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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화 〉3막 (下 - 2/2) 네가 죽으면 나도 죽어야겠지 (11) (85/111)



〈 85화 〉3막 (下 - 2/2) 네가 죽으면 나도 죽어야겠지 (11)

여태까지 지나왔던 그 어떤 문보다도 부드럽게 움직이는 여닫이문의 경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열린 문 너머. 세척실 안의 조명은 꺼져 있었다.

“깜깜하네.”

왼쪽 눈을 감고 손으로 덮어 가리면서 코넬리아는 중얼거렸다.

“여기가 확실한 건… 맞겠지.”

보이는 건 보이지 않는 어둠뿐이더라도 냄새는 빛이 없어도 느껴진다. 지독한 화학약품의 자극 때문인지, 로드리는 소매로 코를 막은 채 끄덕였다.

“조명 스위치를 올려주면 좋겠는데. 코니.”
“그게 어디 있어. 대강 위치라도 알려줘.”
“일단은 전등 램프를 아래로 내려라.”

그렇게 말하면서 로드리는 자신의 램프 위로도 두꺼운 천 덮개를 다시 씌웠다.

“야광 염료의 마크를 찾는 게 편하다. 코니. 네가  있는 방향으로 우측 벽에 정삼각형의 마크가 있다. 출입문 옆에서 멀지 않다. 그곳의 스위치를 올리면 된다.”
“램프 빛으로는 발밑만 조심하면 된다는 거네.”
“그렇지. 서둘러라.”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는 로드리는 전방과 왼쪽을 주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측은 코넬리아에게 맡기고 있는 셈이었다.

신뢰를 받는건 나쁘지 않다.

“알았어.”

코넬리아는 왼쪽 눈으로 가리고 있었던 손을 치웠다. 암순응을 미리 끝낸 눈으로 살펴보니, 과연 벽에 희미하게 인광(燐光)도료 표시가 하나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몇 발자국 정도의 거리도 조심조심 내디디고. 코넬리아는 스위치를 손가락으로 올렸다.

“「칭—티팅─… 팅, 팅—」”

소녀의 둥근 손가락 끝으로 스위치를 올릴 때마다, 천장의 전등이 차례로 켜지기 시작했다.

괜히 답답하게 느껴지는 낮은 천장에 꽂혀 있는 전등은 주황색 불빛을 사방으로 쏟아내고 있었다. 복도와는 다르게 붉은 벽돌로 촘촘하게 채워진 벽은 실내보다는 실외에 더 어울리는 모양새.

마치 한낮처럼 흘러넘치는 따뜻한 빛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어떤 의미로는 따뜻함과는 가장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빛을 흠뻑 받아들이고 있는 세척실에는.

수조가 있었다.

여러 크기의 수조가, 셀 수 없이 빼곡하게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한눈에 보아도 수조 중 어느 것 하나 내용물이 들어있기는커녕 어떤 액체도 채워져 있지 않았다.

“세척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말 그대로 수조를 세척한 것 같군. 바닥을 봐라.”

로드리의 말대로 지금 둘이 있는 곳은 물때가 조금씩 끼어 있었다. 무릎을 굽히고 자세히 살펴보니 군데군데 그어진 금 사이로는 이끼가 자라고 있었다.

“세척실에서 수조 씻는 거로는 특이할 게 없지. 엇차.”

자리에서 일어난 소녀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손가락 끝으로 자신의 코를 톡톡 두드렸다.

“문제는 이 냄새.  포르말린 냄새가, 여기에서 나는 게 아니라는 거야.”
“동의한다. 지금, 이 세척실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수조는 전부 다 깨끗하게 비어 있다.”
“그렇지. 우리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지….”

말끝을 흐리던 코넬리아는 턱 끝을 만지작거리면서,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로드리.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정말 많아. 특히 조금 전, 볼라트가 했던 말이라든가. 그걸 지금은 내가  묻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모르겠다.”
“고민하는 척은 해달라고 진짜…!”

조금은 어이가 없어 보이는 코넬리아와 눈을 마주치면서 로드리가 입을 연다.

“궁금한 걸 참고는 못 견디는 네가 어째서 안 묻는 건지, 정말로 모르겠다. 코니. 어째서인가.”
“그건 너를 믿어서 그런 거야. 로드리.”
“날 믿는다고.”
“그래. 세상에서 내가 제일 믿는 사람을 손꼽아보면 네가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어가.”

예전이었으면 이런낯이 다 부끄러운 말은 절대 입 바깥으로 술술 떠들지는 않았겠지만, 아무래도 육체의변화는 정신에도 영향을 주는 듯하였다.

‘육체만 달라진 게 아니다.’

경의사라는 드높은 신분의 위치에서, 다른 사람을 손쉽게 짓누를 수 있는 시선을 가지다가도.

경의사로서 다니는 여정에서 만나고 겪은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수 만큼의 다양한 시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얻기 싫어도 얻을 수밖에 없는 경험들이 코넬리아와 렉스 휴크레이의 생각을 매 순간 바꿔나가고 있었고.

그 가운데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난 처음 보는 사람의  따위에 흔들리지 않아. 설령 네가 나를 속이더라도 그건 분명 나를위한거짓말이겠지. 로드리. ”

볼라트가 던진 말 하나하나가 허투루 넘길  없었다. 그게 마냥헛소리가 아니라는 건 마틴이 보여준 수상쩍은 반응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코넬리아의 마음에 분명 불안함의 나무 가시 한 조각이 깊숙이 파고들었지만.

그 휘몰아치는 불안감의 해일도 고작해야 찻잔 속의 떨림일 뿐이다.

“난 이렇게까지 변해버렸어. 너도 구원군에서 달라졌고. 그렇지만 모든 게 변한 건 아니야. 바뀌지 않는 것도 있어.”
“그게 뭔가. 코니.”
“너와  사이의 룰(rule)이다.”

그렇게 말한 코넬리아는 무수히 늘어져 있는 수조 너머의 세척실 구석진 곳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저쪽만 수조가 넓은 간격으로 벌어져 있다. 로드리. 믿고 있으니까 확인해.”
“어째 말이 길다 싶었더니.”

한숨이라도  타이밍이지만 로드리는 그러지 않았다. 소녀가 그저 자신을 부려먹으려는 수작으로 꺼낸 말이 아니라는 정도는, 둔한 로드리라도 알  있다.

“그 믿음이 무섭다. 렉스.”

작게 중얼거리면서.

크고 작은 제각기 높이를 자랑하는  수조 사이로 그는 코넬리아가 가리켰던 곳으로 갔다.

시멘트 바닥에는 뭔가 둥그런 곡선으로 긁힌 자국이 있었다. 무언가 축으로 삼아서 호를 그리고 있는 그 끝을 따라가 보니 벽의 한 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붉은 벽돌로 채워진 벽.  벽에 숨겨진 출입문이 있었다.

“부술까, 코니?”
“안돼, 참아. 로드리.”

그의 등 뒤로 따라온 코넬리아는 끌린 자국이 있는 벽을 발로 툭툭 찼다. 단단함 너머로 무언가가 빈 곳이 울리는 느낌이 있었다.

“여닫이문이니까 문손잡이가 없을 리가 없는데. 대충 이쯤 높이에….”

손으로 벽을 더듬거리면서 움직인 소녀의 전등 램프에, 언뜻 보면 자연스럽게 벽돌 하나가 빠져나간 것처럼 보이는 틈이 있었다.

거기에 손을 집어넣으니 딱 쥐기 알맞은 감촉의 홈이 보이지 않는 안쪽으로 패여 있었고.

 홈을 따라 주먹을 쥐는 방향으로 살짝 힘을 주었다.

“「달칵」”

어긋나 있던 장치가 맞물리는 손맛이 느껴졌다. 코넬리아는 어깨로 밀면서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하나의 공간이었던  억지로 분리한 공간이었는지, 숨겨진 문 너머에도 아까와 같은 조명과 천장이 이어져 있었다.

달라진 건, 그 천장 아래에 있는 모든 것들.

이미 자신들이있는 곳도 지하 창고이건만, 지하 아래로 더 깊은 지하 공간이 있었다.

좁은계단조차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지하 동공의 저 아래에도, 점점히 조명 전등은 들어온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와아…….”

출입문에서 고작 수 미터 떨어진 철제 난간에 몸을 기대고, 코넬리아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짙은 냄새가  밑에서 미적지근한 바람을 타고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이걸 어떻게 내려가야 하는 거지. 로드리, 한 번 점프해볼래?”
“그보다는  더 교양적인 하강 방법이 있는 거 같군.”

로드리는 코넬리아의 방수 우의 뒷덜미를 꽉 붙잡았다.

마치 사자가 새끼 사자의 목덜미를 물고 나르듯, 소녀를 쥐어 들고 벽을 따라 걸었다.  끝에 있는 승강기에 들어가고 나서야 코니를 놓아주고 로드리는 버튼을 눌렀다.

“「끼기기기기—…」”

듣기 괴로운 금속음과 함께 둘을 태운 승강기는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흔한 인테리어 하나 없이 금속 골조와 철망으로 만들어진 화물용 승강기로 외부 공기가 여과 없이 들어왔다.

점점 심해지는냄새는 숨을 쉬기 버거워질 정도를 넘어서서 눈과 코가 따끔거리기 시작한다. 익숙하다고 해서 불편한 감각이 편해지는 건 아니었다.

“「덜컹, 덜컹.」”

승강기 안에서 둘은 아무런 대화 없이, 침묵을 지켰다.

가슴팍에 매달고 있는 전등 불빛은 코넬리아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부드러이 위아래로 박동한다. 살짝 찡그리고 있는 소녀의 눈은 철망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조감하던 풍경은 점차 그 각도가 아물려지고.

이윽고, 승강기는 멈춰 섰다.

철망 슬라이드를 좌우로 밀어젖히고 내린 로드리와 코넬리아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탄성을 내었다.

오와 열을 지켜서 정렬된 수조들.

바닥에 깔린 전등에서 쏘아 올리는 주홍빛 조명이  안을 비추고 있었고, 각양각색의 크기인 수조의 안이 이번에는 무언가로 채워져 있었다.

가장 먼저 시선이 끌리는 쪽은 단연 수족관처럼 사방이 노출된 수조였지만 소녀가 향한 쪽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쪽이었다.

요란하게 전시된 쪽이 아니라 그 바깥쪽으로 코넬리아는 걸어갔다.

마치 관처럼 바닥에 길게 눕혀져 있는 거대한 철제 상자. 그 윗면 뚜껑은 다른 수조와는 달리 안이 보이지 않는 단단한 금속판이다.

 고리를 잡고, 들어 올렸다.

“으으─….”

여기로 향하면서 나름대로는 각오를 하고 있던 코넬리아였다. 그 코넬리아도 바로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음이흘러나왔다.

맨 처음으로 열어본 철제 상자 안에는, 시체가채워져 있었다.

투명하게 넘실거리는 포르말린 아래를 채우고 있는 그 수는 절대로 한 손으로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한계에 가깝게 밀어 넣어진 시체들은 철제 상자에 꽉 채워져 있었다.

푸르스름한 피부 너머로 켜켜이 쌓여 있는 시체는 『좁은 공간에 최대한 적재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상태.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짐’을 보관하는 상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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