 복도를 오가는 소리와정확한 내용까지는 몰라도 뭔가 부지런하게 대화가 오가는 소리까지.
얇은 병실 문 밖에서 다양한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면 방음은 기대하기가 어렵겠군. 그런 생각을 하고. 코넬리아는 무의식중에 체온계를 사탕처럼 빨았다.
차분해진 얼굴로 코넬리아를 한참 바라보던 앤시아는, 들고 온 종이봉투 안에 손을 넣었다.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경의사 님.”
한참을 부스럭 부스럭거리던 앤시아가 심각한 얼굴로 꺼낸 건.
새빨갛게 익은, 큼직한 사과였다.
“저희 종립구원군은 특무부엔 강한 유감을 표하였습니다. 곧 비공식적인 사과문이 도착할 것입니다.”
“어, 저기-”
“체온계.”
“우움….”
뭐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곧바로 봉인 당했다.
앤시아는 자신이 가지고 온 나이프로 사과 껍질을 시계방향으로 깎기 시작했다.
말없이.
사각사각.
그녀의 손안에서 둥글게 돌아가는 사과가 천천히 하얀 과육을 드러낸다.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나선형을 그리는 사과 껍질을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앤시아는 입을 열었다.
“정말이지, 어쩌자고 그런 무리한 짓을 한 건지.”
조금은 타박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말투였지만, 말과는 달리 앤시아는 속상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경의사 님은 잘못한 거 없습니다. 폐공장 지하에서 있었던 일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잘못은, 로드리가 잘못입니다.”
사과의 과육 속으로 나이프를 깊숙하게 쑤셔 넣으면서, 앤시아는 말했다.
“제대로 호위하지 못한 로드리에게 강한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물론 그 책임은 다소 경감됩니다.”
서걱서걱.
“경의사 님을 살린 것 또한 로드리니까요.”
싹둑.
사과 속심까지 기어이 쪼개버린다.
“히, 히이이….”
어째서일까. 토막토막 잘려나가고 있는 건 사과인데, 내 마음이 왜 뜨끔거리는 걸까.
코넬리아는 점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소녀가 그러든 말든 사과를 조각조각 자른 앤시아는 나무 플레이트 위에 반듯이 올려놓았다.
“하여튼 바트나에서의 처리할 일은 말입니다. 음.”
그리고 그걸, 자기가 먹기 시작했다!
“무역상사와 카데바 건에 대한 업무는. 구원군이 진행합니다. 음. 경의사 쪽은 지역 지부장의 건을 맡아주십시오. 음음, 맛있습니다.”
과육을 음미하는 그녀의 옆얼굴을 바라보던 코넬리아도 별생각 없이 사과를 집으려고 왼손을 뻗었는데.
그 얇은 손등을 앤시아는 가볍게 찰싹 내려쳤다.
“아야!”
아직 몇 겹 벗겨진 적이 없는 소녀의 피부에는 그 가벼움이 무겁게 다가왔는지, 순식간에 벌건 자국이 생긴다.
원망스럽게 코넬리아가 노려보지만, 앤시아는 그저 집게손가락으로 소녀가 입에 물고 있는 걸 톡톡 건드릴 뿐이었다.
“체온계. 예?”
“예….”
예쁘게 벗겨졌던 사과는, 그걸 직접 깎았던 앤시아의 입으로, 한 조각 한 조각 차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콜레라 사태 은폐에 대한 책임은 엄하게 물어야 할 겁니다. 동료분에게도 연락을 드렸으니 곧 합류할 것입니다. 예의 레드우드 시에서 활약한동료분입니다.”
누군지 정확하게 말을 안 하면, 조금은 혼날 각오를 하고 한 번 떠볼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앤시아는 처음부터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애크인?”
“네. 재클린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녀는 코넬리아가 어물거리면서 입안에서 굴린 온도계를 다시 혓바닥 밑으로 꾹꾹 쑤셔 넣었다.
“주제넘은 참견을 하겠습니다. 경의사 님. 업무는 동료분에게 맡기시고, 회복에 전념하시길. 상처가 얕지 않습니다.”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도 앤시아는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진 코넬리아의 앞머리를 깔끔하게 옆으로 넘기고, 침대에서 한참 누워 있었던 소녀의 옷매무새를 쓱쓱 다듬어 주었다.
때마침,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겠습니다~”
먼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허락을 구하는 척만 하고, 간호사는 곧바로 코넬리아의 체온을 확인하였다.
“36도 8분. 정상 범위입니다!”
거즈로 체온계를 닦고 보관함에 넣은 간호사는 움직임을 멈추고, 코넬리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약간 초승달을 그리는 눈매로 소녀를 보는 눈빛은 결연코 경계나 염탐처럼 계산이 섞인 눈빛이 아니다.
간호사의 시선에 담긴 건 그보다는 훨씬 단순하면서 강렬한 「호기심」.
“어,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닙니다. 후후후….”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면서, 간호사는 앤시아에게 윙크를 하였다.
“저는 나가겠습니다~”
가볍게 말을 남긴 간호사는 카트를 끌고 병실에서 나갔다. 벽시계를 보던 앤시아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이라 중얼거리면서 의자에서 일어섰다.
옷걸이에 걸어두었던 모자를 쥐어 들고. 딱 한 조각 남은 걸, 나무 포크로 찍어서 코넬리아 입에 물렸다.
“중부에서 올해 처음 수확한 사과입니다.”
다소 격하게 소녀의 입술사이로 밀어 넣어진 조각은, 한 번에 다 먹기에는 너무 컸다. 하얀 과육을 반만 베어 문 코넬리아는 포크에 박힌 나머지는 접시에 내려놓았다.
“봉투 안에는 빵이랑 과자랑 과일이 있습니다. 천천히 드시면 됩니다.”
“응.”
다람쥐처럼볼을 채우고 우물우물 입안을 놀리는 코넬리아를 보며.
앤시아가 입을 열었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프흡—! ”
먹던 사과가 목에 걸렸다.
정신없이 기침을 한 코넬리아는 뭐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병실 문 손잡이를 돌린 앤시아는 말소리는 내지 않고 입만 움직였다. 그 어절은.
거.
짓.
말.
쟁.
이.
“그럼 이만 나가겠습니다.”
“아, 안돼! 잠시만!”
미처 코넬리아가 변명할 기회를 달라고 부탁을 할 틈도 생기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앤시아가 있던 문틀에는, 돌아보지 않고 나간 앤시아의 은은한 향만 남았을 뿐이었다.
탁.
문이 닫히자마자 입가를 닦으면서 소녀는 투덜거렸다.
“내가 뭘 속였다고!”
그러면서 화를 내기 위해서 스스로 변명을 찾다 보니, 무언가 생각에 짚이는 게 있었다.
앤시아와 처음 만났을 때. 조금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자신과 로드리 사이의 관계를 물었다.
그러고 보면. 코넬리아가 둘 사이가 어떤지 물었을 때, 어린아이한테 짓궂은 농담을 했다는 정도라고 그때는 받아들였지만.
사실 그 의미는 ‘내가 너보다 쟤랑 더 친하다’는, 유치한 시기심일지도 모른다.
‘앤시아 녀석. 설마 로드리를 좋아했던 건가? 그런데 내가 빼앗은 거고?’
혹시 모르니, 속으로만 생각하면서.
코넬리아는 나머지 사과 조각을 입에 통으로 넣었다. 이번에는 차분하게 오물거리면서, 소녀는 몸에 힘을 풀고 베개에 뒤통수를 파묻었다.
“내가, 유부녀가 되었다고…?”
기껏 깔끔하게 다듬었던 머리칼이 다시 헝클어지는 건 신경 쓰지 않고. 누운 채로 소녀는 왼손을 앞으로 뻗어 보았다.
예전의 자신—렉스 휴크레이—의 완력으로도 강하게 힘을 주면 나뭇가지처럼 부러질 것만 같은, 가느다란 팔. 활짝 펼친 손바닥은 플라타너스 나뭇잎처럼 허약해 보이고.
그 손의 약지에 은빛 반지가 반짝인다.
종립구원군의 일원이 되는 표징(表徵)인 동시에, 일원보다 짙은 유대로 서로를 연결하는 일족의 사인.
여태까지는 행운의 부적 정도로만 생각은 하면서도 아마 더 의미심장한 물건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선에서 넘어갔던 거였는데.
‘이거, 그냥 결혼반지 아닌가?’
이런 꼬마의 몸이 되기 전에도 연애 같은 연애는 제대로 한 적도 없었다.
연애하기도 전에 결혼을 하였다. 그것도,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의 아내가 되었다는 말이다.
“아내라니,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아내라니.
내가 아내라니!
죽느냐 사느냐 하는 심각한 문제가 산더미만큼 쌓여 있어도, 그 와중에 누군가는 사랑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실연한다.
본의 아니게 앤시아에게 상처를 준 건 미안한 일이었다. 코넬리아도 쾌락 없는 책임을 이런 식으로 지고 싶진 않았다.
‘언젠가는, 아니지, 가능한 한 빠르게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다.’
당장 닥친 골칫거리에 머리가 아파질 찰나에, 누군가 또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앤시아가 뭔가 놓고 간 게 있는 건가-하는 생각은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곧바로 사라졌다.
“「찰카닥」”
로드리는 병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등 뒤로 손을 돌려서 병실 문의 잠금장치를 걸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내가 여기에 온 건 비밀이다. 코니.”
“오오~….”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정복 차림의 로드리. 검은색 군화에 어울리는 흑색 제복에는 호화로운 견장과 약장이 수놓듯 아름답게 달려 있다.
아까 앤시아가 입었던 군복이 실제 작전 활동에서 주로 착용하기에 코넬리아의 눈에도 익은 복장이었다면.
지금 로드리의 옷차림은 윗사람을 만나는 대단한 날이거나 예의범절을 존중하는 자리에 참석할 때에나 입는, 좀처럼 보기 드문 복장이다.
“간호 스테이션에서 네 정보가 방금 수정되었더군. 의식을 되찾아서 다행이다. 코니.”
“어,으응. 고마워.”
“고마운 건 내 쪽이다. 네가 살아있음에 이 우주와 여신에게 무한히 감사하다.”
열심히 말하면서도 로드리는 조금 전 앤시아처럼 곧바로 장교모부터 벗어서 옷걸이에 걸었다.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서류 가방을 침대 옆에 내려놓는 로드리의 이마와 머리칼에 땀방울이 반들거린다.
그저 옷을 자랑하려고 온 것 같지는 않았다.
“여기 오기 전에 어디 들렀다가 온 거야?”
소녀의 질문에 로드리는 뜸 들이지 않고 곧바로 답했다.
“먼저 9호실에 다녀 왔다. 가서 화를 좀 냈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의 땀을 닦은 로드리는, 마치 ‘우리 사이엔 아무런 일도 없었다’고 하는 마냥, 여느 때처럼 단조로운 표정으로 코넬리아를 바라보았다.
“행정법무부에서 운영하는 기관이 「수감자를 지켜야 한다」는 기초적인 원칙조차 지키지 못했다. 아무리 파견 직원의 실수라고는 해도 용납이 안 되는 일이다.”
“하하. 파견 직원이라….”
총구를 들이밀었던 마틴, 그리고 9호실에서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수잔.
이 둘과 나누었던 교류가 적지 않았을 텐데도, 공과 사를 분리하는 로드리는 뒤이어 아무렇지도 않게 엄청난 이야기를 하였다.
“그 다음은 시청에 잠깐 들려서 볼일을 본 후, 종립구원군 본부에 불려 가서 크게 혼쭐이 났다. 나도 경호 실패를 했으니까. 그리고 곧장 너에게 왔다.”
농담으로는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로드리는 코넬리아 옆에 앉았다.
“이곳이 바트나에서는 가장 안전한 곳이다. 그렇지만, 감당할 수 있겠는가.”
“뭐, 뭐가….”
불길한 예상이 코넬리아의 뱃속을 살살 간지럽혔다. 그 불안함은 빗나가지 않았다.
소녀의 아랫입술에 묻은 과육 조각을 엄지로 닦아내면서, 로드리는 말했다.
“여기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는 내 아내여야 한다.”
“감당 못 하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