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3막 (下 - 2/2) 네가 죽으면 나도 죽어야겠지 (12)
코넬리아는 다음 철제 상자를 확인하였다.
그다음도, 그다음도, 그다음도. 연거푸 확인하는 것마다 모두 마찬가지였다. 앰버밍 가공을 거쳤을 시체는 성별도 연령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이건 정말….”
결국 코넬리아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 담겨 있는 철제 상자 안에는 어떠한 존엄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최소한 인간이라면, 지켜야 할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철제 상자의 뚜껑을 연 채 얼어붙어 있는 코넬리아의 뒷모습을 보면서 로드리가 입을 열었다.
“하늘이 두렵지 않은 걸까.”
그의 힘없는 목소리가, 지하 공간에 엷게 흩어진다.
“이제 천벌이라는 게 우스갯소리가 된 시대라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이건 정말 용납되기 어려운 짓이다.”
“여신이 만만해진 시대가 되긴 했지. 끄응—”
뚜껑을 힘껏 밀어서 완전히 열어젖히고. 코넬리아는 그 안을 가리켰다.
“맨 위에 있는 시체를 꺼내.”
코넬리아가 가리킨 수조를 본 로드리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바로 철제 상자 속으로 팔을 집어넣었다.
포르말린 증기를 들이키는 지금 상황도 건강에는 정말로 좋지 않건만, 보호 장구 없이 두 팔을 담그는 건 더 말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해로운 행위였다. 그걸 알면서도 주저할 때가 아니었다.
그 안에서 꺼낸 시체는, 코넬리아보다 조금 더 어려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그 시체의 팔목에는 번지긴 했어도 글씨를 간신히 알아볼 수 있는 라벨이 끈으로 매달려 있었다.
“「신원 미상. 사인 불상, 무연고 거주자. 귀속 소멸.」”
그다음 뒷면을 돌려본 로드리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양도일자는 일주일 전. 양수인은 적혀 있지 않고. 양도인은… 「바트나 시립 구빈원 교구관리」라고 적혀 있군.”
“허허.”
코넬리아의 허탈한 웃음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바트나 시립 구빈원.
“어디서 많이 들었던 이름이네. 그치, 로드리?”
“커크가 우리를 속인 건가.”
일순간 소녀의 모공에 움츠러들 정도로,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차올라 있었다.
커크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말보다도 주먹이 빨랐겠지.
한눈에 보기에도 마르고 허약해 보였던 커크가 로드리에게 한 방 먹는 순간, 곧바로 뼈와 살이 분리되었으리라.
“그건… 확실하지 않지. 커크도 속았을 수도 있어.”
코넬리아는 로드리에게서 건네받은 라벨을 살펴보면서 그의 분노를 달래듯이 말했다.
“이 시체를 매입한양수인이 누락되어 있잖아. 다른 시체의 라벨도 확인해보자.”
코넬리아의 말엔 설득력이 있었다.
로드리는 그 라벨을 처음 있던 곳에 다시 매달아서 원래대로 돌려놓은 다음, 소녀와 함께 서둘러서 다른 철제 상자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로드리가 꺼내었던 카데바의 라벨처럼. 나머지 시체에서도 역시 정보 대부분이 제대로 적혀 있지 않았다. 로드리의 오해가 풀릴 수 있었던 건, 다른 양도인의 이름이 적힌 라벨도 나왔기 때문이었다.
양도일자는 짧게는 일주일 전에서 길게는 한 달 전. 시립 구빈원이 아닌 다른 교구에서운영하는 구빈원의 교구관리 이름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등장한 이름은 구빈원 시설 뿐만이 아니었다.
“로드리. 여기 적힌 건 「바트나 시립 병원 시체안치소」…라는데?”
“음.”
이제 로드리와 마찬가지로 온몸이 포르말린으로 젖은 코넬리아는, 한 노령의 카데바에 달려 있던 라벨을 꺼내어 보여줬다.
“교구관리의 도덕성에 의심을 가지는 건 그렇다고 쳐도 말이지….”
“시립 병원까지 앰버밍 공장과 한통속일 리는 없다. 코니.”
커크도 코넬리아와로드리 앞에서 교구관리의 나쁜 인상에 대해서 한탄을 한 적이 있었다. 예로부터 온갖 부정적인 인상의 집합체였던 구빈원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건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처럼 당연한 일.
그 반면에. 시에서 시민들의 건강을 위하여 직영으로 운영하는 시립 병원에 대한 인식은,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
로드리가 이 둘을 완전 다르게 여기는 건 일리가 있었다.
“나 자신도 편견 속에 갇혀 있다는 건 안다. 여튼 커크를 잠시나마 의심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군.”
“괜찮아, 로드리. 그런 험담은 그 사람 귀에만 안 들어가면 되니까.”
“험담이란 점은 부정하지 않는군.”
“그야 너, 아까는 목소리가 정말로 무서웠다고. 아, 무섭다는 건 어디까지나 내가 무서웠다는 게 아니라—”
또 변명이 튀어나오려고 했던 코넬리아는 “아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야지.”라고 짧게 말을 정리하고 넘어갔다.
“이 시체들이 여기 존 제르바의 공장에 바로 온 건 아닐 거야. 도심 이곳저곳에서 시체 수십 구를 바로 교외 지역으로 나르는 건 어려울 거고. 그러니까….”
코넬리아는 시립 구빈원을 처음 방문하였던 그 날 밤을 다시 떠올렸다.
불과 하루 전의 그 모습은 아직도 소녀의 머릿속에서는 한 장의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병동으로 들어가기 전, 그 옆에는 시체가 잔뜩 실려 있던 수레가 있었다.
“그래. 그런 거였구나.”
서서히, 아주 서서히.
여태까지 한 톱니씩 어긋나 있던 진실이 끼워 맞춰지기 시작했다.
“로드리. 구빈원에서 나온 시체들이 이 앰버밍 공장에 도착하기까지 한 단계가 더 있어.”
“그렇지. 청어 운반용 유통업체 말인가.”
“으음. 그래. 그 업체도 끼어 있긴 하지. 그런데 내가 지금 말하는 건 거기가 아니야.”
고개를 가로저으며 소녀는 팔짱을 꼈다.
자신의 시체를 기꺼이 기증하는 뜻깊은 사람이 살아생전에 미리 계약서나 확인 서약을 하지 않는 이상, 절대다수의 카데바는 사후 인격권의 문제가 생기지 않는 자들의 시체를 사용하였다.
아무런 인연이 남아 있지 않은, 무연고의 빈민들.
그들이 세상을 떠나면 묘지에 안치되지 않더라도 그 누구도 문제 삼지 않을시체가 된다. 장례 미사도 치르지 않으며, 사망진단서가 쓰인 이후의 처리에는 무관심한 시체.
분명히, 그런 시체만을 모으고 있었다.
“카데바로 쓰여도 탈이 없는, 그런 시체만 선별하는 단계가 있있어.”
“코니 네가 말하는 그 단계라는 게….”
도시 여기저기에흩어져 있는 구빈원과 시립 병원에서 나온 시체들, 그리고 그중에서 필요한 시체만 선택적으로 모을 정도의 조직력과 자금을 갖춘 누군가가, 이 일의 한 단계에 끼어들어 있다.
더는 말을 하지 않아도 생각이 닿는 게 하나 떠오른다. 로드리와 코넬리아는 시선을 마주하였다.
이 거래의 배후에는, 한 회사가 있다.
콜레라 발병 사실을 감춘 지역지부의 배후에도, 마찬가지로 같은 회사가 있다.
재클린이힘겹게 손에 얻어서 로드리에게 전달한 환각제가 담겨 있던 헝겊 주머니에 그려져 있던, 아래를 향해 둥글게 휜 초승달 문양을 대표로 내세우는 회사.
“에버라드 무역상사.”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거로도 코넬리아는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부정한거래에 카데바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그 중간 단계는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겠지. 라벨에서 양수인의 이름을 뺀 것도 그 때문이고.”
“누락시킨 게 아닐 수도 있다. 이미 한 번 써졌던 글자를 나중에 지웠을 가능성이 있다.”
잠깐이나마 머리로 피가 쏠려서 화가 났었던 건완전히 진정이 되었는지. 로드리는 코넬리아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놓친 걸 짚어 주었다.
“증거품으로 압류한 다음 조사를 해보면 무언가가나올 것이다. 흔적은 어딘가에 반드시 남는다.”
“이런 쪽으로는 네가 더 전문가이니까 네 말은 믿어야지. 응.”
소녀 자신이 아무리 경의사라고는 해도, 실제 바트나 시에서 험하게 구르면서 여러 크고 작은 사건에 굴렀던 경험은 로드리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무엇이든지 모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자기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모르는 걸 배우면 되는 마음가짐. 의학도일 때부터 있었던 렉스 휴크레이의 그 마음가짐은, 코넬리아가 되어서도 여전히 유효하였다.
“그래도 이게 소문이 퍼지는 건 막기 어렵겠지?”
코넬리아는 로드리가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종립구원군—의 정보 누출을 고민하고 있는 걸 떠올렸다. 소녀와 같은 고민을 하는지, 로드리도 마찬가지로 드물게 심각한 표정이었다.
“오토마톤을 호출해서 증거품을 도심으로 옮기는 것까지는 소문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걸 중심으로 도심에서 조사를 시작하면.”
“날개 돋친 듯 소문이 퍼져나가겠지. 큰일이네.”
카데바에 대한 소문이란 건 으레 작게는 한 마을, 크게는 한 도시를 뒤흔들 수 있는 파급력이 있다.
앤시아에게 작전 편제를 바꾸자고 설득할 때, 그녀가 ‘인간 앰버밍’이라는 말에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놀랐던 건 그만한 근거와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시체를 불법으로 사용한다는 소문은 정말 위험한데.’
여러 의학원에서 실습 시 부족한 카데바를 수급하기 위해, 암암리에 시체 판매인들과 거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건 비밀 아닌 비밀이다.
그 비밀이 몇몇 관계자의 입방아를 찧는 범위 안에서 뱅글뱅글 돌아다닐 때는 괜찮았다. 그 견고한 범위 너머로, 일반인들 사이에 그 소문이 퍼졌을 때가 문제였다.
단순하게 [시체를 불법으로 매입한다.]는 소문은 점잖은 축에 속한다.
[공동묘지를 온통 헤집어서, 묻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체는 도로 꺼내어 아카데미에 팔아넘긴다.]는 소문이 돌기라도 하면.
그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시민들을 죽여서 해부 실습으로 쓴다]는 악의적인 루머라도 퍼지는 순간, 그 도시의 의학원은, 그날로 잿더미가 된다.
막연한 공포감으로 지어내는 상상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었다. 아주 오래전이라 역사책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뉴앨버스 의학원에서 그 일이 터진 지 아직 십 년도 지나지 않았어. 나도 알고 있을 정도라고.”
이제 겨우 열 몇 살 정도 먹은 여자애가 할 말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로드리는 웃지 않았다. 그 역시 코넬리아가 말하는 게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가능하면우선 사진만 촬영해서 빠져나가고 싶지만, 불행히도 지금 브라우니 사진기는 우리 수중에 없군.”
지금쯤 공장에서 1층으로 올라가 한창 교전 중인 구원군에게 증인을 넘기고 있을 마틴, 그가 어깨에 메고 있는 륙색 안에 사진 촬영 장비가 들어 있다.
“그러게. 큰 실수를 저질렀어.”
팔짱을 낀 코넬리아는 무의식중에 턱을 긁적였다.
예전의 렉스 휴크레이였다면 턱 끝에성하게 자란 노란 수염이손가락에 걸렸겠지. 하지만 지금 코넬리아의 손가락은, 그저 이차 성징도 제대로 오지 않은 아이의 반들반들한 턱만 문지를 뿐이었다.
“증거품을 가져가지 않을 수는 없는 거지?”
“그렇다. 반드시 성과를 내서 가져가야 한다. 증거품으로 거둘 수 있는 성과가 어떤 것인지는 우리가 판단할 수 없겠지만.”
“끄으응….”
아랫입술을 잘근 씹으면서 코넬리아는 몸을 돌렸다. 그저 뻐근한 허리를 펴기 위한 동작이었지만.
우연히도 소녀의 눈에 들어온 건, 철제 상자에 여태까지 집중하느라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다른 수조들이었다.
알코올이나 포르말린 등으로동물의 사체를 보존하는 액침 표본(液浸標本)은, 이미 의학원은 물론 박물관이나 여타 전시회에서는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물건들이다.
그렇기에 「인간 앰버밍」의 증거를 찾는 코넬리아의 시야에 들어왔어도 자연스럽게 생각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들이었는데.
“로드리. 저거.”
“음?”
생각에 잠겨 있는 로드리 앞에서 손가락을 딱 튕기고,코넬리아는 지하 공간 중심부에 있는 수조를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